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돈으로
뭐든지 돈으로
전도란,생명을 전하는 것이다.생명은 이 세상에 예수님 밖에 없다.따라서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전하는 게 아니다.그런데 요즈음의 전도란 예수님이라는 생명을 전하지 않는다.생명이 되지 못하는 교회 키우기에 온 정열을 쏟는다.교회 부흥이 생명을 대신하는가 아니면 교회 없어도 예수님만 있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성경이라는 것을 펴놓고 설교를 해도 예수님 전하는 척하다가 결국에는 교회 키우기 궐기대회로 끝을 맺는다.다시 말해서 돈 많이 내라는 이야기이다.예수님은 돈 한푼 없이 얼마든지 전도했다.제자들은 두 벌 옷도 가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생명을 전했다.왜냐하면 생명은 돈과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기도하는데 무슨 돈이 든단 말인가!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기도 생활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도 미흡하니깐 그 대신 헌금으로 때우려고 한다.돈 많이 내어 교회 주차장이나 넓히면 차 가진 자들이 자기 교회로 편하게 올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자기 교회에서 구원받을게 아니냐는 계산에서이다.주차장이 생명인가? 주차장 넓은 교회가 생명이 많은 교회인가? 전혀 예수님과 상관없는 교회당 지어놓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억지 선전들을 하고 있다.생명이란,모든 좋은 것을 놔 버리는 게 하는 본질이다.아무리 아름다운 예배당과 넓은 주차장과 많은 인파와 헌금이 들어 온다할지라도 결코 그것이 예수님 한 분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게 생명이다.이점에 참으로 목회자가 동의한다면 어떠한 자세로 목회 해야 하는가? 있는 교회 건축물도 부정해야만 한다.왜냐하면 사람들은 종교 편익 시절에 어떤 의미를 담아서 신의 축복으로 대신하려는 본능 속에 있기 때문이다.예수님을 가릴 만한 모든 것은 설교 시간을 통해서 쉬지 않고 공격해야 한다.생명이 못되는 것을 쉬지 않고 쳐부숴야 한다.예수님 당시에,사람들은 메시야관에 대해서 큰 오해를 갖고 있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다.자신은 그런 작자들에 의해서 결국에는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오늘날 잘못된 목회 철학으로 인해 교회에서 생명은 추방당하고 생명 되지도 못하는 돈과 경제 시설들은 교회당으로 차고 넘친다.누가복음 12:15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과 상관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회들은,소유의 넉넉함을 근거로 복음을 해석하려든다.개인의 넉넉함을 축복으로 간주하는 미신은 둘째 치고라도 교회 재산의 넉넉함을 신의 은총과 기적으로 풀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마귀가 복음을 저해하는데 있어 개인이나 단체나 반드시 돈으로 작용한다.사람들을 소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거부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돈 없이 능히 가능한 것이 생명 생활이다.왜냐하면 생명이란,주님과의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여기에 그 어떠한 돈도 필요치 않다.돈이 들어가야 전도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전혀 생명도,복음도,주님도 이해 못하는 작자이다.전도자는 단지 몸 전체가 생명 덩어리가 되기만 하면 된다.그 덩어리가 곧 성전이다.교회에 돈이 모이면,교회는 뭔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탐욕의 대상이 된다.다른 교회와 우월의 상대가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다른 교회보다 크고 싶은 마귀적 발상이 떠오른다.회중들 내부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이웃 교회보다 더 크고 싶은 탐욕이 발동하게 된다.예수의 이름을 도용해서 이제부터 조직체 사이에 암투와 투쟁이 싹튼다.서로 교인 뺐기 시합을 하는 것이다.물론 그 교회를 성전이라고 부를 천사는 하늘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동시에 그 투쟁에 말려들어 부질없는 객기와 열성을 부리는 교인이 천국에 갈리는 없다.교인들에게 생명을 소개하고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될 목회자들이,본인들의 교회 탐욕으로 인해 교인들을 배나 지옥 백성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예수님을 죽이는 목회를 해놓고서는 수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했다고 포만감에 사로잡혀 있으니 생명에 어둡고 생명 법칙에 무지한 목회자는 그 존재 자체가 죄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