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11-14/벌 내리시는 하나님
벌 내리시는 하나님2004년 4월 11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2:11-14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12: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2: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 분이 아니라 뭔가 일을 벌리시는 분입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벌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크게 잘못한 일이 있고 벌을 받을 짓 하면 벌을 받아야지요.
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께 나오지 않는다고 벌 내리시면 벌받는 인간으로서 부화가 나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믿는 신을 안 믿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일부로 악을 써가면서 신을 부정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에 대해 희미하나마 두려움을 갖는 인상이 심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 양심에 위배되는 짓을 했을 때는 난데없이 신의 진노가 임할까 싶어 나름대로 조정을 하지요. 의도적으로 착한 일을 해서 나쁜 짓을 한 것이 무마되도록 조처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착하게 보이는 대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신이라면 그 신이 어떤 신이든 그저 온순하고, 거저 고분고분 하는 심정으로 예의를 갖추어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쓸데없이 화가 자기에게 미치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신 관념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신이란 최고의 절대적 자리에 앉아 계신 분으로 인식됩니다. 절대의 자리란 마치 산 정상처럼 비록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그 정상에 도달하고 보면 어느 길로 왔던 한 지점에서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 위치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신의 자리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많은 민족들도 이스라엘 못지 않게 신에 대한 경외 심을 다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 하는 셈이죠.
따라서 적어도 신과 신 사이에는 차별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자는, 더 이상의 차별이나 차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절대자 사이에 차등이나 우열이 생겨버리면 그 절대자라는 개념 자체가 엉터리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류들 사이에 모두 공히 최고 자에 대한 예의가 성립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 최고 자 안에서 서로 의견이 통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웬 특이한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등장해서 하는 말이, "우리 민족이 섬기는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며 다른 민족이 생각하는 신은 모두 엉터리이다"고 나서게 되니 다른 민족이 볼 때에 환장할 노릇입니다.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왜 신과 신 사이에도 차별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 이유를 다른 민족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애굽의 모든 신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이 여지없이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다른 신의 존재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벌을 내리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입니다.
그리고 십계명 제 1계명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그렇다면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까?
그것은 사람들 손에 의해 죽어버린 희생양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죽은 양고기는 반드시 먹어야 하고 그 피는 문설주에 발라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냥 모세의 권위만 먹고 양고기를 먹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장난용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참된 하나님께서 오직 '어린 양'의 모습으로만 나타났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하는 목회자는 전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에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사람들이 기존의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인 양 알고 있는데 그들을 향하여, 오직 어린양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참된 하나님이라고 전한다면 누가 과연 믿겠느냐 하고 걱정이 되지요.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로만 구원받는 방식을 생각하시는 것은 반드시 그 방식을 믿는 사람이 발생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베푸신 조치입니다.
따라서 전도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곁들여서도 아니 되고 오직 그것만을 걱정 없이 속편한 마음으로 증거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양고기를 먹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양과 인간과의 바꿔치기입니다. 사람이 죽어야 될 자리에 양을 밀어 넣는 것입니다. 양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양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되어야 함을 당연시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동안 자신만의 인생이 이 양과 만나면서 멈춰야 함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자기 인생의 종결, 흔히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서만 발생되는 일이라고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는 죽음의 순간은 그들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순간이 그들 인생의 종결을 대신해 줍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는 앞으로 남겨둔 계획들이 모두 소용없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도 이러합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나서는 순간이 오늘 본문에서는 '양고기'를 먹는 순간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애굽 땅에서 살던 추억을 접어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애굽 땅에서 살았던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죽어야 될 양'이 대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굽 땅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동네로 이사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한 삶은 이제 끝났다는 겁니다. 즉 죽음으로서 마감된 양의 운명처럼 히브리인들의 애굽에서의 생활도 그 용도가 마감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애굽 나라와 상관없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사실 그 세계의 출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세계에서의 '죽은 자 명단'에 끼지 않고서는 결코 십자가 속에 놓여 있는 새 신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서로가 원수지간이 되어 있는 위치에서 성도는 이동된 인간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이동을 애굽이라는 상황을 가지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이동할 때, 몸과 살림살이만 달랑 건져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살던 의식이 만약 남아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정 애굽 나라의 청산이 아니라 도리어 애굽 의식의 이전과 확산이 될 뿐입니다.
여기서 뭔가 애굽과의 철저한 단절과 헤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양고기 먹기'입니다. 왜 양고기를 먹어야 할까요? 이사가는데 허기질까봐 양고기를 섭취해야 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이들 히브리인들이 가져야 될 의식은 '흠 없는 양의 희생 정신'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양은 죽었습니다. 애굽 나라의 의식을 제거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영원히 애굽과는 이별하는 양식으로 애굽 땅에서 죽어야만 했던 그 양이었습니다.
양의 죽음 안에 동참하는 것으로 히브리인들은 애굽의 의식구조와도 갈라서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다른 애굽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하게 되는데 그것은 양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왜 애굽 사람들은 죽어야 마땅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죄로 무서운 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나 압니까?
히브리인들은 '양'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근본 모습과 대하게 됩니다. '죽는 양'이 곧 하나님의 속뜻입니다. 자기 백성인 히브리인들의 애굽의식을 정산시키기 위해 죄도 없는 양이 처단되는데 그 처단되는 양의 모습이 곧 성도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에 합류됩니다. 이 희생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다 양이 왜 죽어야 하는가를 들추어내는 조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자비란 무서운 징벌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왜 하나님이 자비로우신가 하는 점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처절하게 징벌 받게 되는 그 현장에서 비로소 출현되는 겁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애굽을 떠남의 의미는, 양의 죽음이 갖는 자비 성을 충만한 세계로의 진입을 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굽 의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혹독한 처벌을 내리시고 있는지 그들은 똑똑하게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단지 문설주에 피를 바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즉 단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혹독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무엇이 자비이겠습니까? 바로 흠 없는 양의 죽음만이 자비입니다. 이런 이해 속에서 히브리인들은 양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이 희생양의 취지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든 사상과 그 추종자는 다 멸망당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겁니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것은 '어린양의 죽음' 뿐입니다.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된 하나님이 오직 어린양의 희생으로만 나온다는 사실을 안 이상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