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비선형계
6-3 비선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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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선형계
사람의 뇌나 증권거래소처럼 복잡성을 지닌 계의 행동은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컴퓨터가 등장할 때까지 비선형계의 연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이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복잡성을 지닌 계로부터 골라낸 수천 가지의 변수로부터 과학자들은 하나의 획기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단순한 구성 요소가 수많은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복잡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복잡성은 단순성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예켄대 뇌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있고 중권거래소는 수많은 투자자들로 들끓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계는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구성요소를 재조직하면서 능동적으로 적응한다. 따라서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라 일컫는다. 복잡적응계는 산타페 연구소(SFI)의 상징이다. 1984년 미국 뉴 멕시코 주의 산타페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복잡성 과학의 메카이다. SFI의 목표는 복잡적응계에서 자발적으로 질서가 형성되는 자기조직화의 원리를 밝히는 데 있다.
복잡적응계는 자기조직화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단순한 구성요소가 상호간에 끊임없는 적응과 경쟁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복잡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예컨대 단백질 분자는 생명체를, 기업이나 소비자는 국가 경제를 형성한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대목은 구성요소상 개별적으로 갖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을 복잡적응계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령 단백질은 살아있지 않지만 그들의 집합체인 생물은 살아 있다. 이와 같은 구성 요소와 함께 모아놓은 전체 구조에서 솟아나는 새로운 행동을 창발적(emergent) 행동이라한다. 창발성은 복잡성 과학의 기본 주제이다.
창발(Emergence) 속성이란 간단히 말해 물질의 기본적인 단계가 아니라 상위 단계에서(즉, 물질이 일정한 수준의 복잡성과 조직화를 달성한 연루에만) 나타나는 속성들을 말한다. 이러한 창발적 속성들의 존재는 비환원성과 비결정성을 주장하는 데 자주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심리상태 같이 복잡성과 조직성을 갖춘 체계(즉, 인간)에서만 나타나는 속성들은 그 체계를 구성하는 하위 단계의 기본적인 물질적 속성(신경 생리학적, 또는 화학적, 물리적 속성)들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 비환원성의 주장이다. 이 창발적 속성은 이러한 이유로 하위 단계의 기본적인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그 결과 상태의 변화를 미리 (기본적 물리법칙으로)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즉 인지 현상은 기본적 물리상태로 환원될 것도 미리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라는 것은 주관과 대상 사이의 '개방적 만남'을 통해 '창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미리 주어진, 고정된 세계를 마음속에 확인하는 절차가 인식의 과정이 아니라 개방적인 만남에서 상호작용(또는 상호 규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대상과 주관이다. 그러니까 대상과 주관은 그저 우연의 만남일 뿐이다.
우연이란 역사적 내지 사회학적 논의에서는 어느 사건이 서로 독립된 두 인과 계열의 교차점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남자가 담배를 사러 집을 나셨는데, 가는 도중 어떤 건물의 지붕에서 빠져 나온 벽돌에 맞아 쓰러졌다고 해 보자. 이때 남자의 불행을 두고 우연적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 사건에 원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상 그 사건을 기술하는 중에 그 원인은 이미 지적된 셈이다) 그 사건이 서로 독립된 인과 계열의 교점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그 하나는 주어진 어느 시간에 그 남자가 문제의 건물 옆에 있게 됨으로써 끝나는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시간 벽돌의 움직임에서 끝나는 계열이다. 이러한 인과 계열을 독립적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중 하나에서 나타나는 사건이 다른 하나에서 나타나는 사건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이며, 따라서 이는 만일 그 벽돌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남자는 계속 담배상에게로 갔거나, 아니면 그 남자가 특정한 한 지점에 있지 않았더라면 벽돌이 그저 땅으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그 남자가 다치게 된 일을 두고 우발적이라거나 뜻밖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남자가 나아가는 상황과 벽돌이 진행하는 조건에 관해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 지식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그 사건을 예측하기에 결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격이다.
이것은 곧 연역불가능성을 뜻한다.
복잡성 과학을 모든 과학자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복잡성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면서 연구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사용되는 유행어라고 격하시키고 있으며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자기 조직화 이론을 찾는 일은 끝내 무리(無理)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복잡성 과학의 장래가 반드시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연을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세기 동안 서양과학은 환원주의에 의존했다. 결정론적인 선형계는 간단한 구성요소로 나누어 이해하면 그것들을 조합하여 전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적응계와 같은 비선형계는 전체가 그 부분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항상 크므로 분석적인 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자연 및 사회현상은 성질상 종합적이고 전일적이다. 따라서 복잡성 과학의 등장으로 사물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이해하는 전일주의가 부상하게 되었다.
복잡성 과학은 학제간의 공동연구이므로 SFI에는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컴퓨터 과학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둥지를 펴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원로들인 물리학의 머레이 겔만(1969)과 필립 앤더슨(1977), 경제학의 케네스 애로우(1972)를 비롯해서 스튜어트 카우프만, 크리스도퍼 랭톤, 월리엄 부라이언 아더 등의 소장학자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근대 과학은 이성의 승리였지만 이성의 승리는 슬픈 진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프리고진은 말한다. 종래의 과학자들은 물질 세계에서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물질의 법칙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약 35억 년 전에 DNA와 같은 생명체의 원형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전 우주 속에 아마도 단 한 번 일어난 기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화의 패러다임에서 볼 때는 자기 복제의 정보를 담은 DNA의 출현은 의식의 진화의 필요에서 일어난 당연한 출현이며, 그것을 기적으로 본 것은 물심(物心) 이원론에 기반을 둔 고전 과학의 그릇된 패러다임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 대두되는 종합적 진화의 패러다임에서는 물질계와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는 통합되는 것이며 인간과 물질계는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이제 자연으로부터 고립된 고독한 이방인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고 안치는 말한다.
또 안치는 2 천 년간 서구 문명을 특징지워 오고 때로는 괴롭혀 온 이원론(dualism)을 극복하는 대통합(synthesis)의 시발점에 우리가 서 있다고 말한다. 물질계와 생물계의 통합과 더불어 의식(정신)과 물질의 이원론도 극복된다. 그는 또 더 나아가 창조자와 창조물의 이원론도 통합된다. 우주는 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주안에서의 정물질(matter)과 반물질(anti-matter)의 대칭성 파괴와 더불어 우주 창조의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며, 그 혼돈 상태로부터 우주는 그 후 150억 년 동안 진화하면서 오늘의 별들과 은하계를 포함한 다양한 우주 질서를 이루었고 계속 더 고도의 질서를 향하여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잠재성과 실재성 사이의 똑같은 관계가 소립자가 결합해서 원소를 형성하는 아원자 단계에서도 성립된다. 수소 원자는 단순히 양성자와 전가 결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양성자와 전자에 부여된 새로운 형태의 일체화이며, 양성자와 전자는 각각의 고유한 실체를 잃는 것이다. 수소는 영성자나 전자가 갖는 속성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 이러한 일체화는 수소 원자의 질량이 전자 하나와 양성자 하나의 질량을 합친 것보다 적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수소를 양성자와 전자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런 과정은 수소 원자내에 잠재하는 입자들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시스템에서는 항상 전체적인 특성인 특이성(peculairrity)이 있다. 이 특성은 시스템의 구성분을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부분들의 조합으로 취하여 그것들에 대해서 완벽한 지식을 얻게 되더라도 그것에서 연역될 수 없다. (이론적으로도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전체성에서 새로운 특징이 출현하는 것을 출현(emergence)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어떤 일관된 법칙이 존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보통 자연은 멱함수( 정점 peak이 생기는 종형 곡선 bell curve이 아니라 분포도에 있어 정점 peak 가 없는 함수)가 없다. 보통의 시스템들에서 모든 양들은 종형 곡선을 따르며, 상관관계들은 지수의 법칙에 따라 급격하게 감소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상전이를 겪고 있을 때 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 때에는 멱함수 법칙- 혼돈이 가고 질서가 오고 있다는 자연의 확실한 신호-이 등장한다. 상전이 이론은 무질서에서 질서 상태로 가는 길은 자기 조직화라는 강력한 힘에 의해 유지되며, 멱함수 법칙에 의해 그 길이 닦여진다는 것을 크고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것은 또한 멱함수 법칙이라는 것이 단지 시스템의 움직임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법칙이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에서의 자기 조직화의 공공연한 표식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 상태로의 전이에 대한 최초의 비약적인 연구 업적은 1965년 크리스마스 주간에 이뤄졌다. 일리노이 대학의 물리학자 레오 카다노프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즉 임계점 근방에서는 원자들을 더 이상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체가 일제히 움직이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의 원자들을 볼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원자들이 들어가 일제히 움직이는 박스(box)들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멱함수가 법칙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멱함수 법칙은 액체가 열을 받아서 기체로 바뀔 때에도 작용하며, 납조각이 충분히 냉각되어 초전도체로 바뀔 때에도 작용하며, 마그마가 바위로 굳어질 때, 금속이 자석이 될 때도 그러하다. 자석에서 질서 있는 상태와 부질서한 상태라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물질의 서로 다른 상(prhase)에 대응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전이점(transition point)에 있을 때, 시스템은 이 두 개의 상 중 어떤 쪽을 취할지를 선택하기 위해 균형을 잡는다. 이는 마치 산 정상 선 등산가가 어느 쪽 경사면으로 산을 내려갈지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쪽으로 갈지 결정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시스템이 빈번하게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러한 동요는 임계점 근처에서 더욱 증가한다.
카다노프는 임계점 근방에서는 물리학의 법칙들이 모든 스케일에서, 즉 개별 원자들 수준에서나 일제히 움직이는 수백만 개의 원자들의 상자들 수준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고 가정했다. 이로서 멱함수가 자기조직화와 질서의 힌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역사는 에너지와 물질을 조직하는 역사로 볼 수도 있지만 정도를 복잡성 또 지식으로 조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의식 또는 마음의 진화라고 보아야 한다. 마음은 다수준에서의 자기 조직의 역학이며 자기 초월하는 진화 과정의 진화다. 이런 견지에서 자연의 역사는 마음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그 자기 초월하는 마음이 무한한 영역에서는 성스러운(divine) 것과 합쳐진다. 그 성스러운 것이 진화 역할의 전체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우주의 전체를 포괄한 모든 것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우주의 큰 마음(Mind-at-Large) 또는 불심(佛心)이 신의 개념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 신은 절대자가 아니다. 그는 요동속의 진화에 수반하는 위험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실현을 향하여 부단히 변신하는 것이다. 큰 마음의 신비로운 성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탐구는 우주 안에서의 우리의 역할과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다. 큰마음 속에서 우주의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이 연관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진화의 패러다임이 인류 사회의 윤리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 우주적 진화에서 인간의 역할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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