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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록 잘린 부분자유게시판스가랴

녹취록 잘린 부분

이름 : 서경수(IP:221.164.110.134)

마귀는 고소하는 자인데, 거짓말로 고소하지요. 마귀는 거짓말로 고소해요. 유다서에 나오지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에요. 거짓말로 고소하는 거예요. 거짓말로 고소해서 무엇을 지워버리느냐 하면, 우리의 소속이 십자가 피로 만든 소속인데 ‘피도 소용없다’고 우리에게 자꾸 각인을 시키고 세뇌시키는 거예요. ‘예수의 피도 소용없어. 네가 착하게 살아야 돼.’ 자꾸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고소하고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가계부를 만들어요. 선과 악의 가계부를 만들어버리면 그 만드는 자체가 요한 1서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지요.

여러분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겪었습니까? 참담한 일을 겪었지요. 세상이 어둠다고 하더니만 정말 어둡구나. 마귀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했는데 진짜 마귀가 있구나. 마귀의 종들이 활동하고 있구나. 이것을 온 몸으로 느끼잖아요.

마귀의 제일 큰 시험이 뭐냐 하면, ‘네가 어떻게 그 따위 식으로 복음 전하냐?’ 그 소리 들을 때, 그것이 고소예요. “누가 너를 고소하리요.”

하나님께서 사랑이라는 새로운 원리. 원칙과 지배. 통치의 원리가 왔는데 자꾸 우리는 세상 것을 보기에 고소가 들어오는 거예요. ‘네가 행동을 반듯하게 해야 천당 가지.’ 이런 식으로.

바로 요한 1서에서 사도 요한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생명이 왔는데 그 생명은 이미 우리가 어떻게 거짓말 한다? ‘나는 죄가 없다.’ 그런 거짓말에 세상 원리에 익숙한 그 앞에 생명이 오니까 그 생명으로 인하여 주님께서는 물과 피와 성령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발생된 게 있는데 그것이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약속한 사랑이라는 마지막 계명. 절대적 계명이죠. 사랑의 계명을 화목제물로 만들어 놓고 그 계명을 성령을 통해서 이제는 예수님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집어넣어서 그 사랑가운데 사귐이 있게 하는 거예요. 이 사귐이 있게 되면 그 안에는 원리가 사랑의 원리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하던 원리가 아닌 다른 원리가 거기에서 적용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원리는 누가 오래 사느냐? 누가 잘났느냐?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랑답게 나타나느냐만 그것만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그 사랑을 모르면 가인처럼 되고 사랑을 알면 아벨처럼 된다는 거예요. 아벨은 하나님 뜻에 의해서 장렬하게 죽었잖아요. 그런데 가인은, 요한 1서를 근거로 창세기 1장 가인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가인이 왜 동생을 죽였는가? 단지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사랑을 알면 안 죽였을 건데 사랑이 없기 때문에 죽였다는 거예요. 사랑이란 통치 안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 없는 세계에서 하는 버릇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동생을 죽이는 거죠.

그런데 사랑이 없는데 왜 남을 죽여야 됩니까? 그 참, 희한하죠? 사랑이 없는데 왜 남을 죽어야 돼요? 그 원리는 이렇습니다. 동생이 형한테 뭔가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 있지요. 맞지요? 그러니까 요한 1서가 너무 심오해요. 동생이 형한테 비위에 거슬리는 짓을 했지요. 그것이 일부러 형을 약 올리기 위해서 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 비위에 거슬리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했잖아요.

하나님이 동생의 제사를 받으니까 그것이 분통이 터져서 형이 동생을 죽였지요. 그러면 형이 동생을 죽이도록 살인을 유발시킨 자가 누굽니까? 결국은 하나님이죠. 결국 하나님께서 사랑 없는 세상에 진짜 사랑을 보내니까 이게 어둠의 본색을 드러내어 미움과 살인이란 것으로 발각되도록 그렇게 하는 거예요.

지금 저쪽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환장을 하는데, 이게 발각된 거예요. 십자가 외친다고 죽이자. 세상이 이런 마귀 말고 다른 마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십자가 바라보자’고 하는데 ‘너는 나쁜 놈이다. 잘못됐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너 나 말고 십자가 바라보잔 말이지요. 여기 태양이 있으면 너 나 말고 태양 바라보자고 하니까 왜 태양만 보는데, 이제 태양 그만 보자는 거예요.

‘사랑은 여기 있느니’ 사랑은 여기 있다고 해요. 자기에게 있데. 내가보니 욕망인데.

이렇게 억지로 십자가를 못 보게 하겠다는 것이 뭐냐, 가인의 심보에요. 사랑을 알면 내가 누군지도 잃어버릴 정도로 주님과의 사귐에 정신없어야 되는데, 복음의 광채에 눈이 멀어야 되는데 거기에서 눈을 돌려서 나를 보자고 하는 자체가, 이것을 억지로 교인들에게 강요한다는 자체가 적그리스도의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달리 악마의 행위는 없어요. 고소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거예요. 스가랴 3장에 나오지요?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니까 놀리잖아요. 하나님이 그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니까 할 말이 없잖아요.

요한계시록 7장 13-14절을 봅시다. 나는 이 대목이 너무 좋아요.

성도들이 천국에 가니까 천국에 있는 장로님이 말하기를 ‘당신들 누구요? 흰옷 입고 왔는데 어디서 왔소?’ 물으니까, 사실 알면서 물어요. 어린 양의 피에 씻어 그 옷이 희게 되었지요.

그런데 6장 16-17절을 보세요.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진노를, 7장에서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사람은 어린 양을 만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고, 6장 끝에 있는 사람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제발 좀 가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어린 양의 피가 듣기 싫고 보기 싫었으면 이렇게 하겠어요? 이 세상에 이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어린 양이 뭐예요? 그냥 예수님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어린 양이라고 합니까?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피 흘렸다는 뜻 아닙니까. ‘어린 양’ 하면 그 뒤에 뭐가 나온다? 피가 나온다. 유월절 어린 양은 그 다음에 뭘 보여준다? 피 아닙니까. 피를 보고 넘어갔지요. 계속 피, 피, 피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 그 피를 받아 흰옷 입은 사람은 어린 양을 보고 싶어 환장하고, 저쪽 피 없는 인간들은 제발 어린 양 이야기 그만하라고 하고. 너무 극명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신은 50대, 50대 아니라 60대 70대가 되도 요한계시록 7장 14절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로마서 8장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이 사랑을 받게 되면 더 이상 우리 안에는 뭐가 없습니까? 요한 1서에서 ‘두려움이 없고 심판에서 벗어났느니라.’ 왜? 내가 예수를 포착한 게 아니고, 사귐이라니까. 사귐. 사랑은요, 혼자 하는 사랑은 없어요. 혼자 하면 스토커가 되지요. 이것은 고발 감입니다.

사랑은 사귐이에요. 그리고 성령의 사랑은 안 사귀고 못 배기게 만들어요. 우리는 24시간 나만 생각하지만 성령이 들어있는 사람은 잠시 잠시 우리를 일깨워서 다시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미 너희 속에 사랑의 영인 성령이 왔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 1서 계속 진도 나가봅시다.

2장 19절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무슨 이야기입니까? 많이 듣던 이야긴데.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예수님의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 뭔가 나가야 될 사람이 있는 것 아시죠? 참 재미있지요? 누가 나갔습니까? 가룟 유다가 나갔지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 함께 섞이면 안 되지요? 분명히 떡을 먹었어요. 잔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가룟 유다야! 이제 너는 나가야지.” 내 보냈어요. “자기 백성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유다는 자기 백성 아니에요.

자기 백성 아닌 자를 기어이 나가도록 하는 거예요.

십자가는 뭐냐? 떠미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떠미는 십자가!

‘너나 잘하세요! 있지요? 하고 떠미시는 거예요. 떠미시는 십자가.

이게 신약 성경에 세 군데 나옵니다. 구약 성경과 합치면 네 군데네.

한 군데는 마태복음 13장 14절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12장 40절에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행전 28장 26절에 유대인들이 아무리 말씀 들어도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어 갈려서 서로 싸우니가 그것을 보고 하는 말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에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떠미시는 십자가에요. 공격하는 십자가, 떠미시는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는 찬양을 해야 됩니다. 떠미시는데 그 떠미시는 방법이 뭡니까? 사랑이고 피란 말입니다.

요한 1서를 아무리 봐도 사랑 외에는 다른 계명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희한하지요.

바울 서신에는 뭘 하라, 하지 말라,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 분을 품되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 등등 굉장히 많은데, 요한 1서에는 달랑 ‘사랑하라’로 끝이에요.

로마서도 보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등이 있지만 모든 것은 사랑함으로 다 이루었다. 사랑 하나로 충분해요. 사랑이란 말로 충분해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왜 사랑으로 충분하냐 하면, 사랑의 시작이 우리 자신 같으면 이 사랑 끝까지 못가고 중간에 끊어집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온 사랑은 화목제물에서 온 사랑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너희 눈앞에 있는데 누가 너희를 꾀더냐”하는 식으로, 십자가가 있는 이상은 그 사랑은 계속 퍼부어지는데 그 십자가가 적용되는 것을 가지고 ‘성령 안’이라고 하고, 성령 안에서 십자가가 활성화 되지요. “죽을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 죽을 때까지 계속 십자가를 생각해서 그 안에서 사랑이 계속 퍼부어지는 거예요. 그 사랑이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계속 사랑해 주시지요.

계속 사랑하니까 나는 늘 죽어야 되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계속 살아야 되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랑은 늘 죽어야 되고, 주님이 화목제물로 준 사랑은 계속 일어나야 되지요.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로마서 5장 봅시다.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러분, 감동스럽지 않습니까?

그 사랑 어디 갔습니까? 이 사랑 있습니까? 있다면 그 사랑이 사랑으로 남기 위해서 화목제물, 십자가가 우리 안에 늘 있어야 됩니다.

‘확증’이 뭡니까? 이 서류가 유효합니다. 라는 것을 보장하는 거잖아요. 그게 화목제물의 사랑이잖아요.

만약 바보라면 서류 해놓고 마지막에 도장 있으면, 위에 내용 쭉 있고 밑에 도장 있잖아요. 그러면 도장 있는 이 부분만 적용됩니까? 이런 바보가 어디 있어요. 이 서류에 있는 모든 것 다 적용되지요. 이 서류 자체가 우리잖아요. 그러면 사랑은 모든 것에 적용 되잖아요.

히브리서 7장 봅시다.

하나만 한다고 해놓고 자꾸 길어지는데, 24-25절입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신고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제사 직분이 과거에 한 번으로 끝났습니까, 계속 적용됩니까? 엔진은 계속 가동되지요? 가동되니까 계속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의 사랑의 혜택을 입어서 끝까지 온전하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봅시다. 성경 자꾸 찾으니까 여호와의 증인 같다. 그래도 봅시다. 8절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끝까지 견고케 하십니다.

이것이 요한 1서의 원칙으로 돌아오면, 이것은 하나의 소속이란 말이지요. 사귐 때문에 그래요. 거래가 아니고 이미 어떤 장(field)이 형성 되었어요. 어떤 영역이 형성되어서 거기에 들어갔다 하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어요. 사랑에 뒤집어 쓰이면 사랑에 의해서 계속 혜택을 입게 되는 겁니다.

사귐이 있고, 용서가 되고, 한 번 용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용서 받고. 왜 그렇게 용서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란 계명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 사이에 약조한 것이 있어요. 우리는 지금부터 마지막 계명, 사랑 계명으로 하자. 그 사랑 계명 때문에 뽑혀 나온 것이 우리에요. 우리는 사랑의 대상으로 뽑혀 나온 겁니다.

만약 성부 성자께서 약조하기를 ‘비타 500이 있는데 이것 만지면서 살자. 예, 알겠습니다.’

이 비타 500 때문에 뽑힌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란 말이지요. 맨날 만지니까 우리는 ‘왜 만집니까?’ 만져야 돼. 왜? 사랑이니까. 계속 만지고 뽀뽀하고 또 만지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이란 동네에서 통하는 마지막 계명, 그 사랑의 계명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요한 1서를 보면 사랑을 알면 우리가 죽지요. 우리가 한 번 깨 볼까. 깨니까 비타 500이 ‘왜 깹니까?’ 깨는 것도 사랑이야. 이게 스데반 집사에요. 사랑을 알고 우리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나니. 그러나 가인은 도저히 그렇게 못하는 거예요. 왜? 가인은 사랑 바깥에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난리를 쳐야 돼. 구원 받으려고. 사랑 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꾸 자기 욕망이 만들어 낸 사랑을 억지로 끄집어내야 돼. 방종하지 말고.

요한 1서는 방종할 필요가 없어요. 왜? 죄를 아예 안 짓는데 뭐. 여러분은 죄 안 짓는 게 낫습니까, 방종 안 하는 게 낫습니까? 아니 죄도 안 짓는데, 저쪽에서는 방종 안 해야 돼. 가계부를 써요.

그리스도 밖에 있는 한 초조하기 짝이 없어요. 기뻐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이 악마의 얼굴이라. 이쪽에는 안 기뻐도 기쁨이 와요. 성령께서 기쁨을 줘요.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더냐?”

꾄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마귀의 역사 아닙니까. 마귀는 항상 십자가를 흐릿하게 만들고 그 십자가 자리에 방종 안 한 멋있는 자기를 살짝 가져다 내 미는 것. 이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사랑이 왔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혜택을 입었사오니 그것이 물과 피와 성령으로 증거되고 있사오니 이제는 우리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주님 십자가 속에서 그 사랑을 감사히 여기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6. 12. 1. 15:53 녹취 마침)

관리자(IP:220.♡.176.151)

06-12-01 17:11

이근호 목사님 광주강의(06. 11. 24) 둘째 시간 녹취 = 이 강의에서 짤린 겁니까?

서경수(IP:221.♡.110.134)

06-12-01 17:27

둘째 시간 강의를 올렸는데 다 안 올라가서 나머지 부분을 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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