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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11:5-8/마지막 재앙강의출애굽기

마지막 재앙2004년 3월 28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1:5-8
11:5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11: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11:8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마지막 재앙을 남겨놓고 바로 왕과의 마지막 대화를 마무리 한 장면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란 공통점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한쪽은 하늘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이 땅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사로 상통하는 바가 없어 관계는 결국 끊어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된 관계,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바로 왕은 무엇을 느꼈으며 모세는 무엇을 느꼈습니까? 바로 왕은 끝까지 신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기존의 자기 나름대로의 신이 있기에 그 신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여호와라는 낯설어 보이는 신을 안치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 법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신이 갖는 내용이 틀릴 때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왕의 입장에서는 모세가 연락을 주고받는 그 여호와라는 신을 도저히 받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로부터 출발한 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든 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자기로부터 출발해야 비로소 의미를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나에게서 출발하지 아니하면 그 신을 소개한 타인에게 예속되는 것이 뻔합니다.
외국에서 기계를 들여왔을 때, 그 기계가 외제이기 때문에 무슨 하자나 고장이 나면 그것을 수리하는 기술자나 부속품까지 몽땅 그 나라에서 데리고 와야 할 형편에 처할 것입니다. 기술적인 예속이지요. 만약 자신이 만든 기계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외부에서 날라 온 신이기에 그 신을 받아들인다는 바로 왕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권을 그냥 몽땅 모세에게 인계하는 셈이 됩니다. 즉 옳게 사느냐 아니면 옳지 못하게 사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조차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마음대로 정해놓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오는 주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애굽 나라의 노예 취급을 받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굽의 최고 통치권자가 자기의 아래에 놓여 있는 민족의 신을 만약에 추종한다면 그 신의 선지자가 자기 자신 위에 올라앉아 매사를 명령해 대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싫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만든 신을 교체해야 합니다. 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으로 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참 하나님께서 지상에 남긴 증거물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4:4-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어린 양'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 이 '어린 양'이라는 개념이 맨 처음 나오게 된 것은 무슨 사건 때문일까요? 바로 왕과 그의 나라에게 재앙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개념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히게도 자기 백성인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구별해 내십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바로 '어린 양'이라는 겁니다. 과연 '어린 양'이라는 기준으로만 충분할까요?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맷돌 뒤의 여종까지를 꼭 들먹이어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애굽 나라에서 구원될 자와 구원되지 못할 자를 구분 짓는 기준은 결코 인간의 지혜나 신분 격차를 가지고 결정 지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즉 신분적 차이나 혹은 죽음의 사자가 심판하려 집집마다 방문할 때에 그 어떤 자세나 태도를 취했는가 상관없이 어쨌든 '애굽 안'에 있는 자들의 장자는 다 죽었다는 겁니다. 단 '어린 양'에 속한 자만은 예외가 됩니다.
'어린 양'이라는 기준은 인간이 만들어 낸 기준이 아닙니다. 양 백성을 구분 짓는 기준이 이스라엘 편에서 협의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현재 갖고 있는 신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신 것입니다.
"신을 과연 바꾸었느냐?"를 묻고 계시는 겁니다. 신을 바꾸었느냐 아니 바꾸었느냐는 이 지상에서 '어린 양'에 의해서 졸졸 따라다니는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살아가느냐로 판가름됩니다. '맷돌 뒤의 여종'은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 애굽 사회의 불평등의 한 단면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 사회를 구성하는데 무슨 기여를 하는가 하는 선에서 예수님을 해석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기 당하고, 박해받는 자의 편에 서서 그런 자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그런 예수님이 참 예수님의 정신이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신을 바꾼 사람이 아닙니다. 애굽의 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을 구별할 때는 오직 '어린 양의 피' 외에 다른 기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형편없고 불쌍히 보이고, 가난한가 라는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구원과 구원 안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한 자들은 부자 나름대로 교만이 있듯이, 가난한 자도 나름대로의 교만이 싹터있습니다. 즉 신을 바꾸지 않겠다는 교만입니다.
사회로부터 처절하게 당하고 매맞더라도 어떤 신에게 철저하게 종속되기 싫은 마음은 항상 따로 가득하게 부풀어오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신의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로 만들고 싶은 교만은 어린 양의 정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상 기준으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교회 내의 성도는 모두 한 성령을 지닌 채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들의 운명과 인도하심을 각자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마다 처해 있는 환경과 배경이 다르기에 어떤 특정 한 사람의 입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기 마련입니다.
성도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하나 같이 같은 속성을 지녔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특정 인사가 자신의 생활을 기준으로 정해놓고 타인들을 윽박지르고 그들은 구원됨의 자질을 심사하는 것은 각 사람 마음 속에서 한창 일하시는 예수님을 모독하는 바가 됩니다.
목사가 교인을 심사하는 저의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상적인 교회를 자기 정치적 역량으로 실현시켜 보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교회는 인간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간 손으로 교회를 만들겠다고 덤벼들면 거기에는 반드시 참 백성과 아닌 백성을 구별하는 기준이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고 그리고 그 기준을 마련한 목회자 당시자의 자기 인생관이 그 기준을 대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린 양'이 제시하는 정당한 뜻은, 누구든지 제가 나름대로의 기준을 거론하지 말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애굽 나라에 들이닥칠 재앙이 심각합니다. 죽음의 파도가 노아 홍수처럼 애굽 나라 전역에 덮치게 됩니다.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린양 기준 외에 다른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종교개혁 시대에는, 목사만이 성만찬을 행사할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만찬에 참여 못할 자는 죽어서 지옥 갈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목사가 가지는 정신적 우월성은 대단했습니다. 목사는 나름대로 '죄악의 리스트'를 뽑아놓고서는 교인들을 하나 하나 그 기준의 함량 여부를 심사했습니다.
만약 죄악의 리스트에 걸리는 사람은 거룩한 성만찬을 훼손시킬 지옥 자녀라고 단정짓게 되는 겁니다. 과연 성령이 있는 자를 같은 인간이 심사할 자격이 있습니까? '어린 양'이 될 수 있는 분은 진짜 '어린 양' 뿐입니다.
요한복음 1:29에서 세례요한은 외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란 같은 인간을 심사할 자격이 없습니다. 진실로 구원된 자는 어린 양을 쳐다보며 그분의 가치를 자기 존재에 있어 가장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사회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로 치이더라도 그 어떤 경우에도 어린 양을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이야말로 이 한국 땅에 같이 살면서도 천국의 백성인 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린 양 외에는 다른 것이 크게 보이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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