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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 론성경신학고린도전서

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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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오늘날에 있어 과학이 단순히 한 분야만 차지하고 있는 정신 구조가 아니다. 유신론이 되었던 무신론이 되었던 상관없이 그 바탕에서 과학적 사유로 짜여져 있다. 하나님의 계시도 과학적인 점검을 거쳐 허락이 떨어져야 종교 분야에 국한해서 진리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도로 과학적 인식은 독보적인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과연 성령께서 과학의 협조를 구하시면서 일하시는가 아니면 그것마저 죄라고 지적하시면서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역사 하시는가? 고린도전서 2:2-5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과연 이 말씀마저도 고고학과 사회학과 언어학적 도움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해되는가? 그렇지 않다. 성령만으로 충분하다. 성령을 받은 자는, 오직 사도 바울의 이런 고백에 동감을 나타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도 작정한 그 고백 말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이 사람의 지혜나 과학적 탐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오심과 능력으로만 가능함을 동시에 안다. 그렇다면 과학에 대해서 예수님이나 성령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그것은 '인간의 지혜'에 속하는 문제이다. 즉 죄의 열매로 본다. 이런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일'을 곧 '사단의 일'로 동일시하셨다. 마태복음 16:23에 보면,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과학'이라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과학'이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죄로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을 의지하는 것뿐이다.(로마서 3:23-25)

희생 제물이란 죄가 성립되지 아니하면 불필요한 것이요, 또한 희생 제물에 참여하는 자가 자신의 죄 됨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숱한 희생제물도 무용지물이다. 예수님 본인이 희생 제물로 등장하셨다면 그 앞에서 나오는 자들은 자신이 왜 죄인인가를 알아야 한다. 과학자가 되었든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한 위대한 의사가 되었던 상관없이 누구나 다 그러해야 한다. 그저 윤리적인 면에서만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전문직이라고 여기는 과학 작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긍정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온전한 은총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모든 은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만을 통해서 하늘에서 내려오고 또 하늘로 영광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영광 차원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존재의 가치와 의미의 차원에서 과학을 평가한다면 과학이란 인간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총이자 지혜로 간주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그 은총으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주물러서 인간 행함과 그 의를 긍정하는 새종교를 창설한 것이 그 다음 절차가 된다. 즉 과학을 믿는 것은 새 종교의 교리를 믿는 것이다. 과학을 믿지 말고 알고 있어야 한다. 그 교리는 모두 인간의 죄의 한계 안에서 언젠가는 도출되어야 될 열매이기 때문이다. 즉 과학을 통해서, 혹은 과학 안에서 자신의 죄를 알아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본질을 알아야 한다. 특히 현대 과학의 원천인 물리학은, 존재의 구조도 아니요 변화의 모양새도 아니요 '세기의 장' 곧 힘의 뭉치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체계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로 본다. 따라서 과학자들에게 있어 진리라는 것도 만들고 조정하기 나름이라고 여긴다. 이런 합리적 사고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하는 시대가 오늘날 이 시대이다.

'주'의 자리에 '인간의 행함' 이 대체되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은 결코 이 세상에서 은퇴하신 것이 아니다. 도리어 제대로 주님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다만 그 활동 상이라는 것이 인간이 모든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오직 십자가의 의만 제시하는 식으로 전개될 뿐이다. 이런 복음적 관점에서 과학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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