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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12:1-10/유월절에 담긴 뜻강의출애굽기

유월절에 담긴 뜻2004년 4월 4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2:1-10
12: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12: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12: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12: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12: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12:6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12: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12: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지금은 성경책이 인쇄가 되어 이렇게 책자로 손에 쥘 수 있습니다만 옛날 구약 때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이스라엘 집단을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들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꾸만 사건을 일으키고 일들을 발생시켰습니다.
즉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사건이 터지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외없이 하나님은 어린양을 잡으라는 지시를 내리십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안목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뜻의 나타나심이 너무나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겁니다.
예를 들면, 여기 사방에 출입문 10개가 빙 둘러쳐져 있다고 칩시다. 그 문들마다 어떤 낯선 인물들이 나타나서 제각기 자신이 메시아요 하나님이라고 우긴다고 해봅시다. 어떤 인물은 영웅적인 자로, 어떤 인물은 멋진 미남으로, 어떤 인물은 미녀로, 어떤 인물은 엄청난 부자로 나타난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중에 어떤 분을 메시아로 뽑아야 합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 문으로 '초라한 어린 양'으로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곧장 희생될 양으로서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일을 이런 식으로 하시는 걸까요?
요한계시록 21:5절에 보면,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예수님께서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의 취지입니다. 그런데 '새롭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인정해 주는 차원에서 새롭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을 것을 모두 무시하고 파괴시켜 버리는 것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새롭게 하시겠다는 그 작업이 왜 이처럼 파괴적이고 과격해야 합니까? 그것은 이 인간 세계가 극도로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점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 그동안 친하게 지내왔고 익숙해져 왔고 또한 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포부와 비전과 꿈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만약에 이 세상에 대해서 철저히 부정해 버리면 이 세상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는 자기 자신도 또한 부정해야 하는 부담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출애굽기를 거쳐오면서 보았듯이 이상스럽게 바로의 반발 강도가 더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그토록 징벌을 아홉 번씩이나 내렸으면 어느 정도 기가 죽을 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로 도가 더 심해집니다.
그것은 '새롭게 됨'은 죄악이 최고조에 달할 때나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못 갖도록 하시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곡해하면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적들을 징벌하여 적들이 기가 팍 죽어있는 상황에서 그 뒤에 하나님의 자녀가 수월하게 행동하면 그들이 다 회개해서 하나님께서 돌아와 교회도 부흥되고 하나님 나라도 확장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왜 잘못된 생각인가 하면, 인간은 외부의 죄는커녕 내부의 죄조차도 자력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가 왜 이 세상에서 기세 등등 하느냐 하면 죽음의 권세에 눌려 있지 않는 인간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의지로서 죄를 이겨 이 세상에서 구원될 수 있는 능력자는 아예 없는 법입니다. 이러한 사태에서 '새롭게 됨'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수리하고 수선하는 것으로 마치 '새롭게' 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악에 대해서 갈 때까지 가겠다는 겁니다. 그 최후의 결말은 '죽음' 이 외에 다른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양'이 죽음의 모습으로 하나님 일에 끼어 든다는 것은, 악과의 대결에서 필히 죽음이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즉 극도의 악은 죽음을 유발하고 그 죽음 안에서 비로소 죽음을 극복하는 '새로움'이 탄생되는 겁니다. 이것은 곧 전쟁입니다.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움'이란 적어도 이 악을 이기고 죽음조차 극복하는 그 무엇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맨 처음 어디서 보여졌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에게 번제 드릴 것을 지시한 그 때입니다. 거기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서 죽게 되는데 이 이삭의 죽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물이 수풀 속에서 잡혀 이삭대신 번제로 태워진 어린 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번제 자체를 취소시킬 의사가 없습니다. 기어이 아들 이삭을 죽음의 현장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하십니다. 이삭은 자신의 제물 성을 면제받지 못합니다. 제물의 취지는 취지대로 유지하면서도 이삭은 결국 살아나는데 여기서 등장되는 것이 '수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린 수양'은 막연하게 대신 죽어야 될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숫자를 담당하면서 죽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그 어린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양마다 이미 자신들이 숫자로서 함유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바친 양은 수양을 바쳐서 모든 죄를 이기는 가족으로 새롭게 출현하는 것처럼 이제부터 이삭과 그 후손은 이 수양의 취지 안에 머물려는 운명으로 확정됩니다.
이 말은 곧 이삭의 후손을 따라 어린양의 취지가 하나님의 속성을 대변하여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이 속성을 지닌 민족과 국가의 탄생은 본격적인 영적 전쟁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시간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즉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그 날이 앞으로 모든 년도의 첫 달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함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단순히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라가 아니라 애굽 같은 국가와 싸워 결국에 승리한 국가로 남는 새로운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존의 시간으로서 이 취지를 드러낼 수 없고, 아예 시간 안에다 이스라엘의 존재의 의의를 실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시간은 이 이스라엘이 담당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해석해야 하는 시간들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민족이나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움이라 저주받을 헌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즉 어린 양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은 전부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새롭게 되는 데에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치 못합니다. 인간은 기존의 것을 고수합니다. 자기 딴에 새 사람 되겠다고 연초의 각가지 결심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님의 '새로움'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죽음을 기초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각가지 결심을 한들 그 결심을 쉽게 꺾어 버리는 각가지 사태들이 터져 나옵니다. 따라서 오직 어린 양 안에 들어 있는 자들만이 그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밖에는 모두 죽음입니다. 죽음의 심판주가 왔을 때, 자신들의 행함으로 전혀 대처가 불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분들이 단도직입적으로 저에게 이렇게 물어옵니다. "제가 구원받은 자입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어린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변하고 고백하는 지 그 여부를 보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떤 분은 답변하기를, "예수님에 대해서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일단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이 세상의 악과 싸워서 그래서 무사히 이겨내는 자는 구원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바로 그것은 '새롭게'를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반면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제에게 들이닥칠 죄와 죽음의 세력 앞에서 어린 양 속이 아니라 도저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저는 평생을 가도 어린양의 고마움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즉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이란 단독적으로 존립하는 자가 아니라 어린양의 희생 안에 숨어 지내는 사람입니다.
어디를 가도 그 분을 앞장세우고 그 분만을 증거 하는 자입니다. 그 어린 양 안에서는 새로운 시간이 흐릅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하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어린 양 안에서만이 죽음의 세력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과연 여러분이 새로운 민족이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맞습니까? 그렇다면 이삭처럼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수풀 속의 어린 수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린양의 구원의 효과에 대해서 계속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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