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목회자여 망하는 길로 가라!성경신학-

목회자여 망하는 길로 가라!
지식은 소유하기 위하여 확보하는 게 아니다.자신이 확보한 지식은 자신을 변화시켜 그 지식의 증인되게 하는데 있다.여기서 필연적으로 지식은 남고 증인은 그 지식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순교자가 된다.신학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끌어 모은 신론이 아니다.하나님과 대비되는 인간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그리고 그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를 파악한다.거리상 무한대로 멀어져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능력 면에 있어 인간이 현저하게 뒤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게 문제이다.하나님도 바로 이점을 거론한다.예를 들면,요즈음 선교 단체가 할 일이 없어(?) 통일 문제를 이슈 거리로 삼는다.교회도 할 일이 없어(?)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이런 경향은 한마디로 말해서 권태이다.목회자가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애초부터 모르고 있다.교회에서 사람 대하는 것을 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교인들이 각기 자기 일에 열중할 때만 목회자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그래서 목사들끼리 모여 잡담으로 시간을 보낸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할일 없이 놀기만 했던가? 예수님은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았다. 왜냐하면 인간들 속에서 매일 그들은 죄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예수님은 이 땅을 찾아 오셨다(시편 7:11).예수님에게 권태가 없었던 것은,하나님의 분노와 죄문제를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이점은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선지자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에게 타협점이나 다독 거리 주는 목회는 있을 수 없다.독사의 새끼들이 그의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데 어찌 가만있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은 그 요한 선지자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요한 선지성을 인정하셨다.이것은 곧 그의 신학을 공식으로 수용하고 맥을 같이한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함께 의를 이루자고 하셨다(마태복음 3:15).세례 요한의 죽음은 그의 신학에 근거한 것이리라! 그의 신학이 그를 죽였다.스데반 집사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그의 신학이 그를 죽게 했다.목회자가 본받을려면 이런 자를 본받아야지 왜 자기 선전해서 크게 목회성공한(?) 인사를 본들려고 하는가? 목회자가 살만한 세계는 오직 하늘나라뿐이어야 한다.그 시대가 느끼고 이해하고 있는 정서 속에서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그런 것은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소시민이나 가질 태도이다.이런 의식으로 목회하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즉,"비록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아담하게 내부를 장식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잘 유지해서 누구한테나 인상 좋다는 소리 들어야지.아마 새로 이사 온 사람이나 지나가는 같은 교단의 신자들을 붙들어도 현상유지는 될꺼야." 매춘부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돈을 위하여 몸을 파는 것이 매춘부의 생활 태도가 아니던가! 봉사라는 것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목사란,안정된 수입원을 기초로 하는 직업이 아니라 진리를 기초로 하는 직업이다.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 뿐이다.오직 회개이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그 어떤 성자라도 흉내 낼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다.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가지고 일하신다.그리고 한번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잡힌 그 상태가 늘 회개의 상태로 지속되어 있어야 한다.회개란 다름 아닌 자기 활동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왜 인정할 수 없는가? 그것은 인간이란,움직일 때마다 죄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자만심,그리고 자존심,체면을 고려한 몸의 움직임,영웅으로 돋보이려는 욕구들,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본능들,남과 비교해서 우위를 점령하려는 투지들,그 어떤 인간이라도 이런 요소가 안 섞일 수 없다.바로 이런 인간들이 주님의 일을 방해해 왔다.정말 주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면 모든 움직임을 통해서 자신을 망하는 길로 몰아세우는 것이다.넓은 길은 찾은 이가 많은 동시에 멸망으로 안내하는 길이다(마태복음 7:13).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577건 중 1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27 성경신학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세상을 좋아하는 교회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12-02
326 성경신학 윤리의 함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6-12-02
325 성경신학 신학생의 걱정거리 - 최고관리자 06-12-02
324 성경신학 장애자와 권태 - 최고관리자 06-12-02
323 성경신학 영광의 비영광성 - 최고관리자 06-12-02
322 성경신학 십계명에 담긴 뜻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12-02
321 성경신학 기독교는 힘의 체계가 아니다 - 최고관리자 06-12-02
320 성경신학 믿어야 할지 행해야 할지 - 최고관리자 06-12-02
열람 ➜ 성경신학 목회자여 망하는 길로 가라! - 최고관리자 06-12-02
318 성경신학 기독교의 비복음화 시대가 도래하다 - 최고관리자 06-12-02
317 성경신학 미신과 믿음 - 최고관리자 06-12-02
316 성경신학 전도 종교 색깔 바꾸기? - 최고관리자 06-12-02
315 성경신학 무엇이 계시인가? - 최고관리자 06-12-02
314 성경신학 이런 교회는 교회 아니다 - 최고관리자 06-12-02
313 성경신학 종교와 복음과의 분리 - 최고관리자 06-12-02
312 성경신학 믿음 체계와 선악 체계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6-12-02
311 성경신학 천대받는 영생 - 최고관리자 06-12-02
310 성경신학 교회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12-02
309 성경신학 목사 봉사인이냐 직장인이냐? - 최고관리자 06-12-02
308 성경신학 젖먹이보다 더 강한 자 있을까? - 최고관리자 06-12-02
307 성경신학 가공된 복음 - 최고관리자 06-12-02
306 성경신학 문화의 독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2-02
305 성경신학 예수님의 눈물 - 최고관리자 06-12-02
304 성경신학 우리 집 공기총 - 최고관리자 06-12-02
303 성경신학 과학의 정체 질문게시판 - 최고관리자 06-11-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