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30 /생명책
생명책
2006년 1월 1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32:30-35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2: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모세와 하나님과의 이러한 대화를 제 3자가 듣고있노라면 “좀 웃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납득이 안되는 소리를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성경 속에서만 통해서 게임의 률 같은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마치 축구를 끼어들어 하고자 한다면 축구 률을 존중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낯설게 듣기는 률 같은 것이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책’의 존재이며 그 명단에 적힌 자만 구원이 된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생명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모세도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처음 알았던 사항입니다. 생명책 명단에 의한 구원이란 지상에서 인간들이 아무리 상상해도 그것으로 구원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주는 셈이 됩니다.
즉 지상에서 인간들이 아무리 구원에 욕심을 내보았자 생명책에 그 명단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기존의 선입견과는 잘 부합될 수 없는 점이기도 합니다. 명단에서 명단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구원 작업은 전개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명단에 없는 사람은 명단에 없다는 것을 통보하는 식으로 전개될 것이 또한 뻔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유발하게 됩니다. 엉터리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공평한 구원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불공평한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부터 이런 반발을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생명책에 의한 구원을 고수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들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식으로 파악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로 ‘미래→현재→과거’로 이어지는 식으로 작업에 나서십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들의 세계관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작업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서로가 서로의 세계관을 구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불만을 터뜨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여 우리의 성과가 미래를 이루는 밑거름으로 인정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해도 이미 미래를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미래에 이미 확정된 것들의 증빙근거들이다. 미래는 결코 인간의 힘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되레 너희 인간들이 미래의 계획 잡힌대로 초점이 맞추어진 채 움직일 뿐이다”말입니다.
이 둘 사이에 양보 없는 전쟁이 일어날 것은 뻔한 결과입니다. 인간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항변합니다. “명단에 의해서 구원하시지 마시고, 인간의 선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케해서 보다 많이 선한 일을 한 자를 추려서 구원하고 나머지는 지옥보내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로움에 합당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나오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의로움을 지니고 살지 않는 자는 가차없이 생명책 리스트에서 빼버린다. 그리고 생명책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큼의 완벽한 의로움을 지닌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이렇게 반발합니다. “죄짓었다고 명단에서 탈락될 것 같으면 무엇 때문에 애초부터 명단을 작성하십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작성을 하지 않고 선한 자만 골라서 넣어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작업이 ‘미래→현재→과거’로 이어지는 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몰라서 그러한 의심이 나오는 겁니다. 누가복음 10:20에 보면,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귀신들이 제자들 주변에서 우둑둑 떨어져나가는 것은 바로 그 제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책의 명단이 들어있다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생명책의 명단은 처음부터 확정되었음을 보이는 쪽으로 대규모적인 최후의 전쟁도 불사하십니다. 다니엘 12:1에 보면,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 생명책 명단에 끼일만한 정도로 완벽한 의는 성도에게 어떻게 주어지는 겁니까? 요한계시록 5:7에 보니,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라고 되어 있고 7:5-8에 보면, 12지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우너 통고의 도장을 받은 자의 계열이 144,000명으로 나와있고, 7:9에 보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 따라서 ‘남게 된’ ‘남은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언약들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히 개입하시는 능력에 의해서 성취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비록 그들의 불실과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주어지는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11아들이 그런 자들입니다.
그들은 요셉을 대단히 미워했던 자들이었으나 야곱에게 내려준 복이 요셉의 운명을 희생적 운명으로 유지시켜서 그 희생적 운명에서 나온 혜택을 입는 식으로 그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식의 축복받음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통해서 분명하게 최종 결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적인 의로움의 혜택으로 인해 야곱의 12아들처럼 복을 받게 되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명단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14:4의 말씀처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늘 나라의 내막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과 모세는 오늘 본문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자가 바로 생명책의 명단이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로 인하여 남은 자됨을 인식하고 자신의 행함을 자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