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떨기나무
15 불꽃과 떨기나무오늘은 모세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성경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알 것은 그들의 영웅담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에게 부서뜨림을 당한 것과 그 부서뜨림 속에 피어난 공짜로 받은 하늘의 것이 무엇인지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함이 공부의 목적입니다. 그렇기에 유대인처럼 믿음의 선배 모세 따라잡기가 아니라, 모세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받은 공짜 선물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준 그 믿음이 이런거구나를 하루하루 발견해 가는 것이 바로 은혜(주님의 살과 피의 공로)다 라는 겁니다.모세는 예수님의 태어난 당시 상황을 미리 앞당겨 보여줍니다. 즉 요셉을 통해 애굽나라가 풍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혜받은자를 못알아보는 것이 죄라고 했음)이 등장하니까(출 1:8)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로 전락하게 되어 수난을 받게 됩니다. 새로 등장한 왕은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남자 아이를 죽이는 말살정책으로 모세의 운명 또한 죽음을 피할수 없는 자리에 놓입니다. 모세는 갈상자에 놓여 하수에 떠내려가다 바로 왕의 딸 공주에 의해 건짐을 받습니다. 그래서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 하여 이름을 모세(출 2:10)라 하였습니다. 이 장면과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으나 애굽의 주가 되는 모습이 마치 "95 MBC 자연 다큐멘터리 어미새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뻐꾸기가 탁란하는(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원래 둥지에 있던 알은 밖으로 밀어내는 것) 모습에서 마치 애굽나라(함 땅)의 죄악성을 시비 걸어 원수의 성문(창 22:17)(창 24:60)을 열어 죄악과 싸워 그 승리로 이루어진 거룩을 누리는(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언약의 완성이 바로 물에서 건짐 받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의 운명이 바로 모세의 운명 속에 놓여진 겁니다.자 그럼 우리는 모세에게 대단한 기대를 걸고 보게 됩니다. 모세는 40세때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 후 자기 민족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고자 민족 독립 영웅 투사로써 이순신 장군처럼 안중근 의사처럼 그는 노예해방을 위해 자유를 부르짓게 됩니다. 이런 영웅담은 국가 민족 가릴 것 없이 지금까지도 드라마 영화 문학 역사 등등의 이야기로써 우리의 본능을 자극 시킵니다. 인간은 어떤 구속과 속박에도 참을수 없어 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이런 여웅담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곤 합니다.그렇게 자기자신을 불태우시면서 등장한 모세는 독립만세를 외치다 결국 수배 대상이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하나의 해프닝처럼 되고만 모세의 자기민족 사랑은 물거품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가 수배령을 내리자 자기 목숨 하나 달랑 건질려고 죽기를 무서워 도망자 모습이 된 모세.(출 2:15) 독립투사의 모습은 커녕 바로의 낯을 피하여 도망자가 된 한심한 모습이 우리가 기대한 모세의 모습은 아닐껍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모세이다는 겁니다. 자 그럼 우리는 다 그를 외면하고 돌아 설 수밖에 없습니다. 선구자 모세 지금은 어디 곳에 피하여 도망하고 있는지?(죽음을 피해 도망자인 우리모습처럼)이제 기난긴 40년이 또 흘러서 모세도 나이 80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진 성공한 도망자로써 그는 철없던 과거의 해프닝도 한 때의 추억으로 넘기고 타국에서 나그네로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을 치던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무가 타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가까이 다가간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출 3: 4-12)(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자 그럼 모세는 흔쾌히 네 알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면서 순종했나요?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모세는 하나님을 세바스찬처럼 나가있어 라고 외치고 팠습니다. 왜 일까요? 사람이란 자기이익 타산에 따라 관계를 형성합니다. 신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이익되는 점이 어떤 가치점이 없으면 가족이든 신이든 다 귀찮고, 조금의 이익이 있으면 철거머리처럼 달라 붙습니다. 우리가 배운 야곱처럼 뭐든지 다 끌어모으는 모습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모세 입장에서는 자신의 40세때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을 구원코자한 그 자유독립 투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분이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어떤 도움도 전혀 받지 못한 모세는 하나님을 외면함으로 지금 그 부르심에 거부감을 표합니다.(출 4:13)그런데 이제와서 힘없고 능력도 다 쇠잖하고 늙었고 입이 굳어 말도 어눌한 누가봐도 어떤 가치성이 전혀 없는 무가치한 스스로도 잘 아는 모세의 주장을 우리는 당연히 여기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하기에 그런 일을 할 가치가 있다고 부르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젊은 피를 찾지 않고 그러면 더더욱 가치 있을텐뎅 지팡이를 의지하는 늙은 노인네를 쓰시겠다고 하십니까? 젊은 피 수혈을 거부하고 아무 가치 없는 자를 쓰는지요?그 이유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에 대한 개념을 부서뜨리고 참하나님은 바로 창조의 능력으로 일하심을 알리고자 일부러 없는자와 같은 죽은자와 같은 그런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고자 함입니다.(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하나님이 떨기나무의 불꽃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떨기나무처럼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 나무가 오히려 다른 나무의 불꽃보다 더 강렬히 불을 내 뿜고 있다는 겁니다. 더더욱 신기한 것은 불을 활활 태우기 위해서는 튼튼한 나무라야 잘타들어가기 때문에 부스러기 같은 약한 나무는 불꽃은커녕 불 살리기가 더 힘들기에 땔깜으로 적당치 않습니다. 그런데 약한 그 떨기나무가 불꽃을 강렬히 내면서 나무가 타들어가지를 않으니 모세가 떨기나무의 습성을 잘아는 자로써는 신기할 따름입니다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가 40세 때의 그 열정은 바로 자기 스스로 불을 댕겨 자기 스스로 다 타고 말아버린 사람의 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 스스로가 자기 열정과 종교영웅심에 불을 질러 자기 스스로 타버리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모세의 일은 바로 그러했기에 실패였다는 겁니다.(빌 2:21)그래놓고 하나님 안도와 줬으니 나도 안놀아준다고 나옵니다. 이런식의 행동이 우리에게 너무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도 나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도박하듯 하나님과 돈 놓고 돈먹기 식의 장난을 우리는 너무 심각하게 하나님께 요구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이 떨기나무의 불꽃으로써 타들어가지 않는 강렬한 불꽃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의 희생 땀 공로 노력 충성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불사르고도 남지만 불쌍히 여김 긍휼히 여기심으로 일하시기에 나무가 타들어갈 필요 없이 불꽃 자체로서 충분히 일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땀은 조금만 흘러도 생색을 내기에 자기자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기 위해 직접 죽기까지 복종한 낮아지심으로 일관하십니다.(빌 2:5-11) 이 떨기나무의 불꽃 또한 모세라는 이 약한 자를 돌이키시고(회개도 결국 하나님의 낮아짐으로 나온 것이지 인간 스스로가 할수 없음) 그 약함을 통해 참하나님만 증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사람들이 말하는 능력이란 사실 전혀 능력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혀 능력 없어 보여 무시했던 무가치했던 버린 돌이 건축물의 머릿돌이 되는(시 118:22)(마 21:42) 방식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왜 그럴까요? 죄를 들추고 그 죄의 실상을 알게 한 후 죄와 싸우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죄악과 만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세 또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면, 주님의 낮아지심이 아니면 바로와 다를바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의 불꽃으로 나타난 하나님은 온세상을 불사르고도 남을 불이시지만 약한 떨기나무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 그만큼 참아주시고 낮아지시고 불쌍히 여기셨기에 소멸되지 않는다는 그 은혜만이 우리가 용서받은 이유입니다.(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우리는 벌써 타버렸어야 할 죄인입니다. 소멸하는 그 불을 견뎌낼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 속에서라도 춤을 출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으로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모세 또한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겁니다. 모세가 받은 것은 딱 하나입니다. 긍휼 불쌍히 여김 바로 용서함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생이요 가장 행복한 인생은 용서받은 자입니다. 모세는 종교 영웅으로 우리 앞에 있지 않고 용서 받은자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 용서를 증거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단 3:1-30) (단 3: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단 3: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단 3:26)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단 3:27)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단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단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단 3: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