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와 권태
장애자와 권태
연말이 되면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이 사회 전반에 걸쳐 장애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물결친다.평소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전혀 없다가 연말이 되면 갑자기 증가하는 것처럼 느낌을 받는다.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권태 현상이다.일년 동안 죽으라고 자기 일 하다가 연말에 모든 것이 정리 정돈하는 마당에서 주위를 돌아 볼 여유가 생겨서 불쌍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것이 권태 현상이다.권태란,자신의 본연의 할 일을 잃어버렸을 때 할 일을 찾기 위하여 주위에 대하여 두리번거리면서 소일하는 현상이다.장애자에게 가장 큰 문제점은,자신의 존재 가치가 상실해 버린 것이다. 자신이 불필요한 인물로 갑자기 전락되었고 심지어 애매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는데서 오는 자괴감이다.자괴감이란,자존심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끼는 감각이다.성한 사람들은 아직도 자존심을 무사히 간수하고 있다.왜냐하면 뭔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자기 일은 자기가 챙기고 있으면 남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사회 구성원으로 자격이 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그러나 장애자들에게 이런 게 없다.자기가 살아있는 기간만큼 남과 사랑하는 주위 사람에게 폐가 된다.그래서 장애자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도로 회수할 방도를 강구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도 일종에 자존심 건지는 방법이다.그리고 장애자로서 능력이 닿는 한 조그마한 수익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자존심 세우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장애자가 이러한 일들을 한다고 해서 주위에서 정상인으로 봐주지를 않는다.과거 자신이 정상인으로 가졌던 자존심은 그 어디서나 회복될 가능성이 막혀있다.여기서 장애인들은 권태증세에 시달린다.할 일이 없으니 종일 남에게 피해를 안주는 일과 그리고 처량하게 변해버린 자기 신세에 대해 과도하게 시간을 바쳐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에서 할 일은 잃은 쓸모 없는 인간이 겪는 정신적 폐허감과 신체의 결함에서 오는 불쾌감과 쓰림 때문에 겹으로 고통을 당한다.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으로서 자기 보다 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환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운명을 개발해 나가는 의지의 사람으로 주위에 비쳐주기를 노력한다.그래서 잊혀져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 이후 더욱 더 감동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하지만 항상 머리 속에 상상에 그칠 뿐이다.그렇다면 이들 장애인의 정신적 문제의 해결점은 무엇인가? 첫째,주위에서 말하는 장애인과 정상인의 구별을 받아 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별을 받아 드려야 한다.시편 1편에 보면,복있는 자와 악인이 구별되어 나온다.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복있는 자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기존에 사회생활 가운데서 간직해 왔던 모든 인간적인 기준을 부수는 것이다.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기준,즉 참된 복이란 말씀을 알고 말씀이 들어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음에 철저해야 한다.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른 손이 범죄하거든 찍어 버려 불구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옥 불에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셨다(마가복음 9:43-48).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상인은 이런 불구자를 말한다. 둘째로,자존심에 의존해서 살았던 과거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구박과 외면당함을 당연히 여겨야 한다.그 사람들이 평소에 장애인에게 무슨 원한관계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사람이란 자기 일에 늘 긴장을 해야 효과와 능률이 오르기 마련이다.집중력이 흩트려져 그만큼 자기 일이 방해된다.바로 장애인이 눈 앞에 어른거릴 때 사람들은 본위 아니게 동정 할거냐 박대 할거냐 심정으로 잠시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이것이 귀찮은 것이다.경제에 도움되지 않는 자를 거부하는 것이 이 세상나라의 생리이다.장애자가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단지 경제적인 면에서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큰 공로를 남겨서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시도는,경쟁원리를 다시 받아드리는 것으로 당사자를 정신적 장애자로 만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