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2/부모 공경
부모 공경2005년 1월 9일본문 말씀: 출애굽기 20:12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동양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간주되나 성경에서는 그것이 용납되지를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자식의 구원과 장래 운명에 책임질 수 없다면 부모로서 탈락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구원에 대해서 책임져야 될 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부모부터 먼저 하나님께서 작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식이란 그 부모 내부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이삭의 하나님이요, 이삭이 하나님이 곧 야곱의 하나님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각기 달라도 그들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은 한결 같습니다.
그렇다면 후손의 입장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전부 무시하고 오로지 그 하나님만 딱 떼내어 믿으면 그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생에 관여하므로서 하나님의 구원에 새로운 방식을 드러내게 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관여하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하나님의 구원방식이 아브라함과 관련되면서 비로소 "아, 하나님에게 저런 면까지도 있었구나"라고 새삼스럽게 후손들이 알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라는 신앙의 선조가 그냥 곱게 하나님과 관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발하고, 착각하고, 엉뚱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품고 있는 자신의 죄악된 생각에 의해서 하나님이 내리신 말씀과 약속에 대해 엉터리로 곡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악과 오류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김없이 그 죄까지 용서하시는 식으로 아브라함을 구원해 내시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옳지 않는 태도까지 모두 후손들이 알고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브라함 속성이 하늘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연이어 따라오는 후손들 마음 속에 이미 터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실수와 오류가 남의 일이 아니라 다 현재 우리들의 대표적 이야기가 됩니다.
이 점에 아담에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 초연한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만' 그 선악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란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행동하는 그 모든 행위가 앞당겨 시행했고, 그리고 그 행위로 통해서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간섭받아 온 분들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신앙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점은 부모가 자식들을 앞에 두고 마땅한 효도를 강요할 입장에 놓여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구원은 결코 이 부모의 훈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음을 본인들이 자신의 부모 앞에서 충분히 습득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경받을 부모의 자리는 뻥하니 비게 됩니다. 이 빈자리에 누가 들어갈까요? 여기서 우리는 왜 십계명에서 하나님께서 부모공경을 요청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은 그들은 사실 여호와를 알기 전에는 '애굽의 종'이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에 의해서 '아들 삼기'에 포함되지 않으면 여전히 '애굽의 종'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신분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의미하는 '부모'란 자식을 그냥 '애굽의 종'으로 방치해 두는 자가 아니라 본인부터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아들' 된 자에 한해서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란 '애굽의 종'이 되는 것, 즉 달리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저주받을 대상이 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신분입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님의 아들이 될 자들만이 그 '애굽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달라진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 개입하신 분은 혈육의 부모도 아니요, 신앙의 아버지라는 선조들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의 종'이라는 것이 어떤 신분을 말할까요?
그 점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갈라디아서 4:1-4에 잘 나와있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즉 오늘날 자연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그들이 율법의 저주의 대상자로서 살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바로 다윗의 경우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살인죄와 간음죄로 인해 자신이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구원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신이 임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처럼 그 누구도 부모가 신앙인이라고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인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신앙인으로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은 의식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해서 불리워지는 그 하나님은 바른 아버지 관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이 오는 이유가, 현재 자신의 입장이 율법에 억매인 종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은 율법에 의해 저주받은 종에 불과함을 자인하는 사람에게만 국한 됩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성령을 받아서 아는 부모라면 자식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히브리서 12:7-13에 보면, 징계가 없으면 우리가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6:1-4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의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했음을 자식에게 알려주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힘으로 구원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원히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로 구원되었음을 항상 잊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르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