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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 상식적 측면에서 무엇을 과학이라고 말하는가?성경신학-

Ⅱ. 본론
1. 상식적 측면에서 무엇을 과학이라고 말하는가?
농부가 논에 물을 대고 싶다. 어떡하면 될까? 하늘을 향하여 기도할까? 아니면 시냇물에다 사정을 해볼까? "제발 내 논에 당신네들이 좀 들어와 주세요"라고? 방법은 있다. 물보고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약간씩 시냇물보다 바닥을 낮게 해서 물이 흘러들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은 저절로 논에 들어오게 된다. 높은데서 낮은데로 내려가는 물의 성질을 미리 알아차리면 구태어 물과 직접 대화를 한다든지 신을 향하여 호소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물의 성질을 안다는 것은 곧 자연의 성질의 한모퉁이를 아는 것이고 이는 곧 자연 전부를 알아가는 한 시도가 된다. 이렇게되면 결국 자연의 전 영역을 알게 된다. 과학이 곧 진리라는 말이다.
그 외 과학적 답변이라고 여겨지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짠 음식물을 먹으면 왜 물이 마시고 싶어지나?
그것은 농도가 다른 두 용액이 생물의 막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났을 때는, 농도가 엷은 데서 짙은 데로 물의 이동이 일어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소금물은 물에 소금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분자 속에 소금의 분자가 섞여 들어가 있는 거이다. 농도가 짙은 소금물은 같은 양의 물분자에 대해 소금의 분자가 많다는 것이다. 온도가 짙은 소금물과 옅은 소금물을 섞으면 물분자도 움직이고 돌아다닌다. 소금 분자가 균등하게 들어간 상태가 되므로 써 중간 농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물의 세포막은 물의 분자는 통해하지만 소금의 분자는 통하지 않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막을 끼고 농도가 다른 소금물이 들어왔을 때, 전부 다 뒤섞일 수 가 없다. 따라서 같은 농도를 만들려면 물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짠 음식을 먹었을 때 우리 몸은 인간의 체액( 혈액, 림프, 세포에 포함된 물 등 )은 일정한 염분을 포함하고 있다. 소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체액과 조직의 다양한 왕래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는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소금을 너무 섭취하면 그 균형이 무너져 버린다. 혈액의 염분 농도가 올라가게 되면 그것을 묽게 하려고 몸 속의 수분이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면 여기 저기서 수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혈액 속의 염분 농도가 짙어지면 그것을 알리는 신호가 뇌에 보내지고 뇌는 '물을 마시세요'라는 지령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식물이 햇빛 쪽으로 뻗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과학적 대답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는 것은 옥신이라는 호르몬이다. 옥신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줄기나 잎이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옥신은 빛을 싫어한다. 식물에 햇볕에 달으면 그 반대쪽에 많아진다. 그늘진 부분에 옥신이 더 많아지므로 그 쪽이 더 빨리 자란다. 그 때문에 줄기가 태양 쪽으로 휘어져 버리는 것이다. 햇볕 반대쪽 부분이 먼저 성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태양을 향해 자라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목욕물은 왜 위부터 뜨거워지나?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다소 복잡하게 답변될 수 있다.
열이 전달되는 방법에는 전도(傳導), 대류(對流), 방사(放射)의 세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물에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대류라고 한다. 그래서 목욕물은 밑에서 데우면 우선 물이 뜨거워지면서 체적이 팽창한다. 그러면 아직 뜨거워지지 않은 같은 체적의 물보다 가벼워지므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으로 차가운 물이 대신 들어오고 그 물이 뜨거워지면 다시 위로 올라간다. 이러한 대류 현상은 방 안 공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음과 같은 궁금증은 어떨까? 이미 질문 자체가 과학적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상당히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물이 꼭 100C°되어야 증발하는가?
물의 증발을 알기 위해서는 물의 특성을 지닌 최소의 입자인 물 분자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물 분자 사이에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이 있다. 이 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포괄적으로 말하면 '반데르발스의 힘'이라고 한다.
다만 물분자는 다른 액체를 구성하는 분자들과는 달리 매우 강한 인력이 존재하는데 화학에서는 이를 '수소결합'이라고 한다. DNA 구조의 안정성도 이 수소결합 때문이다.
반면에 물 분자들은 주위에서 열을 흡수하여 분자 운동을 하는 이를 '분자의 열 운동'이라고 하며 물분자의 열 운동에는, 진동운동, 회전운동 및 병진운동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결국 물분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강하게 구속하는 물 분자간 인력(수소결합)과 자신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주는 열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면서 액체 상태인 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의 표면에 있는 물 분자의 경우는 입장이 다르다. 물 속에 있는 물 분자는 네 방향에서 끌어당겨 강하게 구속되어 있지만 물 표면에 있는 물 분자는 세 방향에서 끌어당기므로 훨씬 더 자유롭게 운동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 표면에 있는 분자들은 100°C가 되지 않더라도 분자간 인력을 극복하여 물 표면을 탈출할 수 있으므로 물의 증발이 100°C 이하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질문 역시 과학적 개념의 바탕 위해서만 나올 수 있는 궁금증이다.
저기압에서는 왜 날씨가 나쁜가?
우선 저기압이란 1 기압보다 낮은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보다 중심 기압이 낮은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두 지역에 기압 차이가 생기면 그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공기가 이동하여 가는 것이다. 따라서 저기압의 중심에는 그 주위의 기압이 높은 곳에서 공기가 모여든다. 지상의 사방에서 저기압 중심으로 모여든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 따라서 저기압의 중심에는 상승기류가 생긴다.
상승기류로서 지상의 공기가 기압이 낮은 상공으로 올라가게 되면 공기는 단열 팽창에 의해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공기의 온도가 낮아지면 그 속에 포함할 수 있는 수증기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공기는 수증기에 의해 포화된 후 응결이 일어나 그름이 생긴다. 즉 포화 수증기압이란, 공간이 수증기에 의해 포화되었을 때의 수증기압을 뜻하는 것으로 공기의 유무에는 관계가 없고 오직 온도에만 관계되는 양이다. 이와 같이 상승기류가 발생하는 곳에서는 구름이 생기고 비도 내리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고기압의 중심에서 기압이 낮은 주변으로 공기가 발산하여 나가므로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상공으로부터 하강기류가 발생한다. 이 때는 공기가 단열 압축되어 올라가므로 구름이 있어도 증발되어 날씨가 좋아진다.
이제는 직접 우리 몸에 관해서 과학적 대답을 접해본다.
귀는 왜 두 개인가?
귀가 둘인 것은 소리가 난 방향을 알기 위해서이다 만일 귀가 하나밖에 없다면 소리의 방향을 잘 알 수 없다. 둘이 있으면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데 미묘한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를 뇌가 접수하면 소리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천식은 왜 생기는 것인가?
천식이란, 기도에 생긴 염증으로 호흡장애나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몸에 이상물질, 즉 항원이 코로 들어와서 기관지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氣道)를 통해서 기관지 상피세포를 뚫게 된다. 그러면 기관지가 이것을 인식하게 되면 사이토판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서 알레르기 항체가 생성된다. 이로 인해 알레르기 반응으로 기도가 수축되는데 이 수축으로 인한 염증으로 기도가 좁아져 버린다. 그래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알레르기란 일종의 자기 몸의 면역 체계에 대한 반란이며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즉 자기가 자신의 몸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괴이한 현상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그렇다면 위궤양은 왜 일어나는가?
원래 위산에는 강한 위산으로 인해 그 어떤 병원성 세균이 살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라는 세균이 있어 강한 위산도 이겨내면서 위 속에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항생제로 파일로리균을 박멸하면 소화성 궤양이 재발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인체마저 생물들 간의 생존의 전투장이 되어 있다는 정보는 과학은 제공해 주고 있다. 즉 자기 몸이라고 해서 자연적으로 절대적으로 권한을 지닐 수 없다는 인식의 변화가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타당성 있는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은 어떨까? 인간의 공간 영역보다 월등하게 넓어 보이는 우주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과학의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이 아닐까? 즉 과학이 이제 모든 종교나 철학을 대신할 만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태양은 왜 빛나며 뜨겁게 타는가?
태양과 여타의 항성들은 백열광을 내는 기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이다. 항성의 내부에서는
두 가지 힘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중력과 압력이 바로 그것이다. 중력은 모든 것을 중심을 향하여 끌어당기려 한다. 그러나 기체가 압축되면 온도가 올라가고 압력도 증가하여 중력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 태양의 표면은 백열광을 내며 빛나는데 온도는 6천도에 달한다. 그러나 충분한 압력을 공급하려면 태양의 중심은 훨씬 뜨거워야 한다. 실제로 온도가 대략 1천5백만도 정도이다.
무엇이 태양을 계속 빛나게 하는가? 연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태양은 열이 빠져나가면서 중력에 의해 점차 수축될 것이다. '우주의 창고에 저장된 어떤 미지의 에너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아원자'(亞原子, 원자보다 작은 것으로서, 원자핵과 소립자 등을 말한다) 에너지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1920년대에 와서 분명해졌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제곱은 에너지가 모든 물질에 잠복해 있다는 것, 그리고 태양 질량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사용해도 태양이 계속 빛나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태양은 수소폭탄이 폭발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에 의해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수소 원자는 모든 원자들 가운데 가장 간단하다. 수소 원자의 원자핵은 오직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기체가 뜨거울수록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 태양의 중심핵에서는 양성자들이 아주 강하게 충돌하여 서로 달라붙을 수 있다. 일련의 반응에 의해 네 개의 수소 원자핵(양성자)이 융합하여 하나의 헬륨 원자핵이 된다. 그러나 헬륨원자핵은 그 재료인 네 개의 수소원자핵보다 0.7% 가량 무게가 덜 나간다. 그래서 수소를 헬륨으로 융합하면 0.007mc제곱의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것이 태양이 수십억년 동안 빛나게 하기에 충분하다. 항성에서의 에너지 방출은 지속적이고 '제어된 상태'이며 폭탄처럼 폭발적이지 않다. 이것은 겹쳐 있는 여러 층들을 중력이 아주 강하게 끌어당겨서, 항성의 중심핵에서의 거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표면에서 빠져나가는 열을 보충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
그러면 별은 어떻게 탄생되나?
이 질문은 그동안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신께서 알려주어야 알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이것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과학은 다음과 같이 풀이해 내고 있다.
별은 성간 가스에서 만들어진다. 성간 가스는 별들 사이에 희미하게 깔려 있는 수소와 헬륨과 소량의 다른 원소로 이루어진다. 이 가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너무 희박하여 밀도가 놓은 별 모양의 가스층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가스는 여러 종류의 충격파로 말미암아 응축하여 밀도가 비교적 높은 가스구름으로 되며, 여기에서 별이 태어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작용을 일으키는 충격으로 대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우리 은하계와 같은 나선형 은하가 일으키는 충격이 그 하나로서, 그것은 인력으로 말미암아 가스와는 다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가스를 끊임없이 새로운 위치에 쌓는다. 또 하나는 폭발하는 별, 곧 초신성이 일으키는 충격으로서 거기에서 아주 빠르게 뛰쳐나오는 가스가 옅은 가스층을 휘몰아쳐 밀도가 높은 구름 층을 만든다. 이 구름 층에는 일산화탄소와 알코올 같은 거대 분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분자 구름'이라고 부른다.
분자구름의 중심에는 가스의 밀도가 아주 높아 자체의 중력으로 가스를 더욱 더 끌어당긴다. 또 가스의 운동이 아주 활발하기 때문에 한 중심으로만 모여들지 않고 몇 십 개의 분자구름으로 쪼개어진다. 하나의 조각은 나름대로 응축되어 마침내 별이 된다.
이러한 과정은 광학 망원경으로도 살펴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분자구름에는 빛을 차단하는 우주 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파망원경으로 분자구름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잡을 수 있으며 또한 적외선 천문관측위성(IRAS)으로 갓 태어난 별에서 나오는 열선을 탐지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로 관측한 바에 따르면, 응축되어 가는 과정에서 구름 조각들은 자체의 회전 때문에 판처럼 납작해지면, 그 양끝으로부터 가스가 빠른 속도로 붙어 나온다. 이 가스가 가까이에서 또 다른 별들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하여 갓 태어난 별들은 하나의 성단을 이루면서 방사선과 가스를 내뿜어 주위에 깔려 있던 분자구름을 흩뜨려버린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100만년에서 200만 년이 걸리지만, 이것은 천문학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별들이 인력으로 묶일 만큼 서로 밀접하여 하나의 성단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서로 멀어져 가는 경우가 더 많다. 별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태양과 같은 홑별로 떨어져 나오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원래의 성간에서 가장 가까운 짝과 함께 떨어져 나와 쌍둥이 별, 곧 연성(延性)이 된다.
이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
(1)별의 일생은 우주공간에 흩어져 있던 우주 진과 가스가 응축되면서부터 시작된다.
(2)인력이 작용함에 따라 별이 될 물질들이 더욱 더 압축된다.
(3)압축이 계속되면서 마침내 핵 융합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중심부의 온도가 올라간다.
(4)별이 탄생하여 어머 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갓 태어난 별이 압축되면서 그 내부 온도가 약 100만도 까지 올라가며, 이때부터 핵반응을 시작하여 수소 가스가 헬륨으로 바뀐다. 이 반응으로 에너지가 방출되어 별 표면에서 밝게 빛나게 된다. 이 에너지와 인력이 서로 맞물려 별은 더 이상 수축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에 이른다.
에너지 생산과 인력이 균형을 잘 이루게 되어, 별은 수백만 년 또는 그 이상의 동안 거의 똑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따라서 '수소폭발'의 시기가 사실은 별의 일생 가운데 가장 긴 것이다. 전통적으로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별을 주계열성이라 일컫는다. 같은 질량의 모든 주계열성은 거의 같은 정도의 밝기와 표면온도(별이 색깔을 결정하는)를 가진다. 주계열성은 질량이 클수록 더 밝고 더 온도가 높으며, 질량이 작을수록 덜 밝고 온도가 낮다. 예컨대 태양과 시리우스별은 둘 다 전형적인 주계열성이지만 시리우스의 별의 질량이 태양의 2배가 되기 때문에 20배나 더 밝고 표면온도도 태양이 5,500도인데 비해 시리우스 별은 10,000도나 된다.
온도가 아주 높아 핵반응이 일어나 주계열성의 중심부에서는 언젠가는 수소를 다 소모할 것이다. 태양과 같은 별이 이렇게 되려면 약 100억 년이 걸린다. 지금 태양의 나이는 50억 년이다. 질량이 커서 매우 밝게 빛나는 별은 훨씬 더 빨리 중심부의 연료를 소모해 버리기 때문에 몇 백만 년이 지나지 않아서 주계열 국면은 끝나게 된다.
별의 중심부에서는 수소가 사라지고, 그 대신 핵반응에서 생겨난 헬륨이 들어차게 되면, 중심부에는 자체의 중력 때문에 응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제는 중심 바로 외곽에 있던 수소가 연소되어 헬륨으로 바뀌면서, 얇은 껍질은 더욱 팽창하여 원래의 크기보다 수백 배나 커진다. 이제 중심부가 방출해내는 방사선은 훨씬 넓어진 표면으로 퍼져나가야 하므로 표면에 있는 가스가 받는 열은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표면온도는 약 3,000도로 떨어지며, 별의 색깔은 시리우스 별이나 태양과 같은 흰색이나 노랑색에서 붉은 색으로 바뀐다. 부피가 매우 크고 색깔이 불그스레하기 때문에 이 별을 적색거성이라 부른다.
적색거성의 외곽 가스는 아주 희박하여 동요가 심하기 때문에 별의 밝기도 약 1년을 주기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 질량이 매우 큰 별은 더욱 크게 팽창하여 초거성이 된다. 몇몇 경우, 바깥 층이 일정한 주기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데 그 주기는 별의 질량과 밝기에 따른다. 이러한 세페우스 변광성은 천문학자들이 우주 속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적색거성의 시기가 끝난 뒤 별의 마지막 운명은 그 질량에 달려 있다. 별들은 무거울수록 더 밝으며 삶의 과정을 더 빠르게 진행한다. 태양과 같은 별들(소주계열성)은 적색거성의 열은 바깥 가스층을 반짝이는 고리 모양으로 우주 공간에 내보낸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행성상 성운'이라 한다. (행성상 성운이라고 해서 행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고리모양이 조그마한 망원경으로 보면 천왕성이나 해왕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적색거성의 단계가 지난 뒤에는 바깥층의 일부가 폭발로 날아가버리고 중심부는 수축되어 중심핵만 남아 아주 작은 백색왜성이 된다. 그 질량은 태양에 버금가지만, 크기는 지구와 맞먹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백색왜성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보통 상태와는 다르다. 다른 별과 마찬가지로, 백색왜성은 별 내부의 열로 말미암아 해체된 원자의 두 구성 요소인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별은 이러한 요소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스 상태로 있지만, 백색왜성은 그 구성 물질이 너무나 압착되어 전자들이 떨어지지 않고 꽉 묶여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체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의 물질을 물리학자들은 '측퇴물질'이라 일컫는다.
백색왜성은 에너지원도 없고 내부에서 핵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백색왜성은 처음에는 별의 중심부에서 열을 물러 받아 매우 뜨겁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을 공간에 방출하게 되고 결국은 열을 모두 빼앗겨 빛을 잃은 '흑색왜성'으로 삶을 끝맺게 된다.
질량이 큰 별(대주계열성)은 폭발과 함께 우주에서 사라진다. 적색거성 또는 세페우스 변광성으로서의 단계가 끝날 무렵, 그 중심부에서의 핵반응이 매우 격렬해져 별은 스스로 폭발하게 된다. 이 폭발하는 상태의 별을 초신성이라고 하는데 이 별은 굉장한 규모로 폭발하면서 잠깐 동안이지만 태양의 10억 배에 이르는 빛을 낸다.
가스의 바깥 층이 폭발로 날라가 버리면 중심부는 강력한 중력으로 응축되어 커다란 도시의 크기에 불과한 지역 20km의 크기로 줄어들게 된다. 응축이 되면서 전자가 양성자와 결합하여 중성자가 되며, 중성자가 꽉 채워지면 응축이 중단된다. 이러한 중성자도 측퇴물질의 한 종류인데, 전형적인 중성자별은 태양보다 무게는 조금 더 나가지만 크기는 매우 작으므로 그 밀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높다. 중성자별은 회전하면서, 섬광'처럼 맥동하는 방사선을 내뻗는다. 이것을 펄사(Pulsar)라고 부른다.
중성자별이 회전함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깜박거리는 방사선이 나온다. 이것은 선원이 멀리서 깜박거리는 등대의 불빛을 보는 것과 같다.
질량이 아주 큰 별(초주계열성)의 중심부는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백색왜성은 질량이 태양의 1.4배, 중성자별은 태양의 3배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질량이 극도로 큰 별이 폭발하는 경우, 응축하는 중심부의 질량이 한계를 넘어버린다. 따라서 일단 응출하기 지각하면 어느 것도 응축을 저지할 수 없으며, 크기가 작아질수록 그 표면에서의 인력은 더욱 강하게 된다. 중심부의 질량이 불과 몇 km로 줄어들면, 그 인력이 너무 커져서 아무것도, 심지어 빛까지도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여기에 파생되어서 다음과 같은 질의에 대해서 과학은 해답을 마련해 놓고 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금이 다른 금속에 비해서 귀한가?
지구상에는 92종의 원자가 자연 상태로 발견되는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보다 산출비가 훨씬 높다. 10개의 탄소 원자에 대해 평균적으로 20개의 산소 원자, 그리고 약 5개 정도의 질소 원자와 철 원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금은 산소에 비해 1억분의 1 정도로 휘귀하며,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우라늄 같은 것들은 양이 더 적다.
생명체인 우리 자신들에게도 이런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런 필수적인 원자들이 지구에 아주 흔하기 때문인가?
원자 자신들 또한 보다 간단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가의 원소들은 원자핵 안에 서로 다른 개수의 (양전하를 띠고 있는) 양성자를 갖고 있으며, 원자핵 주위에는 양성자와 같은 수의 (음전하를 띠고 있는) 전자가 결합된 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 숫자(양성자의 수, 또는 전자의 수)가 원자번호이다. 수소는 원자번호가 1이고 우라늄은 92이다.
모든 원소의 원자핵은 같은 소립자들, 즉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원자핵들이 다른 원자핵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예를 들어 핵폭발 등의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원자핵은 아주 튼튼하기 때문에 생명체의 내부 또는 실험실에서는 일어난 화학변환에 의해 파괴되지는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자들은 45억 년 전쯤 태양계가 형성될 때의 구성비와 마찬가지 비율로 존재한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원자들이 생기거나 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왜 그것이 하필이며 이런 특별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점을 파악하기 위해 복잡한 구조로부터 단순한 시작 쪽으로 거꾸로 추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경우 천문학자들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실제로 단단한 원자에게 시작해 항성 내부에서 융합되고 변환되어 무거운 원소들이 생기기 않았나 하고 추측한다.
그러나 태양의 중심조차도 이러한 변환을 수행할 만큼 충분히 뜨겁지 않다. 하지만 오리온 성운에 있는 것 같은 푸른 별들의 중심핵, 그리고 그것들이 최종적으로 폭발할 때의 강력한 충격은 보통의 금속을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태양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별들은 훨씬 밝게 빛난다. 그것들은 보다 복잡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진화한다. 그 중심부에 있는 수소는 태양 수명의 1%에도 못미치는 1억 년 이내의 시간이며 소모된다.(그리고 헬륨으로 바뀐다.) 그리고 나면 중력이 이 무거운 별들을 추가로 압축하고 그 중심부의 온도가 더 올라가고, 헬륨 원자핵들 자체가 결합하여 보다 무거운 원자들, 즉 탄소(6개의 양성자), 산소(8개의 양성자), 철(26개의 양성자) 등의 원자핵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일종의 양파껍질 구조가 생겨난다. 탄소 층이 산소 층을 둘러싸고, 다시 산소 층은 규소 등을 둘러싸게 된다. 보다 뜨거운 안쪽 층으로 들어갈수록 원자번호가 켜지며 맨 안쪽에 있는 중심핵은 주로 철로 이루어져 있다.
연료가 완전히 소모되었을 때(달리 말해서 뜨거운 중심부가 철로 바뀌었을 때), 질량이 아주 큰 별은 위기를 맞게 된다. 파국적인 수축을 통해 중심핵을 원자핵의 밀도까지 압축하게 되고, 그 결과 바깥 층들을 초속 1만 킬로미터로 날려버리는 거대한 폭발을 촉발시킨다. 이런 폭발이 초신성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잔해는 일생 동안 그 별을 빛나게 했던 원자핵의 연금술에 의해 생긴 모든 결과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 혼합물에는 다량의 산소와 탄소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여러 미량의 원소들은 초신성 폭발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원소들의 구성비를 이론적으로 계산해보면, 현재 우리 태양계에서 관측되는 값과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
왜 탄소와 산소 원자들은 지구상에 아주 흔하고, 금과 우라늄은 그렇게 귀한가? 그것은 우리 지구는 우주진(宇宙塵), 즉 오래 전에 죽은 별의 잔해인 것이다.

별과 관련된 이 같은 답변 속에는 이미 겹겹이 과학적 가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만약 가설 하나 하나에 대해서 시비 걸고 싶다면 수십 년 이상 이 방면에서 수련 과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어쨌든 연이어 다져지고 다져진 진리 사슬을 통해 오늘날의 과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진리에 대한 이러한 자신감은 인간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비합리성적인 요소를 가려내어, 미신, 내지는 사이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처단하는 기능까지를 함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실증과학 쪽에서는 각종 의문을 가져오고 있었다. 서양의 방대한 약초처방이 소멸된 이유는 비과학인 4체액설과 특징주의 위에 상상의 날개를 펴서 처방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한약도 마찬가지다. 비과학적인 고대 인체론 병인론(病因論), 기미론(氣味論)의 토대 위에 상상적 유추를 적용하여 쌓아 올린 것이 한약이다. 그런데 비과학인 기미론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한의학(韓醫學)에 한국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원리 면에서 중국 전통의학과 다른 점이 없다. 고대 중국인들은 음과 양이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은 중화역(中和易)이 건강한 상태이며, 병이란 이 중화의 상태가 한쪽으로 기운 것을 의미하였다. 약초, 침술, 기공, 식품 등의 병 치료효과는 이 균형의 회복과 관련된 효과였다. 기가 과학적 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원리에는 메커니즘적인 오류가 들어 있다.
고대 중인인은 간(肝), 비(脾), 폐(肺), 심(心), 신(腎)의 오장과 담(膽), 위(胃), 대장(大腸), 소장(小腸), 방광(膀胱), 삼초(三焦)- 삼초란 실제의 장부가 아니라 인체의 수리유통을 관장하는 곳-의 육부를 믿었다. 물론 인체의 운영에 중요한 것은 기였다. 인체는 기와 육체(혈과 진액도 이에 속함)로 되어 있고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기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각 장기에는 혼, 백, 정, 신, 의, 지 등의 정기를 할당하여 기능적 보완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사실적 증거, 다시 말해서 현대 생리학·해부학과 부합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것이다. 고대 인체 해부학의 문제는 단순한 해부학적 이해의 부족보다는 그 생리를 사변적으로 기술한 데 있기에 현대에 와서 폐기되어야 할 내용이다.
또한 중국 의학에서는 음양(陰陽)의 기와 더불어 오행(五行) 원리가 중요하다. 오행이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 5가지로, 오행에는 순환의 순서, 다시 말해서 상생(相生)의 원리가 있으며 오행간의 이김의 원리인 상승(相勝)의 원리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장기 간의, 장기와 질병 간의 그리고 장기와 약물 간의 상관성 등 모든 상관성을 오행의 법칙으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어 어느 한의학자는, '화가 심하게 나면 우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한다. 오행오식표에 의하면 노(努)와 상동관계의 것은 목(木)인데 목은 비·우(悲·憂)와 상동관계인 금(金)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맛을 탐닉하면 주름살이 는다'라는 말을 한다. 신맛과 상동의 기관은 목(木)에 해당하는 간으로서 한의학에서는 오행도식에 의해 신맛은 간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목이 지나치면 토(土)를 이길 수 있는데 육(肉)이 토와 상동관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에 해당되는 신맛은 토에 해당되는 육을 이겨 주름을 지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미신에 해당된다.
또 한의학에서는 음양의 부조화를 가져오는 병인으로서 육음 칠정을 규정하고 있다. 풍(風), 한(寒), 서(曙), 습(濕), 조(操), 화(火)의 여섯 가지 기후(氣候)를 육기(六氣)라고 하며 이것은 자연현상의 정상적인 조화이지만 비정상으로 되어 병의 원인이 될 때 육음(六淫)이라고 하였다. 또한 노함, 기쁨, 생각, 걱정, 두려움, 슬픔, 놀라움의 칠정(七情)의 병의 원인이라고 본다. 육음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당시의 병인론일 뿐이다. 칠정은 정신의학적 색채를 가진 것이지만 개개의 정(情)에 의해 일정한 장기의 손상을 가져오며 이를 이길 수 있는 처방이 모두가 오행의 도식으로 설명된다는 점에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미신이다.
한의학에서는 보고(望診), 듣고(聽診), 맥을 짚고(脈診), 물어서(問診) 병을 진단한다. 임상검사나 기진단법을 제외하고는 현대의학과 거의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한의학이 과학적 장치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진단법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음양의 기를 측정한다는 어떤 진단법도 과학일 수 없다. 또한 한의학 고유의 맥진이란 의사(擬似) 진단일 뿐이며 오관(눈·귀·코·혀·피부)을 보아 내부 장기의 이상을 판단하는 방법도 과학이 아니다.
이렇게 진단하여 기원 2∼3 세기의 [상한론(傷寒論)]에서는 태양(太陽)·소양(少陽)·양명(陽明)의 3양과, 태음(太陰)·소음(少陰)·궐음( 陰)의 3음으로 나누어, 태양병, 태음병 등등으로 병명을 설정하였는데 이 병명은 음과 양, 표(表)와 리(裏), 한(寒)과 열(熱), 허와 실의 특징으로 구분한 것이다.
한약에서는 사기오미(四氣五味)의 약성(藥性)을 중시한다. 4기란, 한·열·온·냉 4가지로 한(寒러_을 치료하는데 열약(熱藥)을 사용하고 열을 치료하는데 한약(寒藥)을 사용한다는 원리를 가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고대인의 한계성이 잇는 지혜일 뿐이다.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현대 신경생리학에서는 신을 다루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신을 설명해야 신에 대해 진정 과학적인 접근책인가?
신경생리학자들은 신의 체험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점차 폭을 넓혀서 다른 동물의 두뇌와 사람의 두뇌를 비교하므로서, 신에 대한 감정은 정상적인 두뇌 활동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하는 것이다.
사람의 두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름진 대뇌피질 속에는 모든 고차원의 지각 기능이 일어나는 곳이다. 뇌에서 가장 진화한 부분이다. 이 신피질이 진화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대뇌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와 예술, 신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차원 기능도 기초적인 생명 유지 체계와 호르몬의 활동과 기본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더 원시적인 '피질' 구조들의 바탕과 연관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원시적 두뇌조직은 인간의 신체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두뇌는 마음과 육체가 함께 결합하여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상과 세계관도 외부적인 종교적 의식(儀式)이 없이는 신적 느낌을 갖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종교 의례가 순전히 문화적 현상이라고 믿었으며 사회적 조건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간 의식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해보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관찰에 따르면 인간의 종교 형식과 동물의 행태에는 그 방식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그 기본 형태에서 동물의 행동에는 구조화되고 패턴화된 반응들- 춤추기, 소리지르기, 머리 까닥거리기 등-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리드미컬하고 반복적이다. 이 행위들은 종종 아주 극적이고 특이하여 의례 행위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기능도 없다. 인간들에게도 이런 요소들이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오 성가의 장엄한 리듬에서부터 폴리네시아의 생동감 넘치는 다산(多産)의 춤 리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례 행위에서 리듬과 반복은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아무런 실용적인 의미도 없는 독특한 행위 -절, 느린 행진, 손과 팔의 이상한 제스처 등 -볼 수 있다. 그것은 집단 구성원간에 공격 행위를 감소시키고 집단 간의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사회의 종교 행위의 뿌리에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생물의 신경생물학적 필요가 정교한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외부적 자극이 개인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주며 이런 행위에 같이 동참케 되는가?
리듬감이 가득한 종교행위는 신체의 억제계와 흥분계에서 자율 반응을 변화시킨다. 리듬이 빠를 경우- 예컨대 수피족의 춤이나 부두교의 열광적인 의식에서처럼- 흥분계는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활성화된다. 이렇게 신경 활동의 수준이 점점 증가하면, 뇌의 평형 감각을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외교관 해마회가 관여하게 된다. 이곳은 종종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는 일종의 수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조절 기능은 신경 활동의 수준을 완화시키고 뇌를 비교적 안정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예를 들면, 뇌의 활동이 너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감지한 해마회는 뇌의 활동이 진정될 때까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상 뇌의 활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그 결과로 어떤 뇌 구조에는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신경 입력 정보의 정상적인 공급이 차단된다.
그러한 구조들 중 하나가 정위연합영역(자신을 나머지 세계와 구별하는 것을 도와주고, 공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주는 부분)인데, 그러한 정보의 흐름이 차단될 경우, 정위 영역은 이용할 수 있는 나머지 정보를 가지고 일을 수행한다. 신경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정위영역은 수입로(輸入路)가 차단된 것이다. 즉 신경 입력 정보를 거의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동해야 한다. 수입로 차단은 자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덜 명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체감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일체감의 원인이 되는 이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찬송이나 명상기도와 같은 느릿한 의식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할 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수도 있다. 느린 리드미컬한 행위는 억제계를 자극한다. 억제계가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작동할 때, 해마회의 억제 효과를 직접 활성화시켜 결국 정위영역의 수입로 차단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뇌가 느끼는 자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종교 의식의 주요 목표인 일체의 상태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한 연구에 의하면 반복적인 청각 및 시각 자극(의식적인 춤, 노래처럼)이 피질에 일으키는 리듬은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리드미컬한 행위는 동시에 여러 감각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종종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활동들-단식, 호흡 항진, 향 또는 그 밖의 방향제의 흡입 등-과 결합되어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신체생리학에 비상한 정신 상태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자율 신경계의 활동만으로는 의식 도중에 경험하는 강한 감정적 상태들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하고 그 이상이 필요한 데 개인적인 의미(추상적인 단어나 소리가 아니라)를 가진 주문을 사용하는 명상자들이 높은 명상 단계에 도달하는 데 훨씬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넓게 볼 때, 명상 기법들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마음에서 모든 의식적인 생각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동적 접근 방법과, 마음을 특정 대상에 완전히 집중시키는 것(예를 들어, 만트나나 다른 상징 또는 성경 구절)을 목적으로 하는 능동적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수동적 접근 방법은 뇌의 오른쪽 주의영역(의지 행동의 주요 근원)에서 시작되어 마음을 감각 입력 정보뿐만 아니라 인지적 입력 정보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필요로 나타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의영역은 시상을 통해 변연계의 구조인 해마회로 하여금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줄이게 만든다. 이 신경 정보의 차단은 정위영역을 포함한 많은 뇌구조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정보가 차단된다.(수입로가 차단된다)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수입로 차단은 경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명상의 단계가 심화되면서 주의영역이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려고 더 강하게 노력함에 따라 이 영역은 해마화와 협력하여 점점 더 많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차단한다.
신경 신호의 완전한 차단은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공간적 내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결여하게 된다. 감각 입력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정위영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은 이것을 무한한 공간과 영원으로 또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텅 빈 진공으로 해석된다. 한편 자아라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던 왼쪽 정위영역은 신체의 경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지각하는 자아는 이제 한계가 없어진다. 사실 이제 자아라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초점의 대상이 예수라는 정신적 이미지라고 상상하자. 수동적 접근 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과정은 기도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주의영역(의지를 주관하는 영역)이 신경학적 용어로 번역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특정 물체나 생각에 더 강하게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주의영역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촉진한다. 우리의 모형에서 이러한 신경 정보의 흐름을 증가는 오른쪽 정위영역을 시작영역과 협력하여 실제적인 것이든 상상의 것이든 마음속에 초점의 대상을 고정하게 만든다.
지속적인 명상을 통해 이 이미지에 계속 초점을 고정시키면 오른쪽 주의영역에서 신경 정보를 방출시켜 변연계를 통해 시상하부까지 내려가게 만든다. 이것은 시상하부의 흥분계 부분을 자극하여 가볍고 즐거운 흥분 상태를 일으킨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이러한 신경 정보의 흐름 강도는 점점 증가하여 시상하부의 흥분 기능이 최대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출이 일어나 즉각 시상하부의 억제를 최대한으로 발휘시킨다.
흥분 기능과 억제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면, 최대 자극의 물결이 일어나 변연계의 구조들을 통해 왼쪽과 오른쪽 주의영역 모두로 돌아간다. 이러한 갑작스런 신경 정보의 홍수로 주의 영역의 활동은 최소 수준으로 치닫고 이것은 주의의 대상에 집중하는 마음의 능력을 증폭시켜 왼쪽과 오른쪽 정위영역 양쪽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다.
왼쪽 정위영역에서는 수동적 명상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해마회의 신경 흐름 억제는 수입로 차단을 초래하고 자신에 대한 감각이 흐릿해진다. 그러나 오른쪽 정위영역에게 미치는 효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주의영역은 오른쪽 정의영역에 예수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강하게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제 주의영역이 최대의 수준에 이르면 신경 정보가 오른쪽 정의영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왼쪽 정위영역으로 흘러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오히려 주의영역은 오른쪽 정위영역을 점점 더 강렬하게 예수의 이미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음을 이 이미지에 더 세밀하게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영역은 또한 오른쪽 정위영역으로부터 예수를 생각하는 데서 온 것도 아닌 모든 신경 입력 정보를 없애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오른쪽 정위영역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기반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할 때, 주의영역에서 밀려오는 입력 정보 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없다. 이 과정이 계속되어 쓸데없는 모든 신경 정보들이 없어지고 마음의 집중에 더욱 심화됨에 따라 예수의 이미지는 점점 확대되어가다가 마침내 그것은 마음에 아주 깊은 폭넓은 전체 현실로 인식된다.
이러한 변화들이 오른쪽 정위영역에서 펼쳐질 때, 왼쪽 정위영역의 수입로 차단도 함께 진행되어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완전한 수입로 차단과 함께 자신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없어지면, 마음은 자신이 예수라는 초월적 실체 속으로 신비스럽게 흡수된 듯한 놀라운 지각을 경험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서로 다른 이러한 해석들은 신비 체험이 일어난 후에 불가피하게 주관에 의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절대적 일체 상태에 있을 때에는 주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관찰을 할 수 있는 주관적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찰할 만한 어떤 명확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이 하나이지 동일한 것이며,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거기에는 어떤 구별도 없고, 이것과 저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인 일체뿐이며, 이 두 가지의 절대적인 일체가 있을 수는 없다. 이처럼 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아성을 떠나서 존재하는 절대적 실체가 아닌 것이다. 즉 신이란 인간의 두뇌 속에만 있는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두뇌는 신보다 더 큰 차원이다. 물론 두뇌보다 더 큰 차원은 대자연 그 자체이다.
이렇게 볼 때에 자연과학은 더 이상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인간의 관점에만 최종 근거를 둘 수 없게 되었다. 그 관점조차도 지금의 이 우주가 존재하겠끔 내려왔던 그 흐름과 과정 안으로 흡수되어야 한다. 즉 관찰행위 자체가 관찰의 대상이 되겠끔 하기 위해서는 신 관념조차 만들어내는 그 두뇌의 실체를 대우주의 큰 흐름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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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577건 중 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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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성경신학 7. 새 성전 등장 - 최고관리자 0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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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성경신학 5. 인간의 몸과 성전 레위기 최고관리자 06-11-29
235 성경신학 4-3 제사장에 나타나는 심판과 긍휼 - 최고관리자 0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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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성경신학 3. 성전의 원형 신명기 최고관리자 06-11-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