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계시는 하나님
숨어 계시는 하나님
종말 때의 하나님은,숨어 계시는 형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숨어 있다는 것은 인간 세상에 대해서 감정 있다는 말이다.세상과의 관계를 취소하는 입장을 취한다.그 숨어 있는 계시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가 있기 위해서는 성도 자신도 세상에서 숨어 지내는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소위 말해서 회개를 해야한다.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 생활과 결별해야 한다.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신과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비상한 입장이 요구된다.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생활을 했다."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누가복음 9:2-6). 그들의 생활은 마치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세상을 대하면서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급히 지나쳐 가려는 자들 같다.그런 무리를 그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한 자들이라고 이해해 주지를 않았다.왜냐하면 하나님 관이 달랐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자기들만큼은 항상 복 주려고 얼굴을 자기 쪽으로 향하고 계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하나님이 비공개적이고 은밀하게 오실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제에 있어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왕림하셨다.숱한 날들을 군중들 속에서 지났지만 그들은 참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할 줄 몰랐다.왜냐하면 너무나도 자기들 입장만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들 중에 누구 하나 "주님은 하나님이시다!" 소리칠 줄 몰랐다.만약에 그렇게 소리치는 날에는 그 사람은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참말로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인 줄 아는 자들도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처신이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에게 큰 고난으로 느껴질 것은 뻔한 일이다.그러나 제대로 하나님을 만났다는 기쁨이 어딘가! 온 천하를 주고도 자기 목숨을 잃은 소용없지 아니한가!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 좁은 길로 가야 하는 것이 제자도라면,이 제자도의 모습에서 곧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 나온다.세상에서 숨은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부터라도 환영과 높임을 받는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모습에서 가짜 하나님을 믿는 전형적인 폼을 대할 수 있다.예수 믿고,하나님 믿어서 세상에서 위대한 스타로 부각되는 것이 바로 엉터리 예수 모습의 본색이다.예수님이 사신 방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요한복음 7:3-7).예수님은 세상을 악하다고 하셨다.그래서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숨어 지내는 것 자체가 가장 하나님다운 계시 방법이다.그러나 이것도 주님이 정한 때까지 만이다.주님의 때는 따로 존재하는데 그 때는 세상의 악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때이다.왜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얼굴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는 때이다.주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들이 세상에 쏟아지고 있다.무엇이 진짜 주의 일이며 무엇이 가짜 주의 일인지 어떻게 판가름되나? 세상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일들을 쏟아놓으면 그것은 가짜 주의 일이고,사람들이 기피하고 외면하는 일들을 쏟아놓으면 그것은 진짜 주님의 일이다.세상에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신에 대한 인상들이 뒤섞여 있다.하나님은 이런 분이더라,하나님은 저런 분이더라 라고 하면서 제각기 우상들을 하나씩 지니고 다니고 있다.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이들로부터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종말에는 오직 자기의 탐욕에 대해서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물론 그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저절로 격리 당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이 또한 종말의 계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이사야 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