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종교 색깔 바꾸기?
전도 종교 색깔 바꾸기?
건물의 외벽이 낡았을 때,색칠을 다시 하면 깔끔한 새 집이 된다.그렇다고 해서 현재 있는 집을 허문 것은 아니다.집을 허물지 않더라도 새 집같이 보이는 것은,새로운 색으로 포장시켰기 때문이다.예로부터 이 민족은 여러 겹의 종교 색깔로 덧입혀져 왔었다.여러 겁의 종교가 겹쳐도 이 민족들은 반항할 줄 몰랐다.개화기부터는 기독교라는 서양 종교가 침투해서 삼천리 반도 강산을 도색해왔다.역시 이 민족민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하지만 기존의 사상을 공격하게 되면 한민족도 참지 않는다.즉 색칠을 덧입혀 칠하는 것은 용납해도 기존에 대대로 내러오는 사고 체제를 붕괴하려 드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하나의 사상 줄기가 무얼까? 그것은 가문이나 민족 핏줄의 지속적인 불멸성이다.우리 가문,우리 민족은 그 어떤 사태가 온다할지라도 영존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신앙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이 신앙 정신이 본 가옥이다.이 가옥만 건드리지 않고 외벽에 그 어떤 칠을 해도 큰 가슴으로 다 받아드리고 허락할 준비가 되어있다.여호와면 어떻고 미륵이나 부처이면 어떤가.다 이 민족이 하늘의 복을 받게 해주겠다는 게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이 민족을 복주려는 신이 기독교이고 또 복을 준 증거물만 제시한다면 서양 종교로 도색 해도 무방하다고 여긴다.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이러한 외부 색깔 바꾸기를 가지고 흔히 교회에서 "전도했다!"라고 감격하고 있기 때문이다.즉 절에 나가든 사람이 이번 주부터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온 동네가 미신으로 흐르고 넘쳐서 점치고 무당에게 굿을 청하던 마을 사람들이 올해부터는 교회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예배 처소가 비좁아 부동산 구입해서 넓히고 자금을 갹출하여 더 큰 성전(?)도 세웠다는 것이다.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변화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는 목회자들의 기도 내용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스데반집사의 순교와 거지 나사로가 처한 환경,그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분명히 아직도 몇 몇 구원의 남은 자는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렇게 자주 눈에 뜨이지는 않을 것이다.숫자를 따져서 볼 때,자아의 외벽을 기독교라는 색깔로 칠해서 다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그러나 복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포장지 바꾸기가 아니다.결코 아니다.진정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하나님이 진정 성경에서 원하는 것은 교세의 팽창이 아니라 인간의 달라짐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즉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신의 축복이라든지,종교의 유익 같은 것에 큰 사고의 변화를 일으킨다.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던 그 모습과 그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나의 일생으로 교체하는 것이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이다.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다고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땅을 보내신 이유는,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다.눈에 보이는 이 세상보다 더 완전한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셨다.예수님은 결코 이 땅에서 단순히 살기 위한 인생이 아니었다.반대로 떠나기 위한 인생을 살았다(요한복음 12:24).따라서 소유에 대한 그 어떤 애착이 없었다.다 버려도 좋았다.그분은 아버지의 계시로만 족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분의 양식이었다(요한복음 4:34).그 분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기존의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어야 한다.주님 밑에서 재편성된다.새로운 형제와 가족을 구성하게 된다(마태복음 12:46-50).단군의 자손하고 하늘나라 백성하고 아무런 연결점도 없다.진정한 전도란,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다.십자가의 도란,사람을 죽이는 것이다,그리스도와 함께 장례 치르게 하는 일이다(갈라디아서 2:20/골로새서 2:12).가문 자랑하고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던 자는 십자가 앞에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만약 성령으로 다시 살려준다면 그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전도이다.사람들을 교회로 출석시키고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사람을 망하게 하고 죽이는 게 전도이다.교회에 와서도 자아가 죽지 않았는데 무슨 전도를 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