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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4:1-8 /가인의 분노성경창세기

창세기 4:1-8 /가인의 분노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가인의 분노
2001년 10월 14일
본문말씀 :창세기 4:1-8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오늘 읽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이 세상이 나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만약 나의 세상이라면 형제간에 이렇게 원수가 되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가정에 깨어지도록 시나리오를 짜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리어 아담에 속한 모든 식구가 화목하고 잘 지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 보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았다'는 그 아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이 사실을 놓고 볼 때는 우리들의 선입감으로 인해 우리가 버림받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나의 세계가 아닌 세게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오판하고 오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판과 오산으로 인해 자진해서 하나님의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벨 편에 서지 마시고 먼저 가인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즉 이 세계를 나의 세계로 간주했을 때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적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가인 편에 설 때만 하나님의 말씀을 직격탄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가인의 속성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시면 가인의 태도에 대해서 충분히 동감하게 될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성의와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땅의 소산물로 드렸습니다. 추수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감사히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당사자가 여러분 자신이라고 했을 때, 여러분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이런 일을 비일비재합니다. 명절날 객지에 흩어져 살던 식구들이 부모님 앞에 한 자리에 모일 때, 각자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부모님이 어떤 자식이 가지고 선물은 늘어지게 칭찬하면서 어떤 자식이 가져온 선물은 외면하고 물리친다면 그 아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가인도 안색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같아도 안 변했겠습니까? 분명히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외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는 목축을 하는 동생 아벨과는 다른 제물이 드릴 수 없었습니다. 농사짓는 자는 농산물을 가지고 제사하는 것이 뭐가 큰 실수 한 것입니까?

즉 가인의 얼굴색이 변했다는 것은,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에게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동생 예물은 받으면서 자기 예물을 안 받는 겁니까? 안 받으려면 둘 다 안 받든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터무니없는 차별에 가인은 부화가 난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교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물을 드리면서, "이처럼 성의와 정성과 믿음을 다해 드리니 하나님께서 응당 받으실 것이 분명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외면하고 지옥 보낸다면 그 당사자는 얼마나 부화가 나겠습니까.

정말 왜 하나님은 이런 조치를 하시는 겁니까? 잠언 16: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즉 악의 역할을 할 악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제 것도 됩니다"라고 우기지 맙시다. 자칫하면 늘 우리의 안색이 변해 가지고 지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 가인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왜 저의 제사를 안 받습니까?" 하나님 왈, "내가 안 받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하는 식으로 하나님은 대응하십니다.

이 답변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는 이 답변 안에서 진실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안에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고 있는 세상 돌아가는 내막이 하나님의 답변 안에 진리로서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입감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응수입니다. 인간이 드린 제사는 신쪽에서 응당 받을 것이라는 이 선입감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가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들의 세계관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어느 강의에서 제가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받지 않다"고해서 많은 항의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의 신앙 관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인간' 이 둘의 주체밖에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한 분이 더 있다고 봅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즉 하나님- 예수님-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중보자의 기도를 받아들여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인은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 가인', 이것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잘못된 세계관이고 신앙 관이었던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아벨을 있으나 마나하는 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사고 방식, 바로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인들의 특색입니다.

자신이 벌리는 종교적 행위에 대해서 전력을 다하여 그 가치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왜 예수님이 계신지를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 자기' 만 있으면 신앙이라는 것이 형성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세계를 몰라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예수님' 세계입니다. 우리 성도는 거기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 것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뒤에는 '하나님- 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 4장의 살인 사건은 이런 세계관의 착각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벨하고 손잡았는데 가인은 자기를 그 자리에 안 넣어준다고 화를 내어서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저 교회 왔습니다. 예배드립니다. 성의를 다해서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예배를 받으시고 복 주십시오" 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디로 가버린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계신 겁니까?

깡패가 알고 있는 하나님 상은 깡패 두목 상입니다. 아주 쌈 잘하고 힘 센 하나님 상입니다. 달리기 선수에게 있어 하나님 상은 자기를 현재보다 더 빠른 기록을 보장해 줄 분으로 여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 때문에 계신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의 오판을 지적하기 위해서 계신 분입니다. 가인의 잘못된 세계관은 아벨로 인해 들통납니다.

세상은 하나님 세상입니다. 가인이 세계가 아니라 아벨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가인의 잘못은 바로 이것을 몰랐던데 있습니다. 아벨의 세계에 대해서 같이 동의하고 동조하고 기뻐해야 될 형이 도리어 안색이 변하고 동생을 미워하고 더 나아가서 죽여버렸다는 결국 하나님 세계에 대한 도전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4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데, 도대체 아벨 드린 제사가 어떠한 점이 있어서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낫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딴 게 아니라 하나님이 드리고 싶은 제사를 아벨이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의 예물에 대해서 O. K 한 것입니다. 아벨의 드린 예물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4장까지만 읽었다면 이것이 무슨 내용인 줄 모를 것입니다. 출애굽 12장까지 읽은 사람은 이 내막을 알 것입니다. 민수기까지 읽은 사람은 그 내용은 더욱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 1장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는 것을 읽은 사람은 이 내막을 더 깊숙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장차 드리고 싶고 받고 싶은 제사를 이 아벨은 자신의 제사 속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아벨의 태도를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은 그 예물에 대해서 올바른 믿음의 증거로 삼겠다고 나서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맞습니다.

아벨의 예물은 장차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예물을 마셔버립니다. 아벨의 제사 속에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고 싶은 속성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이 마셔 버리고 싶은 행동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가인의 저주는, 아벨 중심의 세계를 삭제하려는 의도 때문에 떨어진 것입니다. '삭제'란 '그 사건이 안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겠음'입니다. 하나님 살아있고 그 뜻이 분명하다는 것은 아벨의 제사가 받아들여짐으로 현실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바로 그 현실 자체를 무산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에게 덮쳐진 악의 정체입니다. 아벨을 없애버리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가인이 바라 본 세계만 남겠지요. 바로 이러한 사고 방식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그래서 생긴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가인은 사고 방식은 딴 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성의와 정성을 다해 예배하면 신도 거절치 않고 받는다"는 사고 방식만 남겠지요. 이게 종교이잖아요. 이 사고방식은 예수님을 있으나 마나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게 악마의 정체요 이단의 정체입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구세주 자리에다 예배당을 짓고 주차장을 넓히고 교회 조직을 굳건히 하고, 자기의 기도와 금식과 헌금을 넣는 행위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예물을 드리면서 기름부분과 본체 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드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정말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4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메시야에 대한 증거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예물은 기름부음을 입은 자, 즉 메시야의 희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뺨 맞았지요, 십자가에 달려 있지요, 반항 한 번 안 하고 맥없이 죽었지요, 재산이 있어 재산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권력이 있어 권력을 나누어줍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증거로서 예수님의 내 놓으신 겁니다. 즉 십자가, 더욱 그러하기에 바로 구세주의 증거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천국 가는 이 원리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원리와 다릅니다. 현대 국가 교육의 이념은 자아 실현입니다. 스스로 건전한 시민으로 설 수 있고 국가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잠재력 배양과 그 성취에 있습니다. 즉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쟁취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으로 볼 때 십자가를 그냥 무조건적으로 지우고 싶은 흔적 같은 것입니다. 즉 이 세계는 외부에서부터 구세주가 따로 투입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원히 우리들만의 세계로 남겠다는 겁니다. 천당가도 내가 착하고 양심대로 살아서 가는 것이 순리이지 누가 외부에서 데리고 간다는 것은 용납을 못하겠다는 것이 가인의 후예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세례와 창기는 오히려 아벨의 세계를 반겼을 것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기도했던 세리의 기도를,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의롭다고 했습니다.

자... 우리는 무엇을 보여 줄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주님의 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아벨이 있음이 가인에게는 고통이었듯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구원의 체제와 종교 제도가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다시 한번 잠언 16:4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벨은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를 미리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 속에는 무슨 예물이 들어 있지는 살펴보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님의 피만을 의지하는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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