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14 /고난의 시작
고난의 시작2003년 7월 20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8-14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1:9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1:13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1:14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성경에 보면, 생명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생명책에 있는 명단은 인간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생긴 명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명단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명단에 맞추어서 사람이 창조된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시편 139: 13-17에 보면,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자들의 운명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됨을 알리기 위한 등장 인물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왕'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의 등장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시발점이 어디일까요? 요한계시록 20:15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출발하는 지점은 하나님의 생명책입니다. 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를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어떤 식으로 주시는가 하면, 언약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 언약이 바로 '요셉의 존재함'입니다. 요셉을 제대로 아는 왕이 있을 때에는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은 고통 당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이 유지되고 아니되고가 결코 인간들의 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등장함으로서 그 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핍박이 감행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교회 다니는 일과 예수 믿는 일이 모두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에 의해서 성사된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반드시 이 땅에 창조되어야만 하고 그 창조된 자는 은혜를 아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은혜를 모르는 자로 만들어져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자는 무슨 종교를 갖든지 간에 모두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점을 또 아셔야 합니다. 즉 생명과 비생명, 빛과 어두움 결코 사이좋게 잘 지낼 입장이 못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의 어두움이란 단지 빛이 덜 비치는 공백 지역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빛 되시는 분에게 대들고 공격하는 세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은 어두움에 소속되어 있기에 자연적으로 빛 되시는 분에게 대들도록 되어있는 그런 인생을 산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무시무시한 인간들의 근원적인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누가 봐도 어질고, 순하고, 공손하고,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자라도 예수님과 무관한 자라면 본성상 예수님에 대해서 극도의 반감을 갖고 욕하게 된다는 겁니다.
과연 그런가 하는 점은 빛되시는 분인 예수님이 오셔서 어두움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를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한 하나님 밑에서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논리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동일한 적으로부터 동일한 방식으로 공격을 같이 받고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은 사적인 이유 때문에 애굽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적을 통해서 과연 우리의 형제인지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신에게 불만이 그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러합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의도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어두움의 속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5:45에 보면,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하장사라도 사람은 햇빛과 빗물이 없이는 못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나 불신자도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빗물 없이 못삽니다. 무엇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다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들은 뭐든지 자신의 선택 행위와 결정 행위를 빼놓고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자기 외에 분의 결정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악의 속성입니다. 만약 하늘에 누군가 계신다고 한다면 의도적으로 그 분을 조롱합니다. "하늘에 그 누구가 계십니까? 계시다면 얼굴이라도 내밀어 보세요. 거봐 아무 소리는 없잖아. 비나 햇빛은 그저 자연의 운동에 불과해"라고 건방지게 외칩니다.
하지만 신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의 판단과 결정 이전에 다른 분의 판단과 결정이 우선되어 있음을 압니다. 이것은 논리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속성상 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부류의 사이에는 끊임없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사이가 아닙니다. 서로 마음에 맞는 취미생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사이가 아닙니다. 이 점을 우리가 심사숙고 해야합니다.
위에서 이미 생명과 저주로 나누어진 사이이기 때문에 밑에서 아무리 악수를 하고 얼싸안아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속성과 결합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빛과 어두움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를 망각했을 때 그다음에 나올 수 있는 태도는, 신에 대한 조롱과 핍박과 전면적인 공격입니다.
물론 요즈음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상으로 내려주신 생명과 햇빛과 비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에게 따지고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계 내에서 예수님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자기 교회 사수 때문에 고난 받는 사람도 있고, 목사라는 직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난 받는 사람이 있고 자기 사업체를 지탱하기 위해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가정과 가문의 영광과 자기 명예 회복을 위하여 고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형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많은 영화 주인공들이 심한 고생과 역경을 겪지만 그들 중에 예수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의 원수인 악마는 오직 예수님의 복음 안에 있는 자만을 제대로 공격 목표로 삼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자기 수하에 있는 자들일 뿐이라고 공격 표적조차 되지 않습니다. 악마의 공격은 개인 대 개인의 감정 싸움이 아니라 어떤 집단을 향한 총체적으로 시비를 거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감정 문제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즉 신자가 불신자와 사이를 좋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복음 이외에 다른 면에서 충실하고 성의있게 대한다고해서 그들과의 관계가 호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압제를 받는데 그들이 누구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는가 하면 개인적으로 나쁜 짓했다고해서 그 특정 개인만 애굽 관리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출신 성분이 요셉의 후예라는 이유 때문에 애굽의 권력자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겁니다. 차기 왕들에게 있어서는 애굽이라는 나라는 요셉의 가족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강한 나라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존재가 별가치없다고 여겨진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입니다. 애굽이라는 나라의 주도권이 요셉의 하나님으로부터 애굽의 왕의 나라로 전환되면서 이제는 요셉 민족을 지켜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적으로 보일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없이 자기 가문, 자기 핏줄 위주로 나서는 것이 얼마나 비진리적이며 곧 하나님을 공격하는 마음인 것을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은혜를 떠나면 남는 것은 요셉을 모르는 바로왕과 같은 마음이 됩니다.
생명 되시는 분의 고마움과 은혜를 망각하면 그것은 어두움 세력이 배후에서 시키는대로 따랐다는 결론에 도달될 뿐입니다. 자신의 근본이 하나님의 은혜로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죄입니다. 생명되시는 분을 모독하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비록 총체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미움받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김 찬희: 목사님의 설교 내용중에서 "명단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명단에 맞추어서 사람이 창조된 것입니다." 말씀은 예정론의 범주안에서 말씀 하신것 같습니다. 만약 목사님의 이 말슴대로라면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일을 들어내기 위해서 요셉처럼 미리 선택되어진 자도 있지만, 목사님 말씀처럼 이? [07/21-11:08] 김 찬희: 목사님의 설교 내용중에서 "명단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명단에 맞추어서 사람이 창조된 것입니다." 말씀은 예정론의 범주안에서 말씀 하신것 같습니다. 만약 목사님의 이 말씀대로라면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일을 들어내기 위해서 요셉처럼 미리 선택되어진 자도 있지만, 목사님 말씀? [07/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