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1-7/개구리 재앙
개구리 재앙2004년 1월 4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8:1-7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8: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지경을 칠찌라8:3 개구리가 하수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에와 네 침실에와 네 침상 위에와 네 신하의 집에와 네 백성에게와 네 화덕에와 네 떡반죽 그릇에 들어갈지며8:4 개구리가 네게와 네 백성에게와 네 모든 신하에게 오르리라 하셨다 하라8: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찌니라8:6 아론이 팔을 애굽 물들 위에 펴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8:7 술객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하나님과 바로왕의 다툼은 꼭 속좁은 치사한 다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한꺼번에 처단하실 수 있는데 자꾸 미루는 것 같고, 바로왕은 그저 개인적인 자존심이나 지탱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왜 하나님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그 틈바구에 끼어 있는 모세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의 힘의 깊이를 제대로 경험해 주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늘 아슬아슬한 지경을 보내고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는 더 거세게 나오고 있고, 하나님도 일체 자신의 뜻 관철에 양보할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바로와 모세가 정치적으로 양보해서 적당선에서 타협할 그 어떤 여지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조건 '내 백성을 보내라'입니다.
이로서 하나님과 바로왕 중간에서 처신하기 힘겨운 입장에 모세는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일주일 전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할지라도 그 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또 새로운 난처하고 위기스러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모세입니다.
즉 모세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가지고 바로왕을 갖고 놀면 좋겠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못하고 모세에게는 순간 순간이 위기의 연속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입장이 그러합니다. 교회 와서 설교 말씀 들을 때면 천하의 모든 진리를 다 깨닫고, 앞으로 어떤 사태가 터진다 할지라도 어느 시, 어느 곳이든지 장렬하게 죽을 각오로 무장되었다고 하지만 막상 세상에 나가보면, 여전히 차갑게 불어오는 것은 겨울 바람입니다.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이 우선 자신을 장악하게 됩니다. 너무나 두렵고 무섭고, 걱정되어서 간절이 겸손한 자세를 취하여 기도를 해보지만 마음의 안정은 커녕, 이 기도가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참 부질없는 헛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면을 장식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성도를 인도하신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가롯 유다와 여러 제자들이 예수님 곁으로 많이 기적을 목격했고, 또 실제로도 자신들이 기적을 베풀었지만 막상 자기 신앙에 위험이 닥쳐올 때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그동안 도 닦은 테크닉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런 테크닉도 소용없습니다.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현실성을 확신케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천국까지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자력으로 구원되는 수는 없습니다.
수 년간, 수 십년간 교회 봉사하고 헌금 한 것도 지나보면 현재의 신앙을 갖는데 있어 소용없는 짓입니다. 현재 신앙은, 현재 성령께서 어떤 은혜를 주시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겁니다. 매일같이 주님만 의지하면서 인도함을 받는 수 밖에 없습니다. 신학을 통달했다고 해서 신앙생활에 있어 유리하다고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도 역시 하등 소용없습니다.
도리어 지식이 자신의 믿음 없음을 감추는 장식품으로 등장될 뿐입니다. 지식은 지식이고 신앙없음은 여전히 신앙없음 그대로입니다. 하여튼 모세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지팡이를 들이댈 뿐이고, 그리고 똑같은 요구조건을 바로왕에서 제시할 뿐입니다.
참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만 밤에 몰래 데려가면 그만인데 왜 이처럼 애굽 전역에 재앙을 내린답시고 분란을 일으켜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애굽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위함입니다. 애굽에서의 구원은 앞으로 그들이 정착해야 될 가나안 땅의 구원 전쟁과 같은 겁니다.
양쪽 다 절대로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전쟁입니다. 상대가 더욱 거세게 나오면 나올수록 인간적인 도피를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애굽 나라에 무슨 재앙을 내리기 위해 모세를 바로왕 앞에 세우십니까?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개구리란 큰 강이 있을 때 서식하는 동물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개구리가 유명하지 않습니다. 애굽 땅에서만 유명합니다. 개구리는 애굽 나라를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구리 재앙이 주어지기 전에는 개구리는 개구리는 강가에 살았을 것이고 애굽 사람들은 따로 각자 자기 처소에서 편안하게 구분지어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바로왕은 왕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구분이 깨어지고 온 애굽 나라 전체가 개구리판이 되어습니다. 이것은 혼돈입니다. 순식간에 질서의 무너짐을 애굽 사람들은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바로왕이 단호하게 모세와 여호와라는 신에게 대들고자 하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인간의 힘에 의한 국가라는 질서체제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은밀한 처소가 바로 왕이 거처하는 왕궁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인간들만의 질서 세계입니다. 감히 일반 백성들이 출입도 못한 깊숙한 공간이 왕궁입니다.
이런 체계있는 권력 체제가 그동안 이 애굽 나라를 튼튼한 강대국으로 키워왔다고 자부하는 차입니다. 따라서 이런 탄탄한 배경을 믿고 그들은 설마 이 강한 질서 구조에 혼란이 생길 것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그동안 바로왕은 자기 권력을 바탕으로 히브리 민족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애굽인들에게는 자유와 자율이 주어졌지만 히브리인들에게는 바로왕에 의해서 언제든지 질서가 파괴될 수 밖에 없었던 엉성한 집단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노예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겁니다. 종은 함부로 주인이 사는 방에 들어갈 수 없지만 주인 뿐만아니라 주인집 아이들과 개까지도 언제든지 함부로 종의 은밀한 방에 들어가도 흠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마당에 있는 개집을 마음대로 부수고 허물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의 운명은 주인인 바로왕의 마음에 따라 허물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히브인 민족은 애굽 사람의 종이 되어야만 마땅한 하등 종족일까요? 아닙니다. 히브리인들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 한 마디로 나일강 가에서만 서식해야 될 개구리들이 특공대처럼 온 애굽 사람들의 집을 수색합니다.
심지어 아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바로왕 개인적인 거처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게 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의한 무장해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과연 누가 노예며 누가 이 나라의 질서를 쥐고 있는 주인이라는 말입니까? 심지어, 하덕이나 떡반죽에도 개구리들이 올라와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판국에 인간다움에서 오는 품위라든지 인격이라는 것은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게 된 지경입니다. 요즈음 경찰에서는 불시에 음주측정을 하게 됩니다. 음주측정을 하게 되면 남녀노소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음주측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체에 술이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이나 의지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술 기운이 지배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정신이 아니지요. 제정신이 아닌 자를 두고 직업이니 직위이 권위를 따진다든지 인간의 품위를 논하고 윤리를 말해봤자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냥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게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권위라든지 질서 의식이라는 것도 스스로 권위를 가질만한 자질이 있다고 자부심을 가질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될 나라가 온통 개구리가 사람의 모든 거처를 점령하고 말았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애굽 나라는 개구리 나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겁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것은 자연적인 가능성에 의해서 생길 수 있는 우연적인 일이지 결코 배후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적인 실행의 결과가 아닐 것이라고 보는 애굽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강퍅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8:12-14에 보니 그런게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나와서 죽은지라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즉 모세의 기도에 의해서 그많은 개구리가 일시에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개구리의 침공이 자연적으로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 무원인적인 사태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애굽 나라 질서의 원상 회복은 더 이상 바로왕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왕은 끝까지 대들고 버팁니다. 왜냐하면 자기 나라 술객들도 그런 이적을 이르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애써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자기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강퍅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를 비롯해서 모든 이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5-6과 9절에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우리 속에 담겨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소원은 달성된 것입니다. 신명기 12:5에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네가 과연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 하나님의 이름의 공로를 인정하느냐?"를 물으십니다. 즉 하나님은 공로만 드높아지는 쪽으로 일하신다는 이 일관성만 깨우치신다면 온통 바로왕같은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나서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인간 스스로 질서를 만들 생각말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그 질서에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