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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4. 물리학의 등장 (3)성경신학-

4. 물리학의 등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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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물리학의 등장 (3)

먼저 에너지의 성질을 알아보면,

일반적으로 모든 것들은 할 수만 있다면 에너지를 줄이려고 한다. 폭포의 물은 아래로 떨어지면 그때까지 갖고 있던 위치 에너지를 내다버린다. 이렇게 폭포가 내버리는 에너지를 주어다가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물은 일단 폭포 밑의 연못에 닿으면 위치 에너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도로 위로 올라 갈 수는 없다. 여러 가지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화학 물질은 에너지 값이 더 낮은 물질로 변하면서 저장해 두었던 화학 에너지를 내버린다. 성냥이 타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결코 저절로 처음의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가능하면 에너지 값을 낮추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에너지의 첫 번째 법칙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은 동전의 한쪽 면에 불과하다. 다른 한쪽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무질서는 사물이 혼란스럽고 불규칙하게 배열된 상태를 말한다. 경기 시작 직전 선수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엔트로피, 무질서도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플레이볼이 선언되고 나면 이들은 순식간에 매우 무질서하고 엔트로피 값이 높은 모습으로 경기장 전체로 흩어진다.
이것은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시점에서 이 입자들은 질서있게 배열되어 있거나, 아주 무질서하게 있어나 두 가지 상태 사이의 어떤 지점에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양한 엔트로피 값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것들(즉 에너지)이 동일하다면 자연 속의 모든 것들은 더욱 무질서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은 가능하면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한다. 이것이 에너지의 두 번째 법칙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자연 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순전히 이 두 법칙 사이의 균형의 문제이다.

폭포가 존재하는 이유는 위치 에너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포 꼭대기의 물분자와 바닥의 물분자의 사이의 엔트로피 차이는 사실상 없다. 폭포는 에너지 변화의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커피 속의 설탕은 어떨까? 설탕은 우선 엔트로피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녹는다. 커피 속에서 헤엄치는 설탕 분자는 설탕 알갱이 속에서 얌전히 앉아 있던 때보다 훨씬 무질서하다. 반면 설탕 알갱이와 녹은 설탕 사이에는 사실상 에너지 차이가 없다. 간단히 말해 설탕이 녹는다고 해서 커피가 더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설탕이 녹는 것은 이번에는 엔트로피 변화의 과정이다.
불타는 성냥을 보자. 성냥이 탈 때 에너지 값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분명하다. 성냥 속에 들어 있던 화학 에너지는 빛과 열을 내뿜으며 방출한다. 그러나 동시에 엔트로피도 크게 늘어난다. 타오르는 불꽃, 연기, 가스는 매끈한 성냥꼴보다 훨씬 무질서하다. 그러므로 이 반응은 에너지와 엔트로피가 모두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성냥을 긋자마자 격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너지나 엔트로피 중 하나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과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있다. 다른 하나가 충분한 힘으로 반대 방향의 힘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옳은 방향'으로 강하게 간다면 말이다. 달리 말해 엔트로피가 에너지 증가와 균형을 이룰 만큼 충분히 늘어나는 한 에너지는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엔트로피는 에너지가 엔트로피의 감소분과 균형을 이룰 만큼 충분히 감소하는 한 줄어들 수 있다.

앞서 말한 깁스의 업적은 에너지와 엔트로피 간의 균형을 표시하는 방법식을 고안한 것인데 깁스 방정식에 의하면 그 에너지(전문 용어로 자유 에너지라고 한다)는 어떤 일을 일으키는 데 쓰일 수 있고 따라서 이 과정은 저절로 시작된다. 그러나 자유 에너지가 '반대 방향'의 엔트로피 변화를 상쇄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는 한 이 과정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수도 없다.

즉 자연에는 두 개의 상반되는 본성이 있다. 그 하나는 내부에너지를 최소화해서 안정되려는 경향이고 또 하나는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려는 경향이다. 즉

● 안정도 증대의 경향(내부에너지 U의 감소)
○ 자유도 증대의 경향(내부엔트로피 S의 증대)
의 두 가지 상반되는 경향이다.

안정도 증대는 거시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자유도 증대는 미시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에너지를 투입하면 우리는 항상 자연의 엔트로피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예를 들어보면, 전 세계의 바닷물 속에는 1천만 톤의 금이 녹아 있다. 이 정도면 60조 달러에 해당된다. 하려고만 하면 우리는 이 금을 원자 하나까지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 원자들은 14억 입방킬로미터나 되는 바닷물 속에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로 흩어져 있다.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엔트로피 값을 줄이기 위해 투입해야 할 에너지 비용은 60조 달러를 훨씬 넘는다.

문제는 정상적인 삶의 전반에 걸쳐 어떻게 살아 있음을 유지하는 것인가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에너지 함류량을 늘려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열의 형태로 끊임없이 소비되는 에너지는 다시 채워 놓아야 할 필요는 있다. 사실 더 활력적인 사람일수록 이 형태의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게 되고 이 모든 에너지는 다시 채워져야 한다. 열은 에너지 형태 중 가장 무질서도가 높다. 즉 에너지 형태중 가장 높은 엔트로피를 갖는 것이다. 인간들은 에너지를 저엔트로피 형태 (음식과 산소)로 흡수하여 고엔트로피 형태 (열, 이산화탄소, 분비물)로 내버린다. 에너지는 보존되기 때문에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따로 얻어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끊임없이 열역학 제2 법칙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 안에 있는 엔트로피를 계속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저엔트로피 조합인 식품과 대기중의 산소를 섭취하고 몸 안에서 이를 결합시킨 뒤, 신체 내에 남게 될 고엔드로피 형태의 에너지를 방출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 몸 안의 엔트로피가 상승하는 것을 막고 몸의 내부 조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저엔트로피 공급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고기, 또는 버섯이라면 그것도 자체의 엔트로피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또 다른 외부의 저엔트로피자원에 의존할 것이다. 이는 단지 외부의 저엔트로피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다른 데로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또는 동물이나 버섯이) 식물을 섭취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들은 대기 이산화탄소를 섭취하여, 탄소와 산소를 분리한 뒤 그 탄소를 이용하여 자신이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 불리는 이 과정은 엔트로피를 크게 감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신체 내에서 단순히 산소와 탄소를 재결합시킴으로써 이와 같은 저엔트로피 분리를 이용하게 된다. 녹색 식물은 어떻게 이러한 엔트로피 감소의 마술이 가능한가? 그들은 태양 광선을 이용하여 이를 수행한다. 태양의 광선은 비교적 저엔트로피 형태, 즉 가시 광선의 광자를 통하여 지구에 에너지를 가져온다. 지구와 그 위에 사는 것들은 이 에너지를 그냥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후에) 그것을 모두 우주로 다시 복사한다. 그런데 재복사된 에너지는 고엔트로피 형태로서 복사열이라고 불리는데 바로 적외선 광자를 의미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지구와 그곳에 사는 생물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않는다. 지구가 하는 것은 에너지를 저엔트로피 형태로 받아서 그것을 고엔트로피 형태로 우주로 다시 모두 토해 내는 일이다. 태양이 인간에게 해 주는 역할은 거대한 저엔트로피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식물들의 영특함으로 인하여 이를 이용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저엔트로피로부터 아주 작은 부분을 추출해 내어 이를 오묘하고 복잡하게 조직된 구조인 자신의 몸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태양과 지구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에너지와 엔트로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태양은 가시 광선의 광자 형태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들 중 일부는 지구에 흡수되며, 그 에너지는 적외선 광자의 형태로 재방출된다. 그런데 가시 광선과 적외선 광자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은 가시 광선은 높은 주파수를 갖기 때문에 적외선에 비하여 높은 에너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가시 광선들 하나하나는 각각의 적외선 광자들보다 높은 에너지를 갖기 때문에 지구까지 도달하는 가시 광선 관자들은 지구에서 내보내는 적외선 광자들보다 적은 수이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지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는 균형을 이루게 된다. 지구로부터 우주 밖으로 방출되는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보다 훨씬 높은 자유도로 퍼져 나간다.
에너지가 밖으로 다시 방출 될 때 너무나 큰 자유도가 적용되기 때문에 위상 공간의 부피는 훨씬 커지고 엔트로피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녹색 식물들은 저엔트로피 형태로 (비교적 적은 가시광선 광자)로 에너지를 흡수하여 그것을 고엔트로피 형태 (비교적 많은 수의 적외선 광자)로 재복사함으로써 이러한 저엔트로피를 섭취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산소-탄소 분리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태양이 하늘에 있는 열점(hot-spot)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능하다. 하늘은 온도에 대하여 불균형 상태에 있다. 즉 태양이 점유한 작은 지역이 나머지 지역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강력한 저엔트로피원을 제공해 준다. 자구는 그 열점으로부터 저엔트로피 형태 (적은 수의 광자)의 에너지를 받아서 찬지역으로 고엔트로피(많은 수의 광자) 형태의 에너지를 재복사한다.

태양은 왜 그러한 열점인가? 그것은 어떻게 그러한 온도의 불균형을 이루어 저엔트로피 상태를 만들 수 있었는가? 그 해답은 이전에는 균일하게 분포되었던 기체 (주로 수소)가 중력 수축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온도와 압력이 어떤 점에 다다르자 중력 수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원, 즉 열핵 반응 (thermonuclear reaction)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만일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수축과 가열은 아마도 훨씬 더 계속 되었을 것이다. 열핵 반응이란 수소 핵이 헬륨 핵으로 융합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열핵 반응만 아니었다면 태양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워지고 작아져서 결국에는 소멸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공간에너지 또는 프리에너지를 도입한다는 것은 이 우주가 닫힌계가 아니라 열린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우주가 만일 열린계라면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깨지 않고도 외부에서 에너지를 도입하여 초효율 현상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생명체가 바로 이러한 열린 계의 좋은 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주가 닫혀 있다고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생명체의 경우는 우리가 쉽게 체내와 체외를 구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주에는 그런 외부가 있을 리 없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물리학이 우주의 모든 부분을 관찰하고, 또 우주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우주의 외부라는 것을 가정할 필요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물은 영하 5도에서 저절로 얼어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은 같은 온도에서 절대로 녹지 않는다. 그러나 영상 5도가 되면 얼음은 저절로 녹지만, 물이 어는 현상은 관찰할 수가 없다. 이처럼 자연에서 자발적인 변화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향성을 미리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엔트로피'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열역학 제2법칙은 바로 그런 자발적인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비가역 과정 때문이다. 클라우지우스의 주장은 비가역 과정을 근거로 한 우주의 진화적 입장을 처음으로 정립한 것이었다. 에딩턴은 엔트로피를 〈시간의 화살〉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물리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비가역 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19세기에서 동력학 법칙으로부터의 시간 가역적인 시각과 엔트로피를 근거로 하는 진화적인 시각의 두 가지 모순된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윈은 개체 individual 아니라 집단 population을 연구함으로써,선택 압력을 받고 있는 개체의 변이성 때문에 집단적인 〈경향〉이 출현함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볼츠만도 마찬가지로 열역학 제2법칙과 이 법칙이 예측하는 엔트로피의 자발적 증가를 개체의 동력학적인 궤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자의 대규모 집단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입자들 사이의 수많은 충돌에서 발생하는 전체적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입자가 충돌할 때마다 입자의 속도가 바뀐다는 사실을 고려했다. 따라서 많은 입자로 구성된 집단의 속도 분포는 입자들 사이의 충돌에 의해서 평형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을 맥스웰-볼츠만 분포 Maxwell-Boltzmann distribution 라고 부른다. 평형으로 접근하는 동안에 볼츠만의 함수는 감소하고, 평형에서는 최소값을 갖게 되면, 최소값이 된다는 것은 충돌이 있더라도 속도의 분포가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볼츠만에게는 충돌이 바로 계를 평형으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메카니즘이 된다.

볼츠만과 다윈은 모두 개체의 연구를 집단의 연구로 대체시켰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개체에서 일어나는 변이나 미시적인 충돌과 같은) 소규모 변화가 집단적인 수준에서 진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혔다. 개체의 수준에서는 생물학적인 진화를 정의조차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도 정체적이다. 그러나 다윈은 이런 방법으로 새로운 종의 출현을 설명했지만, 볼츠만은 평형과 균일성을 행한 진화를 설명하려고 했다. 여기서 두 이론의 서로 비교될 만한 운명을 지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윈의 진화론은 격렬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은 승리했고, 생명을 이해하는 기초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비가역성에 대한 볼츠만의 해석은 반대자들에게 압도되어 버려서 결국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츠만은 엔트로피는 감소하지만, 불균일성이 평준화되기보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증가하는 〈반(反)열역학적〉진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 볼츠만이 직면하였던 상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진화적인 특성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처럼 비가역성이 그런 이론을 정립하는 결정적인 단계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동력학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았던 그는, 바로 그 전통이 〈시간의 화살〉의 미시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궤적은 시간 가역적이고, 궤적에는 미래와 과거의 구별이 없다는 사실을 모든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따라서 푸앵카레가 지적했던 것처럼, 시간 가역적 과정인 궤적을 이용해서 비가역성을 설명하려는 것은 궤적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논리 자체가 비난을 받아 충분할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모든 분자의 속도의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계는 그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속도가 뒤집기 전에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슈미트Loschmdt의 〈속도 반전 패러독스 velocity reversal paradox〉이다. 볼츠만은 이러한 반열역학적 현상을 반박할 수 없었고 이런 비난에 직면한 볼츠만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2법칙의 미시적 해석을 우리의 정보 부족과 관련된 확률적 해석으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볼츠만은 엔트로피의 원리를- 어쩌면 열역학의 가장 특징적인 가정으로서 열역학과 역학을 가장 명확히 구별해 주는 듯한 가정을- 분자의 집단적인 역학적 형태를 규정하는 통계적 규칙성의 한 표현으로서 해석할 수 있었다. 결국 열역학은 역학과의 관계에 있어 그 자율성을 잃었으며, 후자의 물리학 분야로 환원된 셈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1870년대에 와서 빈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이 뉴턴의 법칙은 원소나 분자들의 세계에서 그 정당성이 여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보임으로써 엔트로피로 말미암은 혼돈의 도전을 중재하려고 시도했다. 볼츠만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시계를 이루는 부품들의 운동은 항상 뉴턴의 법칙을 따르지만 수천억조의 원자나 분자가 서로 부딪히고 작용하는 복잡체에서 모두 질서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고 한다. 거시적인 구조를 볼 때 이들 원자나 분자들이 큰 그룹을 이루어 질서 정연하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속에 질서 관계가 나타나더라도 이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볼츠만은 이런 생각으로 우리 태양계를 이루는 원자들의 구조조차도 언젠가는 무질서한 상태로 흩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환원론자들은 종말에 가서 우주는 균질한 상태, 즉 미지근한 분자의 우주, 다시 말하면 의미도, 남녀의 성도, 형상도 없는 그런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19세기 과학자 볼츠만의 혼돈에 관한 정의는 고대의 전설이 말하는 활동에 찬 혼돈, 즉 무형의 없음 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신화적 혼돈은 모든 것이 그것에서 나와 형상과 생명을 가지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엔트로피가 연유된 수동적인 혼돈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즉 이 혼돈은 형상이나 조직이 그 수명을 다하거나 그 에너지가 소진된 상황을 야기한다. 구체적 역학에 의하면 시계 부품들이 풀어지고 제각기 떨어져 나와 형태가 흩어지는 것에 해당한다.
확률을 물리에 들여와서, 볼츠만은 열의 엔트로피로 말미암은 수동적 혼돈이 단순히 뉴턴법칙의 다른 표현임을 밝힘으로써 환원론이 혼돈으로 인해 와해되는 일을 막았다. 결국 환원론자에게 걸린 주문이 계속 유효하게 된 셈이다.

1810년, 라플라스는 파리 학술원에서 그 유명한 '중앙수렴정리'를 발표하였다. 그의 이론은 1812년에 완전히 정립되었으며, 이로부터 측정오차의 분포곡선과 가우스의 정규분포곡선 사이의 상호 관계도 성공적으로 규명되었다. 라플라스가 증명한 중앙수렴정리에 따라면 동일한 측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얻어진 오차들은 정규분포 곡선과 거의 비슷한 분포를 보이게 된다. 임의의 측정오차는 일종의 무작위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으므로, 중앙수렴정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독립적으로 여러 차례 시행된 무작위관측의 결과들은 정규분포 곡선을 따라 분포된다.
라플라스와 가우스의 이론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측정오차 같은 데이터들은 무작위사건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주어진 확률분포 곡선으로부터 측정값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다. 이리하여 정규분포 곡선은 측정오차가 임의로 나타나는 모든 분야에서 오차의 분포를 예견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이로부터 '오차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라플라스의 중앙수렴정리는 천문학과 물리학, 그리고 탄도학, 생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무작위오차를 설명해주는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서 역학의 제국주의 시대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실제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역학을 여전히 정복되지 않는 영역, 특히 전자기 현상의 영역으로 확대할 경우 부딪치게 되는 난점들은 극복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처럼 문제는 더 이상 하나의 평면 궤도, 유일한 궤적으로 생각된 궤도, 행성 운동처럼 생각되는 하나의 궤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기하학이 확률 계산에 의해 밀려났다. 원초적인 것은 확률적 지식이다.

19세기 말엽에 과학자들은 수십년 간 애를 먹이던 열역학 문제를 확률로 처리하여 완전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전자기 복사현상도 완전히 해명하여 이 분야에선 이미 더 이상의 문제제기가 필요없었다.

그 당시 과학자들은 이미 해결된 열역학법칙과 전자기 복사현상의 두 특성을 감안하여, 소위 '흑체' 라고 불리던 검은 상자의 실험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의 복사법칙도 무난히 유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물질은 스스로 발하는 빛과 같은 파장의 빛을 흡수한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빛의 복사현상을 연구하고자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 물체를 찾으려고 했으나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빈(Wilhelm Wien)은 머리를 써서 검은 물체 대신 작은 구멍 외에는 완전히 밀폐된, 따라서 빛이 안 들어가는 내부는 검을 수 밖에 없는 금속상자를 고안해 냈다. 그러니까 이 상자를 가열하면 그 안에 있던 입자들이 요동하고 벽에 부딪치면서 전자기파가 전자기법칙과 확률법칙에 따라 그 구멍에서 복사하여 나오리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검은 상자의 실험에서 그만 예상하지도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1900년 막스플랑크는 이 파장들이 불연속적인 에너지 묶음으로 분단된다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에 따른 공식을 유도하므로서 그는 흑체복사의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여기서 생겨난 '광자(光子)'의 개념이 너무 낯설었다.

상대성이론은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전기역학에서 출발했다. 헤르츠(Heinrich Hertz: 1857-1894)의 파동을 뉴턴의 개념세계 안에서는 에테르라는 가상적인 매개체의 진동으로 파악했다. 빛이 파동으로 움직일러면 그와 함께 물결치는 어떤 매개체, 즉 에테르가 대기 중에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만약 빛이 진공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공 자체가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상적인 매체 즉 에테르가 온 우주에 퍼져 있다고 가상했을 때 당연스레 제기되는 질문은, '그렇다면 에테르의 조건에 제대로 일치하지 않는 물체의 운동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다가 마이컬슨과 몰리가 기발한 실험장치를 만들어 낸다.

우주공간을 에테르가 채우고 있다면 이 상태는 에테르의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지구는 우주공간에서 계속 움직이므로 이는 곧 에테르의 바다에서 움직이는 상태로 가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에테르층에 바람을 일으키는 효과를 나타날 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 풍향을 거슬러 진행하려면 저항으로 인해 속도가 느려진다. 마찬가지로 에테르바람의 방향에 거슬러 진행하는 빛은 같은 방향으로 진해하는 빛보다 느려질 것이다.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는 이러한 속도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간섭계를 고안하여 사용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에테르의 저항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1853-1928) 가설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였다. 로렌츠도 원래는 뉴턴 물리학에서는 항상 고정된 것으로 여겨 왔던 시간의 개념이 각각의 운동상황에 따라 수축해 버린다는 모순에 착안, 저 유명한 '로렌츠 변환'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속도로 진행하는 빛들이 각각 진전한 거리의 차이에 따라 시간의 수축이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개의 사건이라는 뜻에서 사용하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지탱시킬 수가 없었다.

그 전에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앞서서 장(場)이라는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해 놓았던 덕택이 결국 에테르라는 물질의 허구가 드러나면서 가상의 것으로 전제하여 오던 '장(場)'이라는 것도 엄연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실체라는 사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

실재에 대한 뉴턴식 당구공 모델은 실제로 결정적 모델이다. 여기에서 결정적(diterministic)이란 말은 물리적 양태가 어떤 한 시점에서의 모든 공(몇 가지 문제 발생을 피하기 위하여 유한수로 가정한다.)의 위치와 속도에 의하며 미래(혹은 과거)의 모든 시간에 대하여 수학적으로 완전히 결정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당구공 세계에서는 '자유 의지'의 작용으로 물체의 동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음'이 들어갈 여유는 없어 보인다. 만약 우리가 '자유 의지'를 믿는다면, 우리의 실제세계는 이런 식으로는 구성될 수 없다고 믿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결정적이지만 계산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래는 현재에 의해 원칙적으로 계산 불가능한 형태로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자유 의지는,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를 관장하는 법칙의 계산 불가능한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턴 역학은 물체나 천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는 있지만, 힘( 이 경우 중력)의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한다. 그저 중력이 존재하며 뉴턴이 밝힌 법칙에 따라 운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중력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에 따르면, 중력은 원격작용이 아닌 근접작용에 의해 힘이 전달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중력은 거의 진공에 가까운 우주공간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 셈인데 이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진공은 그저 아무 것도 없는 빈공간이 아니라 힘을 전달할 수 있는 숨겨진 능력을 가진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진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장(Field)이라는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장의 개념은 본래 전자기 현상에 대한 연구를 계기로 형성되었다. 1831년에 전자기유도 현상(자장 속에서 도선을 움직이면 도선에 전류가 유도되어 흐르는 현상)을 발견한 영국의 패러데이(1791-1867)는 전자기력이 매질을 통해 전달해가지는 근접작용에 의한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석과 철가루를 이용하면 전기력선이나 자기력선은 이 형태로 전자기력이 전달되는 경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런 역선(力線)의 존재는 비록 그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지만 전자기력의 성질을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며 중력 역시 이와 같은 역선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간의 장소별로 어떤 힘의 양이 분포되어 있을 때 이 분포를 장이라고 부르는데 전기력에 해당하는 장을 전지장, 자기력에 해당되는 장을 자기장, 중력의 분포를 나타내는 장을 중력장이라고 부른다.

역선은 공간적인 힘의 분포를 나타내는 것인데, 결국 역선이 충만된 공간이라는 것은 장 그 자체를 가리킨다.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빛은 전자기장의 진동이며 중력은 물질이 진공에 놓임에 따라 기하학적인 성질이 바뀐 중력장의 변형이 전파됨으로써 전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장은 데카르트나 케플러, 브루노와 같이 진공충만성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하는, 힘의 전달매체인 매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장의 개념에 의한 진공 역시 매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진공은 공허하기만 한 비존재의 존재가 아니라 장을 발생시키고 힘을 전달하는 등 놀라운 능력을 지닌 성질의 것으로 되었다. 과연 순수한 허공이 이런 능력을 보유할 수 있을까?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 법칙은, 자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함으로써 전압과 전류가 전도체 고리에 유도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맥스웰은 이것을 장의 개념으로 다음과 같이 다시 표현하였다. '변화하는 자기장은 전기장을 유도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근본적으로 전자기 이론의 진정한 핵심이다. 이것은 바로 전기장이나 자기장이 우주에 한번 존재하게 되면 영원불멸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영원히 어딘가로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전기적으로 대전된 물체를 방전시켜 대등된 전기장을 없애거나, 자석을 파괴하여 대응된 자기장을 없애려는 경우 두 가지 중 하나가 소멸하면 상대편 장이 새로 일어난다. 전기장이 소멸하면 자기장이 또한 자기장이 소멸하면 전기장이 생기게 된다. 소멸하는 장은 변화하는 장이므로 이것은 반대 종류의 새로운 장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위와 같은 현상은 계속해서 영원히 진행된다. 붕괴하는 전기장은 자기장을 만들고, 붕괴하는 자기장은 전기장을 만든다. 전기장이 다시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운동은 라디오파, 빛, 그리고 X 선파까지 우주로 전파시키는 기계장치이다.

중력장이나 전자기장과 같은 종전에 쓰이던 장의 개념을 조금 확대시켜 상대성이론에서는 대기 전체에 펴져 있는 힘의 장(field of force)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그러나 우주 공간에 연속으로 펴져 있는 이 힘의 장은 힘이 전체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언제나 균일한 상태의 장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힘이 쏠릴 수 있는 하나의 복합체로 가정했다.
빛은 전자기파다. 이것은 풀려난 에너지다. 즉 물질 형태를 취하지 않는 에너지다. 그러므로 빛이 안정된 운동상태에 가두어졌을 때, 즉 결정화 되었을 때, 그것을 '물질'이라 한다. 하위계의 물질일수록 더 구조화되고 더 결정화된 따라서 더 고정적이고 굳어진 상태의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에 비해서 상층계의 질료는 상대적인 힘 또는 빛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빛이 상위계의 질료, 또는 상위계의 힘이라고 하는 푸루커의 주장도 힘과 질료의 이런 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물질이 내적인 에너지가 외부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는 이러한 개념은 스칼라 전자기학이라고 부르는 다소 진보적인 물리이론에서 그 동일한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토마스 베어든 등이 옹호하고 있는 이 이론은 전자기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을 스칼라 포텐셜이라고 하는 정전기적인 개념에 두고 있다.

1895년, 독일의 한 교수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뢴트겐(1845-1923)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음극관(크룩스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직 현상하지도 않는 인화지를 검은 종이로 싸서 음극관 옆에 놓아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인화지가 감광이 되어 있는게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한 뢴트겐은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보다가 우연히 옆 탁자 위에 있던 백금시안화바륨을 바른 종이가 형광을 발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방사선은 미지의 방사선이란 의미에서 X선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헬리 베끄렐(1852-1908)은 우라늄 염류를 가지고 X선의 정체를 규명하려다가 외부의 빛을 쪼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라늄 염류가 방사선을 자연적으로 방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외부의 입력이 없는데도, 그리고 겉보기로는 전혀 변화가 없는 우라늄 화합물이 끊임없이 방사선을 내보내는 것은 이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사능(radioactivity)의 발견이 뜻하는 바는 자못 의미심장한 것이다. 어떤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한다는 것은 원자의 일부 성분이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원자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끄렐의 방사능 현상 발견으로 19세기 서구 화학계를 지배하던 원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사실 원자가 붕괴될 조짐은 다른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었다.
패러데이는 전기화학 반응에서 각 원자가 일정량의 전하를 갖고 결합된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아레니우스도 전해질 용액에서 원자들이 일정량의 전하를 갖고 전기적으로 하전되어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런 실험결과는 전하들이 중성 원자 안에 함유되어 있다가 한 중성 원자에서 다른 중성 원자로 전달된다는 것을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의 화학지식으로는 무리가 있는 추측이긴 했지만 그런 추측은 원자가 쪼개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멘델레프(1834-1907)가 체계를 잡은 원소주기율표도 이런 의혹에 무게를 더하였다.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배열된다는 것은 원자의 화학 및 물리 성질들이 어떤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원자가 하부구조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던 것이다.

결국 1897년에 톰슨(1856-1940)이 전자를 발견함으로써 원자는 전자라는 내부 성분을 갖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퀴리 부인(1867-1934)이 예전보다 강력한 방사능을 지닌 두 개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것은 1898년이었다. 피치블렌드라는 우라늄 원광 속에서 찾아낸 원소들에는 퀴리 부인의 조국인 폴란드를 기념한 '폴로늄'과 라틴어도 광선을 의미하는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라듐은 우라늄의 백만 배나 되는 방사선을 방사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도 아무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하지 않아도 방대한 양의 빛의 빛과 열, 방사선을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에너지보전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라듐은 세 종류의 방사선을 내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것은 각각 알파선과 베타선, 감마선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며, 그 중 감마선은 X선이나 가시광선처럼 전자기파인 빛의 한 종류임이 드러났다. 반면에 알파선과 베타선은 전하를 띤 알갱이와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나중에야 알파선은 헬륨의 핵, 베타선은 전자임이 밝혀졌다).

라듐은 그 과정이 느리기는 하지만 이 세 종류의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붕괴하여 마지막에는 납과 헬륨이라는 전혀 다른 원소로 변해버리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에 도달되기까지에는 과학자들은 객체를 어떻게 규정했는가?
1808년 돌턴이라는 과학자가 원자론 주창하고 나섬으로서 그 때부터 화학자들은 화학반응을 정량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1805년 게이뤼삭(J. L. Gay-Lussac)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될 때, 한 쪽 기체의 체적이 아무리 많이 존재하더라도 수소와 산소의 체적의 결합비가 항상 2:1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뒤에도 게이뤼삭은 여러 종류의 기체의 결합에 대한 연구로 1809년에는 다른 종류의 기체들도 그 부피의 비율이 간단한 정수비로 나타난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정수비로 표시된다는 것은 물질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어떤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게이뤼삭의 발견은 기체가 결합할 때 그 부피가 줄어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즉 부피가 2인 수소와 부피가 1인 산소가 결합하면 수증기는 2 부피의 체적이 된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한 사람이 아보가드로(Amedo Avogadro)이다.

돌턴의 원자론과 게이뤼삭의 연구를 검토한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분자 개념을 도입하여 같은 부피의 분자수는 그 수가 같다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원자가 결합하면 원자와 원자의 결합(이것을 아보가드로가 처음으로 분자로 불렀다)은 구별을 해야 하며 그 분자는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개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아보가드로법칙(그 당시에는 아보가드로 가설이라 불리었다)은 돌턴의 원자론과 게이뤼삭의 발견을 잘 설명해 주었지만 돌턴과 게이뤼삭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도 이 아보가드로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850년대 후반에 가서야 아보가드로 가설의 증거들이 발표되어 이후에는 아보가드로 가설이 여러 원소들의 원자량과 원자가를 결정하는데 이용되었다. 1900년대 초까지는 원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아보가드로수가 4 내지 5×10의 23승개로 보았다.

과연 원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원자의 존재 증거는 원자가 깨어짐으로써 확실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방사능 발견 이후 원자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방사능의 발견이 있은 바로 다음 해인 1897년에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전자의 발견은 원자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전자의 발견은 엑스선의 발견에서와 같이 음극선 연구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시대에 처음 발견된 마찰전기는 바로 전자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것을 전자에 의한 작용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17세기부터 전기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있었는데 이때에는 주로 유리 등을 문질러 발생하는 마찰전기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전기와 자기에 대한 분야가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진공방전에 대한 연구가 과학자들의 흥미를 끌었는데, 이 현상은 1709년에 헉스비(Hauksbee)에 의해 처음으로 관찰되었다. 헉스비는 유리관의 기체를 어느 정도 뺀 다음 마찰전기를 접촉하면 유리관 안의 기체가 발광하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이것이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기체분자에 에너지를 주고 에너지를 받은 기체분자가 다시 에너지를 내어놓는 과정으로 이러한 현상을 기체의 방전현상이라고 하고 이것이 음극선 연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네온사인이나 아르곤등과 같은 것들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고, 유리관 안의 기체 종류에 따라 색깔이 다른 것은 각 원자 내의 궤도 전자의 에너지 차이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자에 의한 작용인지를 밝혀낸다는 것은 그 당시의 과학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1740년경에는 영국의 왓슨(Watson)이 공기가 희박한 관에 전류를 흘려주면 빛이 발생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후 진공 기술이 발전되어 유리관 안의 기체의 방전에 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도 음극에서 무엇인가 방출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전기와 자기학이 많이 발전을 하여 이를 응용한 아크등, 백열등과 같은 기구들이 실생활에 응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음극선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음극선의 연구도 전기 분야의 발전과 관련이 있고 결국에는 음극선 연구에서 현대물리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 엑스선이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전자는 전기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전자가 움직일 때 전자와 함께 전기장도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이 전기장은 무한히 퍼져간다. 만약 전자가 갑자기 멈추게되어도 모든 전기장은 함께 멈추지 않는다. 전자에 가까운 장의 일부가 먼저 정지하지만 먼 부분은 전자가 정지한 뉴스를 알지 못하므로 마치 전자가 정지하지 않은 것처럼 계속 움직인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전기장에서 '비틀림'이 나타난다. 그 비틀림은 전기장 선을 따라 나아간다. 이 전기장 비틀림이 바로 X 선 펄스 또는 X 선이다.

1855년에 독일의 가이슬러가 수은을 이용한 펌프로 개스킷이 없는 유리관을 개발하여 대기압의 1만분의 1까지 진공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이 관을 가이슬러관이라고 한다. 이 유리관을 풀뤼커에게 전달되어 전기방전의 연구에 이용되었다. 풀뤼커는 1858년에 공기를 빼낸 이 유리관 내의 두 개의 극을 강한 전압으로 연결하여 진공방전을 관찰하였는데, 이 방전이 자기장에 의하해 어느 정도 휘어진다는 것을 관찰했다. 패러데이는 두 개의 극 중에서 양전기 쪽을 anode, 음전기 쪽을 cathode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유리관의 음극 근처에서 녹색의 발광 현상이 있었는데 이 발광 현상은 위치와 무관한 것 같아 보였다. 방전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진다는 것은 후에 톰슨이 전자를 발견할 때에도 이용되었다.

히토르프는 진공관 사이에 고체로된 물질을 놓아 이 물질 뒤편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관찰하여, 음극선에서 어떤 선이 직선으로 방출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서도 유리관 내의 공기가 희박해질수록 두 극 사이에 전기가 통하게 하는 원인이 유리관 내의 공기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음극에서 무엇이 나와 양극으로 이동하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기가 희박할 때 전기가 잘 통하는 것은 전자가 이동할 때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즉 유리관 안에 공기가 많으면 음극선이 공기 분자의 전자와 충돌할 확률이 커지므로 전자가 에너지를 잘 잃으며, 또한 음극선은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진행하기 때문에 전지가 잘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1876년에 골드슈타인이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음극에서 무엇인가가 방출된다라고 결론내리고 이것을 음극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1886년에는 골드슈타인이 음극에서 방출된 음극선이 양극으로 이동하는 것고 관찰했다.

그리고 가이슬러관보다 훨씬 진공도가 높은 유리관을 1878년에 영국의 크룩스가 훗날 크룩스관이라 불리어진 관을 개발하였는데, 그는 고진공관 내에서의 전지 방전 현상을 관찰하여 음극선이 음으로 대전된 하전입자의 흐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많은 과학자들이 음극선의 본성을 밝히려는 연구를 하였는데 연구자들마다 음극선의 본성을 달리 해석하였다. 음극선이 음으로 대전된 입자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전기장과 자기장 속에서 음극선의 이동경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결과는 다르게 해석되었다. 먼저 전자기파의 존재를 확인한 독일의 헤르쯔는 음극선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전하를 가지고 있는 입자는 자기장 속에서 전기력을 받아 그 진행 경로가 휘어진다. 그러나 헤르쯔는 약한 자기장으로 실험하였기 때문에 음극선이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음극선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므로 약한 자기장으로는 그 휘는 정도를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헤르쯔는 음극선이 얇은 금속의 박막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관찰하여 음극선이 파동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음극선은 전자이므로 아주 얇은 박막은 뚫고 나갈 수가 있다.

반면에 영국의 과학자들은 음극선이 입자의 형태일 것이라고 믿었는데, 톰슨의 연구에 앞서 영국의 슈스터는 음극선이 자기장 속에서 휘어지는 것을 관찰하여 전하와 질량의 비를 1890년에 최초로 측정하였고, 이 값은 후에 톰슨의 측정값과 비슷하였다. 슈스터는 영국에서 최초로 엑스선 촬영을 한 사람이기도 한다.

1895년의 엑스선 발견과 1896년의 방사능 발견은 톰슨의 음극선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방사능이 발견된 그 다음해인 1897년에 톰슨은 슈스터와 같은 방법으로 음극선의 전하와 질량의 비를 구하여 전자를 발견하였다.

C에서 출발한 음극선은 D-E 구간을 지날 때 전기적인 힘을 받아 음극선은 그 경로가 휘어지게 된다. 또한 이 구간에 자기장을 가하여 전기적인 휘어짐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기장을 설정하여 전기적으로 휘어지게 하여 그 휘어짐의 정도가 같게 되도록 자기장을 조절하면 전하와 질량의 비(이것을 비전하라고 한다)의 크기를 구할 수가 있다. 톰슨은 이러한 방법으로 음극선의 비전하가 원자 중에서 질량이 가장 적은 수소 원자핵보다 약 1000배 크다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내었다. 수소 원자핵의 질량은 전자의 질량보다 1837배 크고 전하의 크기는 같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값으로는 약 1837배이다.

하지만 원자 모형에 대해서 새롭게 실시한 실험의 결과가 맞지 않았다. 러더포드의 알파입자 산란현상은 톰슨의 원자모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많았다. 알파입자는 헬륨의 원자핵, 즉 헬륨원자에 궤도전자 두 개가 없는 것이므로 알파 입자의 전하는 전자와 부호가 반대이고 그 크기는 두 배인 +2e이다. 물질 내에서 알파입자가 산란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우선 전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알파입자가 전하를 가지고 있고 전자와 알파입자는 서로 전하의 부호가 반대이므로 서로 같은 크기의 전기적인 인력을 받는다. 그러나 전자에 비해 알파입자의 질량은 약 7400배 정도가 크다, 전자와 알파입자는 쿨롱 법칙에 의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면서 서로 끌어당기는 같은 크기의 힘이 작용한다. 가속도의 크기는 질량에 반비례하므로 같은 크기의 전기적 인력이라도 질량이 적은 전자는 큰 가속도를 얻어 방향을 바꾸어 튕겨 나가지만 질량이 큰 알파입자는 가속도가 작아 진행 경로를 거의 바꾸지 않는다.

알파 입자의 질량이 크기 때문에 알파 입자와 물질과의 만남에서도 대부분의 알파는 물질 내에서 거의 직선으로 진행한다. 이것은 어떤 속도로 축구공이 굴러갈 때 축구공이 정지하고 있는 탁구공과 충돌한다고 해서 축구공이 그 진행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면에 탁구공은 아주 큰 각도로 방향을 바꾸어 튕겨 나간다. 이러한 현상은 두 공의 질량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알파가 전자와 전기적인 인력이 작용한다고해서 입사 방행과 반대 방향으로 알파 입자가 튕겨 나가지는 않는다.

전기적인 인력에 의한 원자에서의 전자의 회전과 중력에 의한 태양계에서의 행성의 회전은 다르다. 태양과 행성 사이의 중력에 의한 회전으로 행성은 에너지를 잃지는 않는다. 따라서 행성이 태양으로 계속해서 접근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안정된 궤도로 회전한다. 그러나 맥스월의 전자기 법칙에 따르면 회전하는 전하는 에너지를 전자기파 형태로 방출하고 에너지를 잃어야 한다. 맥스웰은 전기의 자기현상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완성했고 이 식에서 전자기파의 존재가 예언되었다. 그렇다면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는 에너지를 급속하게 잃으면서 안정된 궤도를 가지지 못하고 나선운동으로 핵에 접근하여 핵과 결합함으로써 원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보어는 1913년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발하고 대담한 원자모형을 도입하였다. 원자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보어는 첫째,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고정된 궤도로 회전해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전자는 원자핵으로부터 특정한 반지름을 가지고 정해진 궤도를 회전하고, 또한 맨 안쪽 궤도에는 전자의 에너지가 가장 낮은 값을 가지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놓은 에너지를 가진다. 전자의 에너지는 각 궤도에 해당하는 특정한 값을 가지게 되고 이 정해진 궤도를 따라 회전하면 전자파는 방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자는 에너지를 잃지 않고 핵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는다. 둘째는, 전자가 한 고정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에는 두 궤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해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즉 전자가 에너지가 낮은 궤도(안쪽 궤도)에서 높은 궤도(바깥 궤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두 궤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흡수해야 하고 에너지가 높은 궤도에서 낮은 궤도로 이동할 때에는 두 궤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전자파의 형태로 방출해야 한다. 따라서 원자궤도에서의 전자의 에너지가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값, 즉 아무 값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값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어의 이론이 원자의 많은 것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의 문제점도 있었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수소 이외의 원소의 스펙트럼을 계산하기 위한 시도에서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K-궤도에는 전자가 2개가 들어가고 L-궤도에는 8개가 들어가는 등 각 궤도에 들어가는 전자수가 왜 그 숫자이어야 하는 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각 궤도에는 보어가 보여준 에너지 준위를 결정하는 n으로 표시되는 주양자수 외에 이후에 연구에서 원자 내에서 전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데는 세 개의 양자가수가 더 필요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궤도의 각운동량이나 궤도의 모양을 결정하는 궤도양자 수는 l로 표시하고 그 값은 l=0,1,2,3...의 정수 값을 가지는 l은 0보다 크고 (n-1)보다는 작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l이 0일 때 s로, 1일 때는 p, 2일 때는 d 등으로 표시한다.
다른 한 가지의 양자수는 자기 양자수로서 공간에서의 전자의 운동이나 전자가 자기장에 의해 받는 영향을 나타낸다, 자기 양자수는 m으로 표시하고 -l에서 +l까지의 정수값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전자의 스핀을 나타내는 스핀 양자수는 그 값이 + ½이나 -½의 값만을 가진다. 원자 내에서의 전자는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의 양자수를 표시할 수 있고, 1935년에 파울리는 한 개 이상의 전자를 가지는 원자는 같은 양자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배타원리를 발견하였다. 즉 같은 원자 내에서 네 개의 양자수가 모두 똑같은 경우는 없다는 것이 따라서 원자 내에서의 전자는 네 개의 양자수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는 달라야 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 중 원자번호가 가장 큰 원소는 우리늄(U)이다. 따라서 원자번호 93번 이상인 원소는 모두 인공원소이고 초우라늄 원소라고 한다.

1932년 채드윅의 중성자 발견과 1934년 이렌과 졸리오 퀴리의 인공 방사능원소의 발견으로 인공으로 방사성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탈리아의 천재적이 물리학자 페르미가 이 가능성을 최초로 시도하였다. 페르미는 베타붕괴이론을 완성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그 때까지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알파입자 대신에 중성자가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만드는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방사성원소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알파입자는 가속기가 발견되기 전에 원자핵의 구조를 알아내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즉 가속기가 발견되기 전에 알파입자는 가속기 역할을 하였다. 알파입자는 러더포드가 원자핵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또한 중성자의 발견도 이 알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알파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으로서 양성자의 두 배의 전하량을 가지고 방사성원소에서 방출되는 알파의 에너지는 4∼9 MeV이다. 이 에너지는 알파의 운동에너지로서 알파의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양이다. 원자핵도 양전하를 가지고 있으므로 알파가 핵으로 접근하면 전기적 반발력이 작용하여 핵의 양전하가 큰, 즉 원자번호가 큰 원소에는 알파가 핵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속기가 발견되기 전에는 원자번호가 작은 원자핵을 상대로 실험을 하였지만 원자번호가 큰 핵에는 알파입자를 핵 내에서까지 접근시켜 핵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중성자는 전하가 없어 핵과의 전기적인 반발력이 작용하지 않으므로 알파보다 핵에 쉽게 접근시킬 수가 있고 핵에 가깝게 접근시키면 핵력이 작용할 것이므로 페르미는 핵을 변화시키는데 중성자가 적당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페르미가 옳았다.

강력(강한 상호 작용)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고 핵자 거리의 몇 배만 되어도 0이된다. 양성자가 가까이 있으면 핵력에 의한 인력이 전기력에 의한 척력을 제압하지만 멀리 떨어진 양성자에서는 핵력은 척력보다 작다. 그래서 82개 이상의 양정자를 가진 핵은 불안정하다. 이 때 알파선이나 베타선이 방출된다. 라듐의 경우 β붕괴로 알려졌는데 강력과는 다른 종류의 핵력이 베타 방출에 기여한다. 이러한 핵력을 약력(약한 상호 작용)이라 한다.

현대물리학의 입자들은 사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존재의 중심부라기보다는 힘의 중심부이다. 입자들은 상호적 생성이나 동역학적 합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가능한 동역학적 변환에서 상태로서 특징지어진다. 그들은 끊임없이 실재의 근본으로 동역학적인 양상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알파 붕괴란 불안정한 원자핵이 알파입자, 즉 헬륨원자핵을 방출하는 붕괴이다. 앞의 핵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자핵은 원자번호가 증거함에 따라 핵자당 결합에너지는 작아지고 또한 양성자수의 증가로 핵자간의 전기적 반발력이 커진다. 이 전기적 반발력을 극복하기 위해 원자번호가 20번 이상에서는 핵내의 핵자는 양성자수보다 중성자수가 더 많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원자번호가 84번 이상이거나 질량수가 209보다 큰 핵은 안정된 핵이 되지 못하고 모두 불안정한 핵이 되어 방사성원소가 된다. 핵자당 결합에너지는 원자번호가 클수록 작아지므로 알파입자를 방출하고 원자번호를 줄이는 것이 안정된 핵으로 되는 방법이고 이 핵자당 결합에너지의 차이에 의해 자발적으로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리고 알파붕괴가 일어나는 원자핵은 질량수가 큰 원소들로서 대부분이 원자번호가 84번 이상인 원소들이다. 대표적인 알파붕괴를 하는 핵종은 라듐이나 토륨, 우라늄 등이 있다.

레나르트는 높은 진공으로 실험장치를 만들어 자외선의 에너지를 받아 방출되는 입자가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에서 전자처럼 경로가 휘어지고 방출되는 전자의 수는 빛의 세기에 비례한다는 것과 전자의 에너지는 빛의 세기와 전자의 수에 무관하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즉 물질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는 쪼여준 빛의 진동수에 따라 다른 값을 가지고 물질마다 특정한 진동수 이하의 빛은 그 빛을 아무리 세게 하여도 전자는 방출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1905년에 논문으로 발표하였고, 그는 이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광전효과는 플랑크의 빛의 양자가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빛은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1900년에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발표되었지만 그에 대한 증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파동은 입자와 달리 에너지가 사방으로 펴져 나간다. 호수에 돌을 던져보면 호수에 생긴 물결파는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구공은 에너지가 사방으로 펴져나가지 않고 당구공에 집중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빛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으로 행동했다면 광전효과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빛이 물질에 쪼여진 후 방출되는 전자를 광전자라고 한다. 우선 광전자를 방출시키기 위해서는 특정한 에너지 이상의 빛을 쪼여야 한다. 즉 어떤 임계파장보다 짧은 파장의 빛을 쪼여야 한다. 이 임계파장보다 파장이 큰 빛에서는 그 빛을 아무리 세게 하여도 광전자는 방출되지 않는다. 이 임계파장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일함수라고 하고 이것은 각 물질에 따라 다른 값을 가진다. 따라서 일함수는 광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에너지이고 물질에서의 궤도전자 결합에너지와 같다. 궤도의 전자를 원자 밖으로 이탈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에너지 이상을 주어야 한다. 빛을 세게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난로의 경우에 난로의 수를 늘리는 것과 같다. 난로가 하나일 때보다 난로가 두 개 일 때 에너지의 세기는 증가한다. 그리고 광전자의 에너지 역시 빛의 세기에 관계없고 빛의 파장에만 관계하였다. 일함 이상의 에너지를 가지는 빛일 경우에는 세기를 증가시키면 방출되는 광전자의 수는 증가하지만 광전자 하나가 가지는 에너지는 변화가 없었다. 즉 광전자 하나의 에너지는 빛의 에너지에서 물질의 일함수를 뺀 값을 가진다. 이것을 식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광전자 에너지= 쪼여준 빛의 에너지-일함수

이러한 현상은 빛이 입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일어난 수 없는 현상이다. 광전효과가 일어나면 빛은 광전자에게 모든 에너지를 주고 자신은 사라진다. 이것은 정지하고 있는 당구공에 운동하고 있는 당구공이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운동하고 있는 당구공은 정지하고 있는 당구공에 전 에너지를 전달하고 자신은 정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빛이 파동처럼 사방으로 골고루 퍼져 나간다면 이러한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즉 물리학에서는 이 광전효과가 빛의 입자적인 성질을 가진다는, 플랑크의 빛의 양자론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빛은 각각의 알맹이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알맹이의 에너지가 크다는 것은 파장이 짧다는 것이고, 빛의 세기가 크다는 것은 알맹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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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577건 중 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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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