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비영광성
영광의 비영광성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서만 자기 백성을 만나신다.예수님 쪽에서도 십자가를 들고 세상에 나타나신 것과 똑같이 성도도 자기 십자가를 들고 목자를 만나게 되어있다.한쪽에서는 십자가 들고 나오시는데 이쪽에서 엉뚱한 세상 탐욕을 들고 주님을 만나려고 한다면 생전 가야 주님 못 만난다.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이란,반드시 독생자 영광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독생자의 영광이란(요한복음 1:14),하늘의 영광을 던져 버린 영광이다.비천한 영광이다.하나님이 그 본래의 영광을 포기하고 지상에서 고난받고 학대받은 모습인 새로운 형태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을 뜻한다.빌립보서 2:6에서는 "자기를 비웠다"고 표현하고 있다.고난받는 새로운 형태의 메시야가 사람들에게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심지어 수제자 베드로에게서도 이상하게 여겨졌다.어떻게 해서 구원자가 오히려 패배의 수난을 가질까?(마태복음 16:22) 예수님의 수난은,인간들의 환영 상태의 영광성을 고발하고 그런 것이 진리가 아님을 노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영광이란 모두가 하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고 마귀가 집어넣어준 영광이다(요한1서 2:15-16).하늘에서 온 영광이란 오직 독생자의 영광뿐이다.짐승이나 태어날 비천한 구유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하늘에서는 영광이었고 땅에서는 평화였다.세상 영광을 교회에 나가서 얻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면 매사를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거기서 독생자의 영광을 배워야 한다.독생자의 영광이란,대리 죽음에서 오는 영광이다.세상 죄를 지고 간 그 자체가 하나님께는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바로 여기에 있을찐데 자기 백성에게도 동일한 영광으로 제공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성령이 이 작업에 나섰다.성도가 주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영광의 영이 그 사람에 위에 있다고 베드로전서 4:14에 나와있다.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터 닦은 놓은 그 영광의 장소란 다름 아닌 십자가 안이다.누구든지 십자가 속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이것이 곧 독생자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 되고 이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구원이다.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 세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성도가 주님의 삶에 합류해서 그 안에서 살고자한다면 예수님에게 주어진 그 운명이 그대로 그 사람에게 도착하게 된다.그러나 너무 실망 말아야 할 것은,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요한복음 13:16/15:20).성도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함을 입었기 때문에 마땅히 미움을 받게 된다.바로 이런 자에게만 평화,곧 구원이 주어진다.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곧 잘 되는 인용되는 성경말씀에 이런 귀절이 있다."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여기서 평화를 깃들인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 '기뻐하심을 입은 자'이다.즉 신자 스스로가 크리스마스라고 기뻐하는 자에게 평화가 아니라 성도 하나를 선택 해놓고서 그 선택행위에 스스로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의 기쁨이 덧입힌 사람들에게만 평화가 있다는 말이다.이것은 곧 선택을 뜻한다.구세주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러모로 자기의 포부를 신에게 기원해 보고 또 간구해 본다."나는 이런 것을 원합니다.나는 저런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하나님의 영광은 독생자 중심에 있다. 비록 직업이 목자라 할지라도 아기 예수님의 의미를 아는 그들이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다.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영광단체가 지상에 조성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즉,구원이 주어진다.이들은 세상에서의 자신의 신분상승과 출세와 무관하게 오직 예수님 가까이에서 산다.그러다 보니 애매한 오해와 핍박을 받게 된다.하지만 이들은 기꺼이 독생자의 고난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이것이 그들에게 편한 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유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