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6:1-6/성막의 재료
성막의 재료2005년 8월 7일본문 말씀: 출애굽기 26:1-6
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 놓아 만들찌니26:2 매 폭의 장은 이십 팔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26:3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하고26:4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26:5 앙장 말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앙장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대하게 하고26:6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사람들은 자기 소유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물건은 꼭 자신의 야심이나 욕망에 충족될 수 있는 물건에 한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막 같은 것은 인간의 야심이나 욕심을 충족시켜줄 물건도 못되고 또 자기 소유로 전환될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성막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막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서러움 받는 것은 바로 노아 당시 노아가 만든 방주가 사람들에게 별 인기를 끌지 못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 만들기는 곧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통고하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사람들로부터 밉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루어지는 대상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천시받을 만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성막은 천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막이나 노아의 방주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메시야를 보여줄 모형이 되라고 만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보고 무엇을 만들라고 지시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우리에게 만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앉아있는 이 몸뚱아리가 곧 하나님이 만드신 성막이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자기 것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성도의 몸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곧 주님께서 자신의 목적하신 바 그 뜻에 따라 쓰임을 받을 몸이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 내부에서 울컹거리며 올라오는 우리의 죄와 욕심까지도 말입니다.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들이 만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즉 이 말은 곳 성막 속에서 인간의 죄를 들추어지고 또한 그것을 용서하시는 기능이 장차 그리스도를 겨냥해서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따라서 이 성막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이동하게 됩니다. 이 성막이 진행하는 광야 곳곳마다 인간은 본인들이 미처 알지도 못했던 죄악들이 폭로됩니다.
이 성막에는 네 개의 덮개로 덮어있는데 그것은 밖에서 보이는 성막의 모습과 안에서 바라보는 성막의 극단적이 차별성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
1) 제 1덮개(세마포의 덮개)성소 가장 안쪽 첫 번째에 있는 것으로 총 천연색실의 천사들을 수놓은 아름다운 그리미 그려져 있는 20m×14m의 큰 앙장으로,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로 짜여져 있습니다. 성막이 세워졌을 때 이것이 성막 건물의 맨 먼저 덮는 덮개였고 나머지 덮개들은 그 위에 있었습니다. 이 덮개는 성막 안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비록 외부의 덮개는 볼품없었지만 이 안쪽 덮개는 아름다웠는데,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부에 있을 때에만 우리가 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세마포에는 양 날개를 활짝 편 그룹의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데,이것은 성막 안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의 위를 나르는 듯합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면서 위에 있는 그룹들을 보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보고 계시며 보호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바깥 외부의 세상은 이 아름다움이나 하나님의 손의 보호하심에 대한 상징을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인간 자체가 영적으로 소경인고로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보여 줍니다. 오직 중생한 자반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2)제 2 덮개(염소털의 덮개)이 덮개는 성만 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세마포 덮개 바로 위에 있는 것으로 염소털로 실을 만들어 짠 덮개입니다. 21m×15m로서 제 1덮개 위를 덮어야 하기에 가로 세로 각각 1m 씩 더 컸습니다. 양이나 염소는 가장 많이 쓰여지는 제물이었습니다.
3) 제 3 덮개 (수양가죽의 덮개)붉은 물들인 수양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수양 덮개나 두 번째 덮개였던 염소털 덮개는 모두 희생 제물의 희생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순교자으로 인해 중첩되어 있는 양상입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천사가 나르는 그 영광스러운 공간을 위해서라면 바깥 세상으로부터 천시받고 서러움받는 그 서러움조차 희생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4)제 4 덮개 (해달 가죽의 덮개)바깥 덮개는 해달의 가죽(물개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깥 덮개로서 다른 것들의 맨 거죽이었습니다. 이 덮개는 방수용이 되는 동시에 볼품없는 자태를 외부에 나타내는 의도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험한 날씨를 갖는 광야 여정에서 완전한 보호재 구실을 하였습니다.
광야의 햇빛과 바람에 낡아서 이 바깥 덮개만 보아서는 성막 내부의 아름다움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깥 덮개는 장차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천시받는 양태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이사야의 '고운 모양도 엇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도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가 되었으며'라는 말씀처럼 아무런 흠모할 만한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성막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안으로 들어와야 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안목은 이러한 초라함조차 안 쪽의 영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겸해서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덮개들은 이 지상에서 영원히 고정시키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해체해서 이동하기에 수월한 기동성을 감안한 구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영이 거한 성막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장래나 운명은 이미 우리 손에서 떠나있습니다. 인간이란 쉬지 않고 안정을 원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쉽게 세상에 친숙해지고 세상 풍습에 미혹받고, 그 원리에 매료되기 십상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하나님의 원리는 늘 낯설고 어색하고 거절하고픈 양상으로 찾아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참함이야말로 우리가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종교적인 경건과 품성을 죄악된 것으로 고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살기를 고대하지 말고 하늘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고 황홀한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