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신다윈주의의 한계
6-10 신다윈주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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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다윈주의의 한계
신다윈주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중요한 가정을 상정하고 있다.
1. 하나의 종이 가진 유전물질은 비록 한 개체에서 모두 다 표현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개체군 전체에서는 다 표현된다.
2. 개체군내의 다양한 변이체 중에서 어느 쪽이 지속되고 어느 쪽이 소멸될 것인지는 자연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두 가정은 현재 분자유전학에 의해서 비판받고 있다. 첫째는 실제로는 동식물 세포 속에 들어있는 DNA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이 그 생물체를 구성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점이 최근에 밝혀졌다. 나머지 DNA 부분은 수백 번 또는 수천 번씩 반복되는 불필요한 DNA 서열에 불과한데, 이들은 서로 붙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염색체에 분리되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잉여의 DNA에 어떤 작용이 가해져서 새로운 조절 유전자의 유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몸체를 만들어 결국에는 새로운 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DNA는 세포내에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통은 개체나 개체군내에서 발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은 자연선택에는 영향받지 않는다. 그 결과 어떤 것도 전체 개체군에서 이 잉여 DNA가 재빠르게 동질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것이 아마도 새로운 종이 교접할 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견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으리라. 만약 이러한 잉여 DNA가 내부적으로 자율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천천히 자신을 조직화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 옳다고 한다면 새로운 종에 속하는 많은 개체들이 동시에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화석 생물 종이 오랜 기간 동안 안정성을 보이는 점에 대해서는 이 새로운 이론으로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생물 종은 그 자체가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종은 아직 발현되지 않는 새로운 몸체의 구성 계획을 천천히 발전시키는 여분의 유전물질(말하자면 새로운 종의 탄생을 위한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발전하면서 조상 종이 되는 각 개체에서는 어떠한 형태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완전한 형태를 갖춘 새로운 종이 신속히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에도 그 정상 종은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된다. 진화는 개체 생물이나 현존하는 개체군에는 아무런 변화도 가하지 않고 단지 생물 종의 발현되지 않는 잉여의 DNA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종의 안정성은 유지된다.
이처럼 내부적인 유전적 기작으로 종의 진화를 풀어나가면 새로운 종의 기원을 더할 나위 없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 생물이 사전에 입력된 화학적 암호로 이루어진 유전정보에 따라서 성장하고도 신체의 각 부분이 분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물체의 몸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이런 내부적인 공정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서 새로운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필연적으로 생겨나며 공정도 변경의 정도에 따라서 종, 목, 강, 문 들의 수준으로 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염색체에 내장되는 있는 정교한 유전정보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 한 부분은 생물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이와는 독립적인 다른 부분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주프로그램으로 발전된다.
시스템의 전체성을 잃을 정도로 시스템이 성장하면 시스템은 분열한다. 분열의 방법도 시스템의 복잡성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단순한 원핵세포의 분열은 마치 밀가루 반죽을 돌로 가르는 듯 하지만 복잡한 진핵세포의 경우에는 분열하기 위한 기구를 갖추는 복잡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제는 분석도구의 극치는 원자 하나 하나까지 마음대로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나노테크놀러지(nanotechnololegy)의 등장이다. 분석만 하던 시대에서 분석의 극에 이르자 이제는 합성의 시대의 종합의 시대가 시작 되려는가 보다.
과학은 이처럼 자연의 목적 지향성을 따라 잡는 학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발전해 왔고 또 발전해야한다고 자부한다. 정말 과학은 과학대로 또 철학은 철학대로,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발전과정을 겪어 왔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논의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혁명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중세까지의 과학은 과학적 논의의 출발점에서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목적론적 대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근대 이후의 과학은 '왜'라는 물음 대신에 '어떻게'란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목적론적 대답 대신에 인과론적(因果論的) 대답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처음에 근대 과학이 등장할 때는 과학의 목적은 신의 창조성을 과학적 합리성으로 보여주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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