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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5:6-24 /동행강의창세기

동행 2001년 11월 18일 20강 본문 말씀: 창세기 5:6-24 5:6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5: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8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9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5: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11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12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5: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14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15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5: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17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18 야렛은 일백 육십 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5: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20 그가 구백 육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5: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우리가 오늘 본문을 보면 상당히 부럽고 시기 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보다 훨씬 많이 살았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사신 들 그들의 끝은 '죽었더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러합니다. 개개인의 인생은 끝나더라도 그 끊어지는 인생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이어져서 전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한 곳으로 인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끊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큰 공포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먹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공포는 꼭 죽는 그 직전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전부가 다 이 공포로 짓눌러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하는 모든 행위가 "더 살고 싶어"하는 공포심을 의식한 무언의 고백입니다. 목사가 말하기를 "난 목회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남 보기에는 주의 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죽기 싫어. 살고 싶단 말이야"하는 절규의 일종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고 버틸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사는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들아, 너희들은 그 죽는 이유를 제대로 알기는 아느냐?" 하는 점에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에 그토록 관심이 있다는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의 그림자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을 향하여 죽음과 인생의 끝이 별난 사람들을 끌어다가 그들 앞에서 세웁니다. 즉 하나님은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다가섭니다. 사람들 계모임이나 동창회 모임처럼 껍데기만 들이대면서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죽음을 놓고서 현재 우리 자신의 정체를 파악시키고자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겹도록 오래 살고 결국에는 죽음에 굴복해서 인생을 끝맺는 숱한 사람들을 소개해 놓고서는 21-24절에 보니 뭔가 끝 부분이 차이나는 어떤 자를 하나님은 내세우시면서 인생 전체를 비교시키십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무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무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까지는 그 앞에 있는 일반인과 에녹과 하등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틀립니다. 그냥 삼백년을 산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한' 3백년이었습니다. 바로 이 다른 점으로 인해 무엇도 틀려졌느냐 하면, 인생의 끝도 다른 이와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신은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반면에 에녹의 몸은 아예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데리고 갔을까요? 그것은 '동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세상 사람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제가 '동행'이라는 말을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참으로 낯설기 짝이 없는 뜻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인은 누구와 동행하는 것을 거추장스러워 합니다. 홀로 있고 싶어합니다. 흔히 연인들이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고 나서는 눈만 뜨면 같이 있고 싶어 환장합니다. 아침에 남편이 직장에만 나가도 천리 먼길 이별해야 하는 부부처럼 가슴 아파합니다. 온갖 애정 표현을 다하지요. 직장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제대해서 귀향한 용사를 반기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 때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기 곁에 누가 있다는 사실조차 거추장스럽습니다. 혼자 있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자식조차 귀찮아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사랑을 원하게 됩니다. "누가 날 끔찍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누가 날 영원히 보호해 주었으면 좋겠다"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곁에 누가 있어주면 곧장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사랑을 원합니다. 어떤 이가 말했듯이 인생이란 그저 에너지 발산과 그 소모 과정에 불과합니다. 끊임없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과 욕구와 욕망들의 힘을 인간은 주체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늘 새로운 흥밋거리와 재미를 찾아 헤매야 지만 됩니다. "더 재미있는 것, 더 흥미 있는 것이 어떤 것일까?"하고 찾아 헤맵니다. 이러한 일에 모든 정력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붓습니다. 이것이 '사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철철 넘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겁니다. 이것이 인생인데 이런 판국에 누구와 동행을 한단 말입니까? 계속해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즐거움과 흥밋거리를 제공할 기간 내에서만 잠시 동행하련 지는 모르지만 즐거움은 곧장 식상하기 마련입니다. 언제 가는 차버리게 되지요. '동행' 자체가 현대인들에게 익숙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는 삶의 형태입니다. 진정한 동행이란 상대를 알게 된 것이 너무 너무 귀해서 혼자 있는 것을 저주할 정도로 상대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이런 정도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들의 일상도 어느새 현대 사조에 물들여져 있어 마땅한 삶의 형태로 언뜻 받아들여지지를 않게 되지요. 그러나 미가 선지서 6:6-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독자적인 행위 주체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많은 헌물과 재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차라리 '네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시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늘 겸손함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동행하는 상대 앞에서 늘 고개 숙이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참으로 이런 자들이 숱하게 많겠습니까? 끝이 '죽었더라'도 인생을 마감하는 자는 많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드물기 한량없습니다. 창세기 6:9에 보면, 노아의 경우가 나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렇게 동행한 자가 노아말고 몇 명입니까? 유감스럽게도 추가적으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겸손 하에 동행'이라는 것은 인간 본성에는 어긋나는 속성입니다. 노아의 경우에는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동행하게 되었다는 점을 재수 없이 걸렸다는 식으로 받지 마시고 최고의 행운을 잡은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에녹을 거론하시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차이 성을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도대체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어떤 자세로서 남들 앞에 비쳤을까요? 창세기의 본문 가지고서는 이 점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 유다서에 보면 그 내막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서 1:14-15절입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해서 자기 안일과 자기 만족과 나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 편한 것만 챙긴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함께 동행하는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노아가 자기와 동행한 하나님이 앞으로 물의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 없이 살기를 원하는 모든 자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여러분이 차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먼 길을 차가 없어 홀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참 부럽다. 나도 차 없이 저렇게 홀가분하게 고생이나 할까보다"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저들도 나처럼 차가 있다면 저런 고생은 안 했을 것인데"라는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에녹은 자신과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 심판 주라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심판 주되시는 분과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에녹에게 있어 '동행'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계속 동행'이었습니다. 이 세상 삶 이후에도 '계속 동행'입니다. 이미 하나님과 만났기에 계속 쭉 함께 하시는 겁니다. 이제부터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지 마시고 동행함을 도리어 정상적인 세상 삶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현대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동행을 거추장스럽게 여기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나 자신을 내세우지 말게 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하셨던 일과 하실 일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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