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6/하늘이여 들으라
이사야 1:2-6/하늘이여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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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여 들으라
2005년 9월 14일 본문 말씀: 이사야 1:2-6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성도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쇼킹한 일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집에 키우는 개가 어느 날 입을 열어 사람 말을 하면 아마 집 주인이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가야 할 것입니다. "개가 다 말을 하다니!"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을 하신다는 겁니다.
아마 하나님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충격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셔서 이 인간 세계에 말씀하신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그 사람은 천하에 더 이상 겁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모든 혼란도 다 평정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모든 것이 이러이러하다"라고 통고해 주니, 이 말씀을 대하는 순간 성도는 더 이상 자기 중심으로 살 하등의 이유가 다 없어져 버린 겁니다. 홀가분하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 본인이 나서서 신경쓸 필요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책망을 하시든 칭찬을 하시던 그 내용은 둘 째 치고 하나님께서 엄연히 살아계셔서 인간을 향하여 외치고 있고 조용스레 말씀하신다는 그 사실만해도 인간들은 경악스럽습니다. 너무 경악스러워서 세상의 모든 것에서 자신이 손을 떼도 상관없을 정도로 날아갈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생을 손을 뗄 수 없기에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자진해서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뜻을 말씀으로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인정하지 않기에 마음 고생을 자처하고 있는 바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어김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베드로후서 1:17-21에 보면,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기 위해 꼭 옛날 변화산 현상이 재현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에는 이 거룩한 성경을 볼 때는 마치 깜깜한 긴 밤을 지나고 온 암흑 천지에 유난히도 빛나는 샛별 하나 빛나는 것처럼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과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하심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듯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무슨 취지로 이 내용을 말씀하셨을까요? 소가 임자를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리고 나귀가 주인의 구유의 안다면 그것도 너무나도 당연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자신의 하나님을 잊는 것도 과연 당연한가 하는 겁니다. 물론 소가 임자를 아는 그런 맥락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이라고 여기서 그동안 신봉해 왔던 것입니다. 왜 그들이 잘못된 하나님으로 교체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신명기 31장-32장에서 그 근본적 원인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자기 백성들의 행세를 미리 예언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단순히 "앞으로 잘해라"라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 너희들 매맞아. 그러니 주의하라"하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예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아무리해도 다른 신을 섬기는 패역한 백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이사야 본문에 나오는 그 내용도 실은 하나님께서 확실한 예언한대로 진행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신명기 31장과 32장의 어두운 예언이 남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아니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이 세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당부해도 그들은 다른 신을 섬겼지만 우리들은 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 하는 식으로 교훈받는다면 이는 지금 우리가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바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능히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의를 당부하고 그 주의사항을 유념해서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을 가능성을 있다는 바탕 위에서 나올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신명기 31장, 32장의 말씀은 그 어느 누구도 패역한 백성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한 것을 오류로 만들어버릴 괜찮은 자는 이 세상에 없음을 인정하는 자가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기 바빠서 24시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예언대로 어느 말씀하나 제대로 순종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는 오직 어린 양의 피로서만 구원받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을 믿을 때 참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즉 오늘 이사야 본문에 나오는 자들이 결코 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보고 하는 이야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후로도 우리는 성경의 그 어느 구절하는 제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오늘 죽어도 낙원에 갈 수 있는 것은 강도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이 곧 우리 자신이 들으라고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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