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체계와 선악 체계
믿음 체계와 선악 체계
하늘나라는 믿음의 세계이다.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믿음 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오해는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되고 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이 지상에 믿음이 들어오고서부터 믿음의 체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핍박과 수모와 희롱을 받아왔다.갈라디아서 4:29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육체는 무어고 성령은 무언가? 성령의 세계에서는 믿음만이 통하고 육체의 세계에서는 행함만이 인정받는다.행함을 앞장세우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성령을 앞장세우는 자들을 핍박하게 된다는 말이다.육체 정신은,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에 기대와 관심을 갖자는 발상이다.대표적인 주장이 바로 '문화사명주의'이다.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선한 문화 창출자로서 기대를 했다는 주장이다.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하늘나라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성도를 구원했다는 주장이다.내세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 하늘나라를 펼치는 것도 성도의 마땅한 사명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성도가 거듭나고 난 뒤에 행해야 될 기독교 윤리 같은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이 윤리대로 행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는 이루어진다는 발상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전혀 성령과 믿음을 이해 못하는 사림이다.왜냐하면 믿음이란,그 믿음을 심어준 그 분만이 쳐다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만약 세상이 믿음을 주었으면 세상만을 쳐다보고 관심 갖는 것이 하등 문제될 리가 없다.만약 교회가 믿음을 주는 원천이라는 밤이나 낮이나 교회 부흥과 교회 발전을 외쳐도 하등 눈살 찌푸릴 일이 아니다.그러나 성경에서는 분명히 믿음은 예수님이 주셨다.따라서 예수님 말고 딴 데 눈 팔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이 믿음을 받은 적인 없음이 들통난다. 문화사명주의의 정신 상태는 이 세상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예수님과 그의 나라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된다.성령이 없는 사람은,현재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계가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으면 좋은 상태가 되기를 염원한다.즉 가상적인 '천국'관을 지니고 있다.이러한 세상 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니깐 성경 전부가 마치 문화 사명을 이바지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처럼 이해되는 것이다.예수님은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향하여(물론 엉터리 예수이지만) 요구하기를,자신들이 지키고 행해야 될 윤리와 규칙이 무어냐고 다꾸친다.왜 그런 것을 요구하느냐 하면은 그들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자신의 윤리적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하겠다는 성취욕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이들이 이러한 정신 상태를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왜냐하면,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 온 세계의 보편적 품성이 되었기 때문이다.아는 게 선과 악이라는 체계뿐이니 자신의 가능성은 포기할 턱이 있나? 이들은 전지전능하다고 소문난 여호와 하나님을 동원해서 자신의 평소에 가진 소망을 달성코자 한다.이들은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할 기회를 달라고 한다.전도면 전도,선교면 선교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 자신에 충만 되어 있으니 부디 이 현 세상이 이상적인 사회가 되어 달라고 기원한다.이들은 믿음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안 들어 가려고 하는 자들이다.왜냐하면 거기에는 자기들의 솜씨가 무색하고 소용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들은 절대로 주님을 믿지 않는다.그 대신 끝까지 자기를 믿는다.그리고 세상을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쟁이들이다.이들은 곧 예수님의 원수들이다.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선전하기를,자신들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속이고 있다.다른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구호를 퍼뜨린다."우리 손으로 하늘나라를 건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