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힘의 체계가 아니다
기독교는 힘의 체계가 아니다
힘이냐,의이냐? 얼른 하나를 선택하라면 힘에 손이 가기 십상이다.인간이 범죄한 후에 일어나 현상 가운데 하나가 왜곡된 가치가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그게 무언고 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힘의 도입과 그 힘의 충만으로 해결해지리라 여기는 가치관이다.여기에 덩달아 도입되는 것이 '힘의 하나님' 사상이다.힘 센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힘없어 한 맺혀있는 민중에게 있어 기쁨 소식이란,힘을 공급해 줄 신을 만났다는 소식일 것이다.그러기에 권능과 능력에 관해서 솔깃하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힘을 키워서 적을 물리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반대로 가장 작은 수의 민족이 이스라엘이었다(신명기 7:7,17).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을 낮추는 것이다(신명기 8:16,17).힘의 수위를 낮추는 것이다.그 이유는,모든 게 힘으로만 해결되리라 여기는 세상의 풍습과 관습에 따라서는 안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이 힘쓰시는 경우는,힘을 의지해서 세상을 살려는 자들에게 대한 징벌의 조치로서 보여질 때이다. 그러니 만약 교회가 이 점을 모르고 힘 모으기에 열중한다면 스스로 하나님의 적으로 나서려는 시도이다.밖으로 하나님,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속으로는 힘, 힘을 찾고 있다.힘이 되고 힘 주시는 하나님을 찾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곡해하게 된다.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버린 바로 자기가 찾는 힘을 예수님이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히려 예수님은 나와 함께 십자가 지고 죽어야 내 제자가 된다고 했을 때,제자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마태복음 16:21-26) 시편 20:7에 다음과 말씀이 들어있다. "혹은 병거,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힘을 바탕으로 한게 아니라 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그 의가 없어 힘으로 의를 대신하려고 하지만 참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의 의를 바탕으로 살아야 한다.이 의가 없으면 항상 하나님의 공격 표적이 된다.교회가 진정 기도할 제목은 세상 살아갈 만한 힘을 달라고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힘을 달라고 예수를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은 불심이다. 능력이 없어 능력 달라는 것은,이제는 자기도 힘을 소유한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여망의 표출이다.예수님도 약하게 세상을 끝맺었는데(고린도후서 13:4) 왜 사람들은 자꾸 돈 힘과 권력의 힘과 출세의 힘을 달라는 것일까? 그 의도가 지극히 불순하다.그래놓고서도 거룩한 백성이라 나설 수 있는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을 때에 마귀가 제시한 힘 체제를 예수님이 서스름 없이 거절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예수님께서 성도에게 힘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과거를 청산해야 될 책임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힘에 의존해서 살던 시절을 청산하고 예수님의 의에 의존해서 사는 새생활하라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구약에서의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 구조가 아니라 죄와 의의 대결 구조였다.거기서 의는 반드시 죄를 이겼다.힘의 우열과 전혀 상관없이 이겨내었다.하나님은 인간세계의 힘을 죄악의 뭉치로 보고 있다.그 힘으로 하나님의 은혜성을 대적하는데 사용들 하기 때문이다.인간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세력 규합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인간들은 자체적으로 모아놓은 힘을 바탕으로 생명을 유지하려고 했다. 결속력이 있으며 소속원들의 유대감으로 다져지고 또 뭉쳐보려고 한다.바벨탑은 이런 힘의 상징물이었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힘을 추구하고,모으고,다지고,그 다진 후에 또 구축하고 하는 행사가 과연 교회에서는 사라졌는가? 오늘날 교회나 선교단체나 공동체 활동들을 보라.한결같이 힘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 맞추기에 급급하다.수요 공급이 달리는깐 힘달라고 예수님께 철야까지 하며 기도하고 있다.세상이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의이다.소돔과 고모라성이 어떻게 해서 망했나? 힘이 아니라 의가 없어 망했다. 세상에서는 의는 돈이 되지를 않는다.그러나 진정 세상이 필요한 것은 의만을 증거 하는 순교자,오직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