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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16:4-7/율법과 영광강의출애굽기

율법과 영광2004년 8월 22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6:4-7
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5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16: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양식이란 원래 땅에서 인간들이 경작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인간이 먹을 양식이 내려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추가적으로 인간들에게 요구할 사항이 새로 발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에게 원망만 불평을 하면서 기적을 베풀라고 했기에 그 죄악에 대해 지적할 만한 내용을 함유한 기적이 새삼 실시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란 늘 이런 겁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들의 욕망에 놀아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기적 안에는 칼이 들어있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그 인간을 찌르는 칼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기적을 이해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적 안에 들어있는 거룩한 율법적인 요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들은 거룩한 율법적인 요소가 들어있지 않는 순수하게 인간의 욕망에 부응하는 기적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소원만 달성하면 그만이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적을 신이 들어주기만 하면 섭섭지 않고 보답할 용의도 있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베푸시는 취지를 모르는데서 나온 발상에 해당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 이 베푸시는 기적과 율법이 연관이 있음이 드러납니다. 즉 하늘에게 양식을 내려주시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 듣기에 참으로 엉뚱하게 듣기겠지만, 율법을 지키나 아니 지키나 시험하기 위해서랍니다.
사실 율법이란 인간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율법이란 거추장스럽고, 부담되고 귀찮기만 한 조항들입니다. 우선 살고 봐야 하는 다급한 시점에서 율법을 헤아리고 있을 한가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급할 때는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인간 자신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만을 인간들이 염두에 둡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은 이런 인간 영광 위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영광을 위해 애굽 민족과의 관계에서 기적을 베푸신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4:4에 보니,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때 얼마나 혹독한 징벌이 떨어지는가를 통해서 명백해 집니다. 즉 인간들이 즐겨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기적은 사랑하기 용도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참혹스럽게 멸망시킬 자을 위한 기적으로도 동시에 쓰여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점을 빼먹으면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무술에서 양발 차기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기적으로 서로 상반되게 적용시켜버립니다. 이로서 '기적의 율법화'가 이루어집니다. 율법이란 인간의 죄를 지적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적으로서 그 율법적 용도를 실행에 옮기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 말씀이 이런 식으로 나타내실 까요? 그것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적 영광에는 관심이 없고 상호간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이런 것을 방치거나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영광을 고발하고 벗겨낼 생각으로 실현됩니다. 요한복음 12:39-43에 보면,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사야의 말씀은 여기서 인용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기적을 많이 베풀고 설명을 해주어도 인간들의 자기만의 영광에 관심을 두는 한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영광 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영광성이 이미 애굽 민족을 통해서 발휘되었고 그 인간의 영광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적 영광과 마주친 결과가 홍해바다에서 참혹한 징벌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서운 영광의 실체가 어디서 나오는 지를 알려지게 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시므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어떤 것을 토대로 하여 생기느냐에 대해서 무지해서는 안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민족에게 진노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단지 민족에 대한 차별성 때문이 아닙니다. 뭔가 하나님께서 남기고자 하는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실현입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실현은 곧 거룩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얻고자 해서 율법을 펼치십니다. 율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거룩의 흠이 나는 것을 용납하실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1-5에 보면,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천사의 외침과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을 상호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같은 것을 보고 있기에 같은 취지의 발언이 나옵니다. 그런데 천사는 그냥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만 외칠 뿐이고 이사야는 거기에다 덧붙여 자신의 초라함과 더러움을 함께 봅니다.
이것은 즉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성을 그 어디에도 양보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시는 바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율법의 본질은 안식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 전날에는 하늘의 양식이 곱빼기로 주어지지만 막상 안식일에는 전혀 새 양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즉 안식일에는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양식을 얻어서 그 양식으로 하루를 생존하느냐에 관심을 안 두어야 되는 날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태가 하나님이 원하는 안식의 상태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안식의 세계에 넣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안식의 세계에서는 양식이라든지, 혹은 물이라든지 하는 것과 전혀 무관한 세계입니다. 그런 것 없이도 충분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세계가 그 세계입니다. 안식일에 양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 말의 의미는, 안식일 날 가게문 닫아라 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따로 있는 그 세계를 허락하시고자 합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믿음이 없어서 안식일에도 뭔가 하늘의 양식을 얻을까 밖에 나갔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자도 있다고 합니다.
안식이란 단순히 '인간이 뭘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뭘 해주신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 세계가 과연 있는 겁니까? 이 세계에 먼저 가 본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모세는 무려 40일 동안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아무 것도 마시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감히 그 세계를 들어가려고 여기 모여있습니다.
따라서 세상 적인 자신의 영광이 이 거룩성 앞에서 감히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불평합니다.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시되 저의 병은 안 고쳐 주십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 속에 십자가의 피가 담겨 있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관심사를 엉뚱한 곳에 두면 십자가의 영광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도로 건장해져서 전보다 더욱 영광스러워진 자기 자신의 모습만 염두에 두게 됩니다.
기적 속에 혹은 십자가 속에 있는 완성된 영광은 이런 인간의 영광 성을 정죄하고 심판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이사야 처럼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을 보고 자신의 초라함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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