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이사야 9:8-13 /징계의 원리강의이사야

징계의 원리
2006년 4월 5일 설교 본문: 이사야 9:8-13

(사 9: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사 9: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사 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사 9:1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사 9:1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사 9:13)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 측은하게 생각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네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당해도 너무 당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들은 그토록 심하게 다루지 않는 하나님도 이상스럽게 자기 백성들에게 혹독하게 다루십니다. 조금이라도 교만하고 완악한 낌새가 있으면 여지없이 징벌이 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로 인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됨’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냥 관념적으로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현실 속에서 활동을 분주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관계로 맺어지지 않고 방치된 나라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붙잡힌 바 된 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된’ 사람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불신자보다 더 완벽하거나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붙잡힌 바’ 된 사람일 뿐입니다. 붙잡힌 바 되었기에 붙잡히지 않는 자들과는 달리 늘 생생한 하나님의 관여가 주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원리에 의해서 이들을 붙잡고 있는 겁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지적받았습니다. 왜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하면 안되는 겁니까? 현재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은 원래 자신들이 살고자 하는 땅이 아닙니다. 참으로 엉뚱한 땅이요 난데없는 땅입니다. 그들은 원래 애굽에 살던 땅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능력으로서 한발자국도 그 애굽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들은 지금 가나안 땅, 즉 블레셋 민족들이 거주하는 팔레스틴 땅에 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애굽에서 이곳 가나안 땅까지 오면서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능력 속에 인도함을 받은 것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교만이나 완악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능력만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그 능력은 잊고 무시해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자기 능력만을 신봉한다면 이들은 결코 이 약속의 땅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가나안 땅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다른 능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바로 그 능력을 외면하면 그것이 교만이요 완악입니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현재 성도들은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 휩싸여져 있습니다. 그 능력 안에 있는 것이 곧 천국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의 능력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여전히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믿고자 한다면 이는 현재 자신의 신분과 전혀 맞지 않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요 완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현 신분을 제대로 말씀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찾아가시는 겁니다. 결코 이방민족에게 찾아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민족들이 어떻게 살던 관심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의 혜택을 입은 자기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찾아가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란 완전하거나 완벽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상대자로서 살도록 이 세상 여전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언약의 원리가 어떤 모양새를 갖추게 되는 것일까요? 사사기 2:20-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던 자기 백성을 끌고 오는데 과정 속에서 인간적인 힘으로 도저히 넘을 수 있는 위기 상황들이 벌어졌었습니다. 홍해가 그러했고, 요단강이 그러했고 여리고 성이 그러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런 난관을 오로지 하나님의 자기 맹세로 극복을 해내었습니다. 이 자기 맹세라는 것이 곧 ‘언약’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이러합니다. “일련의 구원은 결코 너희들이 바램이나 희망이나 소원이 아니라 이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이요 약속이요 과업이다”고 말입니다. 책임지고 너희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이고야 말겠다는 뜻이 그 난관, 난관들마다 나타났습니다. 그런 난관들을 만날 때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적용되어 이곳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난관들을 이제 다 철수 시켜 하나도 없게 만드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나온 난관들, 즉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이 안되고 오직 하나님이 언약한 약속대로만 극복된 난관들을 이스라엘 주위에 깔아두심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오로지 주님의 언약에만 의지하도록 할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이미 구원받은 것은 주님의 십자가 피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에서 각가지 난관들을 만나면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뜻은 어디론지 달아나버리고 자신이 가진 힘과 지혜와 지식으로 그 난관을 극복하려고 덤비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교만이요 완악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이미 쫓겨난 신세가 된 것이 분명하다고 느끼게 된 직원이 ‘과연 내가 직장을 잃었을 때 내가 무엇을 하면 살 수 있느냐’하는 점을 쫓겨나가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성도가 이미 천국 백성이 된 입장에서 어떤 안목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각할 것인가를 미리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정의로움을 찾으면서도 예수님이 이미 왔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 차라리 불의한 청지기가 너희 잘난 체 하는 성직자보다 훨씬 이 시대로서는 지혜롭게 처신한다는 겁니다.

성도는 결코 완전한 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완전히 구원을 제공하신 그 주님께 붙잡힌 바 된 관계가 완전하기에 수시로 우리가 교만할 때마다 주님께서 생생하게 작용하십니다. 어떤 모습을 보이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주님도 살아계셔서 십자가의 공로의 완벽함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신다”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십니다. 이런 자가 성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된 그것을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05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542 성경 이사야 13:1-5/바벨론에 대한 경고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41 강의 이사야 13:1-5/바벨론에 대한 경고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40 성경 이사야 12:1-3 /시련과 감사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9 강의 이사야 12:1-3 /시련과 감사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8 성경 이사야 11:10-13 /만민의 깃발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7 강의 이사야 11:10-13 /만민의 깃발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6 성경 이사야 11:6-9 /거룩한 산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5 강의 이사야 11:6-9 /거룩한 산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4 성경 이사야 11:1-5/이새의 줄기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3 강의 이사야 11:1-5/이새의 줄기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2 성경 이사야 10:20-25 /남은 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1 강의 이사야 10:20-25 /남은 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30 성경 이사야 10:15-19 /도끼 드는 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9 강의 이사야 10:15-19 /도끼 드는 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8 성경 이사야 10:5-11 /몽둥이에 임할 분노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7 강의 이사야 10:5-11 /몽둥이에 임할 분노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6 성경 이사야 10:1-4 /불의한 법령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5 강의 이사야 10:1-4 /불의한 법령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4 성경 이사야 9:17-21 /멈추지 않는 분노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3 강의 이사야 9:17-21 /멈추지 않는 분노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2 성경 이사야 9:13-17/백성의 죄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1 강의 이사야 9:13-17/백성의 죄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20 성경 이사야 9:8-13 /징계의 원리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열람 ➜ 강의 이사야 9:8-13 /징계의 원리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3,518 강의 이사야 9:4-7 /한 아기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