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물리학의 등장 (2)
4. 물리학의 등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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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물리학의 등장 (2)
곧 달의 운동이 극히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분 내에서까지도 달의 위치를 예측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50년보다 긴 세월이 걸렸고, 많은 지도적인 당시의 수학자들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달의 위치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목록표는 1748년 파리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당선된 바 있는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주창한 방법을 이용하여 지도 제작였던 토비어서 마이어에 의해 1753년에 산정되었다. 마이어의 목록표가 출판되고 난 이후 달을 이용한 이 방법은 일반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되었고 완벽한 항해술의 모델로 간두되고 있는 인더버 호 항해에서 제임스 쿡 선장이 이용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경도를 알아 내는 이 새로운 방법의 수명을 짧았다, 솜씨 좋은 기능공 존 해리슨이 항해 중인 배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로운 유형의 기계적인 시계인 해양용 크로노미터를 개발하자, 그것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었다.
항해술의 전체적인 발달은 과학이 실제적인 업무에 응용될 수 있다는 매우 효과적인 증명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견상 명백히 '무용한' 것으로 보이는 많은 과학들과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사회의 물질적 진보가 과학의 진보- 이 진보의 개념이어야말로 우리를 중세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여러 중요한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은 그 때까지 일상적인 지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18세기 말에 이르러 과학이 실용적인 사람들에 의해 유용한 것으로서 또한 철학자들에 의해 이성(理性)의 사용에 대한 패러다임으로서 간주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물질적 진보의 주요인으로까지는 생각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과학이 화학 산업과 해양 항해술의 발전에 유용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반, 19세기가 시작될 무렵만 해도 과학이 산업 발달에 중요한 요구이 된다는 점은 여전히 충분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은 원소이고 또 어떤 물질은 합성물이라는 사실이 확립되었음에도 물질의 원자 구조에 대한 이론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전기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전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으며 특히 전류와 자기(磁氣)와의 관련은 발견되지도 않았다. 열과 전기는 여전히 액체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에너지라는 유용한 개념은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19세기 전반에 커다란 진전을 보게 되었다. 물질의 원자 구조는 존 돌턴의 저서가 나오자 곧 확립되었다. 전류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었고, 전기와 자기와의 관계가 발견되었다. 열은 에너지의 한 형태임이 드러났으며, 열역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영역이 개척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우리는 지금 '고전 과학'이라고 부른 것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베이컨의 표현을 빌면, 지식이 힘을 만나는 무대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과학 연구가 주요 산업에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최초의 설득력 있는 증명은 1856년 월리럼 퍼킨에 의한 아닐린 염료인 마젠타의 발견이었다. 그는 런던에 위치한 왕립 화학 대학 연구소에서 퀴닌을 합성하려고 시도하던 중에 마젠타를 발견하였다. 퍼킨의 발견으로 거대한 합성 염료 산업이 창설되었다.
과학의 유용성에 대한 다른 더욱 결정적인 증명은 완전히 새로운 사업인 전기 산업의 설립이었다. 정전기 현상은 고대 그리스도 시대 이후에 내내 알려진 것이었으며 18세기에 행해진 많은 공중 전기에 대한 실험은 가장 눈에 띄는 결과로 피뢰침의 설치를 가져왔다. 알렉산드로 볼타가 전지를 발명해낸 1800년이 되어서야 공중 전기를 전류 시험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얼마 되지 않는 1820년에 외르스테드는 강의를 하던 중 물리 과학에 흘러나오는 전류를 설명하던 중에 우연히 강의용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나침반의 바늘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그는 전적으로 우연히 전류가 자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곧바로 전류를 탐지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왔으며, 실용적 형태를 띤 전보의 출현을 가져왔다. 정전기 전하의 탐지에 기초하여 전보를 개발하려 했던 이전의 시도들은 실패하였으나 이제 문제는 해결되었다. 최초의 실용적인 전보 체계가 1837년에 출현하였고, 영국에서는 즉시 철도에 응용되었다. 1866년 미국과 영국 사이에 해저 전보가 작동되었고, 1872년경에는 세계의 모든 주요 도시가 전보로 연결되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한동안 런던에 있는 왕립 연구원의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실험을 통해서 전기와 자기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물체'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변화하는 전기와 자기장은 때로는 빈 공간에서 서로를 '밀쳐' 내어 몸체에서 분리된 일종의 파동을 생성할 수 있다고 추측하였다. 그는 빛 자체도 그러한 파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난 관점은 당시에 지배적이던 '뉴턴식 사고 방식'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는데 그들에게 장(場)이란 결코 실제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참된' 뉴턴식 '실제' 인 '멀리서 본 점입자의 운동'에 대한 편리한 수학적 부속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1831년 그가 전기와 자기와 운동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자, 이는 곧바로 발전기, 교류기, 변압기의 개발을 초래하였다. 거의 50년 후 전등이 발견되면서 에디슨의 펄 스트리트 발전소가 뉴욕에서 문을 열었다. 그 발전소는 증기에 의해 운전되는 6개의 발전기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 각각의 용량은 1,200개의 램프를 밝힐 수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산업인 전업(電業)은 연구소에서의 발전들로부터 창조된 것이었다. 문지 그대로 지식은 힘과 만났던 것이다.
과학을 인정받는 직업으로 확립하는 데 중요한 또 다른 일보(一步)는 전문화된 과학 학회들의 설립이었다. 18세기의 과학 학회들은 어떤 특정 지역에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만 '전문화된' 것이었다. 19세기에 그 학회들은 그들이 토론하는 주제에 따라서 '전문화'되었다. 100년과 1900년 사이에 영국에서는 외과, 지질학, 천문학, 동물학, 곤충학, 식물학, 현미경 검사법, 약학, 화학, 물리학과 관련된 여러 학회들이 세워졌다. 그 학회들은 말하자면 '과학의 사회 봉사'에 기여하였다. 그 학회들은 여러 회합이나 회의 등을 개최하였고 출판물 등을 내놓았으며, 전문적인 여러 기준들과 인가를 촉진하였다. 그 학회들은 과학 공동체의 본질적인 부분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19세기 후반 합성 염료와 전기 공업의 창설은 유용한 활동으로서 과학 개발을 향해 내딛은 커다란 일보였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산업 발전의 뒤꽁무니나 찾아다니며 이미 이루어진 것을 합리화하거나 개선하려는 사람들로 취급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두 새로운 선산업은 연구 실험실에서 일하던 과학자들에 의해 이룩된 새로운 발견들에 기초하고 있었다. 연구 실험실과 산업 혁신간에 이러한 연계뿐만 아니라 과학이 이익 배당을 지불한다는 확신은 오늘날 가장 낡고 재래적인 산업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상, 항공, 전자, 핵발전, 생물공각과 같은 많은 20세기 산업들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 연구에 힘입고 있는 것이다.
널리 퍼진 진보에 대한 인간들의 믿음은 원래 과학의 응용물에 의해 고무되었고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과학에 기초한 기술을 가장 중요한 과학의 얼굴로 간주하고 과학을 거의 전적으로 그것의 응용물과 동일시 되었다.
한편 뉴턴(1643-1727)은 만유인력이 원격작용으로 즉 매질없이 순식간에 전달된다고 하는 역학 이론을 세움으로써 데카르트의 힘과 진공에 대한 개념과 대립하였다. 이 절대공간의 존재를 그 밑바탕으로 하는 뉴턴 역학의 성공은 만물을 진공과 원자의 구성으로 보는 원자론의 부활과 함께 진공의 존재를 확증해주는 것 같았다.
18세기 중반부터 이루어진 미적분학의 발전은 물리 현상, 특히 운동에 대한 수학적 분석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열역학, 천체역학, 유체역학, 빛과 전기, 자기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된다. 이들 현상을 설명해주는 미분 방정식을 세우고 그 방정식의 해법을 개발했던 것이다. 정확한 해를 찾기가 어렵자 근사값을 구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졌다. 비록 각가지 현상들이 물리적으로는 서로 다르게 보인다 해도 모두 공간을 매개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원리)] 시대 이후 '원거리 운동'의 현실성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중력은 어떻게 공간을 뛰어넘어 작용할 수 있는가? 중력과 자기는 같은 힘의 다른 측면일 뿐인가 아니면 완전히 서로 다른 현상인가? 어쩌면 공간은 에테르(aether)라고 불리는 어떤 매질로 채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에테르란 무엇이고 그 특징은 어떻게 되는가? 이 모든 측면을 포괄하려면 퍼텐셜(potential) 이론의 역사와 그것이 전자기와 가지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때를 맞추어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확장되어 하나의 독립변수 이상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y=f(x)라는 평면 곡선뿐 아니라 z=f(x,y)라는 곡면도 연구가 가능해졌다. 각각의 변수가 독립적으로 미분될 수 있는 편미분 방정식(partial differrential equation)이 도입된 덕분이었다. 운동하는 입자들의 상호 작용은 그 운동 경로를 보여주는 미분 방정식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행성이 타원 궤도를 가진다는 초기의 뉴턴식 해는 태양과 달이 질점(point mass)이고 각각의 행성은 서로에 대해 독립적이라는 과감한 단순화를 통해 나온 것이었다. 태양 중심 모델과 비원형 궤도에 대한 초기의 반감이 마침내 극복되자 모델을 더욱 정확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야 했다. 한 가지 방법은 역동적 체계 내에서 에너지가 변화하는 방식을 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퍼텐셜 이론은 에너지 보존이라는 물리적 개념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뉴턴의 개념 역시 전형적인 실재론이지만 데카르트와는 다르다. 뉴톤은 공간과 물질적인 실재를 구별한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학문인 기하학과 물질의 학문인 물리학을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만 뉴턴은 구별한다) 그러나 뉴턴에 있어서는 공간과 시간은 실재적이고 절대적인 틀이며, 이 틀은 이 틀 속에는 대상물이나 이 틀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외재하는 어떤 것과 관계를 갖지 않는 그 자체로 또 본성적으로 참되고 수학적인 절대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외재하는 어떤 것과도 관계를 갖지 않는 본성적으로 절대적인 공간은 언제나 동일한 것으로 머물러 있다. 상대적인 운동(선원이 대양 위에서 움직이는 배의 갑판 위를 걷는 운동) 이외에도 절대적인 운동(예를 들면 절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지구의 운동)이 존재한다. 모든 운동은 가속이 붙거나 감속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일정한 등속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 그럴 가능성이 없다 할지라도 절대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다. 역학 방정식에서 사용하는 매개 변수 t는 이러한 일정하고 이상적인 시간이다. 역학이란 곧 자연적 물체의 운동에 관한 학문이다. 곧 여타 특성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오직 위치의 변화에 관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뉴턴의 질량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따라서 물리적 의미를 주지 않은 채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뉴턴은 힘을 정성적으로 기술하려 했다. 그는 힘을 '유발된(impressed)' 힘과 본유적(innated)' 힘으로 분류했다. 전자는 '정지 상태 또는 직선상의 등속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물체에 수행된 작용'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유발된 힘'은 운동의 불규칙성과 비선형성이 그 원인이다. 그것은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의 힘과 같이 소진되지 않으며 무한의 시간 동안 무한한 수의 물체에 작용할 수 있지만 작용이 사라진 뒤에는 그것이 물체에 남아 있지 않으며 물체는 단지 관성에 의해 얻어진 상태만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뉴턴에 따르면 작용 요인은 물질의 바깥에 물질과 분리되어 존재한다. 이러한 개념으로 그는 운동이 어떻게 시작하며 끝나는 지에 관해 논의할 수 있었다. 본유적 힘은 개개의 물체가 자유롭게 놓여져 있을 때 현재의 정지 상태 또는 직선상의 등속 운동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저항력이다. 사실 이것은 질량에 비례하는 관성력이다.
뉴턴은 물체에 유발된 힘이 단위시간당 물체의 운동량의 변화와 같다는 것을 밝혔다. 즉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 그러나 뉴턴은 가속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속도의 변화율이라고 표현했다. 뉴턴에 따르면 힘의 작용은 직접적이고 접촉형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 떨어져 있는 힘의 중심에 의해 간접적으로 생겨난다. 그는 원거리 작용력을 물체가 중력이라 여겨지는 한 점을 향해 경쟁하듯이 접근하도록 흡입하는 구심력 또는 중심력이라 불렀으며 중력과 자기력을 이 범주에 두었다, 중심력은 세 가지의 값(value)을 지닌다. 절대값은 힘의 중심, 즉 중력 질량, 자기 질량 등에 의해 생겨나는 작용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기동값(motive value)은 힘이 질량에 관계되는 반면에 힘의 작용 하에 물체에 주어진 가속에 비례한다. 이 값은 현대적 용어로 어떤 힘의 장(force field)의 특성을 말한다. 즉 절대값은 중력적·자기적 전하를 의미하며 기동값은 역학적 힘이며 가속값은 힘장의 세기이다
뉴턴의 세 가지 운동 공리 내지는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제 1법칙: 모든 물체는, 그것에 미치는 힘에 의해 상태의 변화가 야기되지 않는 한 정지 상태를 유지하거나 등속 직선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 쥐를 보면 잡으려는 고양이의 습성은 버릴 수 없는 일이듯이 관성의 법칙이란 외부에서 힘이 주어지지 않는 한 한 번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고,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해 있으려는 물리적인 성질이다.
제2법칙: 운동의 변화는 언제나 그에 미치는 동력에 비례하며, 그 힘이 미치는 직선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제 3법칙: 모든 작용에는 언제나 그와 동일한 반작용이 대립한다. 즉 두 물체 서로간에 미치는 상호 작용은 언제나 동일하며, 반대 방향을 향한다.
이 이론에 있어 필수적인 전제는, 물체의 운동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질점의 특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질량이다. 뉴턴에 의하면 질량이란 그 물체의 가법적(加法的) 특성으로서, 속도의 변화에 대한 그 물체의 저항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뉴턴이 말하는 보다 근본적인 힘의 기원은 무엇인가?
뉴턴은, 가해지는 힘에 관해 세 가지 다른 기원을 언급했다. 충격, 압력과 구심(중심)력이다. 중심력을 바로 뉴턴은 중력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중력이라는 원격 작용 개념은 너무나 부당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생명 없는 자연적 물질이 물질적이지 않는 어떤 것의 매개없이 상호 접촉도 없는 상태로 다른 물질에 작용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물체의 특성에 대해서 연장(延長)를 고려한 것이다. 운동이란 물질의 일부인 어느 물체가 그와 접촉하고 있으며 정지한 것으로 여겨지는 물체들의 근방으로부터 또 다른 물체들의 근방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뉴턴의 제 1공리는 다음 세 가지의 의문점을 낳았다.
첫째, 어떤 물체의 운동을 지지할 공간적 준거틀은 무엇인가?
둘째, 속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한 시간 측정 체계는 어떤 것인가?
셋째, 가해진 힘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증표는 무엇인가? 이다.
결국 뉴턴의 공리는, 운동 법칙을 통해서 그동안 암묵적으로 느끼고 주장해온, 시간에의 일정한 지속성과 공간 세계의 절대성을 재확인해 주려는 이론이었다.
제 2 공리에 있어 힘에 대한 개념도 또한 그러하다. 힘이 무엇이냐 하는 것보다도, 만약 어느 물체의 체계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않고 있다면 그 운동량의 합은 운동 내내 보존된다는 정의를 확인하기 위한 필요한 개념이 힘이다.
제 3공리를 실험적으로 결정짓기 위해서는 확실한 질량이 측정되어야 하는데, 뉴턴처럼 질량을 밀도와 부피의 곱으로 설명한다면 밀도를 측정하기 위해 무게와 구별되는 질량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뉴턴의 역학은 요컨대, 모든 변화는 운동으로 환원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절대 공간이나 절대 시간의 틀에서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지구에서 느끼는 고정된 좌표축과 다른 좌표축에서의 직선 운동이 일어나면 지구에서 보면 그것은 가속도 운동이 되고 이럴 경우에 그 운동을 설명해 줄 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이 뉴턴 역학의 한계이다.
뉴턴의 과학이 프랑스로 전파되면서 뉴턴의 과학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18세기에 뉴턴의 보편중력이론을 확증하려는 시도는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터져 나온 논쟁은 지구의 형태와 관련된 것이다. 당시 데카르트의 소용돌이이론에 의하면 지구는 대체로 구형이지만 적도지방이 극지방에 비해 보다 평평하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논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 일종의 국가적 논쟁이었다. 프랑스로 뉴턴 역학이 수용된 이후인 1732년 모페튀와 클레로는 데카르트의 주장이 아니라 뉴턴의 견해를 옹호하였고 이것이 프랑스 내에서 국가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1730년대를 통해 극지방과 적도지방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일련의 지구측정탐사를 계획했는데 이런 탐사 작업의 결과로 뉴턴의 이론이 다시 한번 정확하게 확증되었던 것이다.
달의 운동과 핼리혜성의 운동에 관한 것도 뉴턴 역학의 유효성을 둘러싸고 벌였던 대표적인 논쟁이었다. 1747년 클레로는 달의 불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뉴턴의 역제곱 항 이외에도 역 4승의 항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턴의 역제곱법칙의 유효성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자 파리, 베를린,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는 앞을 다투어 이와 연관된 문제를 현상금 경쟁(Prize competition)에 올렸다. 이 현상금 경쟁에는 장 달라베르, 오일러, 라그랑주 등 당대의 천재적인 학자들이 참가했다. 이 현상경쟁은 많은 탁월한 수학자들이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등용문의 역할도 하였는데 이를 통해 난해한 삼체문제 해결을 비롯한 다양한 천체역학 계산 테크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741년에 아카데미 회원이 된 달랑베르는 1743년 26세의 나이로 '달랑베르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는 '동역학'을 출판했다. 달랑베르의 원리란 뉴턴의 운동 제 2법칙을 변형한 것으로서 이 원리를 이용하면 동역학의 문제를 마치 정역학적 문제인 것처럼 변형시켜 일반적인 해법츨 구할 수 있다. 동역학 이외는 그는 유체역학에 대한 논의도 전개했으며 여기는 그는 편미분 방정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스위스 바젤 태생의 오일러는 베를린 아카데미와 페트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활동했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18세기에는 뉴턴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빛에 대한 입자론을 선호했지만 오일러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호이헨스의 파동설을 받아드렸던 사람이었다. 오일러 역시 다른 아카데미의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태양, 지구, 달 사이에 작용하는 삼체문제를 다루면서 달의 운동에 관한 더욱 완벽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오일러의 해석역학적 방법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라그랑주였다. 라그랑주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의 표면 모습의 위치가 약간씩 변화하는 달의 칭동(libration)에 관한 시론으로 1746년 파리 과학아카데미로부터 상을 받은 과학자였다. 프랑스혁명 직전인 1788년 라그랑주는 변분법을 이용해서 뉴턴 이해의 역학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해석역학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좌표계의 선택에서 독립된 일반화된 좌표를 이용해서 오늘날 고전 역학계를 위한 라그랑주 방정식이라고 부르는 해석학적인 역학방정식을 발전시켰다. 역학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 삼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페튀, 달랑베르, 오일러, 라그랑주 등 탁월한 수리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뉴턴의 고전 역학은 고도의 해석적인 도구를 갖춘 역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편 중력의 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발전했던 삼체문제에 관한 논의는 라플라스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르렀다. 라플라스는 1798년부터 1827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5권의 책으로 된 방대한 저작인 '천체역학'을 출판했다. 뉴턴 역학의 결정판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에서 라플라스는 모든 행성이 지니는 고유의 불규칙성은 뉴턴의 역제곱법칙을 유지한 채 장기적인 주기적 불규칙성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로써 뉴턴의 역제곱법칙은 그 유효성이 분명히 유지되었으며 태양계의 안정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뉴턴 역학이 지니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확고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뉴턴 역학을 바탕으로 천체역학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라플라스는 천체역학을 넘어선 문제에도 이 뉴턴주의를 확대, 적용하려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라플라스는 베르톨레와 함께 열, 빛, 전기, 자기, 모세관현상, 화학적 친화력 등의 다양한 현상들을 물질입자 내지 '무게가 없는 입자'들과 그것들 사이의 인력과 척력 같은 근거리 힘을 사용해서 수학적으로 설명해 내려는 웅대한 계획을 추진했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으로 불리게 되는 이 계획은 나폴레옹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나폴레옹은 과학을 프랑스 문화국민의 탁월성을 과시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으며 자기 자신도 수학,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는 물과 다른 유체의 흐름에 대한 지식이 요구했던 시대였다. 1752년 오일러는 유체역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1755년에 이르러 점성이 없는 유체의 운동을 나타내는 편미분방정식 체계를 세웠다. 그는 공기와 같은 압축성 유체와 물과 같은 비압축성 유체를 모두 다루었다, 그는 유체를 연속적이고 무한히 나눌 수 있는 매질로보고, 유체의 흐름을 유체를 구성하는 입자의 위치에 의존적인 연석 변량들인 속도, 밀도, 압력으로 설명했다.
물리학의 여러 분야가 하나하나 수학 법칙의 지배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푸리에는 열의 흐름을 나타내는 방정식을 발견하여 오늘날 푸리에 해석으로 알려진 새로운 유익한 방법으로 방정식을 풀었다. 주된 아이디어는 어떤 파동 형태도 훨씬 복잡한 사인곡선들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에서 기본적인 개념인, 힘을 받는 물질의 변형은 탄성방정식을 낳는다. 중력을 보다 깊게 해석하여 오늘날 라플라스와 푸아송을 기려 명명된 방정식을 낳았다. 동일한 방정식이 유체역학, 정전기학에도 나타나 오늘날 포텐셜이론으로 일반화 되었다. 포텐셜이론으로 수학자들은 타원구체의 만유인력 문제 등을 다루게 되었다. 이 문제는 대다수의 행성이 구체가 아니며 적도쪽으로 퍼진 타원구체이기 때문에 천체문제에서 중요하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엽은 고전 수리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들이 정립된 시기다. 또한 이 시기에 예외적으로 점정 유체의 흐름을 나타내는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과 후에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이 형성되었다. 맥스웰 방정식에서 라디오파가 발견되었다.
하나의 절대적인 패러다임이 나타난 것이다. 자연을 모델화하는 방법으로 미분방정식이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 18세기 수학자들은 오늘날에도 골치아픈 문제로 남아 있는 이론역학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방정식을 세우는 것과 그 방정식을 해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오일러는 말하기를, "우리가 유체의 운동에 관하여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역학 때문이 아니고, 운동의 원리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저버린 해석 자체이다."라고 했다. 18세기의 주된 업적은 물리현상을 모델로 한 방정식을 세운 것이다. 그러한 방정식을 푸는 데는 거의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문제가 해결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함께 낙관론이 끝없이 확산되었다. 미분방정식 패러다임의 성공은 인상적이고 적용이 광범위했다. 중요한 문제들을 포함한 많은 문제들이 풀릴 수 있는 방정식으로 표현되었다.
라그랑주는 1750년 오일러의 아이디어로부터 우아하고 탁월한 동역학을 개발했다. 두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가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첫째 아이디어가, '에너지 보존의 원리'다. 고전역학에는 두 가지 형태의 에너지가 있다. 포텐셜 에너지는 물체가 놓여 있는 위치에 따라 정해지는 에너지이다. 예를 들면 중력장 안에서 포텐셜 에너지는 높이에 비례한다. 언덕 위에 놓여 있는 물체는 계속 바닥에 놓여 있는 물체보다 많은 포텐셜 에너지를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언덕을 오르는 일이 강둑을 걷는 일보다 힘이 든다. 운동 에너지는 물체의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주어진다. 달려 도망가는 말을 천천히 가도록 하는 일은 말이 풀밭을 유유히 걷게 하는 일보다 훨씬 힘이 드는데, 그것은 운동 에너지의 차이 때문이다.
마찰이 없는 운동에서 이 두 형태의 에너지는 상호 전이될 수 있다. 갈릴레이가 약간 기운 피사의 탑에서 포탄을 떨어뜨릴 때, 떨어지면서 포텐셜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화되었다. 즉 위치가 낮아지면서 속도가 증가했다. 대자연은 정확한 경리사원이라서 원장에는 대차 균형이 맞다. 즉 포텐셜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의 합인 전체 에너지는 변화가 없다. 포탄이 난간에서 떨어지자 포텐셜 에너지는 잃고 운동 에너지는 얻는다. 따라서 속도는 증가된다. 뉴턴의 운동의 제2법칙은 정확히 위의 설명을 정량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라그랑주의 두 번째 아이디어는, '일반 좌표계'의 도입이다. 좌표는 각점에 한 조의 숫자를 결부시켜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수학자들은 다루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좌표를 이용하는 것이 편히함을 알았다. 라그랑주는 이와 같은 계산상 짐보따리를 수학이론에 결부시키는 점이 불편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임의의 어떤 좌표계를 생각하여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주어진 좌표계에 구애받지 않는 형태의 운동방정식을 유도했다. 라그랑주의 식은 뉴턴의 방정식에 비해 여러 가지 이점을 갖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학자 해밀턴은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고전 수리물리학에서 괄목한 만한 발전이 있었음에도, 자연의 세계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은 불모지로 남았다. 수학은 목성의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지만, 폭설에 휘날리는 눈송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없다. 수학은 비눗방울의 성장은 설명할 수 있지만 나무의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에펠탑에서 뛰어내린다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가 왜 먼저 뛰어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원칙적으로' 몇 가지 법칙이 우리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연소하고 있는 석탄 한 덩이의 온도나 가스의 압력과 같은 개념들은 실제로 알려진 법칙들에서 엄밀하게 유도된 첨단 이론으로도 파악할 수 없다. 수학자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 우주의 질서를 규명하고 원인을 알아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커다란 계의 상세한 움직임을 알 수 없을 때, 개략적인 평균 운동의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필요한 수학은 확률론과 통계학이다.
1657년 호이겐스는 확률론만을 다룬 책을 처음 출판했다. 학문 영역으로서의 확률은 1812년 라플라스의 '해석학적 확률론'에서 시작되었다. 라플라스에 따르면, 어떤 사건의 확률은 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의 수를 모든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의 수로 나눈 값이다. 이때 모든 경우의 수는 동일한 발생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확률의 실제적 수단은 통계학이다. 통계학의 많은 부분은 이른바 정규분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규분포는 종 모양의 곡선 분포이다. 정규분포를 처음에는 오차의 법칙이다고 불렀다. 18세기에 천체의 궤도를 계산하던 천문학자나 수학자들이 관측 오차의 영향을 고려한 데서 연유했다. 오차의 법칙은 관측된 값이 그들의 평균값 주위에 어떻게 분포하는가를 설명한다. 또한 주어진 크기의 오차가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케틀레(Adolphe Quetelet)에 의하여 이 오차의 법칙은 사회과학에 도입되었다. 그는 이 법칙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이 응용했다. 인체에 대한 여러 가지 측정, 범죄, 결혼, 자살 등 . 그의 사회역학은 라플라스의 천체역학에 상응하는 의미의 제목이다. 케틀레는 사회학 변수의 평균치의 일정성에서 일반적인 결론을 날카롭게 이끌어내어 '보통사람'이라는 흥미있는 개념을 세웠다. 케틀레는 인간의 조건을 사회동역학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조건을 공학도가 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다루려 했을 따름이다. 그것에 맞추어 진동을 진동시켜 안정되게 한다. 케틀레에게 보통사람은 수학적 추상적 개념과는 다른 그 이상의 이상적인 것이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던 대표적 라플라스주의자로는 비오, 푸아송 등을 들 수 있다. 비오는 1820년 사바르와 함께 흐르는 전류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장의 세기가 뉴턴의 중력의 법칙과 유사하게 도선으로부터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발견했던 과학자다. 라플라스와 라그랑주 밑에서 공부했으며 평생 그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푸아송도 역학분야의 표준이론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역학론'이라는 방대한 책을 출판한 당대의 대학자였다. 그는 천체역학에 관한 라플라스와 라그랑주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모세관현상과 정전기현상에 대한 이론적 작업을 전개했다. 1812년 확률분포에 관한 논의를 전개했던 라플라스와 마찬가지로 푸아송도 확률론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1837년 푸아송은 확률에 관한 책을 충판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표본의 수가 아주 많은 때 적용되는 푸아송의 분포에 관한 법칙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19세기 초 프랑스 과학을 지배하며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1815년 이후 10년 서서히 몰락해 갔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의 몰락과 함께 나타났던 과학 역사상의 변화로는 빛의 파동성 부각, 새로운 전자기학과 열역학의 부상, 콩트의 실증주의 부상 등을 들 수가 있다. 실험적 전통 속에서 발전하던 다양한 분야가 수학화되면서 라플라스식 뉴턴주의의 한계도 동시에 발현된 것이다. 당시에 라플라스 물리학에 대한 반역을 주도한 인물은 공교롭게도 푸리에, 뒬롱, 프티, 아라고, 프레넬 등과 같이 주로 에콜 프리테크니크에서 라플라스주의 물리학을 배웠던 젊은 사람들이었다.
힘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당시 과학의 고민거리였으며 이것은 열띤 논쟁을 유발시켰고 과학자들이 많은 다른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했다. 데카르트의 이론에서 힘은 신에 의해 '작동된' 물질의 소용돌이 운동이 유발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물질의 고유한 영적인 실체인 단자(monad)가 힘의 운반자로써 운동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뉴턴은 힘을 물질과 분리시켜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외부 원인으로 간주했다. 그들이 사용한 서로 다른 값의 물리적인 의미에 대한 어떠한 상세한 설명도 없이 일반적인 '힘'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힘'의 개념은 에너지 개념에 가까운 데 반해 뉴턴의 '힘'은 고유한 의미로서의 힘의 개념과 관련이 있었다.
논쟁은 중력의 기원에 대한 토론과 함께 시작되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중력의 원소적인(elemental) 특성을 거부했는데 그들은 이를 신의 작동시킨 것으로 보았으며 소용돌이 운동에 바탕을 둔 기계적 중력 이론을 발달시키려 했다. 반대로 정통 뉴턴주의자들은 중력을 물질의 내적 성질로 간주해, 중력이 지각이 없으며 심지어 불경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을 논박했다. 그들은 행성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원자 수준의 물질 사이에서 중력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도 중력 이론의 발전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했다. 힘은 물체의 운동의 외부적 원인이고 운동이 멈춘 뒤에는 물체에 남아 있지 않는 데 반해, 모든 물체와 입자는 무게를 가지므로 뉴턴의 이론은 불가피하게 오직 '무게 없는 물질'만이 힘의 운반자일 수 있다 결론으로 인도되었다. 모든 힘은 중력과 마찬가지로 먼 거리에서 작용한다.
과학자들은 힘의 '무게가 없는' 운반자(유체)는 물체의 기공에 위치한다고 믿었다. 어떤 힘은 바로 이러한 유체와 일반적으로 무게가 있는 물질의 입자 사이에서 작용했는데 이러한 힘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이 연구는 물리학자들이 우주 구조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협동할 때 했던 것과는 반대로 힘의 문제가 그들 사이에 불일치를 나타내는 데 영향을 끼쳤다. 급속한 기술의 진보는 다양한 힘에 대한 지식을 요구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개별 현상, 즉 상호 관련이 없는 실험적 사실과 특별한 의존 관계의 집합에 대한 연구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베이컨의 귀납법은 추론보다는 사실의 관찰을 옹호했고, 이는 뉴턴의 '나는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으며 또한 유행시켰다. 그 단점 때문에 데카르트주의 물리학을 거부할 때 뉴턴주의자들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도 팽개쳐 버렸다. 즉 세계의 물질적 완결성, 운동 생성과 소멸의 불가능, 자연 현상의 내적 연관, 비록 기계적일지라도 어떤 운동 형태의 다른 형태로의 전환 등에 관한 생각도 함께 거부한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데카르트주의자와 뉴턴주의자 사이에 중간에 위치에 둘 수 있다.
이집트학 학자 , 행정가, 수리물리학자인 푸리에는 1822년 '열 해석론'을 집필한 과학자였다. 이 책에서 그는 칼로릭 이론과 훗날 푸리에 급수로 알려지게 되는 무한수열 분석방법을 사용해서 고체에서 열이 전도되는 이론을 정립했다. 1819년 프티와 함께 원자량을 걸정하는 데 매우 유용한 비열법칙을 발견한 클롱도 뉴턴의 냉각이론이 지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라플라스 프로그램에 비판을 가했다. 프레넬은 영국의 토마스 영과 함께 빛에 대한 파동론을 전개하여 광학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라고도 프레넬의 파동이론을 옹호하였고 프레넬과 함께 편광빛의 간섭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여 편광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19세기 초 간섭현상은 빛의 입자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었기 때문에 19세기를 거치면서 뉴턴의 입자론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빛의 파동론이 물리학계를 지배하게 된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이 쇠퇴하자, 비오는 잠시 파리 과학계에서 은퇴하였다가 1835년에 편광면의 회전현상을 다루면서 빛에 관한 뉴턴의 해석에서 멀어졌다. 마지막까지 라플라스 프로그램을 옹호한 철저한 라플라스주의자는 푸아송이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과학계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고 푸아송의 몰락과 함께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완전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몰락해 갔지만 19세기 초 10여 년에 걸쳐 집요하게 추진된 이 프로그램이 19세기 과학의 진행에 미친 영향을 엄청나게 컸다. 이 프로그램이 주진되는 동안 고전 역학체계는 그 발전이 절정에 달하였고 광학, 열역학, 전자기학, 등 그동안 경험에 입각한 실험과학의 영역에 있는 분야가 급속도로 수학화·이론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라플라스 프로그램은 20세기에 들어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이론 물리학이 출현하는데 확고한 초석이 되었다.
한편 아일랜드에서는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전통이 새롭게 부당하던 광학과 결합하여 새로운 동역학체계가 발전했다. 우선 라플라스의 천체역에 탐닉했던 아일랜드 수리물리학자인 해밀턴은 동역학과 광학을 통일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논의했다. 그는 1820년대에서 1830대에 이르는 작업을 통해 페르마(1601∼1665)에 의해 논의된 '최단시간의 원리'를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뉴턴 역학과 광학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데 이바지했다. 더 나아가 해밀턴은 프레넬이 시작한 복굴절에 대한 논의를 더욱 발전시켰으며 일반동역학에 관한 논의를 통해 위치와 운동량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동역학 방정식도 도출해 냈다. 하지만 해밀턴의 정준방정식(canonical equation)은 그 해를 도출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야코비는 해밀턴의 방정식과 같은 형태의 방정식을 더욱 일반적이고 유용한 형태로 발전시켜 많는 사람들은 이 방정식을 역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본적인 방정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해멜턴-야코비 방정식이라고 불리는 이 방정식은 훗날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출현하게 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해밀턴의 동역학 논의에서 위치와 운동량의 이중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이 관계는 1세기가 지난 뒤에 양자역학이 출현되면서 그 숨은 진가가 발휘되어 앙자역학의 기본구조를 이해하는 기본관계식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1854년 6월 10일 새로운 기하학자가 탄생하였다. 고차원 이론은 게오르그 베른하르트 리만에 의해 독일 괴팅겐 대학의 교수들 앞에서 수행한 강연에서 소개되었다. 모든 기하 도형을 2차원 혹은 3차원 그림으로 나타내는 유클리드의 고전 기하학은 새로운 리만 기하학에 의해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유클리드 3차원 공간은 평평하다. 이것은 공간이 구의 표면이 구의 표면처럼 휘어져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다. 2천 년이 넘도록 유럽의 대성당들은 이 기하 원리에 따라 축조되었다. 그러나 자연의 풍부한 다양성과 비교해 볼 때, 유클리스 기하학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자연 세계 그 어디에도 평평하고 이상화된 유클리드 도형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줄지은 산들, 대양의 파도, 구름, 그리고 소용돌이 그 어느 것도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아닌, 무한히 다양하고 굽고 뒤틀린 곡선형의 사물들이다. 점은 전혀 차원을 갖지 않음이 명백하다고 유클리드는 말했다. 선은 1차원인 길이를 갖는다. 면은 2차원의 길이와 폭을 갖는다. 입방체는 3차원으로 길이, 폭, 그리고 높이를 갖는다. 그리고는 여기서 멈춘다. 그 어떤 것도 4차원을 갖지 않는다. 이런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그는 4차원 공간 차원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가우스가 자신의 제자인 리만에게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구두 발표를 준비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나왔다. 그 당시 그는 또 한 교수 빌렐름 베버가 환상적인 새로운 연구 분야인 전기학 실험을 수행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물론 전기는 번개와 스파크 형태로 옛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오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 이 현상은 물리 연구의 관심이 초점이 되었다. 특히 나침반 근처를 지나는 전류가 그 나침반 바늘을 돌리는 것을 발견하여 물리학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역으로, 막대자석을 전선에 통과시키면 그 전선에 전류를 유도할 수 있다. 이것을 패러데이의 법칙이라 부른다. 리만이 볼 때, 이 현상은 전지와 자기는 동일한 힘이 다르게 표출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리만은 이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여, 자신이 전기와 자기를 통합하는 수학적 표현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결국 힘의 의미에 대한 놀랍고도 새로운 해석을 발전시켰다. 뉴턴 이후 줄곧, 과학자들은 힘을 두 개의 떨어진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순간적 상호작용으로 간주해 왔다. 물리학자들은 이 원리를 원거리 작용(action-at-a-distance), 혹은 원격작용이라 부르는데, 이 말은 한 물체가 멀리 떨어진 물체의 운동에 순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턴 역학은 행성의 운동을 잘 묘사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원거리 작용력에 의하면 어떤 물체는 다른 물체와 직접 접촉 없이도 그 물체의 운동 상태를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하므로, 수세기 지남에 따라 비판가들은 이러한 원거리 작용력은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력 이론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뉴턴이었으나, 그도 역시 이것을 궁극적으로 만족스러운 곳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원격작용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이 개념에 대해 '너무 부당해서 철학적 문제에 관해 사고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결코 빠져들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없는 자연적 물질이 물질적이지 않는 어떤 것의 매개없이 상호 접촉도 없는 상태로 다른 물질에 작용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뉴턴이 분명 원했던 것, 그리고 데카르트나 그의 후계자들이 명확히 보여 준 바는 단지 접촉 작용에 대응하는 힘 함수만을 채택한 역학 이론이었다. 따라서 만일 원격 작용에 대한 뉴턴의 불만족을 심각히 고려한다면 결국 진정으로 역학적이라 할 수 있는 설명에는 특별한 제약이 가해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 함수는 전적으로 보편 중력 상수, 거리, 질량 계수들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접촉 작용에 대한 힘 함수보다 여러 유형의 매개 변수들을 활용하는 데 훨씬 경제적이다. 왜냐하면 후자에는 보통 공간적 변수 및 질량 계수뿐 아니라 탄성, 마찰, 점성의 계수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촉 작용에 의한 설명만을 진정한 역학적 설명으로 제한하려는 사람들은 때로 물질들 사이의 다양한 특정 차이들을(이것이 접촉 작용의 힘 함수에서라면 위와 같은 다양한 특수 계수에 의해 나타나는데) 그 자체 전적으로 해당 물질들의 미시 구조상의 시공간적인 차이를 통해(아니면 기껏해야 질량 분포상의 차이와 더불어) 궁극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바로 이와 같은 극단적 이상의 표현이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물체의 개념은 무게 ,경도(硬度), 색깔 등등에 놓여 있지 않다. 단지 그 연장(延長)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전우주에는 단 하나의 물질만이 존재할 뿐이며 이는 그것이 연장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물질상의 모든 변화, 그 형태의 다양성은 운동에 기인한다. 운동이란 물질의 일부인 어느 물체가, 그와 접촉하고 있으며, 정지한 것으로 여겨지는 물체들의 근방으로부터 또 다른 물체들의 근방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리만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물리 묘사법을 발전시켰다. 가우스의 '책벌레'처럼 리만은 종이 위에 사는 2 차원 생물을 가정하였다. 하지만 가우스의 경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 책벌레는 쭈글쭈글하게 주름잡힌 종이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 책벌레는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리만은 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여전히 평평한 것으로 결론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몸도 역시 주름이 잡혀 있을 것이므로, 이 책벌레들은 결코 그들의 세계가 찌그러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벌레들이 주름잡힌 종이를 가로 질러 움직이고자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직선을 따라 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전에 느껴 본 적이 없는 신비로운 '힘'을 느낄 것이라고 리만은 주장했다. 그들은 그 종이 위의 주름을 넘어가려고 할 때마다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밀려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리만은 200년 동안 유지해 온 뉴턴과의 관계를 깨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다. 원거리 작용 원리를 추방하였다. 리만에 있어 힘은 기하의 결과였다.
그 다음 리만은 2차원 공간 대신 4차원 공간에서 주름잡혀 있는 우리 자신의 3차원 세계로 확장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주가 뒤틀려 있는지 어떤지 분명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선을 따라 걸어가려면 무언가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즉시 깨달을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이리저리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술주정꾼처럼 걷게 될 것이다.
리만은 전기, 자기, 그리고 중력은 우리의 3차원 우주가 보이지 않는 4차원에서 주름잡혀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힘'은 그 자체로서는 독립적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단지 기하구조가 뒤틀려 생긴 외형적 효과일 뿐이다. 제 4공간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리만은 '자연법칙은 고차원에서 표현하면 간단히 나타난다.'라는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 언어를 발전시키는 일에 착수하였다.
리만은 그리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수학적 발견 중의 하나인,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Pythagorean Theorem)에서 시작했다. 이 정리는 직각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정리에 따르면, 직각에 면한 짧은 두 변의 제곱의 합은 긴 변의 제곱과 같다. 즉 a와 b가 짧은 변의 길이이고, c가 사변의 길이라면,이다. 물론 이 피타고라스 정리는 모든 건축의 기초가 된다. 우리 지구상의 모든 건출물은 이 정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3차원 공간에 대해서도, 이 정리는 쉽게 일반화될 수 있다. 즉 육면체의 인접한 세 변의 제곱의 합은 대각선의 제곱의 합과 같다. 그래서 만약 a, b, 그리고 c가 육면체의 세 변의 길이이고 d는 그 대각선 길이라면, a제곱+b제곱+c제곱=d제곱 이다.
다시 이를 N 차원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N 차원으로 이루어진 다면체를 상상해 보자. 만약 a, b, c, … 등은 '고차원 다면체'의 변의 길이이고 z는 그 대각선의 길이라면, a제곱+b제곱+c제곱+d제곱+...=z제곱 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우리의 두뇌가 N 차원 다면체를 시각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변들이 만족하는 공식을 쓰는 것은 쉬운일이란 점이다.
리만은 그 다음 이 방정식들을 임의 차원의 공간으로 일반화하였다. 이 공간들은 평면일 수도 있고 곡면일 수도 있다. 만약 평면이라면 일반적인 유클리드 공리들이 성립한다. 가령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거리는 직선이라든지, 평행선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따위. 그러나 리만은 구의 표면에서처럼 '양의 곡률(positive curvayure)'을 갖는 표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양의 곡률을 갖는 표면 위에서는 평행선은 항상 서로 만나게 되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클 수도 있다. 또한 말의 안장 모양이나 트럼펫 모양의 표면처럼 '음의 곡률'을 갖는 표면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표면 위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보다 작다. 한 직선과 그 직선 밖의 한 점이 주어지면 그 점을 통과하는 평생선을 무한히 많이 그릴을 수 있다. 리만의 목적은 어떤 복잡한 표면이든 마음대로 묘사할 수 있는 새로운 대상체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위해 필연적으로 패러데이의 장 개념(Faraday's concept of the field)을 다시 도입할 수 밖에 없었다.
패러데이의 장은 농부가 경작하는 들판과 같다. 이 들판은 2차원 공간 영역을 차지한다. 패러데이의 장은 3차원 공간 영역을 차지하며, 공간상의 임의 점에 자기력 혹은 전기력을 묘사하는 수들의 집합을 할당한다. 리만의 아이디어는 공간의 모든 점에, 그 공간이 얼마나 굽었는지 혹은 휘었는지를 묘사하는 수들의 집합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2차원 표면에 대해서, 리만은 모든 점에서 그 표면의 휨 정도를 완전히 묘사하는 3개의 수 집합을 도입하였다. 리만은 4차원 공간에 대해서 그 성질을 완전히 묘사하기 위해서는 각 점에 대해 열 개의 수 집합이 필요함을 발견했다. 그 공간이 아무리 주름이 심하게 잡히고 찌그러져 있어도, 각 점에 대해 이 열 개의 수 집합만 주어지면 그 공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푸는 데 족하다.(4차원 공간의 각 점에 대해 계량 텐서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16개의 수가 필요하다. 이들 중에 6개는 실제는 불필요하다) 오늘날 이 수 집합은 리만 계량 텐스(metric tensor)로 불린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계량 텐서의 값이 크면 클수록 그 종이의 주름진 정도가 더 커진다. 종이가 어떻게 주름져 있든 간에 계량 텐서는 임의의 점에서 그 곡률을 측정하는 간단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만약 주름진 종이를 완전히 펴면 다시 피타고라스 공식을 얻게 된다. 리만의 계량 텐서는 임의의 곡률과 임의의 차원을 갖는 공간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도구를 구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모든 공간은 완전 정의가 가능하고 그리고 자기모순이 없음을 발견했다.
그 리만의 기하학은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도입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제 4차원으로 도입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생각해 온 시간에 대한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간이 4차원이라면 공간을 시간으로 혹은 그 역으로 바꾸는 화전이 가능하다. 이 4차원 화전들이 바로 특수상대론에서 요구되는 공간과 시간의 찌그러뜨림이다. 다시 말해 공간과 시간은 상대론에 의해 지배되는 특수한 방법으로 혼합되어 있다.
리만은 실제 공간의 본질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리만의 사고의 요점은 수학자 클리퍼스에 의해서 다소 발전되었다. 그는 물리적 현상은 공간의 곡률 변화로부터 생긴다고 믿었다. 곡률은 위치에 따라서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 변하는데, 후자는 물질의 운동의 결과이다.
맥스웰 이후 그들은 물리적 실체를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편미분 방정식의 지배를 받는 연속의 장(場)으로 파악하였다. 실체의 개념에 대한 이러한 변화는 뉴턴 이후의 물리학에 가져온 가장 심하고 유익한 변화이다.
1893년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에 대한 연구'를 출판했다. 패러데이는 이 책이 전기장과 자기장에 대한 맥스웰의 핵심적 주장을 담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맥스웰은 에테르나 공간의 진정한 속성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톱다운(top down)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의 이론은 당시까지 명확하지 않았던 대전이나 전류 등 소우주적 개념을 버리고 서로 간에 그리고 이동하면서 통하는 매개체 상호작용하는 장(field)들의 존재를 가정하는 대우주 접근법이었다. 맥스웰에게 공간은 탄성을 가진 연속체였고 그리하여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운동을 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탄성 덕분에 매개체 자체에 운동 에너지 혹은 잠재적 에너지가 저장되었다. 그는 해밀턴 사원수 표기와 데카르트 좌표(Cartesian equivalents)를 통해 자신의 방정식을 만들어내면서 퍼텐셜 이론과 미분 기하학을 풍부하게 활용했다. 맥스웰의 방정식을 오늘날 사용되는 벡터 형태로 바꾼 것은 올리버 헤비사이드였다.
맥스웰의 이론과 발표는 즉각 성공을 거두었다. 톰슨은 뉴턴이 중력을 소개했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맥스웰의 장이 이론을 두고 '신비주의'라고까지 하였다. 공간의 본질이 혼란스럽게 다뤄지는 시기였고 그리하여 많은 물리학자들은 자기 이론에 맞춰 맥스웰의 방정식을 변화시켰다. 1861년 맥스웰은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거의 유사하다는 계산을 해냈고 빛을 전자기 스펙트럼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888년 하인리히 헤르츠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맥스웰 이론이 옳다는 점을 밝혔다. 동시에 알베르트 마이켈슨과 에드워드 몰리의 실험은 만약 에테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통과하는 행성 혹은 빛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보였다. 원거리 운동에 대한 해묵은 반감이 실험적 증명 앞에 손을 들고 만 셈이었다. 공간과 시간 자체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주목받지 못하는 이론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프랑스의 수학자며,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푸앵카레가 그 사람이다. 그는 '닫힌 체계의 역학'으로 알려진 뉴턴 물리학의 골자 분야에서 말썽 많은 한 발견을 알린 것이다. 닫힌 계(系)란 외부의 형향으로부터 몇몇의 상호 작용하는 물체들로 이루어진 계를 말한다.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이런 계는 완전히 규칙적이며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찰이나 공기 저항이 없는 진공 속의 한 단진자는 그 에너지를 보존하여 영원히 진동 운동을 할 수 있다. 이 진자의 에너지는 엔트로피에 소멸, 즉 에너지를 진자를 둘러싼 주변에 빼앗기므로 소진되는 일에 무관한다.
이런 단진자나 태양계의 행성들의 운동을 섭동시키는 어떠한 불규칙성과 혼동는, 고전 과학자에게 있어서 외부에서 우연적으로 기인한다고 보았다. 외부 영향이 차단된다는, 따라서 진자와 행성들의 규칙적인 운동은 영속해야 한다고 믿었다.
푸앵카레는 태양계의 안정성에 대해 독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이런 안일한 자연관을 떨쳐 내었다.
오직 두 개의 물체로만 되어 있는, 가령 태양과 지구 또는 지구와 달과 같은 계에 대해서 뉴턴의 공식들은 정확히 풀릴 수 있다. 지구를 공전하는 달의 궤도를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평범한 2체 문제가 이상적이려면 태양이나 다른 행성들의 영향을 모두 무시해야 한다. 그러나 3체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정확히 풀 수가 없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일련의 근사를 취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서, 화성이나 목성 궤도 사이에 산재하는 소행성들의 궤도에 태양과 목성의 중력 효과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흔히 섭동(攝動) 이론이라는 방법을 써야 한다. 수학적으로 푸앵카레가 고심했던 다체(many-body) 문제는 비선형(非線型)이다. 푸앵카레가 발견한 사실은, 곧 어떤 궤도들은 매우 작은 섭동을 가해 주기만 해도 무질서하게 심지어는 혼돈한 양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제 3의 물체가 주는 아주 작은 중력적 효과는 행성을 그 궤도상에서 일렁거리고 술취한 듯이 흔들거리게 하며 심지어는 태양계를 이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혼돈, 혹은 비선형계의 요인인 혼돈의 잠재성이다. 그는 어떻게 간단한 계가 복잡한 계로 터져 나올 수 있는가를 가는 알아챈 것이다.
막스 플랑크는 푸앵카레의 발견이 있은 뒤 몇 해 후, 에너지는 연속체가 아니라 작은 덩어리 즉 양자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이후 5년 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의 상대론의 첫 논문을 발표했다. 이로서 뉴턴식의 체제는 여러 각도에서 공격을 받는다.
현대 과학에 들어서서 빛과 물질을 상호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빛은 전자기파다. 이것은 풀려난 에너지다. 즉 물질 형태를 취하지 않는 에너지다. 그러므로 빛이 안정된 운동상태에 가두어졌을 때, 곧 결정화 되었을 때, 그것을 물질이라고 한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물질은 결국 에너지의 소용돌이다 단 자유로운 상태에서 곧 흩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