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길
예정된 장자-맏아들(롬 8:29)믿음이란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부서진 자리에서 새로 태어난 새피조물인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것이다. 야곱 스스로가 믿음을 성취 쟁취 할수 없는 죽음 속에서 육의 종말과 함께 피어나는 생명인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부서뜨리는 육의 종말과 동시에 영의 탄생인 그 얍복강가가 바로 주님을 만나는 미팅 장소인 것이다. 신약에선 그 미팅 장소가 십자가에서 고정되었다. 그렇기에 믿음은 십자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다 인간의 열심일 뿐이다. 죽음을 극복하고 이기고 나온 믿음이기에 인간의 종교적 열정과는 무관한 것이다. 오로지 공짜로 주어진 값없이 받은 선물이다. 오직 주님의 공로일 뿐이다.자 그럼 오늘은 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바로 요셉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야곱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 형들도 죽은자로 취급하여 기억 속에 잃어버린바가 되었다. 아무도 요셉을 산 자로 취급한자 없었다. 잠시 잠깐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던, 편애 속에서 형들의 미움을 받았던 과거의 인물일뿐, 어느 누구도 그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둘수 조차 없는, 없어진 존재로써 취급하였다. 요셉의 존재가 이미 없어진 입장에서 그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무가치한 것이다. 살아있다면 몰라도 그 존재가 있다면 몰라도 없어진 존재로써는 의미없는 것이다. 요셉은 여전히 지금도 무시의 대상이다. 그에 대한 비젼이라는 허상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줌으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큰 꿈을 가져라 꿈꾸는 자는 성공하는 자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의미로 요셉을 접근한다. 여전히 요셉을 무시하는 처사이다.요셉의 의미는 꿈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신약은 한결같이 죽은자와 방불 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이미 죽은자였던 요셉이 산 자로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살아난 것이 아니라, 애굽 나라의 총리가 아니라 애굽왕 바로의 머리인 아버지 주(主)로써, 죽음으로 취급했던 저주 받은 아무 가치없는 시체로 취급했던 죽은자 요셉을, 이제는 남을 살리는 주의 자리에서 요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죽음과 소외와 멸시와 비웃음과 버림(왕따)이라는 무기로 요셉을 무가치한 존재로 만들었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난 오뚝이가 바로 요셉인 것이다. 야곱이 얻고자한 장자란 바로 그런 죽음을 극복하고 남을 살리는 자를 말한다 그것을 섬기는 자라 한다. 장자란 섬기는 자요, 이스라엘이란 제사장 나라로써 죄(죽음)를 이기는 섬기는 나라이다.(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한 나라란 제사장 나라란 죄를 감당하는 나라이지, 희생제물이 되는 나라이지(죽이기로 작정-(고전 4:9)), 1등 나라 1등 민족 성공한 남의 부러움의 대상, 축복받은 대상, 유일한 자기민족 선택이 아닌 것이다.요셉은 죽은자와 방불된 자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산 자로 아니 이젠 남까지 살려주는 자로써 주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섬기는 자만이 장자라는 것이다. (참 장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 요셉은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보여줌 고전 15:45)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바로 섬기는 하나님이다는 것이다. 섬기기 위해,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찟고 직접 희생 제물이 되는 하나님이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예수를 이용하든 종교를 이용하든 교회를 이용하든)이 되고자 높아질려고 하지만, 정작 참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살리고자 낮아지셨다는 것이다. 낮아짐으로써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그렇기에 예정된자들은 바로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낮아짐을 보여주는 자들인 것이다.(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부르시고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된 결과로써 미리 정함(선택)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미리 정했기에 우리가 존재(선택)하기 전부터 창세전부터 정했기에 그 정하심으로 인해 불렀고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한 그 선택에 우리가 동참케 된 것이다. 우리의 예정이 중요한게 아니라 예수님(맏아들, 장자)의 예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예정된 것이지, 예정 자체가 우리를 향한 목적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예정의 목적점이다.결국 우리의 운명은 하나 뿐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냐 아니면 육으로 끝나느냐(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모래 속에서 진주처럼 복음은 너무나 값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려도 이것만 있다면 절대 바꾸거나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 가짜 진주 속에서 진짜 진주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 불가능 속에서 만난 복음은 기적이다.(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육의 열매인 이스마엘이 아닌 영으로써 난 자들인 그리스도의 형상들은 남을 살리기위해 희생 제물이 되는 그 섬기심으로 다시태어났기에 그들의 자랑은 이 십자가를 증거하는 주님의 살과 피를 증거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에 참여하는 요셉의 일생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곧 주님 가신 길이다. 그 십자가의 길 외에는 예정된 길이 없다.(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