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5:6 해석 요청
갈5:6 해석 요청
이름 : ikano(IP:222.104.198.248)
십몇년전인가 두레마을 김ㅈㅎ목사님의 생활목회 간증이 큰 syndrom이었던 시절,
대다수 우리 기독인들은 그 설교테이프를 구해 듣거나 책을 사보거나 해서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직 성장위주의 교회키우기에 매달린 한국교회에 일침을 가하며
베푸는 삶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삶인가를 일깨워서
그 시대의 큰 획을 긋는 목회자로 회자되곤 했었죠,
(당시 이근호목사님이 김목사님을 맹렬히 비판할때는 너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죠^^)
그런데 그 분의 작금의 행보를 볼 때,
뉴라이트 운동이니, 수구세력 단체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등등의 작태가
과거 그 분의 말씀을 좋아했던 기독인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고...
과거 생활목회 간증이
추악한 자기 의 확보 및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퇴락되는 꼴을 보며
우리가 그 말장난에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닌가라는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
이근호목사님의 답변 내용을 검토해 볼 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받은 믿음을
인간의 자기 대단함의 표상으로 드러나는 행함과는 구별해서 파악하자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입장을 metaphor(은유)로 표현한 사례가 바로
거지가 구걸할 때의 반응들 즉,
1. 동냥 그릇을 발로 으깨버린다.
2. 구걸행위를 한다고 구청에 고발한다.
3. 동냥 그릇 안에 들어있는 다른 사람이 이미 한 돈도 도로 가져가버린다. 불로소득이니 도적질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는 계산하에
4. 잔돈 바뀌기 위해 동냥 그릇에 담긴 푼돈을 이용한다.
5. 자기 가게 앞에서 장사한다고 화를 내면서 추방시켜 버린다.
일 것입니다.
은유의 다섯 사례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빛 된 생활과는 무관한 딴 판의 행동을 해도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십자가 은혜만을 가치있게 여기며 초월해서 살자는 주장으로 이해됩니다.
심지어
성 프랜시스의 청빈의 삶도
성령께서 주신 변화의 삶이라기 보다는
불신앙적인 행위(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무언의 항변 행위)인 이유가
십자가 피 흘리심의 무용론을 펼칠 수 있는 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뉘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야고보서 2:15-17 "만일 형제가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니요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라는 말씀에 대해서 평생 합당한 인간은 없으므로,
성경말씀속에 있는 여러 도덕적인 권면(원수를 사랑하라 등) 자체는
인간으로 전혀 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게(걸레는 빨아도 걸레) 해 주는 말씀일 따름이기에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그 일을 대신해 주셨으니
자신의 걸레됨(죄인됨)을 파악하여 (무리하게 수건으로 승화되려고 욕심내지말고)
십자가 공로만을 높이며
걸레인 채로 자유롭게 살자는 주장을 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에서
제 질문의 요지는
'믿음에 합당한 행위'와
세상적인 도덕적 윤리적 행위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세상적 기준의 위법행위나 비 도덕적 행위를 하고서도
양심의 가책 따위의 화려한 자기 의 확보행위 하지말고
그냥 그대로
닥치는 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성깔대로(동냥하는 거지의 밥그릇을 발로 밟아 뿌샤버리더라도)
자유롭게 살자는 주장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이근호(IP:220.♡.214.30)
06-11-29 08:58
'내'가 어떻게 사느냐보다, 주님이 나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면서 '사시느냐'가 드러나야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조차 나의 양심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식을 십자가 앞에서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뭔가 나쁜 짓을 했다고 여기면 회개하기 쉬우나 사람이 뭔가 착한 일 했다고 한다면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착한 일'이라고 간주하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 피의 용서'가 그 순간 없어지고 마는 겁니다. 이럴 경우가 바로 '넘어질까 조심히라'가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이가노(IP:124.♡.189.151)
06-11-29 12:28
'십자가 보혈의 능력'앞에서
자신의 선행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대단하게 여기는 자체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할' 사안인 바,
선행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잘못되었다는 지적!
'내'가 어떻게 사느냐보다, 주님이 나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면서 '사시느냐'가 드러나야 된다는 가르침에
깊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깨닫습니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