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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4. 물리학의 등장 (1)성경신학-

4. 물리학의 등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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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물리학의 등장 (1)

차라리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 것이다. 옛날 헬라 철학에서부터 신비로 보이는 영역에 대한 합리적 탐구는 있었다. 연속/불연속의 문제를 둘러싼 철학적 문제들이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식화된 것은 엘레아 학파에 의해서였다. 존재의 절대적인 연속성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와 스승의 주장을 페러독스의 형태로 증명하고자 한 제논이 이 문제를 선명한 형태로 정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einai' 동사가 두 가지 용법('있다'와 '…이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로부터 무(無)의 존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도 있음을 나타내는 동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는 일종의 환상이며 오직 있음만이 실재인 것이다. 무는 불연속을 야기시킨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불연속을 거부했으며, 그 논리적 결과로 불연속이 다(多)를 낳고 다와 불연속이 전제되어야 운동이 성립하므로 다와 운동이 거부되는 것이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확인하는 다와 불연속을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논은 패러독스(모순)의 형태로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만일 운동이 존재한다면 필연적으로 한 모순이 발생한다'는 논법(귀류법)을 사용해서 운동이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제논의 논증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예에 잘 드러나듯이, 무한분할(無限分割)을 전제로 한다. 즉 무한분활은 연속성을 전제하므로 제논의 논증은 연속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제논은 연속성은 무한(아페이론)을 낳으며 그 무한이 운동을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엘레아 학파는 운동을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자연철학을 좌절에 빠지게 만들었으나 그것은 또한 앞으로의 자연철학이 나아갈 기본적인 방향을 정초해준 것이기도 했다. 이 기본적인 방행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 할 수 있다.

(1)운동이 성립하려면 다와 불연속이 정립되어야 한다.
(2)파르메니데스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는 불연속인 어떤 존재들이며 오히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운동)은 연속적이다.
(3)현상의 연속성과 복잡성은 이러한 불연속적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되고 얽혀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연철학의 작업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1)실제, 즉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요소들은 무엇인가?
(2)이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어 우리가 감각적으로 확인하는 현실(나타나 있는 실제), 즉 운동을 형성하는가?

초기 자연철학과 아테네 철학의 차이는 세계가 세계화되는 근원적인 양태의 변화를 보여 준다. 초기 자연철학은 세계가 인간 저편의 실재로서 생기(生起)하고 현상하는 원초적인 경험을 드러낸다. 아테네 철학은, 문화 세계 속에서 개념이 정립되고 논리 체계가 형성된 뒤 , 이제 문제 체계 속에 출현되어야 할 인식 질료로 화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초기 철학자들에게 드러난 감성적 언표들과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드러난 감성적 언표들은 제각기 다른 지평에서 담론화된 것이다.
다음으로 비교 존재론은 한 담론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이 관계맺는 방식을 드러낸다. 세계는 일차적으로 감성적 언표로서 주어진다. 우리의 감성적 기관에 와 닿는 감성적 언표들은 우리의 모든 행위에 필요 불가결한 상관자이다. 그러나 세계는 또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스스로를 숨긴다. 그래서 인간이 창출하는 담론은 드러난 것들을 가지고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추적한다. 형사는 몇 가지의 물증을 가지고서 행위의 가능한 계열들을 상상해 본다. 지질학자는 지표면에 드러난 징표들을 추적해 광맥을 드러낸다. 도박사는 드러난 패를 보고서 드러나지 않은 패를 읽어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러한 관계는 세계를 전체로서 탐구하려는 자연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자연발생적 언표들의 총합으로서의 자연과 이 현상들을 주관하는 이법(理法)으로서의 자연이 구분된다. 담론학은 각 담론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를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은 인식론적 작업과 나란히 간다. 감성적 언표들이 우리 몸의 상관자라면 보이지 않는 자연의 내면을 우리 이성의 상관자이다. 우리의 이성은 이 보이지 않는 이법에 상응하는 개념적 언표들을 산출해 낸다. 비교 존재론은 각 담론에서 이 감성적 언표와 개념적 언표가 맺는 관계를 추적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있어 시간이란 감당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멈춰진 상황을 생각했다. 플라톤의 경우, 신화는 특히 기원의 문제 (증인이 없는 사건, 예를 들면 티마이오스에 있는 세계의 창조)와 궁극 목적의 문제(인간의 궁극적이고 초자연적인 운명)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지성이나 로고스의 일반적인 규칙으로써는 시간성이나 실존적인 역사성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라면 이제 눈에 띄는 것은 사물이었다. 사물은 곧장 숫자로 대치되어 추상화된다. 우주의 창조와 생성을 다루든 과학이 되려면 수학화되어야 한다. 수학적인 우주가 결코 신화적인 우주와 다르지 않는 법이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간단한 수학적 공식으로 환원하는 작업이 과학이다. 운동의 이유가 신에 의한 것인지 음양(陰陽)에 의한 것인지는 과학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은 간단한 것에 만족한다. 수학적 단순화만 얻을 수 있다면 우주의 중심을 지구가 되었든 태양이 되었든 어쨌든 주도권은 인간이 쥐게 된다.

그리스 원자론자들은 모든 물질이 크기와 모양 등이 고정된 원자들로 이루어졌다고 봄으로써 변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겠끔 하였다. 즉 원자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원자들이 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결합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 원소 자체의 변성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서양사에서 물질주의의 흐름을 야기 했다.

B.C490-479사 2차에 걸친 페르시야와의 전쟁을 승리라고 난 뒤 그리슨 황금 시대를 누리게 된다. 여기에 대표적인 자연철학자는 단연 플라톤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이상(理想)이라는 불변하는 최고의 가치관이 있지만 속세에서는 변화무쌍한 세태에 순응하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가변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한 세계, 즉 신의 세계로 승화될 수 있고 후자는 불완전한 세계, 즉 인간 세계이며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불변하는 내면적 요인과 가변하는 외면적 요인이 혼재하며 인간이 형성하는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로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동시에 이런 관계는 마치 몸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아 사상은 자연을 인식하는데 적용했다. 이것이 다면체 논리이다. 자연에는 땅, 물, 공기, 불이라는 4원소가 있는데 이것을 기하학적 다면체와 연계시켜 설명했다. 자연에는 기하학적으로 정립될 수 있는 불변의 요소들이 집합 원리에 따라 변화를 이르킨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천문학을 수학과 결합시켰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적인 방식에 의한 천문학이 아니었다. 별들은 사실적인 차원이 아니라 당위적인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이전의 일반적인 견해는 천체들, 특히 태양, 달, 그리고 유성들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체(태양, 달, 유성들)는 하늘을 돌아다니는(planein) 공모양의 불덩이라고 한 이오니아 철학자들을 구식의 사람들은 불경하다고 분개하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이 상황은 구제화시켰으나, 과학에는 심각한 희생이 수반되었다. 즉 그는 이미 존재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성들은 그들 사이에 천체들의 들리지 않는 하모니를 이루는, 완벽하고 순환적인 운동의 불변의 규칙성으로 그들의 신성(神性)을 보인다고 주장함으로써 수학과 신학을 연결시켰던 것이다.

18세기 중엽까지에도 수학과 신학의 결합은 정당해 보였는데 이는 모두다 유클리드 기하학 때문이다. 세상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반드시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고유의 직관을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 칸트조차 이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유클리드 기하로부터 실질적인 이탈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제기되었는데 이는 오랜 기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유크리드 기하가 논리적 필연성은 결코 아니지만, 이 기하학이 아주 정확하게 (딱 일치하지는 않지만) 실제 물리 공간의 구조에 적용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는 관찰된 사실이다. 이것은 우아하고 논리적인 순수 수학이기도 하다.

19세기의 수학자들에게- 물론 오늘날의 수학자에게도 마찬가지지만- 기하학의 역할을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도인에게, 특히 유독소스에게서 '실수(實數)'란 물리 공간의 기하로부터 추출되는 것이었다. 현재의 사람들은 실수가 기하보다 논리적 차원에서 더 원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하여 수의 개념으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기하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중심 아이디어는 17세기 페르마와 데카르트에 의해 소개된 좌표 기하(coordinate geomatry)이다. 좌표계는 다른 형태의 기하를 정의하는데 사용될수 있다. 이러한 기하는 모두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 공간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리적 기하는 경험을 이상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무한히 크거나 작은 크기를 바깥늘림 방법 [extrapolation: 외삽법]으로 추정하는 것처럼. 그러나 현재의 실험 결과는 매우 정밀하여 우리의 경험적 기하가 실제로 유클리드의 이상과는 다르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값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 내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수학화 시도가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플라톤에 의해 제시된 철학적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360 BC. 이는 유클리드의 유명한 기하학 저서 [원소(Element)]가 나오기 약 50 년 전의 일이다)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순수 기하학의 객체, 즉 직선. 원, 삼각형, 평면 등은 실세계 물체로는 단지 비슷하게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수학적으로 정확한 순수 기하학의 객체들은 실은 다른 세계, 즉 수학적 개념에 대한 플라톤의 이상 세계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플라톤 세계는 구체적인 물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것들로만 구성된다. 이 세계는 보통의 물리적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대신 지능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수학적 진리를 숙고하고, 수학적 유추와 통찰력을 사용하여 그 진리를 느낄 때마다 그의 마음이 플라톤 세계와 접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상 세계는 독특한 것으로서 우리가 외부로 경험하는 물질 세계보다 더욱 완벽하면서도 실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순수 유클리드 기하의 대상들이 사고를 통하여 연구될 수 있고, 이 이상체로부터 많은 성질을 알아 낼 수는 있지만, 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실세계가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아주 미약한 사실들을 정확히 예측하였음이 분명하다. 즉 수학은 그 자체로서만 연구되고 이해되어야 하며 그것이 실제 경험의 물체에 대하여 완전히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또 한편 실제 외부 세계의 작동 원리는 궁극적으로 정확한 수학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플라톤의 이상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능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인간사로부터 모든 변화를 추방하고자 했던 것처럼 천체에서의 어떤 변화도 추방시켰고 인간의 최고의 의무는 영원한 존재를 생각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불멸성의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과학이 신앙에 제기한 도전을 철회시켰다. 그는 천체들의 완벽함을 가정함으로써 이미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표명된 운동하는 것은 지구 자신이라는 관념을 질식시켜 버렸다. 따라서 플라톤은 그의 훌륭한 라이벌이자 후계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2천년 동안 천체들의 실재 운동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정확한 물리학의 가능성을 억제하였다.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형상철학으로 처리했다.
형상철학은, 이 세계의 참모습은 그 자체는 변하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순수한 존재들, 즉 형상(idea)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그 골격으로 한다. 그런데 이 형상들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형상으로만 되어 있지 않고 형상과 질료가 같이 만들어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질료/형상의 이원적 구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있어 철학이란 이 질료와 섞여 있는 형상을 순수하게 정련해서 드러내는 것이 된다. 즉 질료는 무한의 성격을 지니며 이 무한적인 성격이 형상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못하도록 만듦으로써 이 세계를 운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질료적인 차원의 질서는 혼동스럽고 유동적인 흐름의 세계이지만 이 질료의 질서가 형상의 질서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비로소 우주는 질서를 지니게 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러한 질료-형상설의 구도에 있어 질료는 연속성의 성질을, 형상은 불연속성의 성질을 부여받게 된다. 질료는 하나의 흐름이며 어떠한 극한도 지니지 않는 무한의 세계이다. 이러한 질료가 어떤 우주적 질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형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즉 질료에 어떤 극한이 부여됨으로써 시작과 끝이 있는 구체적 사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상은 질료에 극한 부여할 수 있어야 하며 무한을 테두리 지울 수 있는 불연속을 그 필수적인 속성으로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연속을 찾아내는 것이 형상철학의 중요한 작업이다. 예컨대 사람의 모양, 얼굴, 색깔 등을 구분할 수 있고 그의 성격 등 이보다 더 중요한 형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에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 즉 분석의 작업이라야말로 서구 과학적 합리주의 사상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고찰하기를 거부함로써 이오니아학파와 명백히 결별하였다. 세계는 항상 현재의 상태와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의 현재의 모습이 이 세계가 존재하는 합리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창조도 필요없다. 이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천주교의 철학적 바탕으로 수용되었을 때 약간 곤란한 것이었지만 태초의 불시의 창조, 종말에 불시의 파멸을 도입하고 그 중간의 세계는 지금 상태와 같게 둠으로써 쉽게 극복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입한 '힘'의 정의가 많은 잘못된 결론들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힘이 '0'이 되면 그 때의 속도는 '0'이 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과 모순된다. 활에서 쏘아진 화살은 활시위의 힘이 더 이상 화살에 작용하지 않는데도 날아간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궁극적 관심은 환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의 절정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을 넘어 신에게로 연구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필로라우스의 학설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내부에 세 가지 영혼 또는 정신, 즉 식물정신, 동물정신, 합리적 정신 또는 이성(Nous)을 가지고 있다.

각 정신의 목적은 자체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식물 정신은 성장을, 동물 정신은 운동을, 합리적 정신은 사색을 추구한다. 합리적 정신의 완전성은 전체 우주의 부동의 동자이며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중심이지 경계인 신만이 할 수 있는 더욱 완전한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열정과 사랑은 상향적 일 수 밖에 없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 대하여,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인간이 신에 대하여 그런 것처럼, "우리는 가장 고상한 것을 보았을 때 반드시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등급에 대한 사랑은 요구되지 않는다. 중세의 철학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를 경모하게 하고 그의 철학과 성경의 창조설 간의 모순을 간과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 신 중심적 결론이었다.

그런데 중세 때의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의 차용은 중세 사회를 합리적으로 설명 하기 위함이었다.
중세시대에 있어 사회의 변화는 경제적으로 볼 때에 도시가 시골을 지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봉건제도는 이러한 서로의 독립을 가능하게 하였고 노예의 부재로 인하여 고전적 형태의 공장이 생기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새로운 발명과 더불어 산업은 농촌쪽으로 퍼져났다. 특히 방앗간이 주요한 동력이 되면서 더욱 두드려졌는데 방앗간은 물살 빠른 강과 바람 부는 언덕에 설치되면서 생산을 늘려나갔다. 채광과 제련도 분산될 수 박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언급된 만성적 노동력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고 기계의 발명을 촉진시켰다. 또한 새로운 발명에 의한 도시수공업 조합원의 해고의 부담은 이들이 시골에 내려감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상인들의 후원을 받는 왕이나 부유한 공화국만이 금속 자원과 그것을 대포로 만드는 기술을 획득 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이 토지에 의존하고 있는 귀족들의 독립성을 그들의 성이 포탄에 의해 부서졌던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지위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화약이 갖는 의의는 컸다. 전쟁에 있어 화약이 사용되면서부터 화약의 개발은 곧 민족 국가의 승리였으며 봉건적 질서 붕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화약이 전쟁이 끼친 영향보다는 오히려 과학에 미친 영향이 기계문명시대를 여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화약과 대포는 중세체제를 정치적·경제적으로 파괴하였을 뿐 아니라 그 사상세계를 파괴하는 데도 결정적인 힘이었다. 메요(Mayow)가 말한 것처럼 초석은 전쟁터를 요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어떤 것이었다. 그리스어에는 그것에 해당되는 말이 없었다. 화약의 제조, 폭발, 포탄의 발사, 그리고 포탄의 비행 등은 새로운 종류의 연구방법과 새로운 과학의 창조를 위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공했다.

화약의 근원이 무엇이든간에, 본질적 성분, 즉 초석은 연금술과 관련된 염의 분리와 정제에 관한 세심한 연구를 통해서만 생산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디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간에 그것의 결정체와 용해의 현상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화학의 폭발을 설명하기 위하여 중세의 화학과 물리학을 모두 조사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불의 작용이었지만 지상의 다른 모든 불의 작용과 달리 공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석에 의해서 공기가 공급되거나 초석이 아니면 적어도 질소 주정제가 공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 후에 그것은 산화와 호흡(동물이 산소를 요구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의 모델이 되었다. 궁극적으로 실험과 논쟁의 4세기가 지난 뒤, 그것은 산소의 발견을 야기시켰고 더불어 전체 근대과학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순이론적이고 선험적이었으나 물질과 운동(에너지)의 영원 불멸성을 데카르트, 로모노소프, 라부아지에(A. L. Lavoiasier), 마이어(G. M, Mayer), 보다 훨씬 전에 도입했던 것이다.

'자연스러운 운동'은 물체가 자신들의 '적절한 위치'를 획득하려고 할 때 저절로 일어난다. 지상에서 그러한 운동에는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행하는 운동과 가벼운 물체가 위로 향하는 운동뿐이다. 천체의 원운동 또한 자연스러운 운동이며, 그것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자의 명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제5원소인 '에테르' 이론을 내놓았는데, 천체는 에테르로 구성되고 지상의 물체에서는 직선 운동이 자연스러운 운동인 것과 같이 에테르에서는 원운동이 자연스러운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모든 운동은 추력이나 압력으로 '강요된' 것이고 운동의 원인인 힘이 다했을 때 멈추게 된다. 그리하여 단지 강요된 운동만을 할 수 있는 물체는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정지한 채로 있게 된다. 사실 이런 관성의 원리에 거의 절반 정도 다가간 것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직선상에서 등속 운동이 지속되려는 경향이다'. 그것은 레오다르도 다 빈치·갈릴레오·데카르트·호이헨스(C. Huygens) 같은 위대한 사상사들의 저서에서 도움을 받은 뉴턴 (I. Newton)에 이르러서야 확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힘은 물체의 운동을 시작하게 하고 지속시키는 것뿐 아니라 운동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데도 필요하다. 그러나 힘은 속도 변화률, 즉 이후 뉴턴이 증명한 바와 같이 가속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에 비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었던 생성과 소멸의 개념들은 갈릴레이(그리고 데카르트)의 관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정신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상들의 탄생과 소멸에 관련된 문제틀은 단호하고 배제되었다. 갈릴레이가 수행한 과정은 동력학의 내용을 단호한 방식으로 축소시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력학은 위치의 변화, 질적인 변화, 양적인 변화 그리고 실체에 있어서의 변화(생성과 소멸)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변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이었다. 갈릴레이와 그의 계승자들의 동력학은 위치 이동에만 관심을 국한했다.

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또한 흥미롭다. 고대 원자론자들은 열을 소리·자기·색과 마찬가지로 물질로 간주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입자의 운동이라고 믿었다. 다른 한편으로 열은 불의 중요한 특성이므로 모든 물체의 특성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을 본질적인 열과 부수적인 열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데카르트(1596-1650)는 공간의 존재를 부정하고 힘은 매질을 통해- 시간이 걸려서 전달된다고 하는 근접작용론을 주장하였다. 공간이 물질 그 자체여서 공허한 공간, 즉 진공은 물론이고 공간 그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공간 속에 있지 않고 다른 물체 사이에 있을 뿐이다. 그에 앞서 케플러와 브루노도 공허한 공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다만 케플러는 우주가 유한하다는 유한우주론을 내세운 반명, 브루노(1548-1600)는 무한우주론자였다.

르네상스 운동에 힘입어 다시 소개된 원자론은 반 헬몬트의 실험으로 강한 지지를 받게 된다. 즉 일련의 화학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물질이 보존되는 실험결과들이 누적됨으로써 물질이 반응하는 모든 단계에 불변인 부분이야말로 미소한 원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렇지만 초기의 원자론자들은 원자론과 변성을 서로 모순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천학의 형상과 질을 원자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파울로 사피 Paolo Sarpi에게 보내는 1604년의 편지에서 낙하체의 법칙을 형식화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1619년에 비크만 Beeckman은 동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도움을 청했다. 데카르트의 해결 방안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비크만은 데카르트의 해답을 해석하면서 또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우연하게 이러한 과정은 비크만에게 올바른 해답을 얻게해 주었다. 그러나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는 낙하체의 법칙을 형성하면서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다. 왜 그랬을까?
갈릴레오의 편지글에서 이점을 찾아 본다.

"운동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내가 관찰했던 현상들이 마침내 공리라고 부를 수 있는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원리가 됨을(궁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나는 매우 자연스럽고 자명해 보는 가설에 도달하게 되었다. 만약 이러한 가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모든 것들을 보일 수 있다. 자유 낙하체가 이동한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하고 ( 그 결과로서) 동일한 시간에 움직이는 거리들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숫자 1로부터 시작하는 시리즈와 같다. 그리고 그 원리는, (자유 낙하체의 속도는 그 물체가 출발점으로부터 낙하하였던 거리에 비례해서 증가한다)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무거운 물체가 직선 ABCD선을 따라 A로부터 낙하한다면, 나는 이 물체가 C에서 갖는 속도의 정도는 CA의 거리가 BA의 거리와 관련되는 거리가 유사하게 물체가 B에서 갖는 속도의 정도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물체의 D에서의 속도의 정도는 C에서의 속도의 정도보다 크게 되는데, 그 큰 정도는 DA의 거리가 CA의 거리보다 큰 만큼이다."

이러한 추론은 갈릴레오적 추론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갈릴레오는 진술적 공식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자유 낙하체에 대한 관찰을 예측하려 하지도 않았다. 갈릴레오는 이미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동일한 시간 간격 동안에 이동한 거리 사이의 관례는 홀수 시리즈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물체가 낙하한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설명까지도 추구하였다. 데이터는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갈릴레오는 데이터로부터 보다 근원적인 원리로-원리의 가정들로부터 이러한 사건들이 뒤따르게 되는-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갈릴레오는 이론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관찰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갈릴레오는 가속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가속의 원인을 추구한 것은 데카르트의 프로그램이었다. 갈릴레오는 단순히 이해하기만을 원하였다. 그의 등가속도 법칙(1632년)은 인과 법칙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갈릴레오의 실수가 있다. 갈릴레오가 분명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던 원리- 자유 낙하체의 속도는 이동한 거리에 비례한다-는 결코 그 자신이 수식화하였던 낙하체에 대한 법칙으로 발전될 수가 없었다. 갈릴레오의 원리는 지수함수로서만 표현 가능한 전혀 다른 법칙으로 이끌어지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었던 수학으로는 결코 이와같은 공식화를 다룰 수가 없었다.

자유 낙하체 원리에 대한 올바른 진술은 다음과 같다. 자유 낙하체의 속도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에 비례한다. 다빈치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왜일까? 초기의 갈릴레오의 생각의 매력점은 무엇이었는가? 여기에는 잠시 이것과 관련된 개념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타르타글리아 Tartaglia는 낙하체가 출발하는 곳, 즉 위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대하여 물체가 많이 낙하하면 할수록 그 물체의 속도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베네데티 J.B. Benedetti는 또한 이것은 낙하체 자체가 운동의 원인이어서 그 본성상 제자리로 달려가려는 경향으로부터 야기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힘의 증가는 항상 물체가 자연적으로 이동한 거리에 비례하고 그 물체는 계속해서 새로운 임페투스impetus(可動力)를 받는다. 왜냐하면 물체는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인을 포함하고 있다. 이 운동의 원인은 강제의 결과로 도달한 위치로부터 자연적 위치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성이다."

베네데티는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는 몇 가지의 혼란스러움과 함께 보여주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물리학과 파리 임페투스 이론가들의 물리학의 결합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바로 갈릴레오가 빠졌던 애매함이었다.

그러나 베네데티의 생각에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모든 임페투스 이론가들과 마차가지로 베네데티도 운동이란 운동하는 물체에 포함되어 있는 힘의 효과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물체의 운동에 관한 생각을 물체 운동의 지향점에 대한 생각과 분리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베네데티는 운동(이라는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베네데티에게 있어서 물체가 낙하하는 공간은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 공간은 물체 끼리 서로 인력을 미치는 공간이 아니라 좌표계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진공 속에서의 운동도 가능했다.(물로, 이러한 공간은 철저하게 기하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위와 아래라는 특권이 부여된 두 가지의 방향이 있었다.)

임페투스는 외부의 기동자에 의해 물체에 주어지는 힘이다. 임페투스는 물체가 낙하할 때의 연속적인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지될 수는 있었으나, 곧 배척되었다. 이제 만약 새로운 임페투스가 자체의 임페투스로 물체에 가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질문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가속 운동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17세기 피콜로미니와 스칼리저 등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따라 임페투스를 물체의 운동이 그 효과가 되는 효과인으로 취급하였으며 임페투스는 이러한 운동으로 소멸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가속을 위해서는 물체 내부의 임페투스가 (아직)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에 새로운 당김의 간섭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일관적이지 못하였다. 물체의 지지력이 제거된 처음 순간에 임페투스는 외적 원인 -중력의 인력-의 결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중 순간에는 임페투스 그 자체가 운동의 원인으로 여겨졌다.

임페투스의 시간적 측면과 공간적 측면은 다빈치에 의해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자유 낙하 물체는 시간의 정도에 따라 운동의 정도를 갖게 되고 운동의 정도에 딴 속도의 정도를 갖는다. 어째서 다빈치와 베네데티 그리고 바론 등은 낙하체의 속도와 시간 사이의 비례성을 주장하지 않고 속도와 이동한 공간 사이의 비례성을 주장하였는가?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이것은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뒤엠은 낙하 공식이 변환 (즉 <물체가 자유 낙하한 거리는 낙하한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에서 낙하체의 속도는 낙하 시간에 비례한다>로의 변환)되기 위해서는 순간속도에 대한 아이디어- 미분 개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도 유사하게 다빈치가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언급된 시간점과 공간점의 비등가성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적분법의 개념이 필요했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 다빈치가 동역학적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갈릴레오의 선각자들은 오래 지속되는 운동을 고려할 때, 시간적 개념으로부터 공간의 개념으로 운동의 지속 정도로부터 운동의 궤적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보는 것, 다시 말하면, 공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자연스럽다. ①속도는 시간에 비례한다. ② 속도는 이동한 공간(거리)에 비례한다의 두 가지 대안 중에서 다빈치, 베네데티, 바론, 1604년의 갈릴레오, 데카르트 모두는 ②를 선택하였다. 이 시기의 과학자들의 생각은 기하학적인 입장-공간적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들로 구성된-을 따랐던 것이다. 시간 좌표축은 이들 자연철학자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했으며, 이는 마치 냄새 좌표축이나 아름다움 좌표축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개념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1604년이 훨씬 지나서야 가능했다.

베네데티는 낙하체의 궤적을 수직선 A-B와 같이 나타내고 물체가 A로부터 멀어질수록 물체는 더 빨리 낙하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A-B의 거리가 크면 클수록 물체의 속도는 더 커진다. 이러한 사실은 16세기의 기술자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즉 그들은 말뚝을 더 깊게 박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에서 추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B에서의 속도는 거리 AB의 함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러한 베네데티의 방법은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이었다. 50피트 이하의 거리에는 소요 시간의 차이가 거리의 또는 속도의 차이만큼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는 못한다. 베네데티의 도형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높이의 변화와 속도의 증가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며 속도는 높이와 엄격한 함수 관계를 갖는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속도는 실제로 최초의 높이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것들 사이에 정확한 의존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1604년 당시에 알려진 그 어떤 수학보다도 치밀한 수학적 기법이 필요하였다. 당시에 적용되었던 조잡한 함수론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낙하체의 초기 높이를 두배로 하라! 그러면 최종 속도는 두 배가 될 것이다." 이 논의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물체의 속도가 낙하한 거리가 아니라 낙하한 시간에 의존한다는 제안은 쓸데없고 복잡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은 속도에 대한 자명한 함수로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간접적으로 갈릴레오로 하여금 임페투스 이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였다. 임페투스 이론의 작은 이점은 임페투스가 시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임페투스의 연속적인 작용들은 기본적으로 시간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며 공간적 관련성은 부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 낙하의 원인적 측면은 일단 무시하고 우리의 생각을 이러한 원인들이 계속해서 작용하는 시간 기준에서 해방시켜 보자.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운동이 표현되는 공간적 기준에 고정되게 된다. 갈릴레오는 운동을 기하학 하기를 원했다. 그는 임페투스의 이러한 특징을 무시하고 결국에는 임페누스 이론 전체를 무시하였다. 임페투스 이론가들은 운동이 왜 지속되는가 그리고 무엇이 운동을 지속되게 하는가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오에게는 자연적으로 지속되는 운동이라는 것은 질문의 대상도, 분석의 대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생각은 인과적 틀이나 시간적 틀이 아니라 공간적 틀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갈릴레오의 문제는 "왜 운동이 멈추는가?" 였다. 갈릴레오는 피사에서의 젊은 시절에 이미 임페투스라는 난해한 개념을 기초로 하는 동역학의 기하학적 체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수학화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그는 임페투스의 아이디를 기초로 물리학을 재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또다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도대체 어느 누가 그렇게 투명하고 어렵고 복잡한 아이디어의 특성들을 결정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내적 기동력에 대한 개념을 대체하기 위하여, 갈릴레오는 새로운 효과를 발생시키는 반복적인 외부적 인력 또는 충격의 개념을 시험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갈릴레오는 추론의 행진(발자취 과정)은 갈팡질팡하던 황무지로부터 베네데티, 카르난, 타르타글리아 등이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었다. 다시 말하면, 갈릴레오의 눈에 이들은 변화 가능한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일정한 원인 (즉, 임페투스, 중력 등)을 찾았던 것으로 보였다. 갈릴레오가 보였던 이러한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은 행성이 완전한 원형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또는 원형 운동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행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케플러의 전통과의 단절과 병행되었다.
물체가 일정한 원인의 작용하에 있을 때, 가속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임페투스 이론가들은 무에서부터의 창조를 인정하였다.(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일과 인위적 일을 가름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심지어 그 어떤 일관된 이론에서도 이것은 기하학적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그래서 베네데티는 움직이는 물체에 미치는 다른 물체의 영향을 배제하였으며 임페투스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였지만 운동을 물리학적 공간이 아닌 기하학적 공간에서 다루기로 결정하였다.)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임페투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임페투스는 이제 그 어떤 모호한 운동의 원인이 아니라 운동의 효과로 취급되었다. 피사에는 그가 행성의 원운동에 대해 연구할 때 갈릴레오는 이미 피골로미니와 뷔리당이 행했던 것과 유사한 추측을 따르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화성을 움직이는 것이 화성의 임페투스가 아니라는 것과 임페투스는 화성의 운동에서 보존되는 어떤 특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속도는 운동하는 물체를 정의하는 하나의 특성이 된 것이다. 즉 속도보다 더 근본적인 어떤 것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과두아에서 갈릴레오는 모멘트(무게×속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으며, 이 운동량의 생각은 그의 사고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운동량은 이제 단순히 임페투스를 대체하였다. 운동은 이제 당황스럽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이 되었다. 1604년 갈릴레오는 낙하체가 동일 시간에 이동한 거리는 각각의 홀수 시리즈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낙하한 거리가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운동과 속도의 보존 원리를 이미 알았다. 그는 자유 낙하의 원인을 찾으려는 더 이상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였으며 이제 그에게 있어 유일한 목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을 통일하고 체계화하는 설명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운동을 기하학적으로 취급하게 됨에 따라 운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또한 시간에 대한 관심도 잃어갔다.

1619년에 비크만은 데카르트에게 물체의 낙하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질문한 적이 있다. 이 질문 자체는 중요했다. 왜냐하면 길버트와 케플러의 인과적 아이디어가 여기에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체는 지구가 잡아당기기 때문에 낙하한다. 그러면 물체는 왜 가속되는가? 비크만의 잠정적인 해답은 매 순간마다 지구가 물체를 새롭게 잡아당기기 때문에 물체에는 부가적인 운동의 정도가 생기는 것이었다. 1613년에 비크만은 자신의 운동 보존의 법칙을 형성하였다.

일단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외부에서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정지 상태에 도달하지 않는다. 운동 상태에 놓여진 모든 물체는 모두 이와 같다. 방해 작용이 약할수록 물체는 운동 상태에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다. 만약 원운동하는 발사대로부터 물체가 위쪽으로 쏘아졌을 때, 위 쪽의 운동력에 관한 한 물체는 지구로 돌아오기 전에는 정지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체가 정지하게 되는 것은 방해 작용이 균등하게 분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균등하게 분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구의 각 부분들은 운동하는 물체와 연속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이다.

비크만은 이 문제에 관련된 물리학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에 관련된 수학을 다룰 만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비트만은 데카르트에게 질문하였던 것이다.

자유 낙하 문제의 핵심은 데카르트를 피해갔다. 데카르트는 다른 가능한 경우를 제안했는데, 그것은 인력이 순간마다 커지는 경우였다. 물체가 낙하는 두 번째 순간에는 처음 순간의 두 배의 힘이 작용하며, 세 번째 순간에는 세 배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해답에서 속도가 2차원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3차원으로 증가한다. 데카르트는 증가하는 힘에 대한 이러한 가설의 물리학적 가능성에 대해 전혀 질문하지 않았다. 이것은 기하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다 수학적인 가능성이었다. 데카르트는 두 변수 사이의 어떤 관계를 발견하였다고 즐거워하였다. 여기에 물리적 공간과 운동의 문제를 순수 기하학적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비크만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비크만과 다르게 문제를 바라보게 된 이유이다.

데카르트는 이 문제에 관련된 물리학을 무시하므로써 등가속 운동을 속도가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거리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일단의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시간 요인은 이러한 가하학적인 표현에서 정당한 중요성을 인정 받을 수도 있었다. 비크만의 성공과 후기 갈릴레오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시간 요인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는가는 이해할 만하다. 새로운 생각들이 드러나도록 고안되지 않는 개념 틀 conceptual framework 안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전례 없는 물리적인 직관이 필요한 것이다. 물리학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당대의 어법으로는 미처 표현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소수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다. 갈릴레오로 하여금 등가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던 미분 개념이란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뉴턴은 진실을 완전히 말할 수 있는 완벽한 미분 이론을 만들어내야 했다. 오늘날의 물리학은 수학적 형식론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것들 중 몇몇은 우리의 관찰을 표현하고 설명하며 통일시킨다. 데카르트의 형식론은 수학적으로는 훌륭하였으나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실패작이었다.

데카르트는 비크만의 운동의 보존 원리를 보다 자세한 힘의 개념으로 대체했다. 즉 속도는 힘에 비례한다. 이것은 반박될 수 없는 것이며 데카르트로 하여금 일정한 힘은 일정한 속도를 야기시킨다고 결론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낙하체가 가속되는 것은 원래 지점에서 낙하체에 작용하는 인력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임페투스 사고로 되돌아가 가게 되었다.

비크만의 운동에 관한 생각은 당시의 수학과 물리학의 최첨단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기하학에 아주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헤맸던 것이다. 비크만의 문제와 이를 대체시켰던 데카르트의 문제 사이의 형식적인 차이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자신의 적분 결과를 공간에 관한 용어로 바꾸어 버렸다. 즉 그는 자신의 함수의 변수로 시간를 공간으로 대체하였다.

비크만은 결코 자신의 해답(속도는 시간에 비례한다)과 데카르트의 해답(속도는 이동한 거리에 비례한다)과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기하학에 대한 비크만의 반응은 자연스럽게 물리학자적인 반응이었다. 반면에 데카르트의 반응은 순수한 수학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두 천문학자가 해돋이에서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케플러가 타원을 처음에는 수학적인 도구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물리적인 가설로 사용한 것과 같다. 이것들 사이의 개념적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것은 젊은 갈릴레오(1604)와 성숙한 갈릴레오(1638)가 동일한 낙하체를 바라 볼 때의 차이와 같다. 즉 처음에는 무시했던 낙하 현상의 시간적 측면을 나중에는 고려하게 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에 큰 도약이 있었는데 그것은 운동(motion)에 대한 이해이다. 고대 그리스도인 정적으로 고정된 기하학적 형태 또는 평형 상태의 물체 (즉, 힘의 균형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물체-물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힘의 균형 때문이다.) 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놀라운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물체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대한 법칙에 관해서는 별 개념이 없었다. 그들이 부족했던 것은 동력학에 관한 합당한 이론이었는데 이는 자연계가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넘어갈 때 물체의 위치 변화를 조절하는 아름다운 논리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이유(전적인 이유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는 시간이 충분히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단, 즉 좋은 '시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위치가 변화한 시간을 정확히 재거나 물체의 속도와 가속도를 잘 추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시계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1583년 시계추가 시간을 재는 믿을 만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갈릴레오의 관찰은 운동의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자신뿐만 아니라 과학 전체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로부터 약 55년쯤 후인 1638년, 갈릴레오의 [Discorsi]가 출판됨에 따라 동력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동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고대의 신비주의에서 현대 과학으로의 변환이 시작된 것이다.

갈릴레오가 소개한 매우 중요한 물리학적 아이디어들 중에서 네 가지만 추려보기로 한다. 첫 번째는 물체에 가해지는 힘은 속도가 아니라 가속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속도(acceleration)와 속도(velocity)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정지'란 용납이 안된다. 이 세상에서는 정지란 있을 수 없다. 혹시 움직임이 없는 정지된 것이 보이면 이렇게 설명한다. "외부에 힘 때문에 정지되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아니하면 계속 움직일 것이다"고 말이다. 이점에 나중에 원자론까지도 이어지는 많은 수의 원자들이 정지 상태로 이루어진 것을 물질이라고 본다면 그것을 움직이는 차원으로 해체시켜서 설명할 때만 물질의 본질이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그 사물을 정지하게 만든 틀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규명하는 것이다.
어떤 입자, 혹은 어떤 물체의 한 점에서의 속도란 시간에 대한 그 지점에서의 위치 변화율을 말한다. 속도는 보통 벡터량으로 여겨지는데 벡터량이란 그것의 크기뿐만 아니라 방향까지도 고려한 값을 의미한다.(여기서 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그 크기만을 생각하면 속력speed이란 말을 쓴다.)

실증 과학에 적용시켜 본다면, 우선 구별지어야 할 주요한 점은 스칼라합과 벡터합 사이의 구별이다. 전자의 예로는 어떤 사물들의 개수의 합, (길이, 넓이, 부피와 같은) 공간적인 특성들의 합, 시간적인 기간의 합, 무게의 합, 전기 저항의 합, 열량의 합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는 밀도나 탄성과 같은 것이다. 힘, 속도, 가속도와 같은 벡터적 특성에 대한 덧셈들은 이미 친숙한 평행사변형의 합성 규칙에 따른다. 그러므로 만일 어느 물체의 정북 방향으로 4파운달foundal의 힘이 미치고 또한 정동 방향으로 4파운달의 힘이 미친다면, 그 물체는 북동 방향으로 5파운달의 한 가지 힘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움직일 것이다.

가속도란 이와같은 벡터량인데 시간에 대한 속도의 변화율이다. 그러므로 가속도는 실제로 시간에 대한 위치의 변화율의 변화율이다. 갈릴레오는 물체에서의 힘-그의 경우는 중력-은 그 물체의 가속도를 조정하는 것이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인이 믿었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속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물리학자들은 사물과 사물, 물체와 물체가 서로 접촉없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무지함을 감추기 위해 힘이라는 것을 고안했다.
열(熱)이 물질의 한 형태로 간주된 것이 있었다. 후에 그것은 단지 역학의 한 현상이라고 밝혀졌다. 즉 열은 분자라고 불리는 작은 공이 공간에서 되튀거나 용수철로 연결되어 앞뒤로 진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리도 역시 역학적으로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다. 빛 또한 역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시도되었다.

역학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정역학(statics)으로, 모든 힘의 합이 0인 상태에서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좀더 복잡한 경우로 동역학(dynamics)이 그것이다. 동역학에서는 모든 힘이 서로 상쇄되지 않고 남은 힘으로 인해 운동이 일어난다.

특히 만약 가해지는 힘이 없다는 속도는 상수가 된다. 그러므로 직선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운동은 힘의 부재에서 오는 결과이다.(이것이 바로 뉴턴의 제 1법칙, 즉 관성의 법칙이다) 자유 운동 상태의 물체는 그 방향으로 등속 운동을 계속하는데 이를 위해서 힘이 필요하지는 않다.(단지 가속도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함) 갈릴레오와 뉴턴이 개발한 운동 법칙 결과들 중의 하나는 직선상의 등속 운동은 물리적으로 볼 때, 정지 상태(운동이 없는)와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정지 상태와 등속 운동을 구분할 수 있는 국소적(local)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특히 이 점에서(뉴턴보다도) 분명하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이용하여 매우 도식적인 설명을 제시하였다. - 선박 안에 있는 어항, 그 속에 노는 물고기속도의 불변성-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가 불리는 이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 학파의 관점이 동력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태양은 그대로 있으면서 지구가 그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뿐만 아니라 태양 주위의 궤도를 움직인다는 그림을 제안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 310-230 BC 이보다 18세기 전에 이를 제시한바 있다.) 왜 우리는 시속 약 10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운동을 인식하지 못하는가? 갈릴레오가 그의 동역학 이론을 제시하기 전까지 이것은 코페르니쿠스 관점에 대하여 실로 근본적인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만약 앞에서의 동력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관점, 즉 공간을 통과하는 운동 상태에 있는 물체의 속도가 그 동적 행동 양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옳다면 지구의 운동은 분명히 우리에게 명백히 느껴져야 될 것이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이론은 지구가 움직이면서도 어떻게 그 움직임을 우리가 직접 지각할 수 없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지구의 운동이 거의 균일하고 특히 회전이 없다고 가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한다. 지구의 회전 운동은 (비교적 작지만) 감지 될 수 있는 동역학적 효과를 보이는데 가장 눈에 뜨는 것은 바람이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서로 다른 편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불일치가 조류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이론에서 '정지하고 있다'라는 개념에 부여하는 지엽적인 물리적 의미는 없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 자체가 이미 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의미에 부딪친다. 시공간에 대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간'이란 물리적 사건이 발생하는 일종의 경기장처럼 구성된다는 것이다. 물리적 물체는 어느 한 순간에 공간의 어떤 한 위치에 있고 다른 순간에는 공간의 동일한 위치거나 다른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공간에서의 한 점이 한 순간으로부터 다음 순간까지 어떤 식으로든 지속된다고 상상함으로써, 한 물체가 실제로 공간에서 위치가 변했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정지 상태에 대한 절대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한 시점에 우리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유클리드 3차원 공간의 한 위치는 다른 시점의 유클리드 3차원 공간에서 어느 위치와 동일한 것인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어쩌면 시간의 각 순간마다 완전히 새로운 유클리드 공간을 가져야만 할 것 같다.

갈릴레오의 통찰력 중 세 번째는, 처음으로 에너지 보존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주로 중력하에서의 물체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만약 한 물체가 정지 상태로부터 벗어나면, 그것이 단순히 자유 낙하를 하건, 임의의 길이의 후에서 좌우로 움직이건, 또는 경사진 면을 따라 내려가든지 간에, 그 운동의 속력은 단지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한 위치로부터의 거리에만 항상 의존한다는 사실에 주의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속력은 언제나 그것이 처음 운동을 시작한 높이까지 그 물체를 끌어올려 놓을 만큼만 충분한 것이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지면으로부터 어떤 높이에 저장된 에너지 (중력에 의한 위치 에너지)는 운동의 에너지 (속력에 따른 운동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고 역으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전체 에너지는 결코 잃거나 보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매우 중요한 물리 원칙이다. 그것은 독립적인 물리적 필요성이 아니라 이제 곧 설명할 뉴턴의 운동 법칙의 결과이다. 에너지 보전의 법칙은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와 결합하여 매우 중요한 또 다른 형태의 보존 법칙, 질량(mass) 및 운동량(momentum) 보존의 법칙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한 입자의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다. 운동량 보존의 대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예가 로켓의 추진력인데 로켓의 전향 운동량의 증가는 배기 가스의 후향 운동량과 정확히 일치한다. 부피는 작더라도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더욱 빨리 움직인다. 총의 반동 또한 운동량 보존의 보여 주는 예이다. 뉴턴 법칙의 또 다른 결과는 물체의 회전 지속성을 설명하는 각운동량 (angular momentum) 보존 법칙이다. 축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의 회전과 테니스 공의 회전은 모두 각운동량 보존에 의해 유지된다. 어떤 물체의 각각의 구성 입자는 그 물체의 전체 각운동량에 기여하게 된다. 여기에서 어떤 입자가 전체 각운동량에 기여하는 크기는 그것의 운동량과 중심으로부터의 수직 거리의 곱이다. 결과적으로 자유 회전하는 물체의 각속도는 구성 입자들을 좀 더 밀집되게 만들면 증가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고전역학에 의하면 시간이나 공간이나 그리고 질량들은 서로 관계가 없는 별개의 존재이다. 뉴턴 시대만 하더라도 시간은 절대적이다. 공간도 물질이 있건 없건 존재하는 절대 공간을 임의로 상정했다. 뉴턴은 운동학적으로 모든 운동은 상대적임을 기꺼이 인정하긴 했으니 동력학적으로 그리하여 그 운동을 결정하는 힘을 통해 고찰 할 때, 운동은 그 준거틀로서 절대 공간에 준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모든 움직임을 원인과 결과의 틀로 환원시키는 면이 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물을 대할 때, 원인으로서 볼 것이냐 아니면 결과로서 볼 것이냐에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여기에 오렌지가 있다고 하자. 처음부터 오렌지 없었으면 오렌지가 없다고 하는 상태도 있을 수 없다. 먼저 오렌지가 있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오렌지가 없다고 하는 상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유가 있고 난 연후에 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이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무에서 유가 생기며 유는 다시 무로 되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환원론(reductionism) 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 가질 법한 자연관이다. 시계는 이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들, 축들, 스프링 그리고 변속 장치들로 분해되고 이것을 가지고 역으로 조립할 수 있다. 환원론자들은 자연을 이와 같이 분해되고 조립되는 것으로 상상하고 있다. 이들은 아주 복잡한 조직체는 시계의 스프링, 톱니바퀴들과 축에 해당하는 원자나 원자 이하의 어떤 것이 상상하기 어려운 기가 막힌 솜씨로 본래적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물질이란 무엇인가? 질서정연한 것이 이 자연세계인가?

물이라는 물질이 전류에 의해서 분해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물 뿐만아니라 염류도 분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이비는 1807년에 신금속 나트륨과 칼륨, 칼슘을 이전대로 분해하지 못했던 알칼리 및 토류에서 만들어내고 라보아제의 구상을 완성하여 모든 원소를 금속과 비금속으로 나누었다. 금속원자는 바로 대전하고 비금속원자는 부(負)에 대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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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577건 중 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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