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5:3-5/동문서답
동문서답 2003년 10월 26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5:3-5
5: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5: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5:5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신앙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하는데 자꾸 방해되는 요소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갑자기 우리의 신앙 생활이 억지가 되고 부자연스럽게 돌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신앙 생활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움을 주셔서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잖아요. 하나님 책임지세요"하면서 말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신앙 생활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과연 있을까요? 즉 신앙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느냐 말입니다. 만약에 상황따라 신앙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처음부터 연출된 가짜 신앙일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지금 모세는 누구 앞에서 서 있습니까?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도 뇌물이나 바쳐서 상호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처음부터 대화가 격하게 될 것이 뻔한 분위기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 오늘날 우리들이 서 있다고 보세요. 이런 경우에도 과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이나 늘어 놓아야겠습니까? 우리가 이 사회의 대인관계에 있어 상대방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싶으면 웃으면서 다가갑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대단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 우리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나님 저의 신앙 때문에 이번 거래가 깨어졌습니다. 참 좋은 기회인데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책임지세요"라고 말입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계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아에 처음부터 존재한 적도 없는 허구였습니까? 실제로 살아계신 분이라고요?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예를 들면, 사도행전 5:18-20에 보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현장에 여러분들이 있고 또 여러분들이 사도라고 간주합시다. 진짜로 천사를 만났고 진짜로 천사에 의해 거리로 나와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과연 사람들이 믿겠느냐하는 겁니다. 모세가 바로왕과 만났다는 것은 믿으면서도 사도가 천사를 직접 만났다는 것을 못믿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똑같이 대단히 중요한 일들입니다.
천사의 만남이 그냥 천사의 대면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모세가 바로왕과 만나는 것은 그 중대차한 일의 일종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흔히 사람들이 미쳤다, 돌았다라는 경험과 체험속에서 돌파해서 우리들에게 접근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8:26에 보니,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빌립 집사님은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영생이 전달되기까지 그는 '천사 만남'이라는 남들이 비웃을 수 밖에 없는 경험을 수모용으로 당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있어 복음이란 이 세상에서 자기가 경험한 그 어떤 현실보다도 더 소중한 것을 전달받는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사도가 천사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잃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천사를 만났다는 사도를 비웃을 가능성이 많은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상식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은 과연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방금 질의를 여러분에게 던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예!"하고 힘차게 말합니다.
그리고 제가 덧붙어 말하기를 그것을 바로왕 앞에 증거할 수 있습니까? 하면, 순교의 각오가 갑자기 생긴것처럼 더 큰 소리로 "예!"라고 답변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런 거짓말 하지 마세요"라고 면박하고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천사 만나는 것보다 더 웃기고 말 안되는 이야기가 하나님 살아계심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정말로 하나님과 분주하고 교류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와 아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남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선교단체 대학생들도 다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하나님과 계속 지금도 대화가 가능하느냐 하는 것은 진짜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도든 누구든, 천사를 만난 것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은 외톨이가 됩니다. 그래서 되려 사람들에게 제가 묻게 됩니다. "아니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현대 시대에는 아에 천사도 없고 천사가 활동을 안한다고 말씀하실 참입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목사님, 그런 것은 아니고요. 천사가 있지요. 성경에 있으니 실존 인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 그런데 그 뒤가 어쨌다는 겁니까? 여기서 '천사란 성경에나 있습니다'라는 신앙으로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에서 서 있는게 아니다는 말입니다.
아니, 천사가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만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말라는 겁니까? 함부로 나타나서는 아니된다는 겁니까? 아무나 천사를 만나지 말아야하고 설사 만났다 할지라도 만났다는 발설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왜 제가 천사 이야기를 계속하느냐 하면, 막상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신앙의 세계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스스로 배제시켜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야 남들이 생각하는 현실 안목에 스스로 맞추어주기 위해서랍니다.
여러분 사도들이 아마 그렇게 했더라도 우리들에게 복음은 들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사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입니다. 천사의 존재와 그 분주한 활동성을 정말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이 세상 움직임과 현상에 대해서 우리가 장악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처럼, 천사보다 더 한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려면 천사를 만난 것보다 더 기쁘고 더 확고한 근거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떤 현실관을 요구하던 간에 타협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자신만만한 것을 무기로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뭔가 누군가가 배후에 계셔야 합니다. 그 누군가에 의해서 늘 조종받고 지시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신비로운 분과의 자기만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남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모든 환경이 배후에 계신 분의 선한 뜻에 의해서 조성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모세와 바로의 싸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왕은 당연히 자기 목소리만 높일 뿐입니다. 모세가 하는 말에 감동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세가 그런 환경을 핑계삼아 다시 뒤돌아 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듣든지 아니듣든지 분명히 기회를 하나님이 제공했으면 자기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화는 단절됩니다. 서로가 자기 세계에 머물면서 밖으로 안나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로가 하는 이야기와 태도는 모세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모세가 하는 이야기는 바로가 전혀 이해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두 가지 입장을 다 보여주므로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편에 서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하십니다.
왜 성경에 천사 이야기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는 겁니까? 바로 그 체험과 동일한 체험 속에 놓인 자들이 누구냐를 찾고 있는 겁니다. 신앙이란 용감한 모험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처신입니다.
안믿어도 될 하나님을 억지로 믿지 마세요. 그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습니다. 계신지도 않는 하나님을 억지로 있다고 가정을 달지 마세요. 참으로 어색한 마음 상태일 뿐입니다. 바로왕의 주장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왕은 오히려 모세를 설득하려 합니다. "정신 차려라. 있지도 않는 신을 들먹이지 말고. 지금 당신의 두 눈앞에 누가 앉아 있는가 똑똑히 보라. 그리고 현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다른 가상현실을 끌어 당길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하는 자세로 바로왕은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 자력으로 신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바로왕의 이런 유세에 기를 다 빼앗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나가 예배 드리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라는 말을 아마 이렇게 바꾸어서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어하니 광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신을 거론하고 예수님을 거론하고, 그 중앙에 인간이 서있으면 그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모조품일 뿐입니다. 천사도 마찬가지고, 성령도 마찬가지고, 하나님,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라는 것이 고작 그런 종교 놀이에 불과한 것일까봐 두려워합니다.
바로왕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이것들이 할 일없으니 여호와라는 비현실적 가상체를 만들어내는구나. 앞으로 이들에게 더욱더 가혹한 노동과 시간을 첨가하라"라고 명령합니다.자... 여러분, 이럴 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바로왕 앞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신앙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현 위치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활동하심의 결과로 서 있음을 우리가 알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