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1-24/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2005년 10월 12일 본문 말씀 : 이사야 1:21-24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 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1: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1: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이사야가 과감한 질책을 그 당시 유다나라에 해댄다는 바를 우리는 눈 여겨봐야 합니다. 이사야가 이런 소리를 한다고해서 누가 알아준다든지 누가 동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사야는 꼭 이런 소리를 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이사야 본인이 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는 것을 이사야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주위 사람들의 호응도에 따라 자신의 일의 가치를 측정하려고 합니다. 호응이 잘되면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되고, 호응이 없으면 뭔가 자신이 일을 잘못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서 좌절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사야에 있어서 이런 일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 중요한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이런 소리를 외친다고해서 사람들이 이 말에 감동받고 회개할 자들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누가 옆에서 무슨 소리해도 강압적인 힘이 아니면 대부분은 그냥 자신이 쭉 해왔던 일을 그냥 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 비로소 자신의 자율성을 마음껏 맛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뭐라든 상황이 개선될 일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이사야를 보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들에게 뭘 기대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나서서 모든 일을 다 처러하십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학급에 지독하게도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단 한 번도 숙제를 안 하는 학생들만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그럴 대 그 학급을 해체하고 말까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학생은 외부에서 전학오게 합니다. 그렇게해서 그 학급에다 박아놓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숙제 안하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던 학생들이 그 때부터는 자신들이 비정상인 것을 발견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 인간들이 평생토록 완벽하게 다 지키면 구원해 주겠노라는 취지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들으므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고 늘 책망하시고 인도하심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아는 계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 아니하느냐는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할지라도 그 모습이 '자기 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의 여부에 달렸습니다.
즉 자신이 진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노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참으로 중요한 일을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게 시키고 있기에 설사 자신이 참기 힘든 상황이 온다할지라도 자기 것 챙기기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가 이런 질책을 그 당시 유다 사람들에게 말할 때, 만약 이사야의 친척이 이것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말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즉 "이 사람아, 너 하나 그렇게 장렬하게 나선다고 누가 변화될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너는 그토록 고생을 사서하느냐?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너만 힘들고 인생 손해본다"라고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이러한 과감한 복음 전달은 장차 오실 메사야께서 하실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36-39에 보면,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이란 자신의 처지에 신경쓰는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받은 것이 중차대함이 자신의 목숨 이상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학생을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 박아넣으셨습니다. 그렇게해서 비록 이 세상은 인간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죽을 쓰지만 그런다고해서 하나님이 일이 실패로 끝나는 법은 없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단순한 사회적인 윤리와 개인적인 도덕에 관한 훈계 정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유다나라 사람들이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은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특수한 땅입니다. 이 '약속의 땅'에서는 참으로 특이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축복도 받고 저주도 받는 땅입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의 땅 위에 사는 자들은 어떠한 원칙에 따라야 합니까?
약속의 땅이란 그냥 생긴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고아와 나그네 신세로서 있었다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거기서 나올 때부터 형성된 땅입니다. 그래서 그 출애굽 때의 원칙을 위배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칙이 출애굽기 22:21-24에 나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결코 자기 편이지 자기가 구원한 그 인간들 편이 아닙니다. 비록 자신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나왔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위배하면 하나님은 그들 조차 적으로 간주하시고 공격하시는 겁니다. 왜 이사야가 과부와 가난한 자들에게 대해서 외치는가 하면, 이 약속의 땅에서 사는 모든 이들은 자기 것이라고 여길 만한 힘을 소지 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약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힘 주실 때는 그 힘으로 다른 약자에게 봉사하라고 준 힘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4:8에 보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교회 그 누구도 자력으로 구원된 사람없고 만약 구원되었다면 오로지 예수님의 그저 주시는 보혈의 공로로 구원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약자가 되어 있어야 되고 만약 어느 강자라고 여기는 자가 그 약자를 함부로 대하면 그 사람은 약한 자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자신의 불신앙의 정체가 탄로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이 세상을 이겼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사명과 소명을 얕잡아 보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