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출
탈 출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는가?" 이 문구는,신앙적 제 위치를 찾고자 하는데 흔히 거론되는 물음이다.그런데 물음만 막연하게 던져서는 안되고 답도 알고 있어야 한다.예수님 같으면 매사에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탈출시키고자 하는 쪽으로 결행하신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그것은 자기 백성을 하늘로 데려가고자 함이다."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다(요한복음 3:14).인간들은 자기 앞에 난처한 사태가 일어나면 어찌하든지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한다."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는가?"라는 물음도 어떤 속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해서 사고를 새롭게 가져가겠다는 의도이다.그러나 실제로 예수님 같으면 그 문제를 일으킨 이 세상 자체에 대해서 손을 떼고 탈출하는 식으로 행동하신다.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신다.누가복음 12:13-14에서,"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라고 되어 있다.또 마태복음 22:21에도,"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다.재판에 관해서 고린도전서 6:7에 봐도,"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라고 충고한다."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한가".왜냐하면 성도는,세상도 천사도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6:2-3).악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좋아할게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다.예수님의 모든 결정은,어찌하든지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서 탈출시키는데 목적이 있어서 이 땅에 오셨다.이것이 구원이다.구원이란 것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는 것이 주제로 되어 있다.따라서 구원이라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흐름에 휩쓸려 날마다 생성되는 것이다.아무리 50년을 교회 출석했다고 해서 지금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구원 속에 들어 있지 않는 사람이다.구원,즉 구출이 성도를 데려가고 있지 성도가 구원을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다.구원은,'탈출'이라는 현재 진행적 사건 형태이다.구원을 신용카드처럼 생각해서 늘 소지할 수 있는 물품으로 가르침을 받아 왔으니 오늘날 교인들이 큰 오산을 하게 된 것이다.즉 다음과 같은 논리가 활개치도록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자,나는 이제 구원을 받았다.앞으로 어떻게 처신하지? 옳지 개인 구원은 확보되었으니 이제부터 사회 구원에 나서야지." 이것은 예수님이 오신 뜻과 전혀 무관하다.단지 인간 개인의 윤리적,도덕적 성취감과 관련 있다.착한 일을 해서 그 근거로 돋보이는 착한 사람으로 세상에 등장해 보겠다는 자아 실현의 욕구의 발로이다.이런 탐욕으로 선한 일(?)에 나서보니 여기에 두 가지 문제점에 봉착되기 마련이다.첫째는,하나님이 자기 일을 안 도와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둘째는,하나님이 날마다 기적으로 안 도와주니깐 행정적이고 경영학적인 모든 사업성 책략이 동원된다.그러다 보니 남에게 착한 일한다고 간판 건 그들 집단조차 내부적으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돈이 모이니깐 그 자본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주도권 싸움이 내부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면서도 각자 분주하게 묻기를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냐?" 라는 호소이다.예수님은 같으면 다음과 같이 되물으신다."진정 나와 함께 탈출하고 싶으냐? 아니면 이 세상에 더 살고 싶으냐?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누구든지 죽고자 하는 자를 살 것이다"(마태복음 16:25).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집단만이 교회이다.성도라 할지라도 '그의 나라와 의' 보다는 세상 사람처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에 쉴 새없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예수님의 권능으로 제대로 이 세상을 빠져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날마다 큰 사업 벌리는 게 교회의 할 일이 아니다.예수님의 사업은 매일 같이 어제의 교회를 부수고 오늘의 교회를 새로 세우신다.아직도 탈출의사가 있는 자를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