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5:1-2 /시간과 안식일
시간과 안식일
2006년 3월 5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35:1-2
(출 35:1)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출 35: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출 35: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시간이 창조되었다는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시간은 사물이나 물체가 아니라 ‘없던’ 경우와 ‘있던’ 경우를 인간들의 인식으로는 그 느낌을 도무지 졍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도 영원했고, 계속해서 영원한 것입니까? 만약에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이 없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성립될 것입니다.
즉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면 그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요?”라는 질문말입니다. 이 질문이 성립되는 것은, 우선 시간이라는 것을 바탕에 깔아놓은 긴 천이라고 본다면 그 위에서 하나님 세우고, 하늘 세우고, 땅 세우고, 별이나 달이나 해를 창조해서 세워놓았다고 여기는 겁니다. 즉 하나님보다 시간이 더 긴 개념인 경우를 생각해 볼 정도로 시간이란 시작과 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관으로 성경을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간이란 사물의 운동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물이 먼저 있고 그 사물의 일정하게 순환하는 움직임을 끊어서 ‘시간’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운동케 하는 그 주체가 단순히 시간으로 끊어주는 사건을 임의로 정하는 겁니다. 이 사건에 바로 의미가 담겨 있는 겁니다. 즉 ‘시간’을 ‘시간’되게 하는 것은 그 피조물을 창조하신 분의 의미가 새겨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의미없는 사건에 의해서 구분되지 않는 시간이란 아예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이란 뭡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을 시간 창조를 통해서 전달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란 시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안식일과 안식일 아닌 날 사이를 가려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에 대한 금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시키므로서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길을 터놓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거룩의 사건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안식일에 그냥 노동만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노동하는 날까지 철저하게 이 안식일에 매이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을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 축으로 다시 모아지도록 순환시키십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시간의 축이 되는 그 거룩에 철저하게 종속되게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안식일도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7일의 순환 밖으로 이스라엘은 벗어나게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임의대로 자기 시간대를 따로 가질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즉 인간이 자신에게 의미가 주어지도록 사건과 사건들을 해석할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간이 하나님이 거룩한 안식일에 묶이게 되었다는 말은 안식일에서 내뿜는 거룩한 사건에 무관한 사건이 이 세상에서 생겨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거룩한 사건으로 집약되는 것으로 비로소 의미가 발생되는 식으로 짜여져 있고 그렇게 세상 피조물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한가운데를 장식하는 그 거룩한 분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그 거룩한 분을 중심으로 그동안 세상 전부가 존재하고 활동해왔고 뿐만아니라 그동안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약속도 이 거룩한 분을 겨냥한 예언이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인간들 나름대로 자신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관을 따로 갖고 싶어합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골프 선수로서 성공하고 싶어하는 아버지가 자식이 우승을 하게 되는 그날 최종 라운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때, 자식이나 주위 사람이나 그 아버지 본인은 환장할 것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는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넣어 자식 골프 시키겠다는 레슨 선생님에게 갖다 바쳤는데 그 낙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니 아버지 시간대에 의하면 얼마나 매정한 시간의 흐름입니다. 왜 우승의 그날이 미리 당겨오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골프선수의 아버지는 자신이 따로 시간의 의미를 가질 자격이 없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 분이 성도라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자식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도 그 동안 모든 일들이 다 주님께서 안식하신 은혜의 덕분으로 살아왔노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안식일 지킴입니다.
구약 때는 레위지파에 속한 자들이 제사법대로 수행하고 다른 백성들은 거기에 참여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그 레위지파들이 감히 성취하지 못한 제사법을 홀로 이루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 나라 보좌까지 이동시켜 전 시간대로 다 거룩에로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즉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이미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완성하셔서 하늘 나라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 때부터 이 세상은 전부 ‘안식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발생시키는 믿음의 사건 안에서만 알려집니다. 골로새서 2:14-17에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4:8-11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안식일과 십일조 및 각가지 제사법이나 십계명조차 그것을 지켜내신 분이 따로 오시고, 그 분에 의해서 이미 완성했기에 이제 그 문자에 속한 법은 십자가 피 앞에서 과감하게 찢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헌금 한 푼 안내어도 이미 말라기에 나오는 십일조를 다 이루어서 창고에 넘치도록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안식일 지키기도 비록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니더라도 화요일이 일어난 사건 안에서 예수님의 용서와 자비를 느끼고 감사한다는 그것이 곧 화요일에 지키는 안식이 되는 겁니다. 이처럼 안식일이란 거룩에 철저하게 종속되게 하는 날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늘의 안식 완성과 관련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