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장 1- 7절 /재 앙
이사야 3장 1- 7절 /재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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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무척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세상 자체가 불안정하니 우리 인간은 안절부절 어찌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세상 바깥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자체를 흔들고 계신 것입니다. 이 흔드심도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과 원칙에 준해서 흔드십니다.
마치 사람이 네모난 어항을 들고 흔들면 그 안에 있는 물고기들이 물결 속에서 심하게 요동칩니다. 그러면 물고기들은 그 원인도 모르는채 우왕좌왕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성도도 세상 변화 속에서 같이 흔들립니다만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오른손의 능력에 붙잡혀 있기에 그 흔들림 속에서 도리어 진정한 진리와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원칙과 법칙이 무얼까요? 골로새서 3:1-3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성도는 이미 이 땅에서 죽은 목숨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우리의 생명은 하늘 나라 은행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그 어떤 변화가 발생된다할지라도 하늘나라에 안전하게 있는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땅의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원칙에 준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마구 흔들어버립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이 누군인가가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찬바람 맞고 서 있을 때에 이 성경 말씀을 들이대면 그 사람은 화를 낼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이 목숨 외에 다른 목숨은 없다고 우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어항 속 같은 세상에서 또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까봐 안절부절하며 삽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우가 이런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멸망의 정경에 대해서 이사야가 예언한 대목입니다. 멸망이라면 물론 노아 홍수 심판도 있고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들은 멸망의 상황이 자세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다. 즉 멸망할 때의 사람들의 심성이나 사회적인 소요나 갈등이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 홍수로부터 점차 역사가 진행되면서 성경 말씀도 보다 자세하게 그 멸망의 내막을 소개하게 됩니다. 나중에 신약 시대에 오게 되면 이 세상이 결국 누구 때문에 멸망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도 보여주게 됩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에 대한 무시와 모독이 이유가 되어 세상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확실하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이사야 시대는 아직 그것까지는 상세하게 나타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이스라엘 내부에서 소위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서 유대 나라도 망하고 다른 이방나라는 자동적으로 망한다는 소식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손에 이사야 성경만 있고 그 이후의 성경말씀을 분실했다고 한다면, 자칫 잘못 생각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여기고, 이웃을 나름대로 사랑한다고 한다면 마치 자신은 구원이라도 받을 사람처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의 관점을 가지고 이 이사야를 다시 보게 되면, 완전하게 하나님 말씀을 지킬 위인이 없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멸망의 시점에서 자력으로 구원받을 자가 전혀 없음을 알기까지에는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관이 등장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봐서 이사야 시대 인간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너무 의지한다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흔들기에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의 본색을 감출 길이 없이 마구 발휘합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들 상호간에 서로 이용하고 서로 기대면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노골적인 그들의 본심들이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더 이상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은 자신들의 처지가 태평일 때나 상대할 만하다는 겁니다. 급할 때는 보이지 않는 신은 더 이상 믿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들과 인간들 끼리 상호 믿는다면 어떤 혼란이 야기되는 겁니다. 바로 그 상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도시에는 유력한 인사로 보이면 안면 몰수하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지도자 자리에 앉아달라는 겁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존경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자기 목숨만 살려준다면 뭐든지 다 바칠 태세입니다.
그러자 그 지도자로 지목된 사람도 더 이상 자신은 사람들의 이용물이 되기 싫다고 합니다. 자기도 지도자 노릇 안하겠다고 나섭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희생 정신과 사랑이라는 것이 일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죽든지 나만 살고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그대로 나옵니다.
즉 성경에 보면 보이는 소망은 소망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소리도 들려나오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것도 눈에 보이는 힘의 단체로 보이니까 사람들은 그 힘을 빼먹기 위해 몰려옵니다. 즉 교회 근처에 가게를 열면 단골을 포섭하기 위해 교회에 감사헌금을 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천대받아 왔다고 여기면 교회 와서 사랑받고 위로 받으려는 목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오늘 본문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교회가 종말을 맞이하게 되면 가짜 교회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즉 자기 목숨하나 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생명이 이미 하늘에 있음을 잊지 않게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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