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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14:10-12/공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성경출애굽기

출애굽기 14:10-12/공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공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2004년 6월 27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4:10-12

14:1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심에는 그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 목적지란 바로 '하나님이 죽으신 그 현장'입니다. 흔히 태어나면서 수시로 죽은 그런 사람이 죽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죽으시는 자리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해야지 만 그 인간은 세상의 전부를 미리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통하는 실패, 성공과 관련된 각가지 사례와 말들은 '하나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합니다. 하나님의 죽으심도 모르는 주제에 세상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그곳까지 자기 백성을 데리고 가십니까? 공포심을 유발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면 인간이란 여전히 '하나님의 죽음'의 그 현장에 내려진 하나님의 무서움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해주시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공포를 자신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이겨내면 될 것인데 왜 자꾸 공포를 일으키게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들은 나름대로 창조력을 발휘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인간의 창조력은 나름대로 '자기 것'이라는 것을 낳고 또한 소유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발휘하는 창조의 자질은 모두 자신을 주인공을 삼아서 이루어집니다. 자기를 위한 창조, 자신을 영원히 존재 자로 꾸미기 위한 창조 행위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자아상 정립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공포라는 것은 바로 자신의 창조행위의 결과물이 와해되고 찌그려지고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찾아드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밤에 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꿈에 마귀가 나타날 때, 공포심이 엄습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악마는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신분이 높은 자 앞에서나, 면접 볼 때나 시험 칠 때나 선을 보는 자리나 혹은 대중들 앞에 홀로 설 때에 공포심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는 창조성이 환경에 의해 무참하게 깨어져 버릴 경우를 미리 예상함으로서 찾아드는 공포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뭐든지 자기 창조력 관리 하에 두어야 안심을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나름대로의 창조력은 하나님 나름대로 벌리는 창조력과 항상 충돌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력을 인간의 창조력에 빼앗길 생각을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자신의 창조력을 막힘 없이 발휘하시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나름대로 창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위태위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인간의 창조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방향으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죽으심'이란 참으로 낯선 결과를 인간 앞에 제시하십니다.

이렇게 되니 성도는 늘 알 수 없는 공포에 직면하면서 하나님의 원대한 힘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기적적인 인도하심에 온 몸을 내맡기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교회 다니고 난 뒤 술, 담배를 끊었다. 그랬더니만 계속해서 좋은 일만 생기더라"고 주장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난데없이 자신이 감당 못할 어려움이 덮치게 되면, 그동안 술, 담배를 끊었다는 자신의 창조능력의 발휘가 새로운 어려움에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윤리와 도덕과 종교적 행위의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관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만큼은 공포를 제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죽으신' 그 자리까지 덜 간 결과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에게 주어진 모든 복은 오직 예수님 혼자 만의 공로로 주어지는 겁니다. 이 공로를 인간이 도중에 자기 행함을 가지고 끼어 들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이들은 직접적으로 적군이 바로 뒤까지 도달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종교적 개념으로서의 하나님과 교리 같은 것이 전혀 소용없습니다. 단지 너무나도 다급한 현실성만 그들에게 들이닥쳤습니다. 즉 죽음이라는 것을 이제 그들은 참으로 가깝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런 식으로 급박하게 몰아넣으시는 걸까요? 그것은 그들이 이미 모형적으로나마 유월절 양을 통해 '하나님의 죽음' 안에서 인도함을 받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멋있는 음악과 춤과 설교가 이 다급함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종교일 뿐 절박한 현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로소 그동안 깊이 감추어 놓았던 자기 본성을 여지없이 털어놓게 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이유는, 애굽 땅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함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데 비해 모세와 아론 너희들은 우리의 뜻을 너무 안 알아주는구나"라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찾아온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이 죽으신 이유' 같은 것을 알겠다고 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목사 입에서, 예수님과 십자가 이야기만 하면 그들은 더욱 더 삶의 무게가 주는 공포심을 더욱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떡을 주냐 아니면 밥을 주느냐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차라리 죽기를 원하세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런 식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현실성을 미리 그들에게 안겨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죽음'에 동참시키려고 하시는 겁니다.

사실 애굽 땅에서 더 머물러봐야 새로운 공포가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공포는 자기 창조력으로 자기를 버텨 나가려고 하지만 끝까지 죽음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사랑이란 원래 하나님의 창조력으로 조성된 이 세상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력에 맞는 현실 속으로 자기 백성을 넣어주시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사랑은 바로 주의 종에 의해서 알려집니다.

다니엘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꿉니다. 그는 얼마나 그 꿈이 무서웠던지 자기 신하들을 전부 다 불러 자기가 꾼 꿈을 알아내라고 억지를 부리게 됩니다. 물론 남들 보기에는 그저 개꿈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당시 최고 국가의 왕을 그토록 공포에 몰아넣는 꿈이라면 이는 그냥 일상적인 꿈이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 되시는 분의 특별한 간섭이 있었다고 느부갓네살 왕은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 점을 확실히 주는 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을 통해 왕은 자기 자신의 일개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가 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려운 현실로 인하여 모세에게 달려듭니다. 11절에 보면,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실만 해결되면 그만입니다. 먼 장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순간 그냥 목숨이 부지하는 식으로 살면 그것으로 "잘 살았다"라고 확신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을 모르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자비를 안다면 세상에 주는 그 어떤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본질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기 희생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력을 위해 자신의 창조력을 알아서 포기해야 하는 새로운 낯선 환경 속으로 그들은 딸려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사실상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관한 한 우리가 원하는 바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에서 버티는 재주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넉넉히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날마다 자신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제 우리의 창조력으로 환경을 자기 관리 하에 지배하려고 하지 마세요. 남는 것을 지독한 실망뿐입니다. 죽어도 좋다는 자유 함이 참으로 우리의 본질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에 우리의 행함을 끼어 넣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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