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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7. 새 성전 등장성경신학-

7. 새 성전 등장
에스겔에 있는 새 성전에서 옛 솔로몬 성전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전에 살았던 인물인 다윗 왕을 거기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솔로몬 성전의 존재성은, 다윗 가문의 유지를 뜻한다. 성전의 재 건축은 다윗 가문의 재 수립이다. 다윗 왕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왕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다 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짓겠다고 제의를 한 적이 있다. 하나님만이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참된 이스라엘의 실체를 대변한 말이었고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제의를 허용한 적이 있었다. 이제 이러한 성전 본래의 취지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하나님이 직접 성전 속에 들어와서 이스라엘의 왕임을 온 천하에 드러내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새 성전에 오신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왕 되심을 묘사하는가?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건축 조형물로서의 성전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성을 보장받는 것은 다윗 가문이 바로 유일한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사무엘하 7:5-7,10-12) 이 본문에 의할 것 같으면,
(1)내가 언제 너희들보고 내가 거할 집 지어 달라고 하던가? 필요 없다! (2)내가 한 곳을 정하여서 더 이상 너희들이 떠돌지 않도록 영원한 기업을 주겠다 (3)내가 다윗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 주고 그렇게 해서 생긴 그곳에 내가 영원히 거하겠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 손으로 지을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성전과 사람의 손으로 짓지 못하고 하나님에 의해서만 친히 지을 수 있는 것만 참 성전이라는 의지가 동시에 등장된다. 전에 모세에 손의 의해 성막을 짓게한 것도 같은 취지였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이 본문에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참된 성전은 사람의 의지나 요망사항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윗이 성전 지겠다고 제안했을 경우에도 이 원칙을 여전히 관여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주어진 기업과 또한 다윗 가문 그 자체를 오직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 쪽에서 친히 만드시는 성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시편 114:1-2에서 분명히 이점이 밝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건축 구조물로서의 성전 제안이 우선 다윗왕에게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솔로몬 왕이 짓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다윗, 솔로몬 이 두 왕의 위상이 성전 건립과 무관하지 않다.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 성전 축조 시기가 넘어간 이유는, 성전 속에 들어있는 다윗적인 내용이 곧 솔로몬 왕의 위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하오니"(열왕기상 5:3-5) 이 본문에서, 다윗 가문(다윗 집)의 기념비적 결실은 이스라엘의 모든 정치적 상황이 다윗 언약에 준해서 모든 게 평정되어 있느가에 달려 달려 있다.
즉 성전이란, 하나님의 이름이 이루어 나가시는 그 일의 취지를 최종적으로 기념하고 증거하는 건축물인데, 모든 것이 그 목적이 부합될 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시는 일은 멈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전 건축 시기에 등장 될 인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다윗 언약의 내용대로 손수 평화를 이룩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 자가 바로 솔로몬 왕이다. 즉 하나님에 의한 후계자로 세워진 평화의 왕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윗과 솔로몬 사이에 친히 개입하셔서 솔로몬을 다윗의 다른 왕자들을 차별화를 일구어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솔로몬이 단순히 다른 자식과 같이 다윗의 혈통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다윗과 무관하고 오직 다윗 언약과는 유관한 채 다윗의 자손의 위상을 담은 인물이 솔로몬 왕이다. 이와같이 다윗 언약이 변함없이 움직여 나간다는 사실을 솔로몬이라는 다윗 가문(집)의 인물의 등장으로 증명되는 것이다.이점을 증거하는 시설물이 바로 솔로몬에 와서 지어진 성전이다. 만약 다윗 언약에 따르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속의 성전도 그 때쯤에는 무너져야 한다. 결국 성전은, 이스라엘이 언약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아니하느냐를 점검할 수 있는 설치물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즉 이스라엘의 과연 하나님의 집이냐 아니냐를 점검하기 위하여 건축 구조물로서 하나님의 집이 지어진 것이다.
이 건물의 중심지에는 언약궤가 놓여있다. "내가 또 그곳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 넣은 궤를 두었노라"(역대하 6:11) 이 작업을 위한 건축 자재 준비와 치수까지 성신께서 분부한 대로 시행한 자는 다윗이다.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역대상 28:11-12,19) 마치 시내산 시절의 모세와 같은 입장에 있다. 다윗이 의도하고 있었고 제안되었던 '집'이라는 개념의 성전은, 하나님이 의도하셨고 하나님에 의해서 제안된 '하늘의 보좌' 차원에서의 '집'과 중첩된 시설물로 지상에 등장되었다. 건축물으로서의 집과 가문으로서 집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상호 교환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거가 가능하다는 공통적 사실이 언약에 의해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모세 시절에, 여호와께서 장막에서 모세와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언약을 통해서 이미 약속하신 바와 마찬가지이다.(출애굽기 30:6/20:24) 다윗과 더불어 계약하신 여호와께서 과연 이 계약대로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시면서 평화의 시기를 베풀어 주셨다. 이 평화는 다윗 가문(다윗 집)에 성립에 성공했다는 증거로서의 평화 제공이다.
그러니깐 성전이 비록 솔로몬에 의해서 준공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하시면서 나름대로의 성전이 이미 마련된 것이었는데 그것이 다윗 가문을 선택하면서 밖으로 구체화 된 것 고 솔로몬은 그 열매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계속 이러한 평화를 유지하려면 만남의 장소인 이 언약이 영속되어야 한다. "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역대상 28:8) 이 언약 내용 핵심은 제사이다. 늘 거룩한 피를 발생시켜야 한다. 그래야 언약에 의해서 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책임자는 다윗 왕가의 왕들이다. 만약 이 언약을 왕들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성전도 깨어지고 기업으로 받은 약속의 땅에서도 추방된다. 그 어떤 타협이나 양보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이스라엘이 다시 회생되려면 언약을 준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왕이 등장해서 평화의 계약을 유지, 보존 시켜야 한다.(에스겔 37:24-28) 다윗 시절 이 후에도 다윗 왕의 존재란 곧 은총으로 통한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세아 3:5)
에스겔 40장-42장에 보면, 깨어진 솔로몬 성전을 대신해서 다시 회생되는 성전이 나온다. 이 새성전의 중앙에 있는 건물은 깨어진 옛 성전의 아품을 백성들에게 되새겨주기 위한 목적으로 중건된다.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 43:10-11) 이 본문에 보면,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성전을 측량하는 그 자체가 포로된 백성들에게 부끄러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속되었던 다윗 언약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무지성과 패역성을 드러내어 그들로 부끄럽게 만드는 성전 재건축이다. 따라서 새성전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된다.
(1)본래의 취지대로 성전은 지으진다. (2)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지어진다. 그 성전은 다윗 가문이다. (3)그 가문 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거하신다. (4)그리고 백성들에게 영원히 고정된 기업을 백성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새 성전 안에는 솔로몬 성전의 파괴와 재건, 이 두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지어졌다. 파괴와 재건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해야 될 자는 다윗이라는 왕이다. 왕이 직접 제사에 집례하는 모습은 전에 있었던 솔로몬 왕 때의 일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확대되고 강조된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열왕기상 8:63-64/에스겔 45:16-17,22/46:2,4,12-15 참조) 왕이 제사를 직접 집례한다는 것은, 왕의 위상에서의 대제사장이라는 뜻이며 이는 왕이라는 한 인격이 제사의 모든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추에 서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왕 하고만 언약 상대자로 잡았다. 따라서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제사는 다윗 언약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새 성전에는 새로운 다윗 왕이 들어서게 된다.
"내 조상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37:24-28) 이 본문에 의하면 다윗이 왕이 되는 바로 그 장소가 새로운 성전이 들어서는 곳이요 동시에 백성들도 함께 있는 그곳이다. 이 다윗을 누가 세우시는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는 여호와의 말이니라"(34:15-16,22-24)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목자가 되셔서 잃어버린 자를 다시 회복시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신다. 이 성전의 측량은 이미 사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확정된 바 있다. 사람 손에 의해서 지어지는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지어진 성전이다. 새로운 성전이 꼭 이 시점에서 꼭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다윗 언약의 성사가 여전히 하나님과 왕 사이에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내비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스라엘이 제대로 왕다운 왕이 없었기에 제사장 나라답게 살지 못했다. 성전이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45:9)
이것을 극복하고 그 모든 율법을 완수할 수 있는 자로서의 왕이 나타나서 온전한 성전과 나라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 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지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을 갖출지니라"(에스겔 45:17) 그렇게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세운 완벽한 성전인 점을 완벽한 율법 수행을 통해서 충실히 부각시킬 수 있는 왕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제대로 된 왕과의 만남이 성사되는 장소로서 새 성전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44:1-3) 동쪽 현관에서 여호와 앞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 왕이 있을 경우에만 이 계약은 성사된다.
원래 성전이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실 만한 곳으로 지상에 생겨난 장소이다. 성전 안은 '하나님 이름'의 세계이며 성전밖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의 세계로 구획된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애굽기 20:24/열왕기상 8:18,20 참조) 주의 이름이 주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데 오직 약속된 것만을 이루신다. 약속 밖에서 알려진 신은 그 어떤 경우에 있어도 주님이 아니시다. 우상일 따름이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 성전이란, 기존의 우상 신전을 만들어 인간 성전화를 시도하는 모든 것을 언약에 준해서 심판하기 위한 성전이다. 다윗이 싸워야 했던 그 싸움이 이제는 솔로몬 성전을 중심으로 계속 연장 실시된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의 하시는 전쟁을 반복하는 중심지가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이 지닌 거룩성과 엄위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성전 안에서 신봉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다.
다윗 계통의 전사이다. 그분만이 왕이다. 다른 이는 왕으로 취급되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사무엘하 22:51,23:5)
따라서 성전의 온전한 완성은 건축 구조물로서 머물러서는 안되고 본래의 '하나님의 집'인 왕이 나타나 약속된 심판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엄위하고 거룩하신 보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장소는 불이 가득한 곳이다. 하나님은 그 불 가운데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그 거룩한 불의 움직임으로 구체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 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에스겔 10:1-8/사무엘하 22:12-14 참조) 이 불의 심판이 떨어지는 지점은, 그동안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던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모독을 받았기에 이에 심판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에스겔 36:22,32). 사람의 얼굴과 손과 더불어 나타난 불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로 추방당하고 성전은 불에 타 버린다. 이사야 6장에서도 이사야는 성전에서 나온 숯불에 의해서 입에 지짐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곧 이사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선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1-5)
거룩이 극도로 충만하며 죄가 없는 거룩한 자만이 이 성전에 출입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 불의 모습을 띤다는 것은 처음 창조 때의 하나님의 형상의 틀을 계속 고수하신 채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신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장차 신약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후서 1:7-9) 이 본문에서는, 예수의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불꽃 가운데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심판이 다윗 언약 시절에는 성전 안에서 이미 시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심판 속으로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다니신다. '인자'라고 부르시면서.
새 성전에서 일하시는 왕과, 성신을 통해서 미리 새 성전의 모습을 구경한 에스겔 사이에는 [인자]라고 하는 특수한 칭호로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에스겔이 받은 성신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자에게 성신을 주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은, 나중에 온전한 성전이 이루어졌을 때에 성전을 통해 [맑은 물]을 내어 보낼 수 있는 왕과 동일한 사역 안에서 만나게 된다. 인자가 되는 에스겔에게 새 성전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성신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새 언약 시절에 성신을 받게 되는 모든 자들은, 새 성전의 주인공이 되시는 새 다윗 왕의 본질을 에스겔처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즉 바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성신을 보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판 속에서 살아있는 자, 곧 '인자'가 계속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 에스겔 9장의 나타나 있는 아래의 본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3절-8절)
이 본문에서, 베옷 입은 자들의 벌리는 심판 속에서 꼭 죽이야 될 자와 살아남아야 될 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데 살려두어야 될 자들은, 현 예루살렘의 참담한 불신앙과 죄악을 바라보면서 애곡와 탄식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이미에 먹물로서 표식을 해서 살려두어라 는 하나님의 지시이다. 마치 기생 라합의 창문에 붉은 끈을 매단 방식과 같고, 출애굽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에서 현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정당함을 같이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런 자들은 남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세세에 널리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리가 바로 인자의 자리이다. 심판을 증언하는 임무를 지닌 자들이 인자와 더불어 남은 자이다. 그 밖의 자들은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라는 표현대로 마치 아말렉 군대를 진멸하는 차원에서 몰살하게 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칭해서 '내가 보내지 아니한 자'라고 규정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에스겔 13:6) 하나님의 의해서 계속 보호와 사랑을 든든하게 받게 되리라 여겼던 이스라엘은 도리어 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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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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