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알고 땅도 아시는 분
하늘도 알고 땅도 아시는 분
인간들은,땅에 속했기 때문에 땅에 대해서만 대충 알고 있다.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시기 때문에 하늘과 땅,전부를 다 아신다.전부를 다 아시는 분이 땅에 대해서 가지는 감정이라든지 평가에 대해서 우리 인간들은 심각하게 받아 드려야 한다.또한 그 분이 실제로 이 지상에서 사신 행각에 대해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예수님이 무턱대고 사신 분이라면 그 분의 모든 것을 무시해도 좋다.또 환각 상태에 빠진 분이라면 오히려 멀리해야 하는 위험한 분일 것이다.그러나 그분이 지난 한평생 동안 사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그분만이 하나님을 아시는 분이다.다른 이를 통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그분을 모르면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그냥 그대로 있게 된다.미래에 일도 그분이 당했던 수모를 근거로 해서 확정되어 버렸다.역사의 내막을 결정지은 분이다.심판권을 가진 분이시다.초대 성도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불렀다."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시라는 것이,성경으로만 전해져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가 그렇지 못하다.옆의 사람이 하는 종교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다.때로는 흉내도 내기도 하고 때로는 비판도 가한다.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해서 관심을 두어야 할텐데,예수 믿는 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행위에 대해서 관심을 둘 뿐이다.그리고 그네들의 집단을 중요시한다.존재에 있어 최우선적이다.우리 교단의 전통은 이것 입네,당신 교단의 전통은 이것 입네 하면서 절충과 타협과 정치술로 새로이 하늘의 뜻을 조립하려 든다.물론 이런 작업을 통해서 인간들은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종교든 세상 정치든 인간들이 하기 나름이다라는 의식이 퍼지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성경과 진리만을 고수하든 자들로 세상 되어 가는 것이 인간의 뜻대로 되는 듯이 보이니깐 점차 그들도 예수님의 삶을 내팽개친다.성경대로 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논리를 밑바탕에 깔았던 것이 애초부터 실수 였다.성경에는,진리는 곧 배척이라는 등식만 존재할 뿐인데….참으로 선택받은 자라면 실패를 통해서 다시 성경을 해석하게 된다.전에서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봤던 것인데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예수님의 역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전에는 십자가가 보일락 말락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정식으로 용감하게 십자가로 다가선다.하늘도 알고 땅도 미리 아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 지셨나? 그것은 모든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지셨다."인간들아 너희들 식대로 살아서는 안되느니라"라는 점을 보이게 위해서 지셨다.예수님은 십자가 위해서 정답을 말씀하신다."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그 당시 웅장한 성전도 있었고 완벽한 율법 체제도 있었다.하나님에 대한 제사가 나라 한복판에서 끊이지를 않았고 희생 제물이 뿜는 연기는 하늘을 향해 쉴새없이 몰려갔다.누구보다도 경건을 강조했고 기도와 금식과 구제와 십일조와 성경 읽기에 몰두한 신의 나라 한가운데서 예수님은 살해당했다.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예수님과 자기 자신들 사이에서,자기 자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하늘도 알고 땅도 제대로 아시는 분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향해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하셨다.자기를 버리고 말이다.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례하도록 해야 한다(마태복음 8:22).죽은 자와 산 자를 구별 짓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다.하늘에서 보는 관점과 땅에서 하늘을 치켜올려다 보는 관점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땅에 사는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면서 항상 좋은 점수를 뒤집어 씌운다.그러나 하늘에서의 평가는,저주 그 자체이다. 이사야 44:18에서는 인간 세계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예수님의 말을 듣고 또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들의 자기네 세상을 고수했다.예수님를 따름이 별 가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이런 무지한 인간들이 외치는 소리,"하면 된다"라는 논리는 결국 최후의 그리스도인까지 죽음으로 처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