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12-17/무서운 법
무서운 법2005년 3월 13일본문 말씀: 출애굽기 21:12-17
21:12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21:13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21: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라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사람이 법을 만들게 되면 항상 자기 유리한 쪽으로 법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만약에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교회법을 만들라면 결코 술 먹는 자에게 관용 베풀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법 만드는 자기 자신이 법의 기준으로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인간들이 상호 유리하도록 조정한 세상법과는 다른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죽음의 조항들을 소개합니다. 전혀 인간들의 고귀한 삶을 걱정하시는 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리성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죽음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세운 말씀만 고귀하게 사수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은 양보가 없으십니다.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법은 법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답다라는 겁니다. 인간이란 이처럼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법이 인간을 계속 살려놓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을 살리기 위한 법이라면 '죽음의 조항'을 제시할 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너무나 진리답기에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도무지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리를 과연 범죄한 인간의 후예로서 지킬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부모를 저주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지만 긴 긴 인생을 살면서 혼자서도 부모를 원망할 가능성은 누구나 갖게 됩니다.
심지어 어릴 때 철이 없이 부모에 대해 노골적으로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아무리 오랫동안 세상을 살면서 부모를 저주하지 않았다할지라도 남은 기간과 상관없이 전에 했던 저주로 인해 그 인간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의 진실성이요 현실성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예수님 앞에 나타난 일단의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손에 손에는 분노의 돌멩이가 쥐어져 있습니다. 이 돌멩이로서 여인을 치고자 하는 겁니다. 여인을 치고자 하는 것은 곧 자신들과 다른 율법 해석을 내리는 예수님을 치고자 하는 것이 속셈이었습니다.
그들이 손에 돌을 든 것은, 하나님의 법이 지닌 완벽한 진리성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변개시킬 수 없는 그 완벽함을 믿고 예수님에게 대들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조용히 땅에 앉으셔서 글씨를 썼습니다.
그 글의 내용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여인을 치려는 돌을 하나 둘씩 놓고 도망치듯이 예수님 곁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글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법의 집행자가 될 수가 없음을 말해주는 진리의 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성취하려면 이 근처 아파트를 일일이 방문해서 그들에게 묻기를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부모를 저주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만약 있다면 가차없이 끌어내어 돌을 쳐야 비로소 오늘 말씀은 이 시대에 성취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오늘 우리 자신들이 이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오고 있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한다면 예수님은 또 우리 앞에서 땅에다 글을 쓰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우리교인들이 주님 앞에서 도망치기 바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보고 묻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곧 참으로 정죄할 위치에 있는 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죄할 수 있는 분으로부터 만약 용서를 받는다면 이 용서를 취소시킬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게 됩니다.
이러한 용서함이 과연 무서운 하나님의 법 안에도 들어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도 담겨 있습니다. 12-13절에 보면,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사람 죽인 자의 심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지 사람에게는 없음'을 분명히 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 한 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작업에 동원되어서 우연히 고의가 없이 사람을 죽게 한 자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민수기 35:22-25에 보면,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도피성'이라는 이름의 특수 지역이 6군데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사장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무런 고의가 없이 사람을 죽게 되면 비록 본인의 원한이 없다할지라도 그 죽은 자의 가족들을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 때문에 발생된 살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친족을 죽인 그 사람에게 복수하기 마련입니다. "너도 한 번 당해봐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나서서 복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차단시킵니다. 그 방식은 이러합니다. 도피성으로 피신해 살다가 당대의 대제사장이 죽고 난 뒤에 그 도피성에서 나오게 되면 이 사람은 과거에 사람을 죽었다는 사실조차 성립되지 않는 말짱한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임의대로 그 도피성에서 나왔다가 죽은 자의 가족들에게 걸려 복수 당하면 그 사람은 죽어도 쌉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법은 두 가지 점을 말해주십니다. 사람을 살인해서는 아니된다는 무서운 법도 존속하고 그러면서도 살인한 자조차도 용서가 된다는 용서의 법도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먼저 다음과 같은 물은 취지와 같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들이 어디로 갔느냐?"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곧 이 여인이 결코 무서운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해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 여인에게 용서 선언을 하십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무서운 법과 용서의 법을 모두 십자가 위에서 다 성취하신 것이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용서를 우리가 이용할 자격이 안됨을 분명히 알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용서에 무조건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