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1-4 /시온에 남은 자
이사야 4:1-4 /시온에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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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에 남은 자
2005년 12월 7일 본문 말씀: 이사야 4:1-4
4: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4: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4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성경은 전부 예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예언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경으로서 해줄 말이 없습니다. 왜 인간들은 예언을 싫어할까요? 그것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거부하는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아예 하나님 자체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뜻만 생각할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노리고 예언으로 다가서시는 겁니다. 예언으로 다가서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벌려놓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을 싫어함에서 도출된 일임을 폭로시키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하나님의 예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케 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가 더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예언을 더러운 인간의 손에 맡기지를 않았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이루어나가십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노력해도 이 예언 성취에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언자란 본인들이 예언자 되고 싶어서 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예언 성취에 동원된 자들입니다. 그들만은 하나님의 예언이 인간에 의해서 성취되지 않음을 잘 압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행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이 확정되지 않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하나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예언 성취에 대해서 완전히 무능하고 방해놓는 죄인임을 자인하는 바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믿음이란, 더 이상 ‘자기 것’이 없어졌음을 발견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예언자란 자유자입니다. 느긋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일생이 자기 힘으로 진행으로 되지 않음을 알기에 더 이상 세상 말을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마치 집집마다 소집통지서를 배달하는 공익근무요원과 같고, 환자에게 병명을 냉철하게 전달하는 의사와 같습니다. 예수님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바짝 붙어있으면서 세상을 지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총만 바라는 세리나 창기나 소경이나 문둥병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은 예수님처럼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자유입니다. 이들에게 더 이상 내세울 ‘자기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만의 세계가 건재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심판과 소멸의 영이 찾아들면, 바로 하나님의 영이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똑바로 겨냥해서 심판해버리고 소멸시켜 버린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유다나라가 범죄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것을 가지고 상호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전에는 자신들에게 남편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당했고, 떳떳했다는 겁니다. 마치 야곱이 에서와 한 판 붙겠다고 나서는 행세와 같습니다. 참으로 얍복 강가에서 천사가 야곱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야곱은 여전히 자기 것을 포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얍복강 가에 하나님은 야곱의 힘의 원천인 환도뼈를 부셔뜨립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파괴’입니다.
이 파괴가 일어나고 난 뒤에 야곱은 더욱더 예언이 정해놓은 운명을 감사함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인간의 불상사는 이처럼 ‘자기 것’이 따로 있다고 여기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인 유다나라에 심판을 하고 말았습니다.
갑자가 남자가 귀해졌습니다. 여인들은 남자를 차지해서 혼자 살게 된 서글픈 팔자라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어서 옛날처럼 자기 남편이 있는 당당한 여자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유다나라가 이러한 상황이 된 것조차 하나님의 예언대로 진행된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관된 예언임을 사람들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출생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와 예수님의 가족들에게만 헤롯 군대로부터의 위험을 벗어나도록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비숫한 연배에 출생된 베들레헴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저주스러운 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하나님의 선한 예언 성취임을 그들은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시온의 딸의 더러움을 씻어주는데는 오직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씻을 때는 그냥 가만 서 있기만해도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과 세제가 다 해결해줍니다. 피부층 위에 있는 때층만 씻겨가기에 피부가 손상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의 더러움을 씻어줄 때 주어지는 성령은 아예 그 인간 자체를 날마다 죽이십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자기 것’이 없게 하십니다. 즉 성도는 ‘자기 것’이 없는 상황에서 시온의 딸이 되는 겁니다. 시온성을 수립하는 것도 결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51:16-18에 보면,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온성에 들어갈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예언대로 채택된 자들에게만 ‘남은 자’라는 입장에서 가입되게 됩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그 시온성에 들어가거나 성립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성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것’ 가지고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고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날마다 자기의 것이 무너지도록 적용받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것은 그것조차 하나님의 예언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차츰 소멸해가고 있음을 분명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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