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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1:29-2:3 / 안식일강의창세기

안식일 2001년 8월 5일 본문말씀: 창세기 1:29-2:3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오늘은 안식일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2장에 보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시기 일곱 째 날에 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안식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안식일을 정해 놓았으면 혼자서 안식일 지키면 되잖아요. 왜 우리 인간들을 끌어당깁니까? 혼자 안식하시든지 말든지 우리 인간들은 인간 나름대로 볼 일이 있잖아요. 왜 강요합니까? 그리고 또 의아한 것은, 우리 인간이 안식일 안 지키면 안식일이 어디 날아가 버립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월요일 안 지키면 월요일이 어디 날아가 버립니까? 우리 중에 수요일을 곗날로 모이는 날로 정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떤 회원이 그 날 참석 안 하면 그러면 수요일 자체가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는 겁니까? 시간이란 우리 인간이 손 탈 수 없는 개념입니다. 시간은 해 뜸과 해 짐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낮에 노는 것이 재미나서 좀 더 놀고 싶다고 지는 해를 붙잡아 놀 수 있습니까?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없는 것처럼 반대로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함부로 훼손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시간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이 아닙니까? 즉 그것은 하나님이 지킬 몫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해는 네 볼 일 보고 나는 내 볼 일 보면 그만이잖아요.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안식하셨다'라고 되어 있으면 우리 느낌은 뭐냐 하면, "그래 하세요. 하나님 당신은 하시고 우리는 우리대로 제 할 일하고. 그렇게 해서 따로 따로 살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겁니다."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기 없기, 누구누구에게 지시하기 없기, 누가 누구에게 시키기 없기, 하나님이라면 하나님답게 우리에게 은혜만 주시고 손 털고 뒤로 물러가 계시면 제발 좋겠습니다" 하는 바는 우리의 바램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했든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거룩 되게 지켰던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20:16에 사태가 심각합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과 인간하고 이야기가 잘 성립되지 않는 것 같아요. 고기가 노는 어항에 구정물을 부으면 그 어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어항은 더럽혀진 어항이 되겠지요. 만약 엄마가 진흙탕을 지나가다가 진흙 물에 튀기게 되면 엄마 치마는 더럽혀진 치마가 되겠지요. 화가가 멋진 그림을 그리는데 어린 자식이 거기에다 물감을 쏟아버리면 그 그림은 더럽혀진 그림이 되겠지요. 이처럼 어떤 물질이나 공간이 성립되어 있을 때는 이 물질이 개입하면 순수함이 깨어졌다, 더럽혀졌다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시간이란 이런 물질이나 공간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수로 시간이라는 시간을 더럽힐 수 있단 말입니까. 시간이 어항입니까? 엄마 치마입니까? 화가의 그림입니까? 시간은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절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냥 흘러가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붙잡아서 일부로 더럽힐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안식일을 더럽혀다'는 문제 제기를 하신 하나님 자체에 무슨 어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시간을 더럽히고 싶어도 더럽힐 재주가 없단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께서 홀로, 친히 이 대명천지를 창조하셨다는 표시잖아요. 그러니까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말은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살면서 이 대명천지를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안 가지고, 무시하고 사는 그러한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가짐에 부합되지 않으니까 그 대표적으로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점 더 쉽게 말씀드리면, 안식일 제정은 일종의 하나님의 창조의 취지를 최종 담아내는 '종합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수능을 며칠 안 남기고 각 학원마다 종합적으로 강의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국어 종합 편, 영어 종합 편, 수학 종합 편, 이라고 해서 집중으로 최종 정리해 주는 겁니다. 시험에 나올 것을 꼭 짚어서 핵심 되는 부분만 추려 주는 겁니다.안식일은 바로 이런 위치에 있습니다. 안식일을 무시한다는 것은 전체를 무시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생각하시는 겁니다. 종합적으로 강의하는 날 결석하는 것은 전체 수업을 다 결석하는 것과 같이 보겠다는 겁니다. 종합을 놓친 게 됩니다. 어떤 인간이 안식일을 무시하고 평일과 같이 보겠다는 것은 "하나님 네가 뭔데 내가 당신 말 들어야 돼요?"라고 시비 거는 것으로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매주 돌아오는 7번 째 날은 일하지 말고 온 식구와 함께 쉬어야 된다"라고 하면, 이것을 듣고 "하나님 어떤 식으로 쉴까요?"라고 질문을 한다면 이것은 안식일을 어기지 않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 네가 뭔가 나보고 쉬라니 말라니 하는가? 나는 내 쉬고 싶을 때 쉬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라고 나오는 이것이 안식일을 더럽힌 자가 되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친히 창조했거든. 다른 민족들은 이 사실이 은폐되어 있지만 친히 구원해 낸 너희들에게 옛날 창조의 원리를 너희들에게만 복사해서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했단다." 이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아 그렇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렇다면 안식일을 더럽히지 말아야지"이렇게 나오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결코 안식일 지켜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았기에 그 구원해 주신 능력 안에 안식일에 대한 소식도 같이 담겨서 들어온 겁니다. 안식일 지키신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복사된 겁니다. 즉 "우리가 뭘 하면 천국 갑니까?"가 아니라 "우리가 어째서, 어떤 위력으로 천국을 지금 가고 있는 겁니까?"에 관한 내용이 안식일에 담긴 내용입니다. 남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라고 안식일을 쉬라고 하는 겁니다.이런 안식일의 취지가 신명기 5장에 보면 나옵니다. 12-15절에 보면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찌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안식일을 지킨 이유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던 그 창조의 힘으로 애굽의 종으로 살던 너희들을 동일하게 작용해서 끄집어내어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에게 천지를 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했느냐를 알려주라는 이야기입니다.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 무슨 수로 애굽에서 나왔지?"라고 묻지 말고 "너희들이 믿는 신은 어떤 분이야?"라고 물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하루 쉬었던 그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들은 돌아오는 일주일마다 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식일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구원받아서 구원받는 것이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킨다는 조건으로 구원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되지 본인이 안식일 지켜 낸다고 해서 구원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안식일 지켰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안식일 지키니까 애굽 사람들이 질겁을 하면서 "나는 너희들에게 졌다. 어서 해방되거라" 이렇게 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아무리 율법 지켜서 애굽 사람들은 그들은 무시했습니다. 구원의 위력은 딴 데서 오는 겁니다. 우리는 이점을 평생 간직해야 합니다. 이단과 이단 아님이 이로서 구분됩니다. 애굽에서 나와보니 "아, 이 구원의 능력이 내 능력이 아니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루 쉬셨던 그 분의 능력이구나. 이 능력이 지금도 우리를 감싸고 지배하고 끌어가고 있구나"하고 깨닫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바로 이점에 대해서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나옵니다. 거기는 광야였는데 백성들이 물이 없고 양식이 없다고 난리를 피울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플 때 귀한 양식을 받게 되면 허겁지겁 자기 배고픔부터 먼저 해결하려고 덤비지 이 양식이 누구 무슨 의도로 주셨는지를 나중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가 몸이 아플 때는 현재 내 몸이 건강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지 특정 누가 내게 도움되기를 원하지 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시절에 만나를 내릴 때 딱 하루에는 만나마저 주지를 않습니다. 그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 전 날에 이틀 분을 한꺼번에 줍니다. 이는 안식일이 다른 날처럼 먹는데 치우칠 수 없는 날이 됨을 기억케 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안식일은 양식을 초월하는 능력이 따로 있음을 알려주는 날입니다. 그것은 양식이 아니라 누가 우리를 지금 이 광야에서도 호위하시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다급한 양식보다 먼저 알아야 될 분이 엄연히 존재하신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만나 조차도 없습니다. 그 대신 그 땅의 소산물이 솟아납니다. 그래도 그 농산물은 이방민족들이 생각하는 그런 농산물로 봐서도 아니 되고 광야의 만나 차원에서, 은혜의 소산물로 봐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에서 오는 은혜를 말입니다.은혜는 만나처럼 공짜로 옵니다. 그래서 구원도 만나 처럼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안식일에 대해서 이 은혜 성을 상실해 버리고 기껏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켜보겠다고 나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기 행위에다 가치와 중요성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서는 은혜 성이 상실된 안식일은 더 이상 안식일이 아니라 도리어 안식일을 더럽혔다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지킬 능력 따라 안식일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안식일을 완벽하게 지킨 분이 신약 시대에 나타났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자... 여기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12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안식일 날 밀밭 길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밀을 까서 먹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겼다고 시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11-13절에 보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즉 안식일은 뭘 안 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능력자가 누군가를 말하기 위해서 있는 날이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그 안식일 날에 손 말라 비틀어져 가는 자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뭘 안 했느냐가 안식일의 관권이 아니라 뭘 했느냐가 안식일의 관권입니다. 그런데 생명이란 천지를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의 몫이지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아직도 창조의 능력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안식일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그 누구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안식일 뿐 만 아니라 율법 전체가 인간보고 지킬 수 있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내는 담당자는 따로 계십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이 나옵니다. 병자를 고쳐준다는 은총의 연못입니다. 그 못 가에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말이 38년이지 만약 12살 때 아팠다면 50살까지 쉬지 않고 아픈 채로 살아가는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이 소리를 듣는 즉시로 그 38년의 세월은 새 생명의 세월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하필이면 안식일 날 하는가 다른 날을 놔두고 말이다"고 시비를 겁니다. 여러분 안식일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담당자가 따로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천당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3;16에 이런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 인간적인 행위와 논리와 철학도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서 누구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밖에 없느냐를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석가모니와 공자를 믿어서는 아니 됩니까? 그들은 안식일을 우리들처럼 지켜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생명의 공급자가 되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그 창조의 능력이 손 마른 자를 낫게 했습니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가 나은 것은 창조의 능력 이외의 인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어떤 분은 말하기를,"목사님, 38년 된 병자는 낫겠지만 39년 6개월 된 병자는 더 지독한 병마가 있기에 어찌 나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실 수 있겠지요.설마 이런 유치한 질문을 누구 하겠습니까마는, 38년 병자 나으면, 39년 6개월도 문제없고 500년 된 병자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년을 살 사람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병이 얼마나 심하냐 하고 상관없습니다. 누가 그 사람을 낫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가 나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심이 이제는 나의 다 이루심이요,우리의 다 이루심이 됨을 믿는 자가 신자입니다. 이렇게 이미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자만이 창세기 2:1-3이 이해되는 것입니다. "아, 이 분이 그 때 그 분이구나"하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이 이 고백이 잘 나오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한 번 봅시다. 에베소서 3:9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안식일을 사도 바울은 '비밀'에 해당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안식일이 시답지 않는 계시에 불과합니다. 무시해도 될 것으로 바라봅니다. 여러분, 비밀이란 남들에게 호응 받는 게 아닙니다. 알 사람에게만 믿어지면 그것으로 족한 겁니다. 전도란 하나님이 알아서 잘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는 비밀을 비밀답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나 내나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에게만 듣게 되면 비밀의 가치는 충족된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살아 있어야 옳은 신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신 만족이 오늘날 생명 창조의 능력으로 발휘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능력만 의지하고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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