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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4:9-15 /저주와 보호강의창세기

저주와 보호2001년 10월 21일 본문 말씀 : 창세기 4:9-15절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하시니라오늘 본문 내용을 겉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일관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동생을 가인이 죽였습니다. 죽였으면 벌을 내려주면 그만인데 왜 벌받는 자를 하나님이 나서서 보호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애초에 벌을 내리시는 취지가 무산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그는 살인을 한 이 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뻔뻔스러운 가인의 답변을 듣고 아벨의 입장이 되어 보는 징벌을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도 곁에서 지켜 줄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가인은 지키심이 없는 환경에 대해서 미리 질겁을 합니다. 그래서 벌받는 주제에 또 다시 뻔뻔스럽게 감히 하나님에게 호소합니다. 징벌이 너무 무겁다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스스로 가인에게 있어 '지키시는 분'으로 행동에 나섭니다. 즉 가인에게 표를 가해서 아무나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징벌 가운데서도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시는데 주력합니다. 평소에 늘 인간들을 지키시는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 과연, 가인이 투정을 부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내 아우를 지키시는 자니이까?"라는 가인의 반발은 그가 저질은 살인죄 이상으로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가 선재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면 가인은 남의 동네에서 언제 죽어도 죽을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시편 136:1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에 나오는 '인자하심'은 심지어 마땅히 징벌 자에게는 제공되는 인자입니다. 이런 인자와 자비 앞에서 쏟아내는 인간들의 투정이나 불만 같은 것은 무례한 짓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모르는 채 자신의 불만만을 나열하면 그것이 곧 가인 적인 인식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이 죽고 난 뒤에 가인을 찾아오신 이유는, 살인죄를 묻기 위함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가인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보다는 자기 입장을 변호하는데 급급합니다. 이처럼 가인에 대한 징벌은 가인 개인에관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리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징벌을 개인적으로 것으로 간주하게 되면 하나님의 죄 용서라든지, 저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은 다 거짓이 되고 맙니다. 죄는 용서해주되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한다는 식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그 때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0-11절에 보면,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고, 그들은 말하기를, "다윗은 죄 용서받은 것으로 범죄의 마무리는 끝나지 않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타인에게 사기를 친자라면, 그가 주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으로 모자라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서 자신도 남들로부터 사기 당하는 형벌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조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경우도 그러하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도와는 달리 고생이 심한 것은 그가 사도가 되기 전에 그리스도 인에 대해서 너무 심한 핍박을 했기 때문에 본인은 이미 죄 용서받았지만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 이런 식이라면 과연 욥은 왜 고난 받는 것입니까? 욥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생에서 그런 모진 고생을 하느냐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면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마귀만 좋아합니다. 인간들 하나님의 후속 징벌을 대비해서 스스로 자학하는 식으로 나가는 것은 악마들이 시키는 짓거리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지만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총의 보자기 소속에 쌓여 있음을 본인이 알았습니다. 밧세바와 자기 사이에는 부정하게 태어난 아기를 죽었을 때 다윗은 말끔하게 단장하고 자기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사무엘하 12:20절에 보면,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죄는 다윗이 지었지만 그 죄에 대한 모든 뒤처리나 마무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리된다는 사실을 다윗이 확실하게 알았던 것입니다. 즉 성도가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성도가 있는 자리는 저주를 주어지는 영역이 아니라 용서와 자비와 은혜가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자에게는 결단코 정죄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성도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고생하는 겁니까? 이미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세계가 악한 세계입니다. 이 악한 세계가 가져다 주는 환경으로 인해 고통하고 있는 겁니다. 즉 성도 뿐 만 아니라 타인이 내뿜는 악으로 인해 이 세상은 차라리 버리고 싶은 세상입니다.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이기에 성도는 더욱 더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게 됩니다. 차라리 떠나고 싶은 겁니다.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성도는 그 가운데서도 하늘 나라가 더 좋아 보이고 그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 그는 옛날에 저지른 자기 죄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약한 데서 강함이다"는 고백이야말로 사도 바울이 처해 있는 현실을 바로 표현한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저주란 없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합력하여 선이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아벨이 안 죽도록 지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키심'이 아니라 아벨을 죽여서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지키심'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죽고 난 뒤에 가인에게 찾아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한 개인의 살아 있고 없고 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악한 세계의 속정과 그 정체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악은 단순한 살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키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에 보면,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은혜를 놓치게 되면 그 다음부터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원망하는 가인 적인 태도뿐입니다. 이것이 악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고 사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악인과 선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그 은혜를 모르고 감사 할 줄 모른다면 그 어떤 신앙적 태도도 언제든지 악한 본색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기도합시다.『하나님 아버지, 보다 큰 은혜에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살아 있다는 것 만해도 그 은혜를 누리는 중인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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