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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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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스피노자의 유신론성경신학-

7-2 스피노자의 유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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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피노자의 유신론

실체화의 논리가 활동을 2차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의 기반에서 활동하는 것을 실체로서 상정함으로써 주-객의 이분을 야기시키고 결국 그러한 이분 속에서 자연을 활동성이 없는 죽은 기계로 보아 단지 시공 속에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다른 것으로부터 구분되고 경계지어진 각각의 연장적 사물로 여기게 된 데 반해, 그러한 이분을 부정하는 철학의 논리는 우선 각각의 개체가 고정되고 불변적인 실체, 다른 개체와 구분되어 자기 경계를 지키는 그런 실체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자연은 자기 경계 안에서 폐쇄된 죽은 수동적 기계가 아니라 다른 자연물과의 유기적 상관 관계 안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자연의 개체가 생성의 힘을 가질 또한 소멸의 힘도 함께 갖게 되므로 결국 유기체로 이해된 자연은 살아 있기에 비로소 죽을 수도 있는 철저한 유한성 안에서 이해된 자연이다. 이처럼 탈실체화된 자연은 유한한 개체로서 자기 존재 근거를 자기 자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자 안에 지니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유한한 개체 전체를 근거지우는 무한자에 의거한 자연으로 이해된다. 즉 자연 안의 생성의 힘은 자연의 궁극적 내재 원인인 신의 자기 외화의 힘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개체를 탈실체화하고 그들의 존재를 유일 실체인 신을 통해 설명하는 스피노자에게 피조물(자연)과 창조자(신)는 실체적으로 분리되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은 실체인 신의 자기 전개로서 이해되며 따라서 '신=자연'이라는 결론에 도출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피노자에게는 어떻게 개체가 탈실체적으로 이해되는가와 그 대신 유일한 실체로서 신이 주장되는가, 그 신의 속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자연'으로 표현되는 신과 개체간의 관계를 밝혀 본다.
인간 의식에 떠오르는 사고에 대해 그것의 기반에 정신으로서의 사고적 실체를 상정하고, 시공 안에 나타나는 사물의 연장성에 대해서는 물질로서의 연장적 실체를 상정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이며 또한 일상적 논리에 따라 사고이기도 하다. 장미의 빨간색이 보일 때 인간은 그 색의 감각 밑에 '장미의 감각'의 실체를 전제한다. 감각되는 속성들이 변하여도 그 기반에서 속성들의 담지자로서 자기 동일적으로 남아 있는 개별적 실체 X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사고의 배후에 '나'라는 실체를 상정하거나 시공 안에 나타나는 연장적 속성들의 배후에 물질적 객관 실체를 상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변화하는 속성들 배후에 불변하는 X로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며 개체로서 존속하는 그런 개체적 실체는 없다. 사고성이나 연장성은 무수한 개별 실체의 근거 위에 존재하여 각각의 개체에 소속되는 개체 고유의 속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개체의 사고가 다른 개체의 사고와 관계하고, 한 개체의 연장이 다른 개체의 연장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화의 논리에 따라 관계의 근거로서 실체를 상정할 경우에도 그러한 개체간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궁극적으로 각 개체가 실체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의 기반에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사고와 연장은 각 개별적 실체에 근거한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개체적 차별을 넘어선 전체인 유일자의 실체에 속하는 속성이 되며, 우리가 흔히 개별 실체로 여기는 정신 또는 사물은 사실 실체성을 갖는 개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일자의 속성이 전개되어 나타난 결과의 모습과 양태일 뿐이다. 즉 개체는 사고, 연장의 속성에 대해 그 기반이 되는 실체가 아니라 반대로 그 속성이 드러나 결과인 양태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사고는 사고자, 즉 정신으로서 실체인 내가 존재함으로써 주체가 되어 일으킨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사고는 나를 넘어서는 유일자의 속성이며 그런 사고를 받아들이는 정신으로서의 나는 유일자의 실체에 근거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체가 자기 실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변화하는 속성들 너머에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고정적인 것으로서 다른 것과 분리되고 경계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개체는 다른 개체들과 독립된 자기 충족적인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달리 개체가 실체임을 부정하고 오직 전체를 포괄하는 유일자 곧 신만이 실체라고 주장하므로써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개체의 유한성이다. 우리는 이 유한성을 우선 개체들의 상호 의존성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개체들 전체의 유일자에의 의존성으로 볼 수 있다.
개체는 그 본질뿐 아니라 그 존재에 있어서도 다른 것에 의해 규정된다. 이처럼 개체가 그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통해서 비로소 자가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개체가 고정되고 자기 충족적인 것으로서 다른 개체와 무관하게 경계지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개체는 다른 개체에 의해 단절되고 폐쇄된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 관계에 있으며 각 개체는 그 상호 작용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인 정신이 정신으로 되기 위해서는 다른 정신과의 상호 작용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신체인 유기체도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것 아닌, 즉 다른 유기체를 필요로 하며 결국에는 그 자신도 그것 아닌 것으로 용해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체간의 상호 연관성은 사고나 유기체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 전반에 걸친 특징이다. 즉 무기체로 분류되는 사물들도 그 각각만으로는 존립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불도 그것이 타오를 빈 공간이 없이 덮어 버리면 더 이상 타지 못하고 꺼져 버리며, 물도 그것이 흘러내릴 빈 터전이 없이 막아 버리면 더 이상 자연적 물이 되지 못하고 썩어 버린다. 자연물로 만들어 놓은 도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그릇도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없으면 더 이상 그릇이 아니며, 집도 벽 사이의 빈 공간이 없으며 더 이상 집이 아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그것이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그것일 수 있는 근거가 그것 아닌 다른 것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는 고정적이고 경계지어진 실체가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의 유기적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관계 안의 개체는 고정되어 활동이 없는 수동적 물질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생동성을 지닌 유기체적 생명력을 그 본질로 한다. 고정적 기계가 생명이 없기에 죽을 수도 없다면 생명을 갖는 유기체적 존재는 그 삶의 종말인 죽음 또한 가진다. 즉 유기체적 자연인 개체는 결국 자신을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내어주는 철저한 유한한 존재이다.
이와 같이 개체가 탈실체화된 존재로 이해될 때 자연은 고정적이고 수동적인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벗어나 그 안에 삶과 죽음의 활동성을 지닌 유기체적 자연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말해 개체는 그 본질 및 존재 근거를 자기 자체 내에 지니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과의 관계 안에서 그것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유기체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탈실체화된 개체는 그 궁극적 기반을 어디에 두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 근거를 타자 안에서 갖는가? 모든 존재는 다 타자로부터 부여된 존재인가? 그들 존재를 내어 주는 궁극적 존재는 없는가? 개체를 유기체이게끔 하는 그 생성의 힘은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자연 전체에 작용하는 생동성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그것은 내재적 이념으로서의 신이다.

개체는 스스로 자기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지니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존재가 다 자기 원인을 다른 것을 통해 부여받는 것으로 무한 소급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 궁극적인 존재 부여자는 누구인가? 개체가 기계적으로 죽은 물질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적 자연이라면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개체를 탈실체화하는 것이 그 개체가 궁극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제 남겨지는 물음은 궁극적 실재는 무엇인가, 실체는 무엇인가하는 물음이다. 스피노자는 이처럼 개체를 탈실체화함과 동시에 각 개체의 근거로서 자기 존재 근거를 그 자체 내에 지닌 자기 원인적 존재를 되묻는다. 즉 우리에게 개체로서 나타나는 정신이나 사물과는 달리 더 이상 다른 것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 내에 자기 존재 근거를 가지는 자기 원인적 존재', '그 자체 내에 존재하고 그 자체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며, 그것을 실체하고 규정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원인적 존재, 관계의 근거에 있는 실체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세계가 전체로서 서로 관계 맺고 있으므로 둘 이상의 실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둘 이상의 실체가 있다면 그들은 서로 관계 맺지 못하고 따라서 세계는 분리된 둘 이상의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로 서로 연관지어져 있는 이 세계에 그것의 기반이 되는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 유일 실체는 모든 개체의 존재 근거로서 무한자이어야 한다. 무한하다는 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그 한계 밖의 영역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는 그런 한계가 없는 것으로, 다시 말해 모든 것이 그 무한자의 한계 안에 있음으로써 그 한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무한자는 유한자를 그 자신 안에 포괄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무한자가 된다. 그러므로 무한 실체는 실체가 아닌 개체들과 구분되면서도 전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들 개체 존재의 내재적 원인이며, 또한 개체로서의 자연은 무한 실체의 한계 안에 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존재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관 관계 안의 다양하고 유한한 개체들의 궁극 원인으로서 그들 전체를 근거짓는 실체, 무한자로서의 유일한 이 실체를 스피노자는 전통에 따라 '신'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유일하고 무한한 신이 어떻게 다양하고 유한한 개체의 원인이 되는가? 무한자인 신이 어떻게 개체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는가? 신 안의 존재자인 개별자들이 어떻게 신으로부터 존재를 부여받는가? 이것을 밝히기 위해 우선 해명되어야 하는 것은 신 자체에 있어서의 구분이다. 즉 무한적 전체인 실체로서의 신 자신과 신의 활동을 통해 신의 양상으로 나타난 것으로서 신의 구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본질을 시간성을 초월하여 전체로서 지니는 영원한 실체로서의 신과 그 신의 본질이 시간적으로 전개될 때 그 전개된 현상 안의 내재인으로서의 시간적 활동의 신과의 부분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시작과 끝이 이미 다 한꺼번에 담겨 있는 영화의 필름과 그 필름이 영사막에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영화를 구분하는 것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막에 전개되는 전체 시간을 존재하는 모든 시간이라고 본다면 그것의 원형인 필름은 전체 시간을 영원의 형태로 담고 있는 것이다. 시간성은 그 영원으로부터의 전개이며, 자막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은 그 영원한 전체의 시간적 전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막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적 개체 중에 필름 속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 자연으로 주어지는 모든 개체 존재 중에 영원한 실체로서의 신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다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필름과 영화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 필름이 돌아가는 것이 곧 영화이다. 바로 신이 자신을 전개하는 것이 곧 자연 현상이다. 즉 영화 밖에 필름이 따로 존재하지 않듯이 자연 밖에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는 곧 신의 활동이다.

그러면 이러한 신의 활동에서 드러나는 신의 속성은 무엇인가? 사유 실체와 연장 실체라는 개체적 실체를 부정하며 그들 개체의 존재를 유일 실체인 신의 존재를 통해 설명하는 스피노자에게 있어 사유와 연장은 그 유일 실체인 신의 본질적 속성으로 해명된다. 즉 사유와 연장은 각각의 다른 실체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가 가진 두 속성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이해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되는 두 실체로 보는 데카르트적 실체 이원론에 대한 비판으로 스피노자 동일 철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즉 사유체와 연장체는 존재론적으로 보면 하나이다. 사유와 연장은 그 하나의 실체가 파악될 수 있는 방식상의 상이성으로 인한 하나의 실체의 두 측면일 뿐이다. 이처럼 사유와 연장을 별개의 존재물의 각각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가 가진 두 측면이라고 보는 입장이 함축하는 형이상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연장적 실체, 순수 물질, 순수 질료의 부정이다. 사유성이 전혀 배제된 순수 물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말씀(사유)으로부터 세계(물질 현상) 창조설이 의미하듯이, 신의 사유 이전의 연장적 질료란 없으며 사유를 벗어난 물질도 없다. 시공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연은 신의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비록 우리에게 비사유적으로 여겨지는 연장적 사물일지라도 그것 역시 신의 사유의 이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체 내에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텍스트를 놓고 그것을 흰 종이 위의 검은 점들이라는 물리적 현상으로 고찰할 수도 있고, 그것을 넘어서서 의미에 따라 관념적 현상으로 고찰 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가 꽃 한송이를 건네 줄 때 우리는 그것을 물리적인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거기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의 정신에 의해 수반된 행위이므로 그 배후의 의미를 찾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연 자체는 신의 사유의 이면이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나의 사유를 떠나 그 자체 수동적인 연장적 사물로서만 여겨지는 이 바깥 세계에 대해서도 그것이 연장적이면서 동시에 사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대상화시켜서 보면 즉 그 대상을 보는 주관과 분리시켜 그 주관의 관념을 제외시키고 본다면 또한 의식 세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그것이 영화임을 잊고 그 세계에 몰두해 있으면 내가 있는 세계는 거기에 펼쳐진 영화 세계의 연장 세계이다. 자막에 펼쳐진 세계는 길이 있고 집이 있고 나무가 있는 시공적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 안의 연장적 세계는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영화를 보는 자의 의식 안에 펼쳐진 관념 세계, 사유 세계일 뿐이다. 연장 세계란 연장적으로 사유된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두 세계는 결코 각기 분리되어 있는 두 실체의 세계가 아니다. 사유와 연장이 한 세계의 각 부분인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부분이 다 사고와 연장의 양측면을 가지는 것이다.
신과 개체와의 관계란 곧 신과 자연과의 관계이다.

이와 같이 사고와 연장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 안에서 실제적으로 하나인 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두 속성이라는 점이 강조되면, 결국 개체에서도 사유와 연장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연장적 개체에도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신의 다른 본성인 사유의 측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연장물)은 신 안에 그것의 관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자연은 더 이상 실체 이원론에서 보듯이 활동성이 없는 수동적인 죽은 기계가 아니다. 신 안의 관념이 자연의 원인이며 자연의 영혼이므로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생동하는 것이다. 즉 자연은 신을 통해 활동성을 갖는 유기체적 자연으로 이해된다. 이 영혼의 힘이 자연 안애서 자연을 자연이게 하며 자연이 스스로 자라고 변화하며 성장할 수 있게끔 생성시키는 힘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에 깃든 이 생성시키는 힘, 있는 것을 있게 하는 힘을 '능산적(能産的) 자연'이라 하고 그 힘에 의해 전개되고 발현된 자연을 '소산적(所産的) 자연'이라고 구분한다. 시공 안에 자리잡고 나타난 자연이 소산적 자연이라면, 그 자연을 자연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생성의 힘은 곧 능산적 자연이며 이는 자연의 근원, 자연의 실체인 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자연의 근원인 능산적 자연은 자연을 자연되게 하는 힘이며, 있는 것을 비로소 존재하는 것으로 있게 하는 무(無)의 힘, 무위(無爲)의 도(道)와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 안의 생성의 힘, 능산적 자연은 전개된 자연인 소산적 자연의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소산적 자연 안에서 그것을 생성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거듭해서 , '신은 자연에 대해 그 초재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고 강조한다. 신은 모든 사물의 존재 및 본질의 작용인이다. 자연 안에서 생성하게 하는 힘, 그것은 마치 세상을 창조하는 말씀의 힘과도 같은 것이다. 즉 개체가 신을 그 원인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신 안에 그 가체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신 안에 존재하는 관념이 곧 자연 세계의 원인이 되며 자연 생성의 힘이 된다. 자연에 발생하는 모든 것이 신 안에 그 관념을 가지므로 자연에는 우연적인 것이란 없다.

개체로서의 자연을 탈실체화하여 그 자체 내에 자기 자신의 존재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봄으로써 자연은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자신의 존재 근거, 자신의 기반으로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자연의 기반이 곧 신의 관념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피조물에서 그, 자신의 실체적 기반을 박탈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전적으로 창조자에게 의존하게 하며 그 창조자의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이다. 분리에 앞서 동일성이 주장되어야 하는 것은 동일성을 벗어난 두 실체의 분리가 결국은 하나의 상실, 따라서 전체의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독교가 자연을 신의 피조물로 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창조자)과 피조물을 질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결국은 자연을 신과 관련짓지 않고서 그 자체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근세적 사고를 낳게 된 것이다. 유한한 세계와 무한자, 즉 자연과 신을 분리시키면 그 무한자는 결국 유한한 세계로부터 추방당하고 유한한 것이 절대화되는 오류를 낳게 된다. 다시 또 유한한 것들 중에서 사고체와 연장체를 두 실체로서 분리시키면 결국 그 중의 하나인 정신이 배제된 연장성만이 유일한 실재로서 절대화 되는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개체를 탈실체화시킴으로서 개체적 자연이 결국은 신을 그 존재 근거로 가지며 신 안의 관념이 자연의 원인이라고 봄으로써 자연에서 관념성과 연장성이 별개의 실체적 구분이 아님을 강조한다. 결국 자연을 동일성의 차원에서, 즉 신적 관점에서 전체성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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