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 운동의 불신성
교회 성장 운동의 불신성
예수님은 어려운 말만 골라 한 게 아니다.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논리가 난해한 말씀을 습관 삼아 하신 게 아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논리가 복잡한 말씀인가 아닌가? 절대로 논리가 복잡한 게 아니다.국민학교도 안나온 할머니에게,"예수님이 길이라는데 이 말이 어려운 말입니까"라고 물어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왜냐하면 예수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고,길이라는 것은 흔히들 다 듣고 소통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예수라는 분과 길이 결합이 되어서 천국으로 통하는 유일무일한 방도가 되고 할머니는 이런 의미에 감 잡은 것이다.하지만 불신으로 가득찬 종교학 교수가 있다하자.이 교수님에게 할머니가 이 말로서 전도하면 그 교수는 거부한다.할머니가 그 고수에게 묻기를 "제 말이 너무 어려운 말입니까?" 물으면 그 교수는 답변하기를 "어려워서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할 것이다.어렵지 않다면 쉽다는 뜻이다.그렇다! 천국 가는 것은 쉬운 것이다.그런데 왜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나 직분자나 목회자나 신학생들이 괴로워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3장에 보면,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귀한 진주하나 건진 보석 장수의 이야기가 나온다.천국에서 통용되는 믿음이란,귀한 것 하나 가졌기에 나머지 모든 것을 버려도 괜찮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믿습니까?"라는 말은 뭔가 추가해서 소유했습니까? 라는 식으로 묻는 게 아니다.세상 것 다 잃어버려도 좋을 수 있습니까? 라는 말이다.앞에서 예를 들은 할머니와 종교학 교수의 차이점은 무언인가? 할머니 모든 것을 버리게 된 존재라는 것이다.그러나 종교학 교수는,종교 일반에 관한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자료와 지식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다.한쪽은 이 세상 것에 대해서 무소유 적인데 반해서 다른 하나는 아직도 이 세상 것을 소지하고 있는 점이 차이가 난다.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목사는 목사 나름대로 자기가 교회를 소지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있고,장로들은 장로대로 내 교회라는 것이다.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언급하기를,교회는 예수님의 소유이지 그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다시 말해서 성경대로 모든 게 정돈되게 되면,목사는 단지 자신이 여기에 봉사하러 일시적으로 들렀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장로도 마찬가지고 일시적으로 봉사하기 위해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영구적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어디까지도 한시적이다.언제까지? 봉사할 자격과 무소유 정신이 남아 있을 때까지만 이다.만의 하나라도 교회가 자기 소유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그 교회에서 봉사할 자격이 상실된다.그렇게 되면 그 공동체는 그런 인사를 용납해서는 안된다.추방해야 마땅하고 또 당연하다.어떤 협박과 공갈이나 저주나 회유에도 넘어가서는 안된다.그래서 계속 주님의 교회로 돌려 드려야 한다.그래야 계속 교회가 된다.이상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믿음이 없는 자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점이다.이러한 믿음 운동에 가장 역행되고 장애가 되는 운동이 있는데 그것이 소위 교회 성장,부흥 운동이라는 것이다.총동원 전도 운동이나 교회 성장 세미나 같은 것은 무엇을 노리고 하는 운동이냐 하면은 가시적인 효과를 원료로 삼아 사이비 믿음을 자꾸 생산하는 운동이다.믿음의 진수인 '버림 운동'에 대해서 '모음 운동'으로 변질시키는 짓이다.교회가 자꾸 모아지면 어떻게 되는가? 교인들은 그 교회를 자기 소유로 삼게 된다.자기네들이 떼쓰고 애써서 모은 교회라는 것이다.그들은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는다.자기 교회에게 잘해주는 엉터리 예수만 그들의 뇌리 속에 남게 된다.이것은 이단이다.참된 믿음은 예수만을 믿는 믿음이다.예수만 남기고 다른 것은 없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진리대로 믿는 것을 말한다.이것은 예수 운동이고 복음 운동이지 결코 교회 성장 운동과 무관하다.보석 장수가 교회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라면,그런 시절을 만든 분이 주님이기 때문에 성도가 안타까워할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