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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설교 요약(임시로 계시판에 올립니다)우리교회히브리서

[일반] 설교 요약(임시로 계시판에 올립니다)

이름 : 이근호(IP:)

설교 요약

2001년 7월 1일 히브리서 1:1-2 만사의 후사되시는 아들

인간은 철저하게 악의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도망친다고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는 교회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고 교회마다 악의 아지트로 만들어버립니다. 더 이상 도망칠 피난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성'이라는 가치로서 이 세상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악의 세계는 은혜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경쟁과 대결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마치 깊은 밀림이나 사막 한 가운데서 내가 어디쯤 있는가를 알려고 애쓰는 자들과 같습니다. 그것 알아서 어디에 써먹으려는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은혜성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을 모르는 인간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행한 행동밖에는 모릅니다.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한 것만을 사수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것이나 소유한 것 모두다 자신의 후사인 셈입니다. 이런 인간들의 은혜성은 본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왜 이런 비은혜를 본질로 하면서 세계에 등장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 그 본래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남들 보기에 예수님은 고립되고 쓸쓸해 보입니다. 진리를 전해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잠언 1:20-26) 이것은 곧 그분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이 땅에서 죽음과 의로움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이 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려 하십니다. 죽지 말아야 될 분이 죽은 것이고 우리는 사실 살 자격도 없는 것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 전체로 그분의 은혜성을 드러내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2001년 7월 8일 히브리서 1:3-9 아들의 위엄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타인이 한 일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인간들이 도저히 못해 내는 일을 예수님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일입니다. 첫째, 만물을 붙드시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죄를 정결케 하시는 일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것을 편안히 믿고 살아도 좋을만큼 예수님이 대단한 분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천사가 예수님을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 인간에게 다가올 때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 본인도 '능력의 말씀으로' 이런 모든 일을 수행하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유감없이 적용됩니다. 즉 만물을 예수님이 붙드시는지 아니붙드시는지 여부도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봐야하고, 그리고 과연 우리의 죄가 진짜로, 그리고 제대로 씻어졌는지 아닌지도 말씀을 통해서만 확인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도 천사를 부리시지면 이 모든 활동은 항상 말씀을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실제적인 말씀의 능력이 성도의 마음에 닿을 때 그 성도는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기쁨으로 수용하겠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말씀을 안믿는 자들은 말씀 외에 자신의 종교적 기술들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기대하고 결과들을 얻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을 내고, 신에게 헌신도 하고, 심지어 모든 것을 희생까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당당한 위상과 위엄에 대해서 결국 못믿겠다는 태도에 불과합니다. 말씀 완성은 오로지 예수님 담당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2001년 7월 15일 히브리서 1:10-14 아들과 창조 세계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새로운 옷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새로운 옷을 마련했다고 하십니다. 새로운 옷이란 하나님에 관련된 옷이 아니라 아들과 관련된 옷입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옷은 이제 낡아지면서 무엇으로 바뀌느냐 하면 이제 아들을 위한 옷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덕스러운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애초부터 아드님의 영원하심으로 전 우주와 피조 세계를 한데 모으시는데 있습니다. 빌리보서 2:10-1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로 이러한 사실이 하나님의 주관심사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있습니까? 그 나라와 의를 바라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위반하며 사는 자가 됩니다. 세상의 다랄짐은 아드님이 지닌 영광과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아드님은 하나님의 원수를 정복하고 승리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감탄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2001년 7월 22일 히브리서 2;1-4 구원 정신

구원이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 주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이 주사는 일과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다고 믿는 것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은혜로 받아들여야 할텐데 자신이 평소에 품고 있는 포부와 뜻을 성취하는데 목숨을 바치고 그 일에 매진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이 있다', 혹은 '구원이 된다'라는 점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구원에서 탈락된다'. 혹은 '구원에 해당이 안된다'라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되는 것이 인간의 노력과 애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9:1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늘 본문에 봐도 '응분의 보응'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응받는 대상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에게 미리 보응을 가한다고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보응으로 간주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아는 것조차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을 이루어집니다. 인간 자신이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관점과 다릅니다. 그래서 새로운 하나님의 관점을 접한 사람은 그 세계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당부하고 무엇을 지시를 하는 것을 통해서 은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접하지 않은 사람같으면 하나님의 당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려는 방식으로 구원에 나설 것입니다.

2001년 7월 29일 히브리서 2:5-9 죽음을 맛보심

하나님의 말씀과 천사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분은 마땅히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아야만 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에게 또한 다른 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로부터 존경을 받으실 만한 것이 그분이지만 잠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왜 그분이 죽음을 맛보아야 합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실행에 옮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대할 수 있습니다.
시편 8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화나님의 '사람 사랑'이 극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늙음과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자기 자신의 운몀만을 탓해서는 아니됩니다. 에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천사를 비롯해 모든 피조물들이 흠모하고 찬양할 만한 분이 예수님인데 유독 인간들만큼은 예수님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존과 영광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에수님께서 일부러 인간의 죽음까지 맛보시려 한 그 취지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정말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만 합당한 그분조차 이 땅에서 서슴없이 죽음의 길로 가셨다는 것은 죽음조차 이제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커스가 지나가는 곳에 글자가 지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과 같이 인생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지워지고 영광과 존귀가 기다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2001 8월 5일 히브리서 2: 10-13 형제

한 부모밑에서 태어난 사람들 사이를 '형제'라고 합니다. 형제는 공동 운명체 속에 속합니다. 예수님과 구원받은 백성들 사이에도 공동 운명이 형성됩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따로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행함'이 들어가야 될 자리는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에 의해서 부름을 받으면 그것이 곧 거룩한 상태에 놓인 것이 됩니다. 믿음없이 자기 행함으로 무엇이든지 만들어내고 달성하려는 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행함으로 예수님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형제란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태어남의 토대에는 예수님의 고난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행함으로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온전케 되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고난 뿐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모든 인간을 위함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니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8:18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메시야에 의해 구원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철저하게 따로 분리되어 결정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서 좋은데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주어지는 혜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될 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행함에 의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자 한 그 은혜만으로 인간은 구원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형제됨을 생각해야 합니다.

2001년 8월 12일 히브리서 2:14-18 죽음과 예수님

인간이 혈육에 속해 있다는 것은 자신의 혈육으로 구원이 가능치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살고자 하는 성향 때문에 죽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이점을 악마가 주목합니다. 살기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행동 하나 하나마다 죽음으로 위협하고 겁주는 것이 악마입니다. 악마는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죽음은 곧 실패이며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경우라고 죽어서는 아니된다는 의식으로 지배합니다. 자연적으로 죽음 앞에서 인간들은 고개숙이고 굴복하게 됩니다. 죽음의 힘이 시키는대로 다 하게 됩니다. 그로나 여기에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동일하게 같은 혈육에 속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던 분입니다. 환경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불가능 해보이는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악마의 협박이나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키신 일을 다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최후로 찾아온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잔까지 수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의 혈육은 부활의 혈육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세력자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을 거뜬하게 구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의 혜택은 아무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에게 해당됩니다. 물론 그들에게 고난이 기다립니다. 하지만 이들을 붙잡을 죽음은 더 이상 없습니다.

2001년 8월 19일 히브리서 3;1-6 하나님의 집

하나님은 자신의 집을 염두에 두고 매사에 일하십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의 집이 사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환이라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시편 84편에 보면,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나 하나님의 사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환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할 일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모세가 비록 사환이지만 이 지상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세 뿐만아니라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다 예수님을 보여주었던 사환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집을 어떤 식으로 보존하고 유지했습니까? 모세가 한 것은 말씀 순종이었고 그 말씀 순종은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의 생활관하고도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세를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원망했고 모세를 미워했고 모세의 가치를 부정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장차 오실 메시야의 가치를 부정하고 소중함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모세의 고난을 통해서 도리어도 하나님의 집은 착실하게 건설되어 갔습니다. 즉 참된 성도는 이런 고난 속에서 옥석으로 가려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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