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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히브리서 13: 16-19 /두가지 사랑성경히브리서

히브리서 13: 16-19 /두가지 사랑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두가지 사랑

2002년 8월 4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13: 16-19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3: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과 충돌을 이르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밀쳐 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사랑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보니, 하늘의 사랑은 예수님의 망가지심과 죽으심에서만 나온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천국 가기 위해서는 우선 십자가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사랑을 포기하고선 말입니다. 만약 자기 사랑을 포기못하면 하늘의 사랑도 못건지고 또 다시 세상쪽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자기 사랑이 너무 지독하다보니 마땅히 세상쪽으로 도로 물러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3:10절에 보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쪽에서 구원의 근거로 인정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성스레 장만한 사랑은 하나님이 안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정성스레 준비하신 사랑을 받을 때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용납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하루는 마르다 마리아 자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데, 마르다는 정성과 성의를 다하여 음식을 준비하려 분주합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턱 밑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 듣기에 전념합니다.

보다 못해 언니 되는 마르다가 말을 꺼냅니다. "예수님, 제 동생 마리아 보고 이 언니 일을 좀 도우라고 일러주세요"합니다. 그 때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괜찮다. 마리아는 오히려 더 좋은 편을 골랐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 도리어 예수님의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고자 했던 예가 됩니다.

여러분, 과연 무엇이 소중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그 사랑의 소중함을 우리는 무엇을 포기함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천국은 어떤 상태냐 하면, 예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만끽해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만남이 성사되었고 예수님의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그 상황 속에서도 마르다는 자기에게서 나온 나름대로의 조그만 영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귀중함도 귀중함이지만 그것보다는 자기 식의 사랑이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겁니다. 자기 솜씨, 자기 열심을 가치있게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을 포기하지 못하고 더 사랑한 겁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지금 마르다는 쓸데없는 것의 가치를 더 높이고자 염려하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은 예수님의 전 활동에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공생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과 같이 나열시키게 하시고 그 두 사랑 가운데 어느 사랑이 더 소중한가를 가르키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고 보여주면 줄수록 인간들의 본성도 지독스럽게 자기 사랑 위주로 폭로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극단적인 사랑이 최종적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아예 예수님 자기 자신이 죽어버리는 겁니다. 죽음으로서 사랑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물론 그 현장에는 대다수의 제자들은 다 도망친 후입니다. 각자 자기 살 궁리를 찾아서 말입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좋은 교훈과, 병 고침의 기적과 귀신 쫓아냄의 기적과 떡과 고기를 주시는 기적과 심지어 물에 빠진 자를 건지시는 기적들을 베풀 때에는 사람들은 진짜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추종했지만 막상 진정한 사랑, 그리고 최종적인 사랑을 제공하는 그 시점에 가서는 모두들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비쳐 볼 때 비로소 인간들은 자기 사랑의 극단적 모습을 드러낸 것 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그 때까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오해한 모든 것들을 다 쓸어내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다 십자가만이 홀로 남게 합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방주입니다.

십자가만의 사랑으로만 우리가 삽니다.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면 그 어떤 괴로움도 견뎌내게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사랑이 너무 크고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이 사랑의 힘으로 험한 인생길을 통과하게 됩니다.

아내로서 진정한 남편의 사랑만 확인할 수 있다면, 남편이 비록 먼 이국 땅에서 일하고 자신이 홀로 본국에 남아있더라도 꿋꿋하게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

이처럼 사랑이란 하늘에서 거저 오는 겁니다. 따라서 그동안 나름대로의 성취감을 가지고 혹은 보람을 가지고 전력을 쏟고 조립해 온 사랑은 결코 소중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님은 같은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 5:33-37에 보면,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했던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만약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지고 논 것이 되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명예를 위해서도 그 인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주장이 우리네들의 상식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해버리십니다. "아예 맹세할 필요조차 없다!"는 겁니다. 예부터 맹세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신임도와 관계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약속을 잘 지키면 정말 신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듣기 위해서도 하나님께 대한 맹세를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우리네 상식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신실함을 구태여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단지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 대해서 '예'라고 할 것은 '예', '아니오'라고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하면 그만이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이 주는 것만 먹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 너무 간단해서 거짓말 같지요. 그러나 만약 여기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수갑을 채우는 무리한 짓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맹세거리를 길게 만들어놓고 그 하나 하나를 지킬까 못지킬까에 보고서 자진해서 초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스스로 지킬만한 것들을 맹세 조항을 동원하면서까지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것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악마는, 우리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신앙 생활하라고 부축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망가졌는데 자기 자신은 안 망가지게 위해 사투를 벌리는 꼴이 됩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의 절정입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 자신이 예수보다 더 소중합니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시도를 '육', 혹은 '육신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 사도 바울이 보이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다. '영' 혹은 '영적'입니다. 육신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신의 힘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자기 사랑의 열매라면, 영이라는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요 하나님의 사랑의 결실입니다. 하늘의 사랑은 그냥 주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영적을 위해서 종사하는 인도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인도자의 관계는 오로지 사랑의 관계로만 이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도자 위에는 참 목자장이 따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7절에 보니, '회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회계'란 돈의 출입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즉 평소에 인간들이 돈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돈의 출입에 지대한 신경을 써서 회계를 늘 하게 됩니다. 얼마 들어오고 얼마나 나갔느냐를 따지게 됩니다. 마음 속에 돈에 대한 장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마치 돈 회계하듯이 해야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자들이 자신의 육적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알면 영적으로 수입 잡았다고 여기고,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자기 사랑쪽으로 전한하면 영적으로 지출했다고 보고 안절부절하는 겁니다.

바로 이렇듯 영적인 세계의 존재와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때 영적 인도자 행세를 했다고해서 늘 인도자라고 봐주어서는 아니됩니다.

목사라도 주위 사람들이 훌륭하고 존경스럽다고 나선다면, 하나님 사랑을 버리고 자기 사랑으로 스스로를 감싸고 보호하려고 나서게 됩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도 단지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의 말에 복종하고 순종한다면 차라리 마귀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편에서 회계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랑에 대해서 회계하려고 나서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자들을 용납해주어서 아니됩니다.

영적 인도자를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스스로 자기 사랑을 벗어나서 하늘의 사랑만 그리워질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도록 사도는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도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익되도록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독한 우리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도리어 영적인 형제를 미워하지는 안았습니까? 또 다시 예수님을 못박아 죽이는 경우가 없도록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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