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4-1 제사 지내는 장소성경신학이사야

4-1 제사 지내는 장소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4-1 제사 지내는 장소
(1).제사 지내는 장소

이스라엘 진영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성소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진리의 장이다. 모든 성스러움은 여기서부터 흘러 나온다. 이 장소에 있는 거룩의 충만이 이스라엘 전역에 확산시키는 원천 구실을 하게 된다. 이 지역이 금지된 구획인데 거룩에 의해 독점된 지역이다. 이로서 성과 속을 분명히 구분하게 된다. 감히 들여다 보거나 접근해서는 안되는 장소다. 이 비밀스러움과 고립성은 하나님 임재에 대한 권력성을 공간적으로 표현해준다. 이스라엘에게서는 유일한 권력은 오직 성스러움 뿐이다. 늘 중앙을 차지하면서도 동시에 이 권위와 능력은 비밀스럽게 은닉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만남의 장소'이다. 이 비밀스러운 장소는 모세 언약에 따라 특수계급의 존귀한 (히 5:4) 기능에 의해서만 공개될 뿐이다. 이와같이 고립성을 더욱 철저히 하므로서, 성스러움만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시는데 이는 속됨을 더욱 더 속된 것으로 구체화 시키는 권위적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만남의 장소'의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은 소위 '성전세'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충당된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출 30:12-16) 이 본문에 보면, 부한 자라고 더 내는 것도 아니요 가난한 자라도 덜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세는 '목숨 값'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존재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만남에는 인간의 죽을 목숨과 하나님의 거룩과의 만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산 채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목숨 값을 지불한 덕택이다. 이 '목숨 값'이 회막과 성전을 지탱케한다는 것은 속전의 지닌 구원 지시성과 회막(성전)의 구원적 기능을 알려준다. 이 속적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고전 6:20/딤전 2:6) -오늘날의 교회 운영비를 충당을 목적으로 하여 목적세 성격의 모든 교인에게 부가되는 일정액의 주정헌금과는 전혀 상관될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전 백성은 하나님에게 '생명의 값'을 지불하면서 '만남의 장소'가 지니는 대속의 위상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성전 안의 내용물이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거룩 참 모습을 감당할 수 있는 상징물이 존재할 수 없이 성전은 그 자체로서 '누락'과 '공백'의 차림새로서 거룩의 힘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누군가 이런 소리까지 하게 된다. "솔로몬이 그(하나님)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행 7:47-50)

스데반 집사의 이 주장에는 성전의 궁극적 지향성을 확실히 담겨 있다. 그 전까지의 구약 성전은 어디까지나 감추워진 비밀이어야 한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추웠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롬 16:25) 성전 곧 '만남의 장소'은 택한 백성들의 죽음의 장소인 동시에 속죄물도 함께 죽어야 유지되는 거룩한 공간임을 말한다. 이 공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친히 앞서 인도하고 이끄는 구름기둥과 불기등은 이 장소에서 피어오르는데 이것은 일종의 기호로서 이스라엘 전역에 여호와의 거룩한 왕적 권력이 발산 실시되고 있음을 보인다. 그래서 성소 안에서는 심판과 긍휼이 늘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장소는, 심판을 드러내는 증거물에 의해서 충만한 장소이며 긍휼의 장소도 긍휼에 의해서 새로 생겨난 증거물에 의해서 충만한 장소이다. 그런데 이 거룩하고 신성한 장소에서 터부시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과 시신, 장례 기구, 및 남녀 신체의 배설물, 땀, 문둥병이나 유출병 같은 것들인데(민수기 19장) 이런 것들은 부정하고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단정된다. 왜 이러한 요소들이 거룩한 것과 접촉해서도 아니되고 거룩한 장소를 훼손하는 요소가 되는가?

그것은 바로 성소를 유일하게 거룩하게 유지할 수 있는 희생 제물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희생 제물의 거룩됨을, 죽음의 이미지만을 듬뿍 풍겨내고 있는 인간 속성과 대립시키므로서 그 거룩됨의 고유한 가치를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거룩함을 오직 희생 제물만에게만 따로 적용시키는 것이다. 비록 같은 외형, 같은 죽음, 같은 생물체처럼 보여질지라도 일단 희생 제물로 선별되고나면, 희생 제물이 희생되는 공간과 타공간을 확실하게 구역 짓고 분리시키므로서 인간들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죽음이 희생 제물로 통해 이루어짐을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심판성과 긍휼성은 바로 이 희생 제물만이 유일한 증거물로서 말씀되어져야 될 성질의 것이다. 마치 출애굽 때에 어린 양의 죽음이 애굽인 장자의 죽음과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성과 긍휼성의 궁극적인 증거는 결코 애굽 가정의 장자들의 죽음이 아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은 그렇게해서 살아남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희생 제물의 거룩성의 의의를 계속 담아내고자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장소는 인간들이 범죄한 증거물 위에다 정하셨다. 홍해를 건너오면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계속했다. 그들은 속된 것으로부터 거룩에로의 인도하심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들이 진정 염려하는 것은 생명에서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즉 그들에게는 거룩보다도 생존이 앞선 문제였다. 이것은 그들이 애굽 땅에서 젖은 품성인 동시에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구원이 결코 생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거룩된 국가가 우선임을 알려 주기 위하여 모세를 처음 부른 시내 산까지 그들을 데리고 올라 오셨다. 그리고 거기서 십계명을 주어서 자신들이 얼마나 거룩과 거리가 먼 위치에 있음을 알려주고 마땅히 그들이 멸망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애굽적이었고 그들이 연상하고 있었던 신의 형상도 피조물 세계에서 따온 형상으로 경배했다. 그 때문에 모세는 십계명을 산에서 가지고 내려오다가 깨어 버렸다. 이것은 계약의 파기를 뜻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본 모세와(민수기 12:8) 하나님 사이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여 새로 십계명 판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증거판]이라 명명된다. 즉 백성들의 범죄를 증거하는 증거판이다(출애굽기 34:29)

그리고 그 돌판이 있는 곳은 증거궤가 되고(출애굽기 40:3,5) 그것을 덮는 성막은 증거막이 된다(출애굽기 38:21) 그리고 그 증거궤 뚜껑이 바로 백성의 죄를 가려버리는 속죄소가 된다(출애굽기 31:7) 하나님이 백성들의 지은 죄를 못본채 덮어 버리시는 것이다. 희생의 피가 하나님과 인간 중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거룩에 흠집을 내지 않게 막아준다. 이 정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에게 도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 쪽으로 자신을 커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긍휼이요 사랑의 절정이다. 바로 그 장소가 하나님이 이름을 두고 곳이다.(출애굽기 20:24) 하나님의 이름이 특정 장소과 연관지어서 계시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지상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에 한 한다.

한 때 야곱이 하나님을 직접 만난 그곳을 브니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야곱 자신이 있기에 야곱은 자기 생명이 그 이름으로 인하여 보존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이름의 은폐성은, 이름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인물이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가를 향해 가나안 땅으로 몰아넣으신 이유도,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담으실 거룩한 백성 만들기를 위해서였다. 여기에 싸움을 유발된다. 하지만 이 싸움들은 이스라엘 속에 계시는 거룩하신 승리로 인해 그 기업은 이스라엘의 것으로 분배된다. 그곳은 소위 택하신 곳이다.(신명기 12:5,11,14,26,/ 16:2,6/17:8/18:6) 바로 이 공간이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의 자리는, 심판과 긍휼의 원칙이 작용하고 성과 속이 만나는 지점이다. 출애굽기 20:24은 이점을 제사로 표현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애굽기 20:24)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577건 중 1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52 성경신학 1. 상식적 측면에서 무엇을 과학이라고 말하는가? - 최고관리자 06-11-29
251 성경신학 1. 상식적 측면에서 무엇을 과학이라고 말하는가? - 최고관리자 06-11-29
250 성경신학 서 론 - 최고관리자 06-11-29
249 성경신학 서 론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6-11-29
248 성경신학 결 론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11-29
247 성경신학 10.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2)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6-11-29
246 성경신학 10.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2)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06-11-29
245 성경신학 10.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1) - 최고관리자 06-11-29
244 성경신학 10.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1)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6-11-29
243 성경신학 9. 학개와 스가랴에서의 성전 - 최고관리자 06-11-29
242 성경신학 9. 학개와 스가랴에서의 성전 스가랴 최고관리자 06-11-29
241 성경신학 8. 인자와 새 성전의 구조 에스겔 최고관리자 06-11-29
240 성경신학 7. 새 성전 등장 - 최고관리자 06-11-29
239 성경신학 7. 새 성전 등장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1-29
238 성경신학 6. 다윗 언약 시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의미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06-11-29
237 성경신학 5. 인간의 몸과 성전 - 최고관리자 06-11-29
236 성경신학 5. 인간의 몸과 성전 레위기 최고관리자 06-11-29
235 성경신학 4-3 제사장에 나타나는 심판과 긍휼 - 최고관리자 06-11-29
234 성경신학 4-3 제사장에 나타나는 심판과 긍휼 - 최고관리자 06-11-29
233 성경신학 4-2 제사 드리는 제물에서 비쳐지는 심판과 긍휼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6-11-29
232 성경신학 4-1 제사 지내는 장소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6-11-29
열람 ➜ 성경신학 4-1 제사 지내는 장소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1-29
230 성경신학 4. 거룩의 지속성 - 최고관리자 06-11-29
229 성경신학 4. 거룩의 지속성 레위기 최고관리자 06-11-29
228 성경신학 3. 성전의 원형 신명기 최고관리자 06-11-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