기 적
기 적
기적이라면 우선 신기함이 생각되곤 한다.그런데 신기한 것도 안 가서 흔한 일이 되고 만다.무지한 사람에게는 기적으로 보이는 일도 좀 아는 자에게는 정상적인 원리이다.인간들의 손에 의해 재생할 수 있는 일로 증명되면,기적에 대한 찬사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없다.기적을 신기한 일로 취급하기 때문에,인간들에 의해서 진정한 기적이 손상을 입는다.성경에서의 기적이란,신기함과 연결되는 게 아니라 죄와 연결되어 일어난다.인간들이 꼬깃꼬깃 감추어 두었던 죄가 폭로되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자아에 있어 모든 게 죄로 드러나면 그 사람은 말을 삼가게 된다.행동도 겸손해 진다.바로 이게 기적이다.쉽게 표현해서,인간이 된 것이다.새사람이 된 것이다.자신이 특별나게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인으로 출생했음을 아는 것,이것보다 더 큰 변화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기적에 대해서 모르게 되면 뭔가 선을 행하려고 애쓴다.자기의 선한 행함으로 의와 선이 지상에 펼쳐지리라 여긴다.선과 의도 인간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그러나 성경을 보면,의는 오직 하나님의 몫이다.하나님만이 의를 만들 수 있다."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이사야 45:8).사람으로는 도저히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을 하나님은 해내신다.이것이 기적이다.인간을 선을 행하고자 하여도 원래부터 죄인이라 행할 수 없다.그래서 세계 관리에 있어 오직 하나님의 의로움만이 심지로서 투입된다.세상 만사는 그 심지가 되는 '하나님의 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어 있다.이것이 기적인 반면에,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죄를 기준으로 하여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어 있다.그래서 기적이 아닌 것이다.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것을 무시하시는 것이다.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결코 만들어 내지도 못한 주제에,무슨 권리와 가치를 거론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을 망쳐 놓고도 공로 거리를 찾기 위해 역사의 배후를 들척이는 것은,기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기에서부터 유발된다.하나님의 기적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대한 사랑을 논한다.세상의 모든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몫이 흐려지는 것에 안타까워한다.인간의 행한 일과 업적에 대해서는,하나님의 기적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동정심에서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왜 하나님의 기적이 꼭 개입되어야 일이 되는가?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스스로 양보를 자처하는 자들이기 아니기 때문이다.순교와 고난과 사랑과 의로움과 신앙심,이 모든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자아의 가치를 재확인하려고 덤비기 때문이다.예수를 믿는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서도 자기 쪽에서 훌륭한 근원을 찾으려고 시도한다.고상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이는 모든 일들 속에서도 자기의 죄악을 발견하려 들지 않는다.오히려 반대로,인간에게도 뭔가 선한 요소가 있지 않겠느냐 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기적을 무시하는 순간이다.기적을 외면하는 처사이다.오죽 인간들이 완전 무능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으로 일관했겠는가! 인간이,자신은 죄악 덩어리임을 자각해야지 만 비로소 기적이 감잡힌다.신기해 보이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기적임을 알게 된다.그리고 그 기적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의로움를 향하여 손살같이 달리고 있는 중임을 발견하게 된다.단지 인간들만 반대로 목을 돌리고서는 자기 영광 거리만 외로이 챙기고 있다.이래도 교만이 아닌가? 인간은 심장이 뛰고 있는 이상 속에서 계속 뭔가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게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마태복음 15:11).바로 그 더러운 것을 날마다 토해놓는 그 인간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의인으로 전환시키는데 바로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에게는,신기한 것을 보여달라는 권리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